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1
사고도 이런 대형 사고가 없었다·
제자가 천마라니·
네 번이나 중원을 침략하여 온 천하를 초상집으로 만든 천하의 악귀가 아닌가·
아예 신녀문에 입적시켜야 할 판이었다·
신녀봉 태상장로전에 데려다가 늙어 죽을 때까지 도문이나 읽게 만들어야 할까·
서문수린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멍청한 제자가 천하의 화근을 품었으니 제자의 부덕이 스승의 부덕이요 이게 전부 못난 사부를 둔 탓이니 평생 품에 끼고 살면·
“모자란 년아· 제 몸 하나 건사하며 빼내기만 하면 되지 도대체 그런 흉물을 왜 취했느냔 말이다· 이래서야 마교 놈들이 널 놓아주려고 하겠느냐?”
“그치만· 놔두고 저 혼자 내빼면 또 마교 놈들이 우르르 쳐들어올 것 아니에요···”
“왜 천하의 안녕을 위해 네 한 몸 희생해야겠다고 그런 발칙한 생각이라도 했더냐?”
“저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게요· 그리고 천하 뭐 이런 것보단 신녀문 식구들한테도 전쟁이 미칠 테니까···”
그리 말하는 제자 앞에서 서문수린이 어떻게 더 화를 낼 수가 있을까·
서문수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품에 끼고 살자는 것도 내 욕심이구나·
매일 보아서 기쁜 것이 이 스승이니 그럴듯한 명분이 섰다고 곁에 두려고 하는 게야·
“그래서 천마혼을 제압하고 떠난 이후로는 사천으로 향한 모양이다만 역모는 또 무슨 일이더냐· 내 제자 젖가슴을 갈라놓은 그 찢어 죽일 놈은 또 어떤 놈이고·”
“아· 금의위 첨사? 뭐 그런 높은 놈이었는데 제자가 이미 요절을 놓았거든요? 근데 그놈이 무슨 그래· 혈강마인? 그런 거였다고·”
서문수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입을 열 때마다 묵직한 것이 튀어나와서·
첨사라면 관부의 무관 조직도에서 삼 인자를 뜻하니 금의위 첨사라면 위지휘첨사를 말하는 것일 텐데·
황기를 직접 들 자격이 있는 최고위 무관이 혈교의 인신 공양을 수행한 저주받을 마인이었다는 소리는 또 무엇이냐·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대역죄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제자가 사천 땅에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부터 해 드려야겠는데요 제자가 마라탕 먹으려고 아 천하제일숙수 맞다 사부님 사천에 천하제일숙수가 있는데요 그게 진짜 천하제일숙수는 아니고 사천제일숙수인데 사천요리가 천하제일요리라서 사천제일숙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숙수래요 하여튼 그래서 궁극의 마라탕이란 게 아 결국 못 먹었네· 사부님 혹시 마라탕 좋아하세요?”
“···? 텁텁한 마초가 취향이 아니라 즐기지 않는 음식이다만 마라탕 따위 아무래도 좋은 것이니 넘어가거라·”
“아· 어쨌거나 오독문이란 놈들이· 아· 오독문 걔네는 또 뭐였지? 그냥 재수 없이 때가 겹쳤나?”
오독문은 동창 태감에게 줄을 잘못 섰으니 머지않아 왕부 괴인들과 당문 복수자들의 호된 공격을 받게 될 예정이었다·
청이야 관심 없어서 모르고 또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대충 설명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더니 다 끝났대요·”
“그래· 끝까지 의리를 지키되 깊숙하게 파고들지도 않았으니 모처럼 처신이 아주 훌륭하다 하겠구나· 다치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아 맞다· 사부님 이것 좀 보세요 십자로 새겨진 게 은근 야성적인 멋이 있지 악!”
따악!!
