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5
청이 약탕으로 닿는 계단을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용암을 눈으로 보면 이런 느낌인가 싶어 아찔하기까지 하다·
조심스레 발을 대어본 청이 질색했다·
뭐야 이거 왜 단단한데?
“이거 뭐가 이래요!? 단단한데요!”
-그 위에서 뛸 수도 있다· 신기하지? 몇 번 뛰다가 가만히 서면 천천히 잠길 거다·
청이 그 말대로 욕탕에 찬 약탕 위에서 콩콩 뛰어보았다· 발바닥에 끈적하게 닿는 느낌이 영 불쾌하고 제자리뛰기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바가 있어서 몇 번 뛰다 말았다·
그리하여 약탕 위에 서 있으니 서서히 몸이 잠긴다·
청이 엄지를 세운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아쉽게도 수위는 배꼽 근처에서 딱 멈추고 말았기에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 또 저항감 있는 액체에 겨우 상체를 낮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니 액체의 수위가 딱 목젖 아래에 닿았다·
그리고 그 안에 몸을 담근 심정이란·
“아으· 기분 드럽네···”
-크크 그렇지?
물처럼 찰랑한 것이 아니라 거의 고체처럼 찐득한 액체라서 그 위에서 콩콩 제자리 뛰기가 가능할 정도가 아니던가·
몸에 엉기며 달라붙는 것이 풀을 온몸에 바른 듯이 끈적하고 질척해 소름이 끼치며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냄새가 수면이 바로 코 아래에 있으니 시큼한 썩은 내가 푹 삭은 홍어의 그것처럼 통증으로 머리를 후벼판다·
“으엑 이거 이거 뭘 넣은 거예요! 윽·”
-안 듣는 게 좋을 거다· 알고 나면 다신 거기 못 들어가· 이렇게만 알고 있어·
안 듣느니만 못한 끔찍한 소리였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알고 나면 다시는 못 들어간다느니 엄포를 놓는단 말인가·
듣고 나니 새삼 끔찍하고 불결해서 잠긴 전신에 수만마리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좀 끔찍하지? 익숙해지면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더라·
“스승님도 들어가셨던 거 아니에요? 왜 하더라에요?”
-그야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약탕의 이름부터가 시약궁창이다· 크흠· 이제 운기를 하면 된다· 각성신공을 운기하는 것이 가장 좋고 나중에 네 후인이 본래 배운 내가 공부가 있다면 그냥 가진 것을 운기하게 하면 될 것이다· 다만 각성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기간을 두 배로 늘리면 되는데 음· 이 부분은 후에 설명하고·
“지금 각성신공을 운용하면 되는 거죠?”
-그래·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 들 텐데 약효가 흡수되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 이거 기분 탓이 아니었네요···”
아닌 게 아니라 전신 피부가 근질근질하니 콕콕 찌르는 것도 같고 깃털 끝으로 살살 문지르는 것도 같다· 그런가 하면 매운 고추를 바른 듯이 화끈거리는 것도 같고·
그게 온 전신이 동시에 그러하니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몸이 안 움직인다·
모래 늪에 잠긴 사람처럼 아예 꼼짝달싹할 수 없으니 괴력을 가진 청조차도 아주아주 미세한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아예 힘을 쓰면 못 빠져나갈 것도 아니라서 청이 억지로 꾹 참고 각성신공의 진기를 혈도로 힘차게 밀어넣었다·
그러자 그나마 가려움이 잦아들었다·
약기운이 진기의 운용을 따라 전신으로 스미는데 온 피부가 불타는 느낌으로 뜨겁게 아려오는 탓에 간지러움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였다·
운기 중이라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않았다면 끄아악 앓는 소리가 새었을 것이다·
-헹· 이제부터 고생깨나 할 것이다· 원래 사람이 몸이 괴로우면 시간도 안 가니까· 아픔이 가시면 간지럽고 간지러움이 버틸 만하다 싶으면 다시 아플 거거든· 앞으로 두 시진을 일년처럼 버텨 보거라·
이 와중에서도 놀리기를 멈추지 않는 천유학이었다·
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씨 사람이 힘들어 죽겠는데·
아오 맵고 시리고 아리고 뜨거워·
이게 아예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아예 막 엄청난 고통이거나 하지 않은 점이 정말로 악질이었다·
버티려면야 얼마든지 버틸 만한데 살살 신경을 긁으면서 연신 툭툭 건드리는 듯한·
그리고 간지러움 역시 막 웃음이 터지거나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 정도는 아니고 마치 살살 재채기가 나올 듯 말 듯한 느낌으로 약만 올려대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계속 툭툭 건드리며 운기조식의 집중을 방해하고 안 가는 시간을 상기시켰다·
청의 경험상으로는 마치 배가 살살 신경이 쓰이도록 아픈 상태에서 재미없기로 악명 높은 네 시간 짜리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결국 천유학이 말한 대로 정말로 일년과 같이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천유학도 본인이 겪은 경험자라서 느꼈던 감상 그대로 늘어놓았으니 다를 리가 있나·
그러고 나니 와씨 깜짝이야·
“스승님? 이거 왜 이래요? 손이 뭐야?”
