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찾았냐?”
“못 찾았습니다”
“왜?”
“비가 와서 흔적이···”
“그건 나도 아는데· 왜?”
“손속이 잔인한 년입니다· 머리 없는 단원들만 스물이 넘어갑니다·”
“나도 봤어· 그런데 왜?”
“신호가 오지 않은 지역에서 시체가 나오는 건 은신을 알아채고 피리를 불기도 전에···”
“그 정도 생각은 나도 해· 왜 못 찾았냐고·”
“····”
흑살이 애꿎은 바닥의 돌을 노려보았다·
예비 천살 정확히는 천살 아들이 흑살의 뺨을 툭툭 쳤다·
“야· 제대로 해· 황금이 오백 관이야·”
“····”
“오백 관짜리 임무에 실패하면 내가 우리 단주님 얼굴을 어떻게 봐? 내가 뭐라고 해야겠어? 아 단주님 천라지망을 펼쳤는데 목표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이럴까?”
천살 아들이 흑살의 뺨을 계속 쳤다·
“아니지· 내가 가서 말하는데 단주님 애새끼들이 완전 빠져가지고는 개똥만큼도 못 쓰겠다고· 신호도 못 울리고 은신도 못 해· 흑살단이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단주 바뀌고 나선 완전 쓰레기 폐급이 되고· 고작 계집 하나 잡지도 못해서 황금 오백 관 날리고 단원은 우수수 죽어나가는데·”
단주님 대체 아드님을 어떻게 키우신 겁니까·
흑살이 속으로 한탄을 삼켰다·
나이 쉰 넘어 겨우 얻은 외아들이 소중하다면 그 전에 사람을 만드셨어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손을 맞잡고 간곡하게 부탁하던 천살의 그를 거둬주었던 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애가 저래도 심성은 곧은 아이야· 지금은 단지 어미 잃고 잠깐 방황하는 것뿐이지· 내 부탁 좀 함세· 이번 일만 성사시키면 후계가 어쩌고 하는 말도 잦아들지 않겠나· 내 진짜 부탁함세·’
흑살이 울분을 꾹 삼켰다·
사랑하는 대부를 위해서·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후계로 정해지면 그때는 아예 업계를 뜨는 거다·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흑살이 직접 가· 여기서 놀지 말고 직접 발로 뛰란 말야· 나잇살 처먹었다고 궁둥짝 뭉개고 있으면 뭐 할 건데?”
—-
함정· 매복· 신호·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손해만 본다·
그럼 움직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아청이 구덩이의 머리 높이쯤에 굴을 팠다·
내기를 두른 손아귀가 흙벽을 찰흙 떼어내듯 팍팍 퍼냈다·
문득 어떤 추억이 되살아났다·
와· 진지공사 할 때 무공이 있었으면 진짜로 대대 대대가 뭐야 사단 넘어서 국군 최고 에이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굴삭기 있는데 한 사람 손이 뭐라고·
그래도 삽에다가 삽기 둘렀으면 땅이고 돌이고 나무뿌리고 그냥 팍팍 퍼냈을 텐데·
그렇게 작은 땅굴 하나를 팠다·
흙은 발로 밀어 대충 입구에 쌓아놓았다·
숨구멍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문제는 진장명의 상태였다·
안 그래도 차가운 몸을 부들부들 떤다·
빛 한 점 없이 깜깜한 땅굴 속이지만 입술이 파랗게 질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청이 진장명을 꽉 끌어안았다·
사실 아청도 추웠다·
체력은 빠지도 구르고 깨지고 젖은 몸에 차가운 아이를 안고 있으니 진짜 추워 뒈질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느끼기에 차가우면 애가 느끼기엔 뜨겁지 않을까?
다행으로 점차 진장명의 떨림이 멎었다·
진장명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쌕쌕 살짝 긁히는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가 기흉이라도 있나?
아청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긴장이 풀린 듯 오만 아픔이 밀려든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처럼 느껴졌다·
깨어있는지 아닌지 어차피 눈을 감으나 뜨나 깜깜해서 구분도 안 되고·
잠깐잠깐 정신이 들면 내가 졸았나 싶은 정도·
그러다 문득 작은 속삭임이 스몄다·
“···왜 이렇게까지 해?”
“뭐임마·”
“그냥 버리고 가도 됐잖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뭘 몰라?”
“그냥 들고 튀면 쫓아올 줄이나 알았지· 이렇게 함정 쫙 깔아두고 치사하게 굴 줄 알았냐· 씨발 놈들 내가 가만 안 둔다· 나가기만 하면 내가”
“알았으면?”
“앙?”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알았으면 그냥 두고 왔을껄? 그러니까 아가는 괜히 미안하거나 할 필요 없어요· 내가 멍청해서 이 꼴인데·”
“····”
목소리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물었다·
“지금이라도 날 넘기면 되잖아·”
“이제 와서?”
아청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너네 사람들 좀 쳐죽이긴 했는데 전부 다 먹고 살자고 한 짓이니 좀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하면 참도 좋아하겠다·”
“하지만·”
“이제 넌 인질이야· 수틀리면 니목에 칼 들이대고 아 내 월광검·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어쨌든 이 동네 강이 있다던데? 배 하나 내놓으라 하고 너 주고 도망칠 거다·”
“···”
아이가 한참 후에 다시 말했다·
“장강·”
“으잉?”
