EP·120
당난아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비겁한 수법이었다·
새언니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거든 당당하게 아양을 떨어 애교로 친분을 쌓고 진기한 재물을 통한 선물으로 구워삶아야 하는 법이었다·
비겁하게 무도 따위를 들이대다니·
당난아도 사람을 병기로 휘두르던 청의 괴력을 이미 목격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흥· 네게 힘이 있다면 내게는 독이 있거든·
언니께서 단박에 정이 떨어지도록 만들어주면 될 것이 아닌가·
당난아가 그리 끔찍한 음모를 꾸미건 말건 청은 오래간만에 하는 수련에 재미를 붙였다·
팽초려는 굳이 따지자면 이전 세대에 속하는 노련한 무인이었다·
후기지수의 기수 세대의 간격이란 애매하다·
본래 명문의 배분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후기지수가 어울리다 어느 순간 제 문파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 후대에게 후기지수의 자리를 넘겨주는데 대충 동년배들이 그러고 나면 세가에서도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현 후기지수의 최고령은 창빈 도장(여심 전문가 연애 경험 없음 미혼 30세)이고 곧 서른일곱을 맞이하는 팽초려는 이전 배분의 협객들과 어울린 한 기수 선배인 것이다·
한 기수 선배의 노련함과 더불어 초절정 초입으로 경지도 더 높고 순수한 기예로도 윗줄이었으니 거의 모든 순간이 새로운 도도刀道의 연장선이었다·
청의 대도가 꽉 찬 보름달을 그렸다·
팽초려가 똑같이 생긴 대도를 비스듬이 대어 한 손은 도면을 받치니 소름끼치는 철판 긁는 소리가 요란하며 두 대도가 부대끼며 불꽃이 주르륵 튀었다·
청의 대도 끝이 지면을 때렸다·
팽초려의 대도가 순간 방향을 바꿔 곧게 찔러 쇄도하니 청이 무릎을 꿇듯 지면에 붙어 머리 위로 흘렸다·
그리고 지금!
청이 대도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비틀며 칼날을 위로 무시무시한 올려베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시도가 무색하게도 도신을 걷어차는 팽초려의 발길질에 병기가 쏠려 허리가 비틀리고 말았다·
“빈틈!”
팽초려의 주먹이 청의 훤히 드러난 옆구리를 향해 뻗어나갔다·
능히 바위를 부수는 경력을 담은 주먹이었다·
충돌 직전 주먹이 검지를 펴고 옆구리를 콕 찔렀다·
청이 펄쩍 뛰며 캬흐흐 덜 만들어진 웃음 소리를 내며 자지러졌다·
“얘는· 답지 않게 간지럼을 타고·”
“크흡 간지러운 걸 어떡해요·”
“놀랐단다· 그리 안 봤는데 의외로 여인다운 구석도 있구나·”
“···?”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여인답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는 청이었지만 또 대놓고 그렇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보다는 내 평가가 또 묘하게 박하지 않나?
도대체 왜?
조금만 친해졌다 싶으면 다들 이렇게?
혹시 내 태도에 뭔가 문제가 있나?
청이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나는 언제나 진실되고 진솔한데?
중원의 친구 문화가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생각해보니 여기나 저쪽이나 원래 친해지면 서로까기 하면서 하하호호 웃고 그랬으니까·
“방금 올려베기는 좋지 않은 수법이란다· 본래 모든 병기는 장단이 있으니 무학이 발전이 장점을 취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법· 대도는 이치에 순명하여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만 제 위력이 나는 법이란다·”
“그래서 의외의 한 수가 되지 않을까···”
“글쎄· 청아가 박투에도 능하니 차라리 도를 놓거나 흙을 쥐어 뿌리는 편이 좋았겠지· 억지로 칼날의 방향을 돌렸으니 이미 팔도 비틀려 방향은 정직하고 힘은 덜했어· 발차기 한 방에 몸이 열렸으니 한 번 죽었지· 안 그러니?”