감히 스승 앞에서 쓸데 없이 큼직하기만 한 젖통을 까보이던 청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아주 매를 버는구나·”
“아니 진짜 아파요···”
“말만 아프다고 하지 맷집이 점점 느는구나· 세상에· 현철도 제자 대가리보다는 단단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번엔 진심이었다·
역근세수경을 익혔다고 하더니·
그 신묘한 공능이 아주 철두 현철 대가리를 만들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가슴의 상처는 흉터로 남겨 평생의 교훈이나 하라고 하려던 서문수린이 생각을 바꾸었다·
교훈도 통하는 년이 있는 것이다·
가슴에 흉측한 흔적을 새기고도 오히려 희희낙락 야성의 멋이니 하는 모자란 년이었다·
교훈치고 남겨놓으라고 해봐야 외려 남들이 흉이나 볼 흠결만 남을 뿐이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소식이 소식이라 제자들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가에 더 머물러서 좋은 것이 없는 상태였다·
황가의 암투와 관련되었으니 괜히 엮인 이름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때까지 아예 속세를 떠나 몸을 숨기는 편이 나을 테니까·
청이 눈동자를 굴리며 작게 대답했다·
“어 의매 호소인 기다려야 하는데····”
“이 앞에 늙은 놈 남겨두고 나중에 자귀에다 살림이나 펴 두라고 하거라· 아무리 하인이라 한들 어차피 문중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자귀는 신녀문 가까운 도시의 이름이다·
신녀문은 금남의 성역이었다·
적어도 무천대제 이후로는 그랬으니 이전에는 무도한 황가 놈들의 침범이 몇 번 정도 있기는 했다·
도관에 모신 무산신녀께서 염제의 딸이자 황제의 연인이셨으니 못 이긴 척 넘어갔지 이후 관의 힘이 쭉 빠져버린 이후로는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즉 서문수린의 삶에서는 단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어 흉터 치료는 아· 그건 별로 상관없기는 한데요·”
“흉터야 약을 타 가면 그만이지· 당가제창산이 효과 좋기로 또 유명하지 않으냐·”
“오잉? 약만 바르면 되는 거였어요?”
“그럼? 굳이 심란한 상처를 덧나도록 주물럭거리기라도 해야겠느냐?”
“분명 억안조마라고 주물럭까진 아니었지만 막 쓰다듬고 그랬는데····”
억안조마· 줄여서 안마라고도 하는 중화 민족의 치유술을 말했다·
중화 민족이 아니라도 전 세계 각지에서 자연 발생한 원시적 의료 행위이기도 했다·
“억안조마라면 근육과 힘줄 뼈에나 듣는 것이지 살덩어리 주물러다 어디다 쓴단 말이냐? 안 그래도 둔중하니 큼직하여 옷의 태만 망치는 것이니 괜히 손댈 생각은 하지도 말고· 더 커질라·”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난아 그거 아주 몹쓸 년이었네 아주·
한의사 면허 박탈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중원에 따로 면허가 있지도 않거니와 미개한 중화가 여류 의원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의원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의원 호소인에 불과하기는 했다·
똑똑·
호랑이를 입에 담으면 진짜로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말이 있듯이 당난아가 마침 때를 맞춰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다·
“점심이 준비되었답니다· 혹여 대모께서 자리를 빛내 주실 수 있으시어요?”
당난아가 긴장한 기색으로 쭈뼛거리며 식사를 권했다·
그러면서도 눈빛이 반짝반짝한 것이 서문수린에게 꽂혀 떠나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모 서문수린은 강호 모든 여류 무인의 우상이기 때문이었다·
여중제일인을 만난 여류 무인이 어찌 긴장을 안 하고 설레지 않겠는가·
청이 잘 만났다고 삿대질을 했다·
“야· 너· 의원이 환자를 속여도 되는 거야?”
“어? 누가? 내가?”
“그래 너·”
그러나 당난아에게는 억울한 누명이었다·
사심이 없다고는 못 해도 아예 반으로 잘려나간 통에 내부 조직이 어긋나지 않게 잘 맞춰주는 의료 시술이었으니까·
심지어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내공까지 운용한 지극정성의 돌봄으로 매번 땀을 쭉 빼고 기진맥진 체력까지 쏙 빼는 와중이었으니·
서문수린도 의원은 아니라서 치료법이라고 해봐야 그냥 찢어지면 꿰고 부러지면 붙이고 피 나면 닦고 바르는 수준이다·
의술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미안· 몰랐어·”
“흥· 돌팔이라 미안하게 됐네·”
“진짜 미안·”
“그래? 미안하면· 흠흠· 나중에 내 부탁 들어줘야 해· 미안한 만큼 들어줘야 하는 거야·”
몇 개도 아니고 미안한 만큼 들어주라니·
참으로 악랄한 화법이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청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항변하려는데 그새 방향을 돌린 당난아가 서문수린에게 다소곳하게 말씀을 올리는 것이다·
“서문 대협 그래서 소녀가 하나 청이 있사온데 청아의 상처도 돌볼 겸 소녀가 신녀문에 머물러 진맥을 봄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그래준다면야 내 고맙겠다마는·”
서문수린이 화려한 객청 안을 둘러보았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아끼지 않는 부분이라고는 식사밖에 없는 신녀문이었다·
“본 문의 생활이 검약하여 꽤 고된 일이 될 것이다마는 괜찮겠느냐·”
“그럼요! 오히려 좋아요! 감사합니다!”
