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3
무림인은 어지간해선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
외가와 내가의 공부 모두가 기본적으로 건강을 돋구는 공능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청이 속 비치는 홑겹 얇은 천 하나로 겨울을 나면서도 감기 기운조차 한 번을 들지 않았으니 가벼운 잔병 따위야 무림인의 신체를 침범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굳이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청의 고향과 비교하면 중원인들은 터무니없이 튼튼한 편이다·
그러니 자유가 앓아누웠다는 소식은 청에게 조금 기묘한 감흥을 들게 했다·
비실이라더니 진짜였네·
역시 한의사의 안목을 얕볼 것이 아니다·
그래도 아픈 친구의 병문안은 한 번 가야지·
식객이라고 눌러앉아 하는 일이 없기도 하고·
본래가 친구가 아프면 문자라도 보내 그 안부를 물어야 하는 법이었다·
사람이란 아플 때 예민해지는 생물이라서 아플 때는 서운함의 대가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를 보니 과연 안색이 창백한 것이 음? 원래 안색은 창백했던가?
“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긴· 아프대서 보러 왔지· 몸은 좀 괜찮고? 어디 보자 열이 있나?”
청이 자유의 이마에 손바닥을 척 얹었다·
사실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붙이는 촉진 방법은 실상 거의 의미가 없기는 했다·
청이 손은 소수마공의 공능으로 언제나 찬 편이라서 이마가 아니라 어딜 만져도 뜨뜻하니 열이 있나 없나 할 테니까·
그러나 자유에게는 기겁할 만한 일이었다·
애초에 병문안을 온 시점에서부터 남녀가 꽤 유별한 중원에 맞지 않았으니 그에 이마까지 척 내주고 말아서야·
서늘한 것이 닿아서인지 얼굴로 빠르게 열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오· 꽤 뜨겁네? 얼굴도 빨갛고·”
“아니 그건·”
사실은 꾀병으로 틀어박혔을 뿐인 자유라서 그 뒤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본래 중원에서 와병이라는 핑계는 나는 손님 받지 않습니다 하는 거의 무적과 같은 필살기였다·
당가가 의원의 집합체과 같은 말이고 의술에 집중한 지가 무천대제 이후였다·
사실상 중원에서 제일가는 의가이기도 당가가 손님에게 진맥 한 번을 안 해주었겠는가·
대번에 ‘아 이 새끼 꾀병이네 하지만 본인이 아프다고 주장하니 그냥 몸살에 걸린 걸로 해 두자’ 하고 대화 없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니 사내가 이렇게 허약해서 어디다 써? 집안 잘 사는 것 같던데 무공이라도 하나 주워다 익히면 될걸”
“그· 음·”
하지만 청은 상식과는 항상 거리가 멀었다·
표정이 원체 정직한 청이다·
그 큼직한 눈동자에 고스란히 비치는 우려가 자유의 말문을 막았다·
세상 무엇보다 반짝이니 천하에 귀하다 하는 어떤 보석이 견주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뭐야 왜?”
“아니 아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자유가 최리옹을 흘끗거렸다·
아니 상식도 안 가르쳐주고 뭘 하셨냐· 꾀병인 거 뻔히 아셨을 것이 아니오 하고·
최리옹은 그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그럼 내가 굳이 걱정하는 아이한테 그놈 다 꾀병이니 마음 쓸 필요 없다고 말해야겠나·
고얀 놈· 이십 점 감점이다·
단숨에 선두 경쟁에서 추락해버린 자유였다·
사실 최리옹이 점수를 매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자유가 문득 드는 생각에 급히 물었다·
“잠깐 당가가 지금 상당히 시끄럽지 않으냐? 어찌 떠나지 않고 남아있단 말이냐? 분명 역모에 휘말렸으니·”
청의 손날이 자유의 정수리를 툭 건드렸다·
“말투· 아프다고 아주 바꿀 생각도 안 하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사람들이 어째 그래? 식객으로 놀고 먹고 용돈도 받고 할 때는 언제고· 정작 도움 필요할 때는 면상 싹 바꿔서 이건 좀 하고 다 도망가더라니까·”
“아니 그래도 역모는·”
“원래는 아미파에 다녀올까 했는데 하필이면 이래서야 처먹기만 하고 필요할 때는 째는 것 같으니까· 나라도 좀 도와야지·”
이번에도 자유가 최리옹을 흘끗거렸다·
아무리 봐도 역모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 같은데 알려주지 않고 뭐 했냐는 뜻이었다·
최리옹이 또 콧방귀를 뀌었다·
최리옹이 딱히 만류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는 태도의 최리옹이다·
청이 명줄 하나는 끔찍하게 챙기는 인물이며 돕겠다고 남는다고 해서 무슨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님을 안다·
경공은 또 얼마나 뛰어난지 도망쳐 세상에 잡을 이가 별로 없다·
여중제일인을 뒷배로 둔 도가의 높은 어르신이라 관부에서도 끝장을 볼 수도 없을 테고·
그리고 정 안되면 신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또 앞길 막았다며 원망을 듣는다면 버틸 자신이 없는 것이다·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보이니 자유가 결국 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보시오· 친구·”
“왜?”
