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4
확실히 검술 수련에는 남궁신재가 도움이 되는 것이 힘에 의존한다는 소리를 듣고서 가진 무공을 펼치며 정리를 해 보니 애초에 익힌 것들이 대부분 강공을 취했다·
월녀검은 모든 묘리의 총합 같은 느낌이라 넘어가더라도 나머지가 그랬다·
대부분의 마공들은 강공일 수밖에 없다·
짐승이 물어뜯는 야성을 기반으로 한 백팔수라검 적을 찢고 치는 소수마공과 깨는 흑살마장·
여래신장 역시 강공이었다·
불가의 무공은 본래가 직선과 파괴에 그 기반을 둔다· 죽이지는 않고 뼈와 근육을 박살내 제압하는 불살계 때문일 것이다·
청이 생각하기에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편이 더 자비롭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그러니 몸과 병기에 힘을 빼고서 흘리고 파고들며 흔들리는 부드러움이 무엇인지 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침 적당한 무공이 하나 있었으니 청이 무공창을 열어 무영신수에 수련점을 듬뿍 부었다·
그러고는 으레 새 무공을 익힐 때 그렇듯이 으그극 눈을 까뒤집고 바르작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눈가를 문질러댔다·
그와는 별개로 머릿속에 침입한 무영신수의 응용들은 퍽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이거 진짜로 도둑놈의 기술이었네···
무공의 운용 자체가 딱 그러했으니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수작을 부리는 은밀함이 그 중심으로 자리를 떡 잡았다·
검지에 인조 손톱 같은 날카로운 것을 붙여 몰래 행낭이나 옷 매듭 따위를 잘라내는 수법·
그렇게 낸 구멍으로 손을 넣어 물건을 빼내거나 혹은 집어넣거나 하는 방식이 딱 도둑놈이 쓸 수법이었다·
거기에 잠금장치 푸는 기공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애초에 무공을 만든 새끼가 참으로 불순한 목적으로 창안했구나 싶은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응용 무영신수의 초식으로 어떻게 나쁜짓을 할 수 있는지 아주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뿐이지 초식 자체는 붙들고 꺾고 비트는 금나수에 충실했으니까·
그리하여 청이 검으로 무영신수를 펼쳐 보았다·
“음? 검우?”
“하핫! 어떠냐!”
목검 둘이 부딪치며 톡 앙증맞은 소리가 났다·
이어 남궁신재의 목검을 따라 청의 목검이 죽 타고 내려가 흘렀다·
남궁신재가 이에 검을 돌려 바깥쪽으로 유도하니 청이 응수하며 두 목검이 붙은 채로 밀거니 당기거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세상에 검우! 괄목상대 일취월장이라더니 하루 만에 이리 깨우칠 줄이야!”
“내가 좀 대단하지· 더 칭찬해 줄래?”
남궁신재가 손목을 돌려 청의 목검을 바깥쪽 검면으로 돌려낸 후 돌연 일자로 쿡 찔러 들어왔다·
청이 그에 양발을 일 자로 정렬해 비스듬히 비켜서고는 술잔처럼 곧게 쥔 목검을 내밀어 바깥으로 찌르기를 흘렸냈다·
이어 붙이고 타고 밀고 흘려내고·
둘의 목검이 붙어서 부딪치는 일이 드물고 모처럼 부딪치더라도 톡톡 앙증맞게 두들기는 소리나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렇게 오십여 합 남궁신재가 손바닥을 들어보이고는 뒷걸음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후우· 유검은 역시 좀 지친다네· 그런데 어째 부드러움을 취하더니만 공세에 취약해지고 말았나? 영 호신에만 중점을 주어 밀고 붙이기만 능숙하니 영 승부가 나질 않는단 말일세·”
“음 어제 부드러움이 어쩌구 하길래 금나수를 검으로 좀 펼쳐 봤거든· 그런데 음· 금나수는 찌르고 베는 수법은 아니잖아·”
금나수는 본래 손아귀로 낚아채 묶고 꺾고 밀쳐 넘어뜨리는 수법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검으로 펼치는 무공도 아니다·
그러니 관절 하나 더 붙였다는 느낌으로 어찌 펼쳐서 목검이 상하지 않도록 밀거나 당기거나 할 수는 있어도 딱 그뿐이었다·
해봐야 검날 타고 쭉 들어가 쥔 손가락을 치는 정도인데 남궁신재가 워낙 능숙하니 절대로 각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음· 그러면 본래 쓰던 검법에 방금 수법들을 좀 응용하면 될 것이 아닌가·”
“이게 되나 안 되나 한번 해 봤어· 음· 이젠 그런 쪽을 좀 연습해 보려고·”
방금은 아예 손이 아니라 검으로 펼쳤으니 나름 스스로 꿰어 붙여 본 시도였다·
충분히 먹힌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검술에도 접목해 볼 차례였다·
하지만 따악!
