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9
천유학이 말하기로는 아침에 일어나면 천지의 흐름을 느끼는 경이로움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느낌인가 알 수 없는 소리였는데 직접 겪어보니 오오·
손끝과 같은 예리한 감각이 전신의 모든 피부로 확장되는 것이 각성신공의 진정한 공능이었던 것·
청이 손을 휘저으니 공기가 살결을 따라 갈라지는 흐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어 바퀴 방 안을 돌아다녀보니 천지의 흐름을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명확하게 체감이 된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기분이 이러한가 싶기도 하고·
청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인기척을 낸 통에 공손요예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서문 소저···? 일어나셨나요?”
“예도 잘 잤어? 개최식에 갈 거지?”
“그 개최식에는 가문으로 참석해야 해서 서문 소저에게는 좀 미안아니정말로죄송하고송구스럽지만같이갈수가없어서저도마음만은간절-”
“에이· 가족이 먼저지· 그럼 예는 먼저 출발하고· 나는 아침 간단히 먹고 천천히 가 보려고·”
청이 또 고장나려는 공손요예에게 괜찮다 위로하며 웃어주고는 옷을 꿰어입었다·
검수 훈련도 많이 익숙해졌다·
무천각 시비들이 개어둔 속옷을 꿰고 자신감이 붙은 청이 신녀문 도복까지 칼 들고 신중하게 차려입었다·
오늘은 공식 행사라서 신녀문 도복이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만전이었다·
어제 영약을 좀 많이 빨아먹어서 그런가? 몸이 엄청 개운하고 가벼운 것이 요즈음에 이리 상쾌한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식사하러 가는 길에 사르락 사르락 피부에 도복의 비단 안감이 스치는 기분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르락 사르락 피부에 스치는 보드라움 괜히 비단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양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마치 세상 편안한 침구를 몸에 휘감은 촉감과 같았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바로 그 감촉을 즐기며 돌아다니니 그야말로 한 걸음걸음 피부가 스칠 때마다 극락···
음·
청의 경쾌한 보폭이 슬그머니 좁아졌다·
힘차게 흔들던 팔도 조신하게 붙었으니 갑자기 서문수린류 수줍은 미인행의 보법이 등장한 것이다·
기분이 좋은데 좋기는 한데 이거 좀 너무 뭐랄까 야릇한 그냥 좀 걸어다녔을 뿐인데 이러면·
면사 안쪽으로 청이 울상을 지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난 거 아닌가···
—-
각성신공 무림대회고 나발이고 청이 일단 급히 긴급조치를 취했다·
몸에 스치는 옷감이 잠깐이야 괜찮아도 자극이 누적되니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극을 줄이기 위해 비단 토시로 팔다리를 둘둘 싸매고 폭이 넓은 요대로 배를 단단히 감아 옷을 몸에 딱 붙인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으니 무림대회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무림맹주 조현량이
정파가 어쩌구 의기가 저째 뭐라뭐라 한참 떠들고 있는 중이다·
청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무림맹 무사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신녀문 좌석이 어디쯤이라고 미리 듣기는 했으나 대회장이 워낙 넓으니 자리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무림대화장은 개봉시의 중심 개봉부 앞대운하에 마련되었다·
중원 전역으로 뻗어 천하 삼대 강에 전부 닿는 운하인 만큼 중원 천하 모든 물길과 통하는 시작점이 그에 알맞은 웅대한 규모를 갖췄다·
무림대회 회장은 그 위에 뗏목을 띄우고 바닥을 붙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살살 눈치 보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안쪽으로 이번엔 민망하게 좌석들 헤치고 나아가 마침내 신녀문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앗· 사부님· 와 계셨네요? 무림대회에 참가하시는 거예요?”
“이제 오느냐? 미리미리 다니지 않고· 내 이러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헤헤····”
사부님 계신다니까 다행이네 하고 청이 안도했다·
적게는 열댓명 많게는 수십 명을 죄다 이끌고 나온 다른 문파들에 비해 참으로 조촐하니 혼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판에 사부님만 따라다니면 될 테니까·
“당장 수련한답시고 구파일방 가서 아이들에게 인사도 안 했지? 뭐· 혼자서 그게 쉬운 일이겠냐마는·”
서문수린이 말한 아이들이란 장문인 혹은 그 대리로 참석한 어르신들을 말했다·
서문수린에게는 제자급 인사들이니 아이들이라 말하지만 들어서는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는 꽤 지루한 시간이었다·
무림대회가 뭘 위한 행사냐고 하면 정파 무림의 결속을 다지고 또한 위력을 떨치기 위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친목 도모와 정신 무장 그리고 무력 시위를 겸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여러 행사가 있었다·
정파의 누구라도 자유롭게 발언하고 또 호응하는 단결대회 정파의 절세 고수에게 대련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인 정도도전 무림맹이 선정한 의제들 중 원하는 사항에 투표하여 정파 무림 운영에 한 몫 보탤 수 있는 대운영회의 등등·
그러나 평범한 구경꾼들이 가장 기대하는 행사는 단연 잠룡비무회 정파 후기지수들의 치열한 경합이었다·
다만 개최식은 버티기 힘들었다·
맹주의 개최사부터 시작해서 무림 명사들이 축사를 한 마디씩 한다는 것이 일단 구파의 장문인급 배분으로만 한 명씩 아홉에 오대세가주들 나오고 그리고 또 뭐시기 누구라고 하는 사람이 나와서 떠들고····
다만 구경꾼들은 의외로 즐기고 있었다·
와! 천하십대고수! 와! 종남파 장문인!