“이번 일은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을 거야· 황실에서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일 테니· 과거 무천자라고 하는 무도한 작자 이후로 말이네·”
무천대제의 황궁 습격 이후 황가가 받은 충격은 그야말로 경천동지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무림인이란 그저 언제든지 밀어버릴 수 있는 지방 호족들이다·
황실이 통치에 쓰는 도구 중 하나·
중원은 너무나 넓어 황실의 눈이 전부 닿지 않으니 대신 무림이라 하는 사냥개의 목줄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천대제는 한 사람의 무위가 충분히 하늘에 닿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말았다·
천자의 권위를 심각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하늘이 통치를 맡김에 적통을 이은 천자조차 검 한 자루 들어 산을 무너뜨리고 대지를 가르지는 못했으니
“그러니 이제라도 당가를 떠나거라· 상황이 상황이라 당가도 자네를 붙잡지는 않을 테니·”
“내가 왜?”
“말하지 않았느냐·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대역죄에 휘말렸다간 자네도 무사하지 못해·”
“그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런데 웃기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그럼 대체 무엇이 중하단 말인가?”
“당가가 진짜 죄가 있는지부터 따져야지· 내 생각에는 당가가 나랏님들 무서운 줄은 몰라도 굳이 친왕을 암살할 이유가 있었나?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건 알겠는데· 게다가 당가가 독 팔아서 돈 많이 번다는데 그럼 굳이 당가가 했다는 증거도 안 되잖아·”
자유가 인상을 찌푸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황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말이었으니까·
“글쎄 당가가 정말 무고한가?”
“뭐야? 진짜 당가가 했다고?”
청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진짜로 당가가 그랬으면 이야기가 좀 다른데·
청의 귀가 팔랑거리려는 때에 자유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이야기가 아닐세· 무림방파라 하는 유협 무리가 과연 무고한 자들이냐? 그저 칼을 휘둘러 양민을 뜯어먹으며 관의 통치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 뿐이지 않으냐· 대체 무슨 자격으로·”
“웃기시네· 그럼 뭐 황제는 무슨 자격으로 높은 자리 꿰차고 다스리는데?”
“···?”
자유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아니 그렇잖아· 황제 아들로 태어났으니까 닥치고 따라야 하나? 어차피 군대 가지고 으스대면서 찍어누를 것 같으면 황실이나 무림이나 뭐가 다른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더냐? 천자는 하늘이 내려주신·”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늘이 내려주긴 뭔 시발 황제는 태어날때 하늘 찢고 태어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나?”
“아니 무슨 무엄한 불경·”
자유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중원인에게는 과격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왕후장상 영유종호·
흔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이 발언은 천하의 반역자들이나 입에 담는 무도한 소리였다·
“자네 그러한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이·”
“뭐 못할 소리 했어? 내가 봤는데 다른 문파라면 모르겠지만 당가는 왕 노릇 할 자격 있는 거 아닌가? 사파 놈들 내쫓고 무료 진료에다 당장 거 이번에 오양즉만 봐도 그래·”
“그건·”
“황금 풀면서 오양즉에 현상금 걸고 우물에 중화제 풀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더만· 물론 결국에는 나의 뛰어난 지성으로 해결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게 원래 황제가 해야 할 일 아닌가?”
“···크흠·”
할 말이 궁해진 자유가 괜히 헛기침만 했다·
청이 그에 혀를 쯧쯧 찼다·
“꼭 조상 덕 못 본 사람들만 열심히 제사 지낸다고 해준 것도 없는 황제 찬양이나 하느니 차라리 무림인 하는 게 낫지·”
“···그래도 그런 말은 흉중에만 담아두고 남들 앞에서 할 것이 아니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반역자 같은 소리니·”
“나도 눈치란 게 있거든? 남들 앞에서 이런 소리 하고 다니겠어?”
청이 현 황제의 동생 앞에서 하는 소리였다·
“아니면 우리 친구가 쟤가 역적 같은 소리 했다고 이를 거야?”
“그건 아니다만·”
“그럼 됐지· 어쨌든 몸조리 잘 하고· 나야 뭐 한 몸 뺄 자신도 있겠다 상관없는데· 친구야말로 괜한 칼 맞지 말고 피해야지· 아파서 누워있으면 어째·”
그 후로 청이 간단한 잡담으로 시시덕거리다 자리를 떠났다·
자유가 혼자 남은 방 천장에서 세 개의 사람 그림자가 홀연히 떨어져 내렸다·
“저거 정말로 역적 아닙니까? 세상에 저리 끔찍한 소리는 살다살다 처음 들어봅니다·”
“저거라니· 말조심해라· 왕야께서 마음에 두신 여인이시다·”
“앗 정말입니까! 이런 주둥이가 또· 왕야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속하가 실언을·”
“아니 아니야· 견 노 터무니없는 모함은 그만두거라· 자칫 새어나가면 멀쩡한 여인 혼삿길을 막는 것이 아니더냐·”
자유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에 견 노가 음흉한 눈으로 웃었다·
그에 또 다른 복면인이 말을 꺼냈다·
“천녀가 보기에도 훌륭한 여인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모름지기 인연이란 한 번 맺어지고 난 이후의 의리가 중요하니 어려울 때에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사옵니까?”
“연 파도 아까 분명 비도를 만지작거리지 않았습니까? 눈빛에서 살기를 팍팍 뿜으시고는 이제 와 말을 바꾸시면 저만 이상한 놈 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새파랗게 어린 것이 벌써 눈이 침침하여 헛것을 보나·”
연 파라 불린 복면인이 딴청을 피웠다·
자유가 인상을 찌푸리며 잡담을 막았다·
“그만들 해· 그보다 쥐새끼는 찾았느냐?”
그러자 세 사람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개중 젊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창난금호 그 찢어 죽일 놈의 새끼였습니다· 감히 왕야께 받은 은혜도 잊고· 짐승 새끼를 거둬서는 안 됐는데· 동창의 내시 놈한테 아주 꼬리가 부러져라 흔들어 대더군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똥 싸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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