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1
이 꼬맹이 되바라진 것 좀 봐라·
하지만 나이가 곧 깡패라더니 일곱 살 여자아이가 부리는 잔망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사실 어차피 내 아이가 아니라면 당장 귀엽고 어여쁘면 그만인 것이 사람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남의 집 개와 고양이가 귀여운 이유였다·
또는 조부모가 손녀에게 무조건 잘해주기만 하는 이유와 같았다·
미움받을 야단과 교육 및 행동 교정은 부모가 할 일이고 그저 귀여워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제갈향이 청의 손가락을 덥석 붙잡아 질질 끌어당겼다·
조막만한 주먹이 겨우 손가락 두 개 쥐고는 가득 찬다·
안 그래도 마공의 부작용으로 손이 찬 청에게 뜨거운 아이의 특유의 체온이 전해졌다·
청이 못 이기는 척 끌려가주며 말했다·
“야· 그런데 거짓말 아니면 어떡할래? 내가 이래 보여도 구파의 장문인급 큰어르신이거든? 감히 어른을 농락한 죄는 아주 무거운데·”
“앗· 진짜요?”
“진짜·”
“그 그럼 언니 말이 맞으면 특별히 우리 오라버니랑 혼인할 수 있게···”
“응? 무림인이 남의 자리 걸구 내기하게 되어 있냐? 너네 오라비네 혼처는 너네 오라비가 직접 구해야지·”
“어· 그럼요?”
청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향이라고 했나? 내 말 맞으면 향이가 나한테 시집오는 거다? 두 번째 첩실 정도로 할까·”
딱 아저씨나 할 만한 짓궂은 농담이었다·
꿀꺽· 아이가 크게 침을 삼켰다·
“하지만 여인끼리····”
“왜 못하겠냐? 그럼 돌아가야지·”
“익 지금 포기하게 만들려고 허세를 부리는 거죠? 삼십육계 중 수상개화! 흥 누가 병법도 모르는 꼬맹이인줄 알아요?”
제갈향이 씩씩거리며 청을 이끌었다·
뭔가 굽이굽이 비슷비슷한 풍경인데도 용케 길을 잃지 않고 척척 이끌더니만 마침내 잘 꾸민 호수를 낀 널따란 정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한편에 종류별로 쌓인 철구들이 눈에 띄었다·
들기 좋도록 손잡이가 달린 철구였다·
“자· 이게 백 근짜리 철구에요· 어디 언니 말대로 한 손에 들어보세··· 드시는구나···”
“아· 이 정도가 백 근이야? 묵직하네?”
백 근이면 청의 고향을 기준으로 이미 공식적 세계 신기록(53kg)을 일할 이상 초과했다·
“근데 이게 과일 기준이야 고기 기준이야?”
청의 고향에서는 아직까지도 품목마다 근수가 다른 미개하고 멍청한 단위계를 쓰고 있었다·
동시대의 중화 민족이 시대에 맞추어 근수를 조정했으니(600⇒500 모든 품목 통일) 이것만은 한민족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미래 지향적 태도라고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원시 고대 미개 중원이라 근수를 조정하기 이전이다·
“···?”
“이 정도면 이백 근도 들만하겠는데· 이백 근짜리는 어떤 거야?”
제갈향이 눈치를 보다 말했다·
“이이백 짜리는 없어요· 이백 오십 근만···”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었다·
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 근 들어보니 이백 오십도 들만 할 것 같았다·
“이백 오십 근짜린 뭔데?”
“저 저거요···”
청이 한 손에 이백 오십 근짜리 철구를 쥐었다·
그냥 들고 서 있기에는 버틸 만한데 머리 위로 들어 올리려니 부들부들 손이 떨려 좀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인간 초월 초인류에 달한 신체라도 삐꺽삐꺽 무리를 외치는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팔꿈치를 완전히 접고 어깨 힘으로 밀어 하늘로 번쩍 치켜들었다·
미련하게 반동조차 안 주고 행한 기적이었다·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영웅과 같은 자태!
그에 제갈향의 입이 멍청하게 헤 벌어지고 반대로 눈빛은 아주 반짝반짝 빛났다·
그때 청에게 와닿는 신체 내부에서부터 울리는 어떤 소리가 토톡 하고·
청이 깜짝 놀라 제갈향의 반대편 자신의 등 뒤쪽으로 곧장 철구를 놓아버렸다·
쿵!
이백 오십 근 철구가 땅과 부딪치니 소리도 소리거니와 땅의 진동으로 연못에 큰 물결이 일어날 정도였다·
“와 두번은 못 들겠네· 너무 무리했어·”
근육 인대 파열되는 소리를 직접 느끼고 말았으니 한동안 오른팔을 제대로 못 쓰게 생겼다·
괜히 허세 부리다 몸만 상했으니 도대체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청이 깊이 반성했다·
“어때 꼬맹이· 한 손에 이백 오십 근이면 양손 합쳐서 오백 근 쳐주는 거지?”