“악!”
“이런! 괜찮나!?”
“이 정도야 뭐· 내가 워낙에 몸이 튼튼해서 겨우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청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다만 말과는 달리 오랜만에 아주 제대로 일격을 허용한 것이다·
진검이었다면 팔 한 짝을 해 먹었을 아주 뼈아픈 패배였다·
청의 갑자기 어설퍼진 검술 때문이었다·
아예 모르는 것이야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머리와 몸에 버릇처럼 각인이 된 초식을 비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청의 자의가 끼어들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휘적거림이 되고 말았으니 청이 제 의지로 검을 움직이는 순간 아주 온 전신이 전부 허점이었다·
“음· 이상하군· 검우· 갑자기 어쩔 줄을 모르지 않나? 마치 실전을 처음 해 보는 사람처럼 굴고 있다네·”
“음· 그게 무슨 뜻이야?”
“대련이나 비무 없이 그저 혼자서 휘두르며 완벽한 형태의 초식만 완성해 낸 사람이 처음으로 실전에서 꺼내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청이 쓰는 초식들은 무공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완성되었을 때의 형태를 취했다·
청의 심상이 아니라 무공의 종주가 취한 심상을 그저 머리에 담아두고 꺼내 쓰는 방식이었다·
다만 아주 세세한 단편으로 쪼개서 쓸 수 있었으니 초식의 해체라고 평가하는 달인의 경지와 비슷한 숙련도를 가지기는 했다·
하지만 꺼내 쓰는 것이 아니라 변형해서 쓰려니 사이비로 배운 무공의 한계가 곧장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음· 검우· 실은 내가 초식까지는 기가 막히게 외우는데 응용은 전혀 안 되거든·”
“검술을 암기해서 썼단 말인가? 기이하기 짝이 없지만 음·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얼추 이해가 가기도 하네·”
남궁신재가 청을 상대할 때는 항상 다른 검객 셋이 번갈아 나타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월녀검을 펼칠 때는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신녀검결을 펼칠 때는 대장부와 같은 호연지기로 세상에 서고자 하는 당당함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뒤가 없이 뼈를 주고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드는 아주 지독한 살기를 가진 이름 모를 검술이 하나·
이에 대해 본인이 밝히려 들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세간에서 백안시하는 살검 중 하나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지금까지야 존경스러운 검우가 검술마다 그 요체를 정확히 읽어내 종주의 심상으로 펼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외워서 펼쳤다고 하니 그 오성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뛰어난 뇌력이 기예의 발전에는 외려 방해가 된다고 해야 할지·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결국-
“검우 자네 기예로는 재작년 화산 갈 때에 그 상태에서 전혀 나아가지 못했군?”
“음 혹시 실망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하다네· 결국 신체와 내공의 힘으로 찍어누르는 묘한 버릇만 들었을 뿐이지 검객으로서는 오히려 퇴보했다 말할 것이 아닌가· 대체 그간 수련을 어찌 해왔길래 그리되었나?”
그에 청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음 이제라도 좀 제대로 해 보려고· 그 검우한테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대련 좀 계속 부탁해도 될까···?”
“이를 말인가! 검우가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길에 들었으니 오히려 기뻐하고 축하하고 싶은 심정이라네!”
남궁신재가 이를 드러냈다·
청이 화답하듯 같은 미소를 내보였다·
—-
남궁신재는 아예 무천관 객실에 하나 짐을 풀었으니 아침부터 대련 점심 먹고는 팽대산과 팽초려 남매가 찾아와서 또다시 대련이었다·
남궁신재가 반검 소리를 하다 팽초려에게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한 사소한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저녁을 먹고는 종일 무료하게 구경하던 당난아와 시간을 보냈다·
당난아는 어차피 잠룡비무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귀하는 칠보단혹독에 중독되었으니 여섯 걸음 내에 항복을 외치시지 않으면 화타가 와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일단 하독하고 이런 소리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무슨 독을 쓰겠다고 말을 하면 그게 무슨 비무의 의미가 있겠는가·
청이 수련하는 동안 저 나름대로 암기를 막 던지고 간혹 약재를 달이거나 뭘 묻고 굽고 태우는 등 독을 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해도 딱 보면 아 심심하구나 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그렇게 밤엔 좀 놀러 다니다 씻고 침상에 든 참이었다·
“내가 못 살아! 이게 뭐야!”