당난아는 제자 친구 아니더라도 서문수린이 꽤 좋게 볼 평가할 것이 일단은 여의다·
강호에 여류 의원이 없어 여인이 차마 민망한 병증이 있어도 쉬이 진맥을 청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듣기로는 어리광이 심하고 떼나 쓸 줄 아는 철부지 어린애라더니 소문 믿을 것 하나 못 된다고 생각하면서·
—-
그렇게 점심 대접까지 받고 서문수린이 곧장 짐을 챙겨 당가를 나섰다·
그리고 그제서야 서문수린이 눈을 돌려 최리옹을 바라보았다·
최리옹이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만 살폈다·
무위로도 나이로도 심지어 청과의 관계에서도 뭐 하나 앞서는 것이 없으니 얌전히 찌그러져 처분을 바랄 수밖에는·
서문수린이 그 초조한 속내를 엿보았다·
자전마군이라면 마교의 순찰사자로 나름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그래도 과거가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지·
그래도 평생 적공을 흩어버렸다고 하니 그게 또 무슨 심정일지 상상조차 안 되는 허무였다·
제자가 편을 들어 말했으니 편파적인 해석을 곁들이기는 했을 테지만 신공을 전해 준 것이 내공의 해산 이후라면야·
서문수린이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제자가 모자라서 강호에 나감이 항상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와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럴 때 자네가 좀 돌보아 주게·”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흥·”
제자 잘못 두어 대마두에게 선배라 불렸으니 아주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래도 화경의 고수가 제자의 수발을 든다고 하면 그 정도야 감내할 만한 것이기도 하고·
제자의 강호행이 어지간히 기상천외해야지·
어쩌면 타고난 살업을 거부하여 따르는 시련일지도 모르니 억지로 가두어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왕부 마당에서 서성거리던 덕현친왕이 음흉한 미소를 띤 연 파에게 물었다·
“흠 배웅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느냐?”
“왕야 그냥 눈에 안 띄는 게 제일이요· 지금이라 저래 보여도 여광견이라 불리던 왕년의 미친년이었지· 금남의 신녀문 태상문주가 성씨까지 물려준 기명제자가 남의 집에 들어가는 꼴을 눈 뜨고 볼 것 같습니까?”
“아니 누가 집에 들인다더냐· 나는 그저 친우의 그냥 배웅이나·”
“아이고 왕야· 사릴 때는 사리셔야지요· 나중에 일 치르고 용서를 구하면 설마 용상에 앉은 사위한테 손찌검이라도 할까·”
연 파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니 사위라니· 나는 그런·”
“아니십니까? 분명 관과 무림의 융화책이니 어쩌니 노파에게 묻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대의를 위해서···”
덕현친왕이 얼굴이 벌개진 채로 변명했다·
연 파가 간만에 건수 잡은 할망구의 특기로 연신 손자 놀리듯 입을 놀렸다·
“대의 대의 좋지요· 이 노파는 대의도 좋고 사심도 좋고· 이태까지 그냥 다 좋게 살았으니 왕야께서 좋으시면 노파도 좋은 거요· 클클·”
그리고 사실 이것이 천자의 피를 타고났다고 하는 것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보라색 바탕에 황금색 용 문양만 들이밀면 아주 온 세상 누구라도 눈깔 뒤집어져서 달려들 줄만 알아서·
술 장수가 영업을 하는지부터 물어보고 나서야 뭘 마실지 고민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술상 전에 속부터 지키겠다고 꿀물부터 사발로 들이켜봐야 헛배만 부르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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