문득 제 처지를 깨달은 제갈향이 금세 희게 질린 낯빛을 하고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으우 소 소첩이 상공을 뵈어요 훌쩍···”
“야 뭐야· 울면 내가 뭐가 되냐· 그리고 내가 그렇게 싫어?”
“그치만 첩이자나요 끄흑 그것도 두 번째·”
“똑바로 말해주지 않으련? 첩이라서 싫은 거야 아니면 나한테 시집오는 게 싫은 거야?”
“두 둘다 싫어요···”
“내가 그렇게 싫어? 서운하네· 향이는 첩실이 되자마자 소박을 맞게 생겼는걸·”
“그럼 하다못해 정실이라두··· 끄흡·”
어린애 특유의 큼지막한 눈망물에 기어코 맺힌 눈물이 톡 떨어져내렸다·
청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려다가 악 짧은 비명과 함께 곧장 왼손으로 대신 긁었다·
생각보다 오른팔이 많이 상해버린 모양·
“자 밤바람이 차다· 돌아가자 작은 계집아· 가서 초야 치러야지·”
청이 멀쩡한 왼손으로 제갈향을 받쳐들어 품에 안았다·
그러자 꼬맹이가 청의 목을 휘감고 달라붙어 크헝헝 서러운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기어코 애를 울려버리고 마니 청도 제법 짓궂은 구석이 있었는데 사실 행적을 보면 대놓고 못된 년이기는 했다·
다만 제갈향 요 꼬맹이도 유식하니 모르는 문자도 척척 읊더니만 정작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덜컥 믿어버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참 일곱 살 어린애답다고 해야하나·
“음? 근데 길을 모르겠네? 잘못하면 길 잃고 미아가 되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는걸· 누가 길 안내좀 안 해주나?”
그러자 제갈향의 귀가 쫑긋거렸다·
“아· 곤란하다 곤란해· 누가 길을 좀 가르쳐 주면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제갈향이 바로 미끼를 물었다·
“어 그러면 히끅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 다 없던 일로··· 히끅·”
“하아· 어쩔 수 없지· 모처럼 예쁜 첩실 들여 알콩달콩 백년해로하나 싶었더니· 인제 보니 이 쪼그만 책사 계집이 이럴 줄 알고 모르는 곳으로 유도했구나· 과연 제갈씨다운 책략이다· 내가 당하고 말았어·”
“흐 흥· 그걸 이제 알아챘나요···· 히끅·”
제갈향이 빠알간 얼굴로 그리 말했다·
“아유 귀여워 죽겠네· 악·”
어린애 특유의 젖살로 통통한 볼때기나 한번 꼬집어 보려다가 오른팔의 심상치 않은 통증에 짧은 비명이나 지르고 만 청이 포기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근데 오른팔이 안 움직이는데?
괜찮은 거 맞나?
잠룡비무회인가 뭔가 나가야 하는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오는 통증이 예삿 것이 아니다·
청이 시원해지는 등줄기를 애써 무시했다·
그래 한의사 있는데 뭐 어때·
그리고 뭐 왼손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꼬맹이 하나 놀려먹으려다 제대로 팔 한 짝 해먹은 칠칠맞은 어른이 있었다·
“자· 가자· 어느 쪽이야?”
“저쪽이요·”
한편 울음기 가신 제갈향이 그리고 나서야 슬그머니 신상을 캐 왔다·
“언니 그런데 언니는 몇 살이에요?”
“나? 스무 살· 스무 살 하기로 했어·”
서문수린의 욕심이 불러온 무리수였다·
고작 방년 스무 살 제자가 쟁쟁한 잠룡들을 가볍게 쓸어버리고 우승을 차지하면 그게 또 얼마나 멋있는 일이며 또한 여류 무인에게 있어서도 거대한 한 발자국이 되리라고·
고금제일기재가 여인에게 나왔음을 알면 세상 모든 무인들이 계속 여인을 경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서문수린표 여권 신장의 일환이었다·
계속되는 합법 성형으로 청의 보이는 나이가 계속 어려진 것도 그 판단에 한몫했다·
대충 스물이라 우기면 스물로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의 입장에서야 뭐 나이는 어릴수록 좋은 거 아닌가?
나이가 어려서 서러울 수도 있다?
그건 배분 낮은 놈들이나 하는 소리였다·
“···? 그럼 현 오라버니보다 한 살 어린 거 아니에요? 왜 언니가 누님이에요?”
