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2
마교의 순찰사자가 통첩을 전하러 온다!
물론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해도 사신을 해치는 일은 없다·
심지어 수신인이 정파 무림의 총본산 무림맹이지 않던가·
오히려 통첩을 든 순찰사자가 습격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판이었다·
정파 무림이 비열하게 사신을 해쳤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파견된 무림맹 고수들이 또 더러운 마교 놈들하고 어울릴 수는 없어서 가까이에 다가가지는 못하고 어중간한 거리로 포위하여 감시 겸 경호를 진행했다·
그렇게 마교의 악명높은 새까만 흑단마차가 고수를 한 겹 두른 채로 중원을 가로질러 그 목격담이 무림맹을 향해 죽 이어졌다·
그리고 무림맹 본단 앞·
이미 구경을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꼴이었다·
무림대회가 열린다 해도 이만큼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들 말은 안 해도 마교의 순찰사자가 전할 통첩이 무엇인지는 대강 예감을 했다·
최후통첩!
통첩이란 한 세력이 세력에게 보내는 외교적 서신을 말한다·
개중 마지막 최후의 통첩이 바로 최후통첩 이젠 대화는 필요 없으니 치고박고 한 판 붙어보자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는 무림맹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사했다·
마교 놈들이 오죽 자신이 있었으면 선전 포고를 하고 쳐들어온단 말인가!
매번 힘을 모았다가 기습으로 몰아쳐 때리는 놈들이 이번에는 예고까지 할 정도라면·
그러나 정파 무림의 힘도 한창 무르익었다·
무천대제 이후 정파 무림의 무학 수준도 매일 최고점을 갱신하는 때였으니 이제 와 마교의 악적이 쳐들어온다 해도 분연히 떨쳐 일어나 맞설 뿐이다·
무림맹 정문 앞 맹의 주역들이 병장기를 쥔 채로 주르륵 일렬로 늘어섰다·
정파의 의기가 서린 무림맹 본단이다·
더러운 마교의 종자를 무림맹에 들일 수는 없기에 하는 연출이었다·
이게 다 무어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원에서 체면은 목숨과 같은 말이다·
구경꾼들 사이로 마교의 흑단마차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불길한 웅성거림이 차례로 퍼져나갔다·
“멈춰라!”
불가의 공력이 담긴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소림의 내광대사가 일생의 무학으로 갈고닦은 정순한 파마의 기운이 널리 퍼져나갔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었다·
그게 효과를 보아 불길하게 웅성거리던 소음이 뚝 멎었다·
역시 소림이다 정파 무림의 태두니 뭐니 하는 감탄이 잠깐 그 뒤를 따르다 가라앉았다·
그러자 의기충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이제는 야유와 비난이었다·
“감히 마교의 악종이 어딜 침범하느냐!”
“우우! 마교 놈은 꺼져라!”
“이런다고 정파 무림이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더냐!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 가운데에서 마침내 순찰사자가 통첩을 높이 들어 외쳤다·
“귀 맹의 무궁한 영광을 기원하며 신교지존을 대신하여 무림맹의 협객들에게 고합니다!”
“···?”
“···?”
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다들 내가 뭘 들은 거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리고 서로를 돌아보며 확인해도 다 같이 멍청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적어도 잘못 듣지는 않았구나 하는 확신을 주기는 했다·
“새로운 신교지존께서는 이제 해묵은 원한과 미움을 지워내고 오래도록 전해져 온 반목의 끝을 보고자 하십니다! 이에 신교의 문을 열고 화해를 청하고자 하니 더는 서로를 증오하여 피가 피를 낳고 고통이 고통을 불러오는 슬픔의 연쇄에서 벗어나 함께 하늘 아래에 즐거운 노래를 부르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이런 당했구나·
무림맹 군사가 진땀을 흘렸다·
차라리 순찰사자를 맹 안으로 들여 맞이했다면 모를까 백주대낮 온 중원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화해를 청한다면 맹의 입장에서는 받아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마교가 먼저 쳐들어와야 명분이 서는 것이지 중원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하는 무림맹이 이제 거절하여 필요없고 전쟁이다를 외쳐서는 안 될 일이었으므로·
애초에 그 속내를 꼭꼭 숨겨서 최후 통첩을 날릴 것처럼 위장한 것이 다 이를 위한 수작질이었던 것이다·
군사가 그 좋은 머리를 쓸데없이 굴렸다·
똑똑한 놈들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저 진정한 속내가 과연 무엇인가·
정말로 저들이 원하는 것이 평화라면 지금이 무림의 오랜 화근 하나가 사라지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방심을 유도하여 다섯 번째 정마대전을 일으키려는 수작이라면?
