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2
“살짝 따끔할 수 있다?”
“막 명의거나 신의거나 하면 침을 놓은 줄도 모르고 그러지 않음? 닭에다가 침 막 꽂아서 돌아다니게 안 해?”
“구침지희? 와 그런 것두 알아? 그런데 침을 놓은 줄도 모르면 안 되지· 무슨 자객이게?”
그리고는 곧 어깨에 따끔· 따끄음· 따끄으음·
“이거 맞아? 좀 길게 아픈데·”
“어라· 왜 침이 안 들어가지?”
인류 최강의 육체는 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당난아가 당황한 기색으로 침을 꾹꾹 눌렀다·
“아니 무슨 근육이 돌덩이야? 왜 이게 안 들어가고 이익·”
“야 아프· 악· 아프잖아·”
“좀 참아 봐· 이익·”
본래 침을 놓을 때는 엄지와 중지로 침봉을 잡아 살살 누르고 돌리며 정확한 깊이로 찌르는 것이며 때로 뭉친 자리는 검지로 살살 두드려 넣는 것이다·
그러나 피부만 탄력 있게 파고들고 뚫지를 못하니 낑낑거리던 당난아가 마침내 장침을 고쳐잡았다·
침끝을 아래로 침봉을 온 주먹으로 감싸 쥐고 엄지로 그 끝을 단단히 막았다·
누가 보면 침이 아니라 단도나 얼음송곳을 든 줄 알겠다·
“야 호신경 안 빼니? 무슨 침을 호신기까지 둘러서 막구 그래?”
“어 잠깐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자 이제 됐뜨악!”
꽤 격렬한 통증과 함께 푸욱!
어깨로 침이 파고드는 느낌이 선연했다·
“앗·”
의사 선생님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의료 시술이건 수술이건 환자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방금 의원이 절대로 내선 안 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니 아니야· 아니거든·”
“잘못 들었나? 오 히야 신기하네· 통증이 확 줄어든 것 같은데?”
“어? 진짜? 그럴 리가 없는데?”
“···저기요? 의원님?”
“아니 그냥 좀· 깊이 찔러서 그래· 손가락 좀 움직여 볼래?”
“어? 음 안 움직이는데? 이게 정상이지?”
“아침에는 움직일 거야· 아마도· 그래도 아예 마비가 되었으니 침은 잘 들어가겠다· 자아 따끔·”
꾸욱 꾸우욱
격렬하게 누르는 듯한 촉감과 함께 당난아가 분한 목소리를 냈다·
“씨이 안 박히네···”
청이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역시 한의학 돌팔이들보다 과학적인 양의학 진료를 받았어야 하는데·
서양 의원이 없는 게 천추의 한이다 진짜·
다만 청이 또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으니·
이 시대의 서양 의학은 개별적 증상의 해결보다 더 근본적인 치료에 몰두했다·
고통의 근원은 어디인가?
바로 뇌! 뇌를 절제한다!
질병의 근원은 어디인가?
바로 직장! 직장을 절제한다! 등짝! 등짝을 보자!
거짓말 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보라·
양놈들은 치통으로 고생이 심했으며· 그래서 고귀한 귀족들의 주치의들은 아예 이가 아프기 전에 모든 이빨을 다 뽑아버리는 예방 의학을 심지어 존경하는 왕족들에게도 실천했던 것이다·
뭐? 소독? 도구와 손을 씻어?
그딴 건 정신 나간 결벽증 정신병자나 하는 일이 아니냐!
잠깐 뭐? 정신병? 뇌! 뇌를 절제한다!
참고로 이 시대의 양의학의 발전은 이랬다·
의사들이 꿈에서 본 광경을 서로 비교한 후 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의 것을 선택하여 지식으로 남기는 식이었다·
애초에 개념 자체가 달랐다·
한의학은 아픈 이를 치료하는 것이라 치료에 실패한 의원은 돌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양의학은 어차피 죽을 사람을 한 번 살려나 보는 시도에 가까웠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원래 죽을 사람이라 의사는 잘못이 없다·
어쩌다 환자가 살면 곧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으로 흉악한 도구가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니 청은 당난아에게 감사해야 했다 만·
“앗·”
“또 뭐야?”