-왜 몸이 퉁퉁 뿔었냐? 그야 약탕에 있던 약기를 홀라당 처먹었으니 당연히 몸이 뿔지· 오늘 내로 본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걱정은 말고·
청이 제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의 두께가 두 배로 불었으니 만져보니 퉁퉁하니 물렁물렁한 물살이 붙었다·
손가락만 아니라 손바닥도 퉁퉁해 무슨 곰 발바닥 같은 꼴이다· 혹시나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 세상에 뭐야· 이게· 이게 무슨· 뭔·
실제로 한민족이 이 꼴을 보았다면 바퀴 만드는 양놈 기업의 홍보용 인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목 아래는 그러한데 얼굴만 미인이라 더욱 기괴한 꼴이기도 하고·
그러나 거울이 없는 탓에 청은 몰랐다·
어차피 오늘 내로 본래대로 돌아온다고 하니 털털한 청이 금세 털어버리고는 약탕의 상태에 관심을 가졌다·
“스승님? 탕이 원래 이렇게 돼요?”
-크크 썩은 물이 나와서 놀랐냐? 원래 시약궁창이 약성은 들어가고 악성은 나오니 끝나면 구정물이거든·
“오잉·”
청이 몸을 담근 탕을 내려다보았다·
끈적하고 질척하며 코를 후벼파는 악취까지 최악이던 약탕이 어느새 희뿌연 곰탕처럼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정도면 구정물까진 아닌데요···”
-크크· 네 몸에서 나왔으니 네가 봐서는 더러운 줄 모르겠지· 깨끗이 씻고 의복을 정제하고 불러라·
계속 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라는 것도 좀 그렇다·
청이 한쪽에 마련된 깨끗한 물로 몸을 씻고 옷을 꿰어 입었다·
어쩐지 품이 넉넉하게 엄청 큰 옷을 입고 오라 하더니 다 이런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천유학이 욕탕으로 들어 약탕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어디 제자 몸이 얼마나 썩었나 좀 볼 음? 뭐야? 색이 왜 이래?”
“뭔가 잘못된 건가요?”
“아니· 약이란 게 너무 강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니냐· 약성이 다 들어갔다가 과한 부분이 빠져나오면서 몸 안의 탁기도 같이 녹아나는 건데·”
청의 체질으로 만독이 무효였으니 약성은 약성대로 죄다 빨아먹고 독성은 중화하니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청 역시 체질을 직접 고른 터라 정확한 작용까지는 몰라도 대충 그 비슷하게 생각했으니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했다·
“탁기가 없었나 봐요·”
“헹· 네가 무슨 환골탈태라도 했냐? 왜 탁기가 없어? 사람이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못 들으셨어요? 저 환골탈태 이미 했는데요· 작년에요·”
“아· 그러냐· 그래도 이상한데· 탁기는 뭐 그렇다 쳐도 그만한 약성을 사람이 몸이 한 번에 다 받을 수도 없는데····”
지금까지 역대 신투 중 입문도 전에 환골탈태를 이룬 사람이 없었으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는·
“후아· 힘들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요?”
