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8
덕현친왕은 사천으로 오는 황제의 끄나풀들을 꼬투리 잡아 베었다·
생존을 위해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다만 친왕도 예상하지 못한 바가 있었으니 사천 땅이 중원에서 가장 부유한 땅이며 그런 귀한 임지로 오는 관리들은 청렴함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좋은 임지는 잘 다스려야 할 책임이 아니라 총신에게 주는 포상 선물이라서 그렇다·
관직이 짊어진 의무가 아니라 제 처신의 결과로 주어진 합당한 포상이 되어버렸으니 다들 누리기만 하고 하는 일은 없다·
이런 탐관오리 베는 일이야 어렵지도 않다·
꼬투리고 뭐고 창고만 한 번 들여다보면 곧장 목을 칠 수 있었으니까·
감히 나라의 것을 훔쳤느냐 넌 공무원보다 역모죄가 어울려 한 마디면 그만이었다·
소식 들은 황제가 ‘이것 봐라·’ 하고 눈썹을 꿈틀거렸으나 부패한 관리 잡아서 죽였다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게 부패한 관리 척결이 되어버리고 나니 평소 뜻이 있어 강직하게 관직에 남은 이들이 실권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실권자들이 친왕을 사모할 기세로 숭배하고 다녔으니 행정과 형법과 군사 셋으로 나뉘어 대립해야 할 분권 정치(정치적 분립 개념은 의외로 고대부터 존재했다)가 오로지 한 사람을 섬기며 단합하게 된 것이다·
양상구자가 사천지휘소에 몰래 들어갔다 나간 이후 도지휘동지와 도지휘첨사가 갑자기 돌변한 이유였다·
도지휘사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감금하니 황명으로 동원되었던 사천 군부의 일만 이천 군사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왕부의 식객들이 밤중으로 녹아들었다·
세상을 피해 왕부를 집으로 삼은 이들이다·
오죽하면 저네들끼리 이름을 붙여 부끄럽고 모욕적인 것을 택했으니 우리 왕부의 가족들 간이 아니라면 서로 이름 부를 일 없게 하자는 그런 맹약이었다·
가족이 가족에게 ‘야 병신아’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당장 명예 걸고 생사결을 할 일이 아니던가·
청이 본 식객들의 이름들만 해도 어떠한가·
늙은 개 견 노에 꼬인 할망구 연 파· 개 같은 도둑놈 양상군자며 창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왕부의 괴인들이 어깨에 ‘친’ 글자 딱 붙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가니 사천의 군사들 중 누구 하나 제지하여 막는 자가 없었다·
도어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분노를 토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창난금호 네놈! 분명 왕야께 네가 직접 독약 아니 약재를 권해드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입니다! 대인께서도 그 시신을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전부 당가 놈들의 계략입니다! 당장 시간을 벌고자 감히 친왕기를 사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청수하니 잘생겨서는 유난히 눈썹이 두꺼워 정직한 인상의 중년이 발딱 엎드렸다·
창난금호라 불리기에는 너무 잘생긴 놈이다·
창이란 욕창을 뜻하고 난이란 불타 문드러진 상처를 말하니 추악한 꼴을 가진 여우 짐승이라는 이름이 아닌가·
창난금호가 온몸으로 억울함을 토해냈다·
얼굴은 일그러진 채 파르르 떨리고 눈깔에는 온통 분함과 억울함의 눈물이 들어차 당장 쏟아질 듯이 글썽거린다·
붉어진 귀와 일어선 핏대는 누가 봐도 억울한 사람의 행색이었다·
도어사가 그에 설득력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무도한 대역죄인 놈들이라 해도 어찌 친왕기를 사칭하느냔 말이다·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황제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임무 수행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건 황상의 명이 아니라 명령받은 자의 부덕이다·
이대로 당가를 포기해도 역적 밀어도 역적이 되는 판이었다·
그리하여 도어사가 마침내 이 사달을 끌어낸 장본인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 태감 어르신· 이제 어찌해야 좋을지···· 분부하신 대로 당가에 포격을 가했습니다만 소인이 이대로 황명을 받들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
도어사가 눈치를 보았다·
자리에 제일 높은 고관이자 책임자가 이제 와 누구에게 말을 높이며 눈치를 본단 말인가·
그리고 나니 전막 한쪽 당번을 서서 불씨를 지키고 물이나 끓이던 병사 하나가 자연스레 답을 받는 것이었다·
“제가 언제 포격을 권하였던가요? 그저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이 들어갔으니 되찾아 오거나 아예 목격자를 없애야 한다고 조언을 드렸을 뿐이여요?”