“아냐 걱정하지 마· 아마 내일 점심쯤이면 팔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청이 또다시 생각했다·
그나마 한의사인 게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이젠 장점이 하나도 없게 생겼다고·
—-
중원인의 아침 식사는 간략한 편이다·
그래야 한다면 청은 기꺼이 중원인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거 어 푹 적셔서· 앙·”
청이 견포희가 내미는 만두를 아기새처럼 냠냠 받아먹었다·
홍소로 간단하게 볶은 야채라도 찢은 만두에 싸 먹으면 매콤새콤 참으로 맛난 것이다·
팔이 안 움직이는데 어떡해·
엄밀히 따지자면 부상보다는 당난아의 힘에 의존한 우악스러운 침술 때문이었다·
당난아의 입장에서야 침이 안 들어가는데 그럼 어쩌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청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유롭고 경쟁자도 없는 식사 자리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먹이는 쪽이 경쟁이었다·
청이 꿀꺽 삼키자마자 이번엔 당난아가 한 젓가락 크게 집어 내밀었다·
“잠깐 가지 가지 빼 줘·”
“뭐야 너· 가지 안 먹어? 편식하면 안 좋아·”
“튀긴 것만 좋아하는데? 그리고 이제 클 만큼 다 컸는데 골고루 먹어서 어디가 더 크려고· 야· 너· 또· 어딜 봐?”
“아니 크다고 하니까···”
그러고 있자니 제갈이현이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난아와는 다른 시선이었기에 청의 반응도 달랐다·
“왜 제갈이· 많이 먹는 사람 처음 봐? 내가 신기해?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신기하느냐고 물어보시면 신기하긴 합니다· 그런데 혹시 누님 팔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어쩌다 그리되신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 아냐· 밤중에 침을 잘못 맞아서 마비가 온 거야·”
주관식에 아니라고 답하는 것이 차마 너네 동생 놀려먹다 팔 할 짝 제대로 해먹었다고는 대답할 수 없었던 청이었다·
어쨌거나 거짓말은 안 했다·
“윽· 그 그래서 먹여주고 있잖아· 아니 너 뭐야 나는 기껏 너 생각해서···!”
“그건 고맙게 생각해· 음 또 맞아야 하나?”
“이제 좀 익숙해졌으니까···”
영 미덥지 못한 소리였다·
하지만 당난아의 말대로 신경을 써 준다고 한 것이 그리고 마비가 되었을 뿐이지 효과는 또 제대로 나온다고 하니 무어·
저녁까지는 다음 도시인 효감에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아침 식사 이후에는 일찌감치 제갈세가를 나섰다·
제갈향이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 통에 하루 더 놀다 갈까도 잠깐 고민해 보았지만·
“언니 언제 와요? 나 데리러 와 줄 거예요?”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원래 꼬맹이들이란 쉽게 정을 주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
귀엽다고 예뻐해 봐야 다 헛것인 것이다·
나중에 커서 보면 사내놈은 징그럽고 계집은 깍쟁이처럼 구니 사실 친해져 봐야 영양가라곤 없는 것이 꼬맹이들이다·
청이 대충 대답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예뻐지면 데리러 오마·”
“헤헤 기다리고 있을게요· 언니·”
일곱 살에 겨우 산책 한 번 같이 해준 어른 한 명이야 며칠이면 잊어먹고 나중에 누구냐고 물어보겠지 하고·
—-
제갈세가 마차 타고 가는 길은 편안하기 그지 없는 여행이었다·
마교의 흑단 마차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승차감을 제공하는 기관의 전문가 제갈가의 발명품이었으니까·
게다가 괜한 시비 걸릴 일도 없다·
시비는 커녕 제갈 자 딱 붙여놓은 마차 앞에 사람들이 기적처럼 길을 터 주는 것이다·
그렇게 편안하게 가도 따라서 북으로 쭉쭉 여행을 이어다가 마침내 하남성에 들어서 신양에 이르렀다·
신양은 큰 호수를 왼쪽 다리쯤에 끼고 있는 도시였는데 이 호수가 바로 남양호다·
그런데 남양은 서쪽으로 제법 멀리에 이웃한 동네의 이름이다·
“어째서 신양에 있는 호수가 남양호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과거 춘추전국시대의 신나라 시절에서부터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당시에는 말입니다···”
제갈이현이 갑자기 그에 대한 해설을 자동으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딱히 물어본 사람이 있지도 않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이후로 남양과 신양으로 분리된 것입니다· 아 남양 하니 제갈량 조상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장소라 또 각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군요· 또 과거 유현덕이 현령을 지내며 제갈량 조상님을 세 번 찾았으니 삼고초려의 고사가 바로 남양에서···”
주제가 자연스럽게 남양으로 이어지니 아마도 제갈량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
하긴 가문의 가장 위대한 조상님 자랑을 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냐마는·
그러나 남양은 옆 동네고 여기는 신양이다·
제갈세가 마차가 도시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일련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는데 인근의 정파 무관들이 서로 대접하고자 달려온 기특한 경쟁이었다·
청이 개중에 아는 얼굴을 보았다·
“아· 여기가 여기구나?”