그저 무림의 절대 고수들의 등장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니 으레 하는 축사에도 ‘오오 과연·’ ‘으음 이런 깊은 뜻이’ 하고 감탄사를 주워섬기는 것이다·
청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대 중원에서 놀이 문화가 매우 원시적이고 미개하기 때문이었다·
청의 고향처럼 유명인사가 화면 너머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십대고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천리길 달려 개봉에 머무는 사람이 태반인 것이다·
그리고 나선 개최식의 꽃 잠룡비무회의 대진표 추첨이 이루어졌다·
맹주가 직접 단상에 올라 제비를 뽑으면 사회자가 이름을 외치며 커다란 천막에 이름을 써넣는 식이었다·
청은 도대체 육십 명 넘는 참가자를 언제 다 뽑아서 대진표를 짜나 지루해 죽겠지만 사실 이때가 바로 구경꾼들이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곤륜 제자 진삼! 타동 출신 배재합!”
목청도 좋은 사회자가 쩌렁쩌렁 뽑은 제비의 내용을 외치면 구경꾼들이 저들끼리 쑥덕쑥덕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 대진은 곤륜 제자가 이기지 않을까?
배재합 소협의 예선을 보았는데 곤을 아주 제 몸 처럼 다루던데· 내가 봤을 때는 박빙의 경기가 될 것 같다·
이는 호기심 혹은 승패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고 아니면 승패권 도박에서 따기 위한 토론이기도 했다·
청이 지루한 시간 억지로 버티고 있자니 삼 조 끄트머리에 제 이름이 불려나왔다·
“신녀문 제자 서문청! 무당 제자 환육!”
어차피 누군지는 모르겠고 아마 잠룡지회에서 이름 정도는 들어본 것도 같은데·
그보다는 구경꾼들의 승부 예측이 궁금해져서 청이 가만히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건 볼 것도 없이 환육 도장이지· 무당하면 태극검 태극검 하면 천하제일검술이 아니겠나· 싱겁게 끝나겠구먼·
-신녀문이 뭐 무공이 특출난 게 없기는 하지· 아는 무공 있나?
-아직 모른다· 화산파의 유하 진인께서 극찬을 하셨다는 소문이 있거든? 이럴 때 역배로 한탕 하는 거지·
-방금 너도 역배라고 하지 않았냐····
대충 들어보니 무당 제자의 승리를 예측하는 의견이 압도적인 모양새였다·
음· 좀 센 놈인가?
제갈이 있으면 주석을 달아줬을 텐데·
그때였다·
“소림 제자 월봉! 흑룡조가 조학체!”
그러자 서문수린이 감상을 토했다·
“그 땡중 놈이· 이거 조현량이가 속 좀 쓰리겠구나·”
“맹주님이요? 음· 소림 제자가 그렇게 강해요?”
“법명이 월봉이 아니냐· 네 배분과 같은 항렬이니 그 스승이 누구겠느냐·”
현 소림 방장이 월현 대사 월 자 배다·
월봉이라 하면 그와 같은 배분이 되므로 그보다 더 배분 높은 어른의 직계 제자라는 뜻이었다·
소림에서 그럴만한 위인이라면 한 명뿐이므로 바로 천하제일인 무학 대사의 직계 제자가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제자길래 이태까지 꽁꽁 숨겨두었나···”
“음· 많이 강한 상대일까요?”
“소림이라고 하면 우승할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제자를 내놓지도 않는 놈들이다·”
소림의 행보란 무겁기 그지없어서 어지간한 일에 움직이는 일이 없다·
하지만 한 번 움직이면 태산을 밀어낸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정파 무림의 태두이자 정종 무공의 본산이 가지는 무게감이다·
“네 준결승 상대가 되겠구나·”
서문수린이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잠룡비무회는 총 네 개 조로 이루어져 청이 삼 조 월봉이 사 조로 전부 이겨 올라오면 준결승에서 마주치는 것이다·
“에이 걱정 붙들어 매고 계셔요· 사부님 제자가 애송이 중 최강자니까요·”
그에 서문수린이 빙그레 웃었다·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단다· 소림의 제자에게 졌다고 하면 세상 사람 누구도 이상하다 여기지는 않을 것이란다· 하지만·”
서문수린의 눈빛이 번뜩였다·
“기왕이면 제자가 소림을 꺾는 모습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구나·”
그에 청이 제 가슴을 땅 두드리다 멈칫하고는 대신 주먹이나 꽉 쥐여 보였다·
“그럼요· 저만 믿고 계세요·”
—-
무림대회라고 하면 정파의 고수란 고수는 죄다 모인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림대회에서 난동을 피울 생각이라고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무림에는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혈교라 하는 집단이었다·
사실 저네들 스스로 저네들을 혈교라고 부르는 데서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다·
사파 놈들도 저들을 사파라고 하지 않고 사도라고 칭하고 심지어 마교조차 마교도들이 저네들을 부르는 말로는 천마신교 혹은 신교라고 하지 않던가·
혈교가 중원에 악명 높은 이유가 바로 이 까닭이었다·
마교는 악명이 높기는 해도 결국 중원 정복을 외치며 주기적으로 쳐들어오는 오랑캐 비슷한 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혈교는?
이 새끼들의 목적이란 중원에 피바람을 부르는 것이 전부라서 무슨 미친 짓을 벌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진짜배기 미치광이들이다·
그러니 혈교 놈들이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광인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참 무림대회가 개최중인 개봉에도 혈교의 미친놈이 하나 섞여들었다·
강호에서 지탄광마라 불리는 마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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