팽초려는 남궁가의 모 씨와는 달리 오직 대도 하나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팽초려에 따르면 대도는 시대에 맞지 않는 병기라고·
일단 휴대의 불편함은 둘째치고 거병이기에 기본적으로 양 손으로 다뤄야 하니 여타의 단병이 남는 손으로 수공이나 장법을 섞는 것보다 불리함이 있었다·
장점이라곤 그 긴 사거리와 막강한 파괴력에 있는데 무학의 수준이 오르며 이 부분을 기를 통해 보완하니 오히려 대도만의 장점은 점차 죽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그런데도 왜 굳이 대도냐고 물었더니 팽초려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게 가문의 근본이니까· 편한대로 갈아치울 수 있다면 근본이라 하지 않는 것이란다·’
그런 것 치고는 팽가놈이 대도를 쓰지는 않았지만·
“흔히 도를 순명이라 하고 검을 역천이라 하니 두 병기의 묘리가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란다· 대도는 위에서 아래로· 땅에 부딪치지 않고 물처럼 흘러 다시 구름으로 치솟는 것· 힘으로 다뤄 휘두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
“오잉·”
어디서 들어봤다 싶더니 문득 떠오르는 구결이 있었다·
청이 대도를 다시 들어올렸다·
“다시 해 봐요·”
“좋아· 오렴·”
청이 월녀산보의 무중력 비행으로 날아 대도를 앞으로 뚝 떨어져내렸다·
굵은 획으로 떨어지던 대도가 문득 흔들리니 팽초려의 것과 부딪쳐 모로 튀어올랐다·
그 때 돌연 노을빛 도기가 치솟아 낙엽 지는 모양을 그리니 한 번의 격돌으로 네 번 쇠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팽초려가 훌쩍 뛰어 물러났다·
“오· 뭐였니? 방금의 도법은?”
“어· 월녀검법인데요·”
후반 삼 식 중에 검으로 잘 되지 않는 검식이 있어 대도로 응용을 해 본 것이었다·
“음· 월녀검법이라· 워낙에 오래된 검술이라· 본래 그 시절에는 검과 도가 명확히 나눠지지 않았으니 그저 칼이라 부르던 시절이었단다·”
그러자 돌연 한 소녀가 비쳤다·
쪽으로 물들인 푸른 옷을 입고 머리는 산발을 하나 여인의 선이 살아있는 소녀였다·
그리하여 소녀가 칼춤을 추며 든 것이 검이 아니라 그저 나뭇가지에 불과했다·
소녀가 청을 바라보더니 살풋 웃어보이고는 여럿이 한 상으로 겹쳐 춤을 춘다·
총 여덟 개 검식을 이어 나풀거리니 스스로 즐거워 흥이 넘치는 춤사위에 꺄르르 맑은 웃음소리가 넘쳤다·
소녀가 든 것은 여리하여 낭창하니 연신 휘어 흔들리는 여린 가지이며 동시에 곧게 뻗어나간 멋진 목검이기도 하며 그와 동시에 잔가지 잔뜩 달린 거목의 큰 줄기이기도 했다·
전부 나뭇가지라 할 것이나 모양과 크기와 그 무게가 제각각이다·
곧고 짧은 것 휘고 긴 것 단단한 것 탄력이 있어 흔들리는 것· 큰 것· 잔가지 달린 것· 말라붙어 위태로운 것과 끝이 뾰족하기만 한 것···
그러다 문득 주변은 깜깜하고 소녀는 투명해 별과 별이 이어진 별자리로 이루어진 형상임을 깨닫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별빛·
아직은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그러나 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돌연 눈앞에 반투명한 사각의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길한 색상으로 빛나는 글귀가 반짝이고 청이 손가락을 뻗어 건드리려 하는 때였다·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청이 고개를 돌리니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청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음?”
“왜 그러니?”
“어라·”
청이 주변을 훑었다·
당가의 연무장이야 그대로고 뭐지? 헛것?
청이 손에 쥔 대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유심히 대도를 보고 손으로 쥐어 붕붕 휘둘러 보고 도신의 여기저기를 손가락을 튕겨 땅땅 두들겨 그 소리를 들었다·
청이 그제야 대도를 이해했다·
길이와 무게 중심과 쏠림을 수치화되지 않은 직감으로 이해하니 이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수한 선과 점과 도형을 직접 그려보고 싶은 마음으로 속이 두근거렸다·
“다시 한 번 해 봐요· 뭔가 보였는데·”
그리고 이어진 대련은 전에 없이 격렬했다·
일방적 지도 대련이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청이 대등한 기예로 맞선 까닭이었다·
팽초려가 청의 상태를 정리해 주었다·
“축하해· 신도합일의 초입에 올랐구나·”
“신도합일이요?”
“어째서 그 깨달음을 앞두고도 성강을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사람이 몸을 알고 병기를 알고 그 병기를 신체의 일부분으로 다루는 경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정신의 중심을 병기에 담을 줄 알게 된단다·”
“아 그거 저도 알아요! 사부님도 그러셨는데· 그거 신검합일!”
청이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덕분에 팽초려가 웃음을 터뜨렸다·
신검합일에 대해서는 이미 서문수린이 보여준 바가 있었다·
사람이 검을 들고 있지만 사람이 안 보이는·
물론 진짜로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얇은 검 뒤에 사부님이 숨어있다고 할까 아니면 검이 자체의 존재감이 너무 강한 탓에 그걸 쥔 사부님을 신경 쓸 수가 없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바짝 마음이 졸아들고 감각이 뒤틀리는 기묘한 풍경이었더란다·
“잘 모르겠는데 더 해보면 알지 않을까요?”