“이제 신교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원하시는 무림의 협객 누구라도 천산신시에 방문하시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될 것이오!”
“으음·”
군사가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문이란 본래 양뱡향으로 통하는 것이다·
겨우 저 새외 촌구석에 펴 놓은 초가집 대문이나 열어놓고는 저들도 중원으로 진출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러나 딱히 막을 명분도 없다·
오랜 원한이란 진짜로 오래 전의 원한이라서 마교의 화를 입었다고 해봐야 거진 전해 들어 학습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
사천 땅에서 신녀문으로 향하는 여정은 사실은 딱히 여행이라 할 것도 없다·
배 타고 배 내리면 끝·
물론 장강의 풍광이 아름답기는 하다·
성도 민장강에서 배 타고 물길 타고 내려가면 본류인 장강에 합류한다·
하선하지 않고 쭉 가면 사천성의 동부 지역인 중경에 진입한다·
중경 역시 왕이 나온 꿀땅 중의 꿀땅이다·
흔히 사천 지역을 뜻하는 파촉이 파나라 땅과 촉나라 땅을 합친 말이어서 그중 파가 바로 중경을 뜻했다·
덕분에 사천 사람은 사천 동부로 취급하지만 중경 사람은 사천 놈들과 엮지 말아 달라면서 기분 나빠하는 관계였다·
좌우로 길쭉한 중경 땅을 가로로 길게 통과해 지나치면 곧장 장강의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무산협곡이 나온다·
그리고 무산협의 최고 봉우리가 신녀봉이다·
선원들이 자자 무산협 떴습니다 나와서 구경하세요 외치며 사람들을 불러들이면 슬금슬금 준비해서 자귀에서 내리면 바로 집앞이었다·
현대식으로 따지면 신녀문은 장강뷰에 신녀문 정거장까지 갖춘 초역세권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이 이리 편하고 가까우니 괜히 사천의 역란 소식 듣고 서문수린이 뛰쳐나간 것이 아니다·
오려면 며칠 만에도 금방 돌아올 지척에 있는 (물론 장강은 편도라 올 때만 빠르다) 제자가 뭉그적대며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니 당연히 걱정이 만발하여 쫓아갈 수밖에는·
그리하여 신녀문 산문에 도착한 청은 이제야 감개무량 와 드디어 집이다 하고 안도하여 큰 숨을 내쉬는 것이다·
사실 호화롭기야 신녀문이 마교든 당가든 어느 쪽이건 간에 비할 데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집이 가져다주는 그 정신적인 안정감이란 세상 어디에서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므로·
“태상문주님 오셨어요· 꼴깍·”
신녀문 제자들은 서문수린을 심하게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문중에 들자마자 난에 물 주러 가야겠다고 훌쩍 몸을 날려 검 타고 사라지는 것이 오랜만에 만난 신녀문 제자들과 재회의 시간 즐기라는 서문수린의 배려인 것이다·
“태사숙조님! 와 이뻐지셨어요! 완전 서미인! 완전 우미인! 완전 초미인! 완전 왕장미인!”
서미인은 고금제일미녀인 서씨를 말하고 우미인은 이름이 우고 성은 전해지지 않았다·
초미인은 초선 왕장미인은 왕소군의 이름이 장이라 왕장이라 부르기도 하니 대충 양미인(양귀비) 빠진 유사 사대미인이었다·
“뭐 태사숙조님 오셨다구?”
“태사숙조님!!”
“태사숙조님 이번엔 어디까지 다녀오셨어요? 이야기 들으러 가두 돼요?”
“피리 피리 불어주시면 안 돼요? 맨날 귓가에 맴도는데 태사숙조님 아니면 그 느낌이 안 나단 말예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새 제자인가?”
“와 사천제일미! 해어독화!”
“만천화우! 만천화우 보여주실 수 있나요?”
“멍충아 그러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아주 저네들끼리 꺄르륵 난리가 났다·
청이 챙겨온 당과 하나씩 입에 물려주며 그 격렬한 마중을 받아주었다·
문파 밖으로 나갈 일 없이 산중에 사는 애들이라 착하기도 참 착하기도 하지만 외부 자극에 아주 민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의 새떼와 같은 습격이었다·
이미 익숙하여 능숙하게 당과나 하나씩 쏙쏙 넣어주는 청과는 달리 당난아는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도문이라고 해서 뭔가 좀 조용하고 이런 걸 상상했는데····”
“그게 다 편견이 아닐까?”
