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2
경담간이 힘없이 대답했다· 거의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맥이 풀린 목소리였다·
“나도 모른다· 아침부터 안 보이더군· 술을 처먹고 뻗었는지 적당한 재료를 찾아서 혼자 즐기고 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느냐·”
재료는 무슨·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청이 못마땅한 듯이 쯧 혀를 찼다·
그와는 별개로 결국 허탕이라는 소리다·
청은 경담간의 증언을 의심하지 않고 곧장 믿고 받아들였다· 적어도 동료를 파는 데에 있어서 경담간은 아주 믿음직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놈들의 의리란 도로 위에 고인 흙탕물보다도 얕기 때문에·
게다가 중원에서는 실종이란 개념 자체가 아주 희박한 것이다·
청의 정신적 뿌리 한민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민족들의 국가는 정부가 모든 개인의 모든 정보를 심지어 지문까지도 수집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한민족만이 온전히 경찰 국가적 위업이다·
외국인들이 이를 알면 난데없이 큰형님을 외치며 경악하는 이유를 한민족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중화 인민들조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국민들(비호적자들 쥐새끼라 부른다)을 전부 등록하지 못했다!
그러니 청의 고향에서는 경찰이 납치범과 아는 사이라서 모른 척을 하지만 않는다면 누굴 납치해다가 노예로 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개인 정보의 자진 상납에 더불어 모든 인구가 실시간 통신기 겸 위치 추적기를 갖추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누군가 돌연 연락이 되지 않으면 바로 이상함을 눈치채고 실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멀리 안 가고 위치 추적기가 꺼져있으면 벌써 마음속에 큰 불안이 솟는 것이다·
그러나 원시 미개 중원은 어떠한가·
무림대회에 구경가겠다고 집 나가면 가는 데 한 달 구경하는데 한 달 돌아오는데 한 달 해서 최소 세 달은 연락이 없더라도 뭐 잘 놀고 있겠거니 한다·
그러다 반년쯤 지나고서야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뭐 하고 있나 싶고 일 년쯤 지난 후에는 새끼 어디서 칼 맞았나보다 하면서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중원은 기본적 우편제도조차 관의 전유물이며 막대한 금전 혹은 가는 길에 내 것도 하는 친분에 의존했다·
돈 없고 인맥 없으면 문자 한 통을 보낼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청이 사나흘쯤 자리를 비우더라도 딱히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얘가 어디를 갔거나 혹은 뭐 엇갈렸나보다 하는 식이다·
모용주희가 집에 먼저 돌아겠다고 편지를 남기지 않았더라도 가족들이 일주일 정도까지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얘가 또 무슨 사고라도 쳤나· 창피해서 얼굴 안 보이려고 또 피해 다니나 하고·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안 보이더라는 경담간의 말 역시 이 맥락에 속했다·
어디서 혼자 놀거나 아니면 윗선에서 뭐 따로 임무를 맡겼을 수도 있고· 대주라는 놈이 자리를 비운다고 혀나 차고 말지 뭐 대수로운 일도 아닌 것이다·
“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중독되신 분들의 고독을 제거해줄 의향이 있으세요?”
“끄흐흑 그냥 죽여라· 저승 가는 길에 내 동무라도 잔뜩 데려가야지·”
“동무가 아니라 원수 아닌가? 저승 가는 길에 두들겨 맞으시겠는데요·”
“죽으면 끝이지 저승 가는 길이 있겠냐· 하늘이 악인을 단죄하려거든 살아있을 때 보여야지 믿거나 말거나 죽고 나서 죗값을 치른다는 헛소리나 하겠냐는 말이다·”
“음· 그건 그래요·”
나쁜 짓 하면 곧장 천벌이 떨어지고 하면 세상에 나쁜 놈은 존재하지 않을 테다·
죽은 후에 고통받느니 뭐니 결국 산 자가 소망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처연한 자기 위로에 불과했다·
“끄흐흑 이제 어쩔 것이냐 날 죽이면-”
“아· 참고로 낭인분들은 독한 약 드시고 푹 잠들어 계시니까요· 자기 죽으면 여왕 고독이 무제한 자폭 작전을 펼치느니 하는 협박은 안 통하니까요·”
경담간이 그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고독을 제거해주겠다· 살려만 다오·”
“음· 저랑 같은 생각이시네요·”
그에 경담간의 표정이 피었다·
청이 상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독은 제거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지만 고자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죽으면 안 돼요?”