“어머 얘가· 그렇게 안 봤더니 의외로 천상 무인이었구나?”
“도대체 뭐를 보고 계시는 건데요····”
그에 팽초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언니! 서문 뭐시기! 아유 땀 좀 봐· 덥지도 않으셔요?”
사근한 목소리와 함께 당난아가 수련장으로 총총 걸어들어왔다·
큰 쟁반을 든 채였다·
“수련도 좋지만 시원한 거라도 좀 드셔요· 간식거리를 좀 준비했어요·”
“오· 시원한 거· 거기에 간식·”
청이 반색하며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서문수린이 보았다면 당장 맹공을 퍼부었을 장면이었지만 곁에 있는 이가 팽초려였다·
팽초려도 그 옆에 사이좋게 주저앉았으니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지적해줄 이가 없는 것이다·
“자 이건 언니 꺼· 이건 서문 뭐시기 꺼·”
팽초려가 쟁반에 소분한 것을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딱 봐도 예쁘게 정렬이 된 팽초려의 접시와는 달리 청의 앞에는 대충 쌓아놓은 무언가들의 무더기가 척 놓였다·
“아니 먹을 걸로 차별은 좀·”
“니께 더 많거든?”
“옳은 차별 인정합니다·”
청이 곧장 말을 바꿨다·
장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맛과 양이었으니까·
청이 곧장 큰 사발을 들어올렸다·
잘게 부순 얼음들이 절그락절그락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청이 막 입을 대려다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에 대접을 내렸다·
당난아가 청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목말라?”
“아니아니아니 무슨 소리야· 자자· 쭉 마셔· 유자청 넣고 석청 탄 거거든? 달고 시고 시원하고 맛있어· 그 외엔 일절 안 넣었으니까·”
“앗· 유자꿀차·”
청이 반색을 하며 유자꿀차를 들이켰다·
안 그래도 전신이 축축하게 땀을 뺀 이후라 아주 들어가는 족족 몸이 쪽쪽 빨아먹는 느낌이었다·
“캬· 좋다·”
청이 반쯤 남은 냉차를 내려놓고 곧장 간식에 손을 뻗었다·
그때 당난아가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로 묻는 것이었다·
“어때?”
“응? 맛있는데? 시원하고·”
“그리고? 뭔가 안 느껴져?”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비밀 재료 같은 게 들었나?
청이 간식을 잠시 내려놓고 냉차를 후르륵 크게 한 모금 머금어 얼음과 함께 굴렸다·
달고 새콤하고 그리고 뭔가 화한·
“꿀꺽· 알았다· 박하지? 창자 아저씨만큼은 아니어도 내 혀도 꽤 정확하거든?”
“어?”
“아 아니다· 계피인가? 뒷맛이 좀 매운 것 같기도?”
“어?”
당난아가 당황한 듯 청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라 팽초려를 보았다·
“아· 난아야 고마워· 맛이 좋네·”
팽초려가 대접을 들어올리며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당난아가 실실거렸다·
“헤헤 뭘요· ···어?”
그러다 다시 청을 보는 표정에 의혹이 가득했다·
어딘가 멍ㅊ 아니 사저 호소인 같은 모양새였다·
한의사 할 때는 그럴듯해 보였는데 왜 계속 받침대가 쳐보이는지·
일단 기본적인 지성부터가 다를 텐데?
“뭐야 너·”
“응? 뭐가?”
“이상하다? 이리 줘 봐·”
당난아가 청의 냉차를 빼앗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아흑 하는 아픈 신음과 함께 배를 움켜쥐고는 재채기를 해 대는 것이었다·
“너 나를 속엿 엣취· 헤에 아으 엣취! 윽· 아흑 배가 엣취!”
“뭐야 괜찮아?”
“배가 아프 앗 엣취! 엣취! 엣취!”
이번엔 삼 연속 재채기였다·
해 보연 알겠지만 연속 재채기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니나다를까 눈이 벌개 눈물이 흐르고 코에서도 콧물이 줄줄 흘렀다·
사천제일미고 나발이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물 콧물 줄줄 흐르는 꼴로는 추함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나 배 악 으 아으 엣치!”
당난아가 배를 감싸 쥐고 일어나 급하기는 하나 어기적어기적 불편한 품새로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청이 그리 중얼거리며 냉차를 마저 들이켰다·
이거 진짜 잘 탔네·
또 타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이미 어둑해진 사위 속에 재채기 소리만 연속해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우리 조카가 소설 쓴다면서? 제목이 뭐니? 뭐 창피한 일이라고· 웹소설? 웹툰? 소설이 아니라? 아 판타지 같은 거라고? 그래서 제목은 뭐니?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