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2
여인이 품에서 무언가를 빼어든다·
길쭉한 원통을 잡고 당난아를 겨누며 뒤에는 줄이 달려 다른 손으로 붙잡는 것이다·
청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현대인 출신이라면 긴 원통이 입구를 겨누는 행위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정도는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이 깜짝 놀라 당난아를 밀치며 원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당난아는 저게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침통이라 불리는 종류의 암기였다·
당겨둔 가죽이나 힘줄 따위에 장력을 걸어 안에 든 침을 발사하는 암기로 보통은 그 자체로 살상력이 있다고 하기 힘든 위력이다·
문제는 침에 독을 발라놓는다는 점이었다·
당난아가 앉은 자세로 구르느라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 발짝 내딛는 청의 뒷모습과 체형에 비해 대단히 넓은 골반 아래 틈으로 뻗어나가는 노을빛 수기 어린 손을 보았다·
당난아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도망···!”
그러나 늦었다·
퍼억!
강한 장력이 가죽을 때리는 소리·
동시에 자잘한 것 수천 개가 손바닥에 난반사되어 청의 전방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순간적인 집중력으로 천천히 흐르는 세상에서 짧게 부서져버린 세침이 여인의 몸에 파바바박 박혀드니 피부가 출렁이는 상태로 뒤로 밀려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되돌아오니 날아간 여인이 문짝에 부딪혀 나뒹굴었다·
앉은 모습 그대로 한 바퀴 반을 굴러 벌떡 일어난 당난아가 곧장 청의 손목을 낚아챘다·
“야! 너! 무슨 짓이야! 저게 뭔 줄 알고!”
그리고는 청의 길쭉한 손을 제 면상 앞으로 잡아당겨 조물거리는 것이었다·
“괜찮아· 튕겨냈어·”
“멍청아! 세침 하나라도 박혔으면 어떡해!”
당난아가 청의 손바닥에 코를 박을듯이 바짝 당겨서 쓸고 조물거리며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소수마공의 소수가 겨우 세침 따위에 뚫릴 정도로 말랑말랑하진 않았다·
“뭐야· 저거 죽을라고 하는데?”
드러난 피부와 옷 위로 빼곡하게 선인장 가시 비슷한 것을 어지럽게 꽂은 여인이었다·
피부에는 검고 푸르고 보라색의 반점 따위가 빠르게 번지고 입에서는 피가 코에서도 피가 귀에서도 피가 흐르며 눈에는 아직 피가 고여 흰자위가 빨간자위가 된 상태였다·
“대사형 미안· 원수 갚지 못했어····”
“지금 저딴 게 중요해!?”
당난아가 아예 관심도 주지 않고 청의 손아귀를 살피느라 야단이었다·
자객이 그 와중에서도 원독 서린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기에 청이 안 잡힌 손을 흔들어주며 미소로 죽어가는 자를 배웅했다·
“커헉!”
그러자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왈칵 피를 토해내며 그대로 눈동자가 풀렸다·
그야말로 의기 높은 자객다운 최후였다·
거사를 치름에 있어 대상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했으니 이것은 적이라 해도 깨달음을 아끼지 않는 설법의 도리다·
또한 실패하여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끝까지 눈빛을 발사하여 방해꾼이라도 죽이려고 하였으니 훌륭한 직업 정신의 발로라 하겠다·
다만 눈빛에는 열량이 없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는 중원의 물리학이 아직 미천한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대사형의 원수 죽엇 하고 외치지 않았다면 목표했던 당난아는 독침을 피할 수 없었을 테지만·
하지만 본래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 이가 절대 참을 수 없는 항목인 것이다·
‘네가 왜 죽는지 알고 후회해라!’ 하는 감성을 포기할 수 있다면 애초에 적지 한복판에 들어와 암기를 쏘았겠는가·
꼼꼼히 손바닥을 살피며 어디 솜털만 한 생채기라도 있지 않을까 찾아본 당난아가 마침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뒤이어 바락 소리질렀다·
“위험하잖아! 아무리 수공에 자신이 있더라도 그걸 손으로 막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 여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당난아의 기세가 사나웠다·
그래서 청이 시큰거리는 옆구리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샌 모양인데 어차피 독도 안 들으니까 그냥 가시나 좀 박혔겠지 하고·
—-
운남성에는 크게 두 민족이 산다·
하나는 과거 대리국의 후예인 백족들이다·
백족이라는 이름은 민족이 가진 광적인 흰색 선호로 인해 붙은 이름이며 옷도 희고 좋은 집도 희며 불교 사원도 희고 궁궐도 희었다·
상서로운 보라색보다 흰색 따위를 좋아하는 촌놈들이라는 평가로 적어도 오랑캐 취급은 아니었다·
게다가 백족의 자랑 백족의 자부심 백족의 자존심인 점창파가 있었다·
도가의 명맥을 이으면서도 대리 백족 불교의 독특한 결합으로 반도반불 양다리를 걸친 점창파는 구파일방 당당한 정파 무림의 상징 중 하나다·
그래서 백족의 아이는 재능이 있어도 점창파 재능이 없어도 점창파에 일단 보내 보는 것이 부모의 욕심이었다·
덕분에 한 민족의 최정예만을 쏙쏙 골라 제자로 들이는 점창파의 성세야 앞으로도 탄탄한 길이 펼쳐졌다고 하겠다·
그리고 남은 민족 하나는 바로 묘족들이다·
청이 들었다면 설마?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명칭이지만 실제로는 동남아 사람에 가까운 특징을 가진 민족이었다·
묘족은 천대받는 대표적인 오랑캐 중 하나로 키가 작고 몸매가 펑퍼짐하며 피부가 어둠과 노랑 중 한쪽으로 짙었으니까·
이들은 놀랍게도 축축한 밀림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데 오독문과 남만야수궁이 바로 묘족의 문파였다·
이중 남만야수궁은 사실 바깥 세상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치들이었다·
그냥 저네들끼리 호랑이며 곰이며 표범 따위 조금 사나운 애완동물과 하하호호 뛰노는 데에 바쁘지 밀림 밖으로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중원의 동물 애호가들이 자주 방문하는 문파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독문은 또 달랐다·
중원으로부터 완전 고대 저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묘족은 동정호의 주인이었다고 주장하며 조상의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웃기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오독문주 후전치는 다시 민족의 강역을 되찾을 생각에 벅찬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더란다·
일이 잘 풀리면 동정호까지는 아니어도 사천 땅에 묘족이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겸사겸사 저 증오스런 침략자의 후손 한족 놈들을 대량으로 죽여 조상님들의 원한을 달랠 기회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동정호는 장강이다·
사천 땅에도 그 장강이 넷이나 흐르니 조상님들도 그 정도는 인정해주실 거라고·
그리하여 큰일 치르러 나간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개박살이 나서 돌아왔다·
특히나 일 대 제자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일대의 대사형이 죽고 둘째와 셋째와 다섯째 여섯째와 아홉째가 죽었다·
게다가 그 말을 듣고 뛰쳐나간 딸년은 도대체 어찌 되었는지 소식도 없-
“큰일났습니다! 협아가 협아가···!”