여인도 아닌 것이 억지로 코로 소리를 내는 간드러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태감 어르신께서·”
“이미 저지르셨으니 차라리 완수라도 하고서 용서를 바라는 편이 낫지 않으시겠어요? 그저 하던 대로 밀어버리세요· 혹여 친왕께서 안에 계시더라도 본래 사람은 일생에 한 번만 죽는 법이여요? 이미 훙서하신 분이 두 번이나 가실 수는 없지 않으시겠어요?”
무도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친왕 째로 밀어버리고 없던 일로 하자면서·
창난금호의 눈이 번뜩였다·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는 유사 여인 고자놈이 태감이라 불리는 고관이라면 그 정체야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환관 새끼! 동창 놈이로구나!
순간 창난금호가 번쩍 일어나 품에 든 것을 휘두르니 질척한 액체가 튀어 동창 놈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꺄악 무엇 무엇이야!”
“하핫· 어쩐지 구린 일에 동창의 내시 연놈이 안 끼어들었나 했지· 임창 걸린 놈의 푹 썩은 진액이다 이 새끼야· 얼굴 제대로 닦지 않으면 큰 곤욕을 면치 못할 것이야!”
임창이란 성병의 일종이다·
심하게 도지면 생살이 녹아나 문드러지는 중한 질환이기도 했다·
임창 걸린 새끼의 푹 썩은 진액·
그 뜻을 파악한 동창 태감의 눈동자가 바짝 쪼그라들며 입을 쩍 벌리고 곧장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꺄아아악!!!”
“하하 꼴 좋다!”
“너 네놈!”
도어사가 급히 검을 빼들었다·
그러나 이미 창난금호가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은 이후였다·
“내 도어사의 관상을 보아하니 담은 쥐새끼 오줌만큼 하고 성정은 취두부보다 무른 것이니 참담한 음모를 꾸민 재목은 아니다 싶었지· 그 용렬한 성정으로 도어사에 오를 정도면 대체 부정한 재물을 얼마나 갖다 바쳤소이까?”
“네놈!”
“왕야께서 계신 장소에 화포를 쏘았으니 네 명줄도 네 일가족의 명줄도 여기까지로구나! 어디 발버둥이나 쳐 보아라!”
그러고는 곧장 경공으로 내빼니 네 발로 기어 개가 달리는 듯 볼품없이 미끄러져 쏙 빠져나가고 말았다·
태감은 그저 비명을 지르고 울고 불며 얼굴을 닦아내기 바빴다·
그 와중에 도어사는 큰 낭패감을 느꼈다·
이제는 이판 사판이었다·
내시 놈의 말대로 일단 완수하고 용서를 비는 편이 포기하고 돌아가는 편보단 낫다·
도어사가 전막을 빠져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북을 울려라! 진격하여 저 역적 무리를 죄다 쓸어버려라!”
왕부의 괴인들 앞으로 네 발로 기는 여우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연 파가 회전하는 전륜마안을 치뜨며 억눌린 소리를 냈다·
“이게 누구야· 배신자 여우가 아닌가?”
“흐흐· 할망· 배신이라니 서운한 소리를·”
“아니라고? 네놈이 왕야의 찻잔에 독을 타지 않았더냐·”
그러자 창난금호가 유들유들 대답했다·
“누가 금자 내밀며 부탁하길래 내 들어주었을 뿐이지· 내 성정이 여려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거 아시잖수·”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여우 새끼·”
“아니 할망· 내 왕야께서 외유하셨음을 모르고 독을 탔을까· 내가 아니면 어차피 다른 놈 찔러다 될 때까지 시도하였을 것이니 어차피 사달이 날 것이라면 대역이나 하나 죽고 누가 음모를 꾸몄는지 알아내야 할 것 아니요·”
“내 사기꾼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떤 놈이디?”