“아 제갈이가 스물하나밖에 안 해? 등치만 컸지 완전 애기였네? 원래 내가 너네 오라비 만났을 때는 한 스물둘? 한 그쯤 했거든?”
“···? 언니는 나이를 거꾸로 먹어요?”
순수함이 불러온 귀여운 참사였다·
“방금 좀 위험한 발언이 될 뻔하지 않았니?”
“앗· 죄송해용·”
“그래· 귀여우니까 봐준다·”
“근데 그럼 언니 내공까지 쓰면 엄청엄청 고수 아니에요?”
“이미 말하지 않았냐· 이 몸 고수· 곧 초절정을 앞둔 몸이시자 내공과 외공의 조합으로 무수한 초절정 고수들을 쓰러뜨린 백전의 노장 아 노장은 아닌가? 백전의 소장 음 소장은 좀· 그럼 대장 음 대창 먹고 싶네···”
청이 제 특기인 ‘입에서 나오면 다 말인 줄 안다’를 시전했다·
그에 제갈향이 꺄흐으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 그러면요 향이가 첩 말구 정실하면 안 돼요?”
“어허· 행운은 뒷머리가 없다는 말도 모르니? 지나간 후에는 손을 뻗어도 늦은 법이야·”
“힝···”
“나중에 너 커서 아주아주 이뻐져서 막 오대 미인 중에 뇌화나 계략화나 비열화 정도 되고 나면 내가 받아준다·”
“···보통 지화나 현화 혜화 아니에요?”
“뭐야 좋은 말 붙여줘도 되는 건가? 내 옆에 있던 되게 못되게 생긴 애는 독화인데?”
“아 맞다! 그런데 그럼 언니는요? 괴력화나 항적화는 못 들어 봤는데···”
그렇게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사라져버린 공터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땅에 처박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박히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철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떤 상식 없는 인간이 사용 후에 치우지 않은 채로 떠나버린 까닭이었다·
그래서인지 양손으로 조심스레 손잡이를 붙잡는 거대한 손이 있었다·
“흡·”
숨 턱 막히는 소리와 함께 아담하게 파인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봄이 온 지 얼마 안 되어 덜 녹은 땅이라서 이백 오십 근 철구 떨어져도 딱 이 정도다·
철구가 힘겹게 떠올라 본래의 자리로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
객청으로 돌아와서 팔을 내놨더니 당난아는 예쁘게 해먹었다고 야단이다·
아주 인대가 제대로 상했으니 도대체 야밤중에 뭘 했냐는 것이다·
그런데 당난아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인대가 너무 늘어나 잡히는 부분이 벌써 헐렁하니 탄력을 잃었으며 일부는 파열이 일어나 당분간은 어깨 쓰는 일 자체를 피하고 팔을 들어 올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제야 청이 제갈향에 대한 간밤의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뻘짓이었다·
“그런데 왜 위에만 이래? 아래는 멀쩡하고?”
“그게 이상한가?”
“그야 당연히 근육이 많은 상박이 단단하게 잡아주니 더 튼튼할 수밖에 없잖아? 팔뚝에 든 근육이라 해봐야 접는 데 돕고 손목이나 돌리는 용도라 부실하기 짝이 없는 건데·”
그야 당연히 소수마공 덕분이었다·
소수마공은 팔꿈치 아래를 금강불괴처럼 보호해 주기 때문에 야밤의 한심한 힘자랑에서도 그 멍청한 소유자를 착실하게 지켜낸 것이다·
“일단 침을 좀 놓자· 얼음이 있으면 좋은데· 제갈세가니까 분명 얼음 정도는 구비하고 있겠지?”
“괜찮· 나 빙공 쓸 수 있음·”
“어? 빙공? 어떻게?”
“그냥? 잘?”
“잘됐다· 이것 좀 얼려 줄래? 바짝은 말구·”
당난아가 수건에 물 부어 차박차박한 상태로 청에게 내밀었다·
평상시 용정차 식혀먹듯 진기를 끌어올리자 이내 하얗게 서리가 끼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 그만· 그 정두면 돼·”
당난아가 수건을 비벼 바작바작 풀어낸 이후 다른 수건으로 감싼 후에 청의 어깨에 묶었다·
“수건이 흐물하다 싶으면 말하구· 풀어다 다시 얼려 묶어야 하니까·”
“그냥 이대로 얼리면 안 돼?”
“맨살에 얼음 닿게? 그러면 동상 걸린다구·”
“오 의원다운 말씀· 이럴 땐 멋있단 말이지· 근데 침 놔준다고 안 했나? 이렇게 감싸놓아도 침 놓을 수 있어?”
“아· 맞다·”
당난아가 급히 수건을 풀어냈다·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멋있다는 말은 아무래도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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