“약탕을 죄다 빨아먹고도 배가 고프냐? 밥은 무슨· 약성이 괜히 소화되어 똥 되기 전에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야지·”
그러자 청의 표정이란·
처연한 슬픔과 경악스러운 배신감이 반반으로 어찌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본격적이라뇨 그게 대체 무슨 그러면 지금까지 한 건···”
“준비 과정이지· 약성을 몸에 두른 채로 관절을 꺾는 것이 핵심이지· 이제 드디어 이걸 쓸 때가 왔구나·”
천유학이 저 구석에서 무언가를 질질 끌어 가져오는데 아무리 봐도 수련 도구라기보다는 고문 기구에 가까운 꼴이다·
죄인을 묶는 형틀 비슷한 것도 같고·
다만 관절부마다 기괴하게 장치가 붙어 있으니 딱 봐도 정상적인 물건은 아니다·
“어··· 스승님?”
“이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냐? 외공 수련은 넷 중 여럿의 조합이라고· 혹사 고문 독 약·”
그에 청이 손가락으로 기구를 가리켰다·
천유학이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둘의 조합이지· 혹사· 고문·”
“음 생각해보니 굳이 튼튼한 몸 놔두고 관절까지 유연해야 할까요···?”
그러자 천유학이 인자하게 웃어보였다·
“농담이다 이것아· 생긴 게 흉악해서 그렇지 그렇게 흉악한 물건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수련도 아니니 그렇게 겁을 집어먹지 않아도 된단다·”
“뭐예요 놀랐잖아요·”
청이 안도하며 형틀에 몸을 뉘였다·
천유학이 뭔 계집이 이리 키가 크냐면서 이리저리 돌리고 조이고 뽑고 끼우며 형틀을 조정을 하나 싶더니만 이내 철컥철컥 전신을 거의 뒤덮듯 철제 고리가 채워졌다·
“스승님? 너무 쪼여서 아파요·”
“약성 때문에 살이 부어서 그래· 약성이 빠지면서 딱 맞게 들어갈 거다·”
“좀 많이 아픈데····”
“괜찮다· 어차피 그 정도 아픔이야 이제 별것도 아닐 테니까·”
“···?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자· 아 하거라· 이를 악물다 이빨이 상할 수도 있거든·”
천유학이 그리 말하며 재갈을 내밀었다·
청이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스승님? 흉악한 물건이 아니라고 하읍!”
천유학은 신투고 청이 ‘하’하고 입을 벌리는 순간 재갈을 딱 채우는 일 쯤 신투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것도 농담이었다· 멍청한 것· 딱 보면 모르냐? 아주 사람 제대로 조져놓게 생겼잖냐· 아주 순진해 빠져가지고는 험난한 강호를 도대체 어떻게 헤쳐나가려고·”
“읍 읍···!”
“미안하다· 다 당한 만큼 돌려주는 거지· 네가 좋은 말 하지 않았냐· 증오의 대물림이라고· 정 꼬우면 너도 제자에게 물려주면 되지·”
“으읍! 읍···!”
“기절해도 깨울 터이니 괜히 스승만 번거롭게 만들지 말고 제정신을 유지해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버텨야 약성이 몰리거든·”
약성으로 몸이 불어난 상태에서 관절을 반대로 무리하게 꺾는 것이 유류연련 외공 수련의 진정한 실체였다·
약성이 이미 몸에 가득하기 때문에 관절이 상하는 즉시 회복되며 조금씩 가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관절을 억지로 꺾어대면 그 고통이 보통이 아니다· 아예 불구에 가까워지는 고통으로만 약성이 격렬하게 반응하기에 마취나 기절도 안 된다·
그런 고통 앞에서는 당연히 스승이고 부모고 눈에 뵈는 것이 없을 수밖에는·
마구 몸부림을 치며 사방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니 그를 위해 특제로 만들어진 강철 형틀이었던 것이다·
“한 시진 정도만 참아· 아픈만큼 성취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참을 만할 거다·”
그에 천유학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니 사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나는 못 참고 눈물 콧물 짜면서 꼴사납게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지 뭐냐· 뭐 괜찮아· 안 죽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롤드컵 재밌당·· 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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