“동창 놈에게 추종향을 듬뿍 묻혀 놨지·”
추종향이란 특수한 향의 일종으로 훈련 받은 짐승이나 특수한 비공을 익힌 추적자가 목표를 추적할 수 있도록 묻혀놓는 약품이었다·
그에 연 파가 코웃음을 쳤다·
“흥· 여우 너는 이따 보자꾸나· 견 노?”
“말 안 해도 갈 테니 보채지나 마시오· 여우 놈이나 잘 감시하고·”
견 노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한 곳을 바라보고 이내 훌쩍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야 창난금호가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할망 갑자기 다들 모여서 뭘 하고 계시우? 왜 밤산책이야? 왕부 바깥으로 한 번을 안 나가던 놈들 데리구·”
그러자 연 파가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금의위 놈들 조지러 간다· 왜·”
금군은 황제 직속의 정예 군사들이며 애초에 지방 관제의 병졸들과는 그 급수가 다르다·
월봉부터 무예에 대한 지원까지 그야 당연히 지방 촌놈들 전쟁의 화살받이 놈들과는 다르게 진정한 황상의 병졸이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그러니 진짜 군사인 금군이 있고 그 아래에 지방 촌놈들이 존재한다·
물론 금군이 주장하는 바였다·
사천의 군사들에게 금군이라고 하면 꼴 보기 싫게 거들먹거리는 아저씨들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몰래 하달된 명령을 듣고 나서도 와 저 꼴 보기 싫은 놈들 콧대 높이다 단단히 뭔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고 말았다·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에 금군들은 일단 저들끼리 뭉쳐 대기했다·
온갖 함정 깔린 사천당가 난공불락의 요새를 굳이 먼저 나아가 인간 장애물 극복기 신세가 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사천의 일이 아닌가·
그런 소모성 임무는 사천의 군졸들이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너네는 가라 우리는 나중에 들이쳐 군공이나 세우겠다고 얌전히 모여있었다·
저쪽에서 낑낑거리며 군졸이 잔뜩 붙어 앞에서는 당기고 옆과 뒤에서 힘겹게 옮겨 가까워지는 장군포를 보면서 너네 고생한다며 하물이 빠지는 거 아니냐고 낄낄거리기나 하면서·
일반적인 군사 편제로 천호소당 두 문씩 존재하는 이 장군포는 장약 가득 채워놓고 그 위에 쇳조각이며 돌맹이를 쏟아부어 눈앞의 적을 향해 발사하는 원시적 산탄총이다·
금군의 비웃음도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그렇게 힘겹게 도달한 장군포의 포구가 저네들을 향했기에 그랬다·
어어 하는 순간 화섭자가 바짝 자른 심지에 불을 붙이니 피해! 하고 몇발자국 떼지도 못한 때에 화포가 사람을 찢으며 포효했다·
뒤이어 화창 꼬나쥔 화창병이 불길을 앞세워 벽을 세우고 그 위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금군이 진형조차 갖추지 못한 채로 서로 얽히고설켜 아비규환을 이루는 것이다·
참고로 화창은 대충 원시 고대 화염방사기쯤 되는 병기로 화포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졌다·
사람이 대뜸 돌진하여 서로 맞붙어 싸우는 병법이란 고대에 유비와 조조가 천하를 다투고 그 사이에서 손권이라는 지방 호족이 분탕질을 치던 시절에나 쓰던 낡은 교리다·
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성벽도 훌쩍 뛰어넘는 무림인들이 괜히 관의 군사를 두려워하겠는가·
첨단 미개 화기로 무장한 군사들을 일개 지방 깡패 조직이 대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다만 관과 무림의 전쟁이 뻔히 보이는 파멸로 양패구상인지라 서로 못 본 척 관무불가침이라 멋들어지게 표현할 뿐이었다·
물론 결과는 무림의 판정승이라 할 것이다·
둘이 싸우면 왕조는 확실히 망해 오호십육국 혹은 전국 시대의 재림이지만 무림의 명맥은 어쨌거나 남아 이어질 것이므로·
어쨌거나 청이 잠든 사이에 당가 밖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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