“협아가 무어! 지금 어디 있다더냐!”
“그것이···”
그리고 방금 오독문주 후전치는 일대의 사 제자이자 아끼는 딸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가 한복판에서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사천성 대로에 그 시신을 발가벗겨 매달았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이 이 절여서 술을 담가 만들 놈들! 협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어찌 이런·”
암살을 시도했으니 큰 잘못이긴 했다·
물론 딸 잃은 애비에게는 사소한 일이었다·
후전치의 눈에 새파란 원독이 서렸다·
“···대인께 전해드려라· 당가 놈들의 머리로 술을 담글 수 있게만 해준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
당가주 당투죽도 당투죽대로 펄쩍 뛰었다·
세가의 한복판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피습을 당한 것이다·
물론 천운으로 세가의 은인이 함께하여 피해 없이 넘기기는 했다·
그러나 자객이 제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동귀어진의 각오로 세가에 스며들었으니 심지어 환자로 위장하여 의원을 공격했다·
마교 놈들도 하지 않을 끔찍한 만행이었다·
당가의 어르신 회의에서 당투죽이 피비린내 진한 목소리로 의제를 꺼냈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오독문 놈들의 씨를 말려버려야겠습니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경쟁자니 뭐니 하는 꼴도 지금까지 귀여워서 봐준 것이었다·
겨우 밀림 구석에서 독물이나 파먹는 촌놈들 주제에 가까이 있었으면 진작에 때리고도 남았으나 좀 멀리 있어서 두고만 봤다·
밀림이 얼마나 지랄맞은지는 독물 채집하러 다니는 당씨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문을 책임지는 가주가 복수라는 사사로운 감정에 함부로 출진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당가의 가장 큰 어르신 태상가주 당재운이 입을 열었다·
현 가주의 권위를 위해 침묵하던 태상가주의 의견이라면 아무리 당가의 주인이라도 귀담아 들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감히 아아를 노린 놈들이다· 철저히 짓밟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태상가주 노년의 삶이 온전히 예쁜 손녀딸 애교를 보는 데에 있었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수상한 때이니 화탄을 전부 써서 아예 날려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창고에 두어 좋은 때가 아닙니다·”
가문의 모든 창고를 관리하는 대총관의 의견이었다·
초석 광산을 빼돌려 풍부하고 거기에 유황 살 돈이 있다·
그런데 화약을 안 만든다?
그런 자는 사나이가 아니니 당장 고추를 떼야 한다·
화약은 사나이가 선망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다만 그렇게 야금야금 만든 것이 쌓여 근수가 제법 되다 보니 들고 있기가 애매해졌다·
아무리 종이호랑이 같은 관부라도 넘어갈 수 없는 양이었기에·
오히려 무인에 대한 대책으로 화약을 키우는 관부였기에 더더욱 경기를 일으킬 사안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아예 오독문을 폭파시키면서 증거도 없애자는 그런 의견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아예 제목산을 퍼부어 다신 재건할 수 없게 땅부터 썩혀버립시다·”
“고작 땅만 썩혀서 되겠소? 눈에는 눈이라고 묘족 그 오랑캐 새끼들이 감히 성도의 수원을 노렸으니 우리도 물에 신선루를 처박아 버립시다·”
세가의 높은 분들이란 결국 일가친척 모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당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녀를 건드렸으니 말리는 사람은 커녕 다들 더 흉악한 방도를 꺼내드느라 열심이었다·
그러니 아예 기반이 되는 도시 채로 중독을 시켜 쓸어버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당가가 오랜만에 그 유명한 가훈을 다시 중원에 새기려는 의기를 떨쳤다·
은혜는 배로 원한은 열 배로·
다만 아쉽게도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황족의 죽음을 조사하러 직접 내려온 감찰부 도어사의 황명을 빌린 발표 때문이었다·
-덕현친왕의 피살 사건에 당가의 극독이 사용된 명확한 증거물을 확보하였다·
이에 사천의 모든 당가 성을 가진 자는 대역 죄인의 모습으로 감찰을 맞이하여라·
또한 가전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숨긴 것이 없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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