“음· 노력의 흔적?”
“대련이고 뭐고 적당히 해야지! 애초에 오늘 좀 계속 얻어맞는다고 했어· 그럼 좀 살살 해달라고 하던가 왜 이 지경까지 아무 말도 안 했어?”
여기저기 피멍이 든 청의 살결에 당난아가 버럭 화를 냈다·
“그야 살살 해봐야 별 도움도 안 되고· 그리고 어차피 멍이나 좀 들지 뼈나 근육이 상할 것도 아니니까·”
“내가 의원이지 니가 의원이야? 봐바·”
진맥을 본 당난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 근데 또 멀쩡하긴 하고·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뚱이가· 그래도 그래· 암만 멀쩡하다 해도 여인이 몸에 색을 칠하도록 얻어맞고 있으면 어떡해? 무슨 수련을 이렇게 미련하게 하냔 말야·”
“지금 흘린 땀방울이 미래의 핏방울을 아끼는 법이지·”
“말은 아주 청산유수지· 게다가 너 신녀문에서도 이렇게 수련하지는 음· 수련을· 했나?”
당난아가 잠깐 헷갈렸다·
생각해 보니 신녀문에서 그 해괴한 꼴을 하고서는 수련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수련을 열심히 하겠다는데 뭐라 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은데·
“됐어· 자자·”
“뭐지? 뭔가 이상한데···”
당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긴 한데· 뭐지?
—-
청이 신녀문에서 한 수련들 주로 서문수린과의 대련은 항상 실전에 염두를 둔 훈련이었다·
덕분에 누구보다 능숙하게 초식을 꺼내서 쓰니 가진 것을 제대로 꺼내 쓰는 데에 그 중점을 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진 것을 아예 제 것으로 녹여내는데에 중점을 둔 대련이었다·
남궁신재에 팽씨네 남매 거기에 공손요예까지 합류해 닷새쯤 얻어맞으며 대련을 이어가다 보니 열 번 싸워 열 번을 지던 대련이 열에 한 번은 이길 정도가 되더라·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한 명·
“대모의 제자라· 독하구나· 아주 독해·”
천하의 도둑놈 새끼라 불리는 사내 신투가 혀를 내둘렀다·
추종향이 둘로 갈라져 약한 쪽과 강한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당연히 강한 쪽을 찾았다가 정작 찾던 복신적은 허탕이었다·
다만 설가 상회라고 하는 이상하게 고수가 많고 금전의 유동량도 심상치 않은 묘한 집단을 발견하기는 했다·
수상해서 파 보았다가 마교의 비밀 지부를 알아내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딱히 신투의 관심사가 아니기는 했다·
애초에 마교가 중원에 상단을 박아두고 돈을 빼간다는 사실이야 다들 짐작하는 비밀이기도 했으니 개중에 하나 알아냈다고 해서 딱히 어디다 써먹을 용도도 없고·
그리하여 개봉으로 돌아와 거의 사라지기 직전의 추종향을 추적하다보니 무림맹 무천각 귀빈 객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때를 노리며 기웃거리다가· 청이 무영신수를 검으로 펼쳐내는 모습을 딱 목격하고 말았으니·
“저 저게 저 계집이 그때 비급을 제대로 읽었구나! 아주 제대로 모른 척을 하고 있었어! 허어 천하의 신투가 아주 까맣게 속고 말았구나!”
조금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무공을 도둑맞았다는 점에서는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니 복신적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대 모든 신투들이 가장 어려워하던 그 숙명 그렇게 찾아다니던 후계자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신투의 물건을 훔쳤으니 마땅히 신투의 이름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아보고 나니 이런·
이미 스승이 있어 바로 그 대모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것 같으면 신투의 이름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다·
신투는 포기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신투가 생각했다·
세상 모든 것을 훔칠 수 있는 큰 도둑이 남의 제자라고 훔치지 못할까·
오히려 여중제일인의 기명제자라면 신투의 이름을 떨칠 기회가 아니겠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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