“청성이랑 아미는 조용했단 말야· 근데 너 도가의 어르신이 맞기는 했구나····”
당난아가 새삼 다시 보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당가에 머물 때와는 벌써 태도부터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는·
아주 푹 늘어져 몸에 밴 것이 게으름으로 도중 팽초려와 잠깐 수련을 하나 싶더니 그나마 그도 얼마 못 갔다·
하는 일이 자거나 먹거나 최 노에게 매달려 어리광이나 부리더란다·
그런데 제 집에 왔다고 벌써 허리부터가 곧게 펴고 어깨는 벌어져 의젓한 대사저 같은 모양새를 했으니 신기할 수밖에는·
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은 무슨· 일단 장문인께 인사 올리고 객청으로 안내해 줄게·”
그렇게 신녀봉을 가로지르는 도중이었다·
뭔가 쪼매난 것이 달려들어 와락 안겨들었다·
“악! 나 가슴 다쳤거든? 상처에 얼굴 문대지 말아 줄래?”
“헉·”
낯선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대제자 수련복을 입고 안겨드는데 딱 정수리가 쇄골 조금 아래에 드는 꼬맹이였다·
청이 여인치고 훤칠하여 육척에서 겨우 손가락 두마디 정도 모자란(5’9·4″) 장신이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쇄골에 못 미치면 좀 심하게 꼬맹이이긴 하다·
그에 해당하는 인물은 신녀문에 하나뿐이었다·
“오· 장명이· 많이 예뻐졌네· 못 알아보겠다·”
“흐흣·”
진장명이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청이 진장명을 위아래로 보다 감탄했다·
“오· 뭐야· 이제 일류 초입쯤 되나?”
“흐흐흣·”
그러자 진장명이 허리춤에 손을 탁 얹고 잰 체를 했다·
청이 말을 이었다·
“겨우 일류 나부랭이가 절정 고수의 앞깊을 막는 거 아니다· 저리 가지 않으련? 가서 일류 초기 애송이들끼리 놀아· 이런 일류 옮겠다· 훠이 훠이· 저리 가·”
“칫·”
진장명의 얼굴이 썩어들었다·
청이 낄낄거리며 다시 팔을 벌리자 진장명이 멈칫하며 물었다·
“어느 쪽이 다친 거야? 왼쪽? 오른쪽?”
“왼쪽·”
“응·”
진장명이 다시 와락 안겨들었다·
청이 다시 외마디 비명을 흘렸다·
“악! 거기 왼쪽이잖아· 겨우 붙었는데 다시 쪼개지겠네·”
“뭐야· 왼쪽이라며?”
“나한테 왼쪽이거든? 니가 볼 때 말고·”
“그럼 그렇게 말을 해야지·”
“왼팔 오른팔 다쳤냐고 물어보면 너가 볼 때 왼팔이라고 대답하냐? 이게 오랜만에 보는데도 멍청한 소릴 하네·”
“흥·”
“자· 이제 떨어져· 국법이 지엄한데 미성년자가 앵기고 있으면 안 돼·”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년이었는데·”
“나한텐 남자 여자 똑같다· 스무 살부터야· 장명이가 올해 열여덟인가? 이 년 남았다·”
“일 년하고 한 달이야· 올해도 다 갔어·”
참고로 중화의 성년에서 사내는 스무 살 약관의 나이를 말하며 여인은 열다섯 그냥 열다섯 살 부터였다·
사내가 열다섯 살이면 학문에 뜻을 세우라며 지학이라 부르지만 여인 열다섯에는 학문은 무슨 학문 그냥 빨리 애나 낳으라며 성인으로 쳐주는 것이었다·
중원의 꼴이 이러하니 서문수린이 분개하여 여류투쟁 전설적인 수많은 일화를 써 내려간 것이고·
그러고 나니 당난아를 바라보며 묻는 것이다·
“얘는 누구?”
꽁·
청이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손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이건 당난아라고 하는 거란다· 무림 오대미인 중 하나고 또 음 의원이기도 하고·”
“야! 사람보고 이거라니· 어 안녕? 소도우?”
“오대미인?”
진장명이 당난아의 얼굴을 보고 다시 청의 얼굴을 보고 다시 당난아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청의 얼굴을 보고 피식 숨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끌어올렸다·
“야! 뭐야 이 쪼그만 게! 그거 무슨 의미야?”
“흥·”
청이 그 모습에 새삼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장명이 저년이 처음부터 싸가지가 아주 개싸가지였는데·
신녀문 들어와서는 순둥하게 굴어 깜빡했다·
그냥 낯을 좀 심하게 가리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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