“장강이래· 세상에서 제일 긴 강이라고 그랬어·”
뒤늦게 엄마가 하고 진장명이 덧붙였다·
“웃기시네· 제일 긴 강은 나일강이거든·”
“나일강?”
“근데 나일강이 진짜 있을까? 여기에도? 내가 아는 것들이 진짜로 있기는 할까? 그 소금 호수 죽기 전에 가보고 싶었는데····”
“···뭐래는 거야·”
아이가 또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그거 아까 하지 않았었냐?”
“죽는 거 안 무서워?”
아청이 딴소리를 했다·
“꼬맹아· 니가 자다가 눈을 뜨니까 개쩌는 미남이 되어 있는 거야·”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다고 쳐· 꿈이라고 치자· 그런데 꿈에서 안 깨· 있으면 배가 고프고 먹으면 졸리고 맞으면 아파· 그럼 이게 꿈이 맞나?”
“···그러면 꿈이 아니잖아·”
“그런데 상태창 아니· 어··· 그래 유령 같은 게 막 따라다녀· 따라다니면서 계속 말하는 거야·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여기는 꿈속 세상이다·”
“그럼 꿈이 맞는 거야?”
“그걸 모르겠다· 그게 문제야·”
아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매번 잠자리에 들 때면 안락했던 원룸 안에서 눈을 뜨는 상상을 한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생산직 근로자가 부스스 깨어나서 모니터 앞에 막 생성된 내 캐릭터를 보고 피식 웃음을 짓는다·
찝찝한 마음에 게임을 지울 수도 있고 아니면 뭐 대수냐 하고 그대로 즐길 수도 있겠지·
갑자기 왔으니 갑자기 돌아가게 되더라도 뭐·
그래서 아청은 막 살았다·
내키는 대로 살고 내키는 대로 말했다·
왜냐하면 언제 떠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내가 여기서 눈치를 볼 이유가 있나?
그러니 아청은 참지 않았다·
돈을 모을 이유도 없었다·
아득바득 모아서 집 사고 황금 가득 쌓아놓으면 뭐 해· 돌아가면 다 없어지는 것 아닌가·
물론 이 세상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아청이 세상을 꿈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 빌어먹을 상태창만 없었다면·
상태창은 언제나 아청이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고·
네가 게임 캐릭터임을 잊지 말라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그냥 죽어?
게임 오버 뜨고 리트라이가 될까?
아니면 모니터 앞으로 되돌아갈까?
이유 없이 끌려온 세상이라면 이유 없이 쫓겨나도 이상이 없다·
이유가 있어서 끌려왔다면?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어떤 목적으로 날 이리로 처박았다면·
그러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목적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된다면·
그럼 나는?
“···괜찮아?”
아청이 불안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지금은 발작하며 지랄을 떨 때가 아니었다·
“그럼· 당연· 괜춘·”
“괜찮은 거 맞지?”
“쪼매난 게 누굴 걱정해?”
아청이 애써 웃어보였다·
어차피 깜깜해 보이지도 않겠지만·
결국 문제는 사람이었다·
먹고 자고 싸기만 해서 사는 삶이 사람인가?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살았다·
너무 외로워서·
외로움은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친구를 사귀고 또 결국은 이방인이라서 훌쩍 떠났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선업을 쌓고 착한 플레이를 하고·
그리고 또 이렇게 오지랖을 펼치고·
“저기·”
“왜·”
“그런데 나는 왜 데려왔어?”
“내 맴이다· 왜·”
“이유가 있는 거 아니야?”
“그야· 누구 한 명 고르라면 죄 없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으니까·”
그냥 그래서였다·
어차피 한 명 고르라 하면 죄 없는 사람 편을 들어줘야지·
사기꾼이나 아동성범죄자나 거기서 거기지·
“순음지체인지 뭔지· 우리 꼬맹이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나는 순음지체가 될 거에요 순음 펀치! 순음 펀치! 하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게임 좀 한 게 죄야? 여캐를 만든 게 죄인가?
그냥 이렇게 되었는데 나도 뭐 어쩔 수 있었나·
“하지만· 엄마가· 아빠도····”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니네 엄마는 사기꾼이거든? 사실 황금 일천 관이면 사기꾼 중에서도 아주 큰 사기꾼 아니냐 솔직히·”
“하지만 엄마 아빠는 날 위해서·”
“니가 해달라고 했어? 엄마 날 위해서 사기를 좀 쳐주세요· 안그러면 엄마 딸 죽어버려요? 막 이러지는 않았잖아· 근데 니가 무슨 죄가 있어· 없지· 무죄· 땅땅땅· 반박은 안 받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연팔이 해도 결국 아동성범죄자에 미성년자 약취 및 어쩌구로 아주 현행범이에요· 아주 천하에 몹쓸 새끼들· 엿이나 드시라 그래·”
아청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장명이 아청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렸다·
“정말 그래두 될까?”
“응·”
“정말?”
“어·”
“정말정말?”
“오야·”
“정말정말정말?”
아청이 문득 드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 너 열여섯이잖아· 뭐야 그건· 귀여운 척? 너 은근 꼬맹이인거 즐기는 거 아니냐?”
“···뭐래· 못생긴 게·”
“내가 굳이 말로 하진 않았었거든?”
아청이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실 너도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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