어쩐지 눈에 익다 싶더니만·
“대정문의 왕 공자님 아니세요?”
대정문의 후계자 왕손석이었다·
왕손석 역시 청을 알아보았다·
청은 얼굴을 가린 상태였고 그렇기에 더욱 알아보기 쉬운 신체적 특징을 가졌기 때문에·
얼굴을 까고 있었으면 오히려 알아보지 못했을 터였다·
“아! 서문 소저시로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
으레 대답하려던 청이 멈칫했다·
여기서 복신적 줍고 돌아가서 그 해 겨울이 얼마나 춥고 혹독한 것이었던가·
그리고 나선 마교 새끼들이 아주 개새끼들·
새삼 생각하니 빡치는데 있다가 천마 소환좀 해다가 부수면서 기분이나 풀어야겠다·
“소저?”
“대충 지냈어요· 빈말로도 잘 지낸 건 아닌 것 같네····”
왕손석이 진땀을 흘렸다·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니 그냥 화제를 돌릴 수밖에는·
“그 아! 무림 대회에 참여하러 가시는 길이로군요? 오 여기 헌양하신 소협께서는 그 위명이 쟁쟁한 맹신·”
왕손석의 말이 딱 멎었다·
하필이면 맹신에서 멈췄으니 야수의 몸! 하고 끝나버린 모양새였지만·
전부 당난아 때문이었다·
청의 취급이 박해서 그렇지 당난아는 무림오화의 당당한 일원인 해어독화가 아니던가·
미적 기준이 남다른 제갈세가의 일원들이나 아름다우시군요 하고 하던 운동이나 계속하지 본래는 사내의 말문을 막는 이 반응이 정상인 것이다·
“뭐야 청아야 아는 사람이야?”
“예전에 잠깐 신세를··· 졌나? 생각해 보니 대정문 사람들이 나한테 신세를 진게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요?”
“마 맞습니다· 저희 대정문이 서문 소저께 큰 은혜를 입었지요· 그런데 이 진정으로 아름다우신 소저께서는····”
좀 무례할 수 있는 발언이었는데 사실 왕손석은 청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당장 빛나는 미인이 앞에 계시지 않나·
“당난아에요·”
“해어독화!”
청이 그 꼴을 보며 생각했다·
저러니까 나도 별호 하나쯤 갖고 싶네·
이름만 대면 자동으로 감탄사 발사잖아·
사실 청도 별호가 있기는 하다·
다만 딱히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월아신검이라 하는 대단한 별호가 있었다·
심지어 화산파 장문인 유하진인께서 하사한!
월아검이 아니라 월아‘신神’검이다·
이제 곧 공식적인 나이가 스무 살이라 우기게 될 어린 계집에게 신검이라니·
모두들 코웃음을 칠 거창한 별호이기도 했다·
사실 그래서 더욱 안 퍼졌다·
화산파 장문인이 노망이 났거나 혹은 여광견 눈치를 봐서 체통머리없이 어린 계집에게 금칠이나 해줬다고·
진심으로 믿지 않으니 퍼지지도 않는 것이다·
별호가 너무 거창하니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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