—-
이선혈고대주 혈륜마귀의 무위는 화경을 넘었다고 한다· 정확한 경지는 정보 제공자 역시 알지 못했다·
강호에서 자기 실력을 숨김은 당연해서 초기 중기 후기까지 밝히기는 좀 미련한 일이기도 해서·
사부님께 혈륜마귀를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청이 기절시킨 지탄광마의 듬성한 머리채를 붙들고 질질 끌며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지하의 혈교 거점을 돌아다니며 살피던 서문수린을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부님! 제자가 지탄광마를 잡아왔어요·”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어디 한 군데 피가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구나·”
“제 피는 한 방울도 없는걸요· 겨우 초절정 나부랭이 하나 잡는데 뭘 다치기까지 하겠어요·”
“그래· 이제 초절정 정도는 그냥 가뿐히 상대하는구나· 장하구나·”
서문수린이 온통 피칠갑을 한 청의 몰골을 보고서도 그저 온화하게 칭찬을 건넸다·
저 꼴을 보니 오히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색적의 피로 몸을 적시며 강호 여인들의 적들을 참살하던 젊은 나날의 즐거운 시간들이·
“혈륜마귀는 떠나버린 모양이에요·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고·”
“그럼 나는 여기에 좀 더 머물러 있어야겠구나· 그런데 그 색적은 잡아다 어디에 쓰려하느냐? 팔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던져놓지 않고·”
지탄광마의 악취미는 제법 알려져 있다·
알려지지 않았다면 지탄광마라는 별호가 붙을 일도 없었을 터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음 시도해 볼 일이 있어서요· 수련에 도움이 될 것도 같고요· 음· 근데 스승님은 어디 계시지· 같이 해야 하는데·”
“흥· 신투가 괜히 기인이겠느냐· 어디서 또 훔쳐낼 귀물이라도 발견한 모양이지· 장보도로 내의를 해 입은 여인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
“아니면 사내일지도 모르구요·”
청이 농담을 받자 서문수린이 가볍게 꿀밤을 놓는 척을 했다·
“이것아· 네 사저를 두고 농담을 하게 되어 있느냐·”
장보도로 속옷을 해 입은 여인이란 바로 천둔검 왕주희 신녀문 장문인이다·
서문수린은 종종 왕주희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내의는 어떻더냐고 놀려먹고는 하는 것이다·
혹시 혈륜마귀 이선혈고대 대주가 돌아올지 모르니 지하에 머물겠다는 서문수린을 뒤로하고 청이 지상으로 향했다·
도중에 팔다리 잘린 채로 신기하게도 또 출혈은 없어서 꿈틀거리며 신음을 토하는 혈교 무인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도 했다·
청이 마무리를 지을까 하다가 사부님이 굳이 놔두신 놈들을 함부로 치우기도 죄송한 일이라서 놔두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여왕 혈고의 무제한 자폭 작전의 살아있는 중계기들이었다·
나중에 한 방에 전부 치워버리기 위해서 살려둘 필요가 있기도 했고·
—-
무천각 욕탕에는 청을 고문하기 위한 아니 유류연련 수련을 위한 기구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청 말고 다른 이가 단단히 고정되었으니 바로 세간에서는 지탄광마 경담간이라 하는 악적이었다·
천유학이 청을 묶었던 귀물들로 사지를 결박하고 나선 청이 잘린 손목에다 활활 불타는 횃불을 척 가져다 댔다·
“으으읍!!!”
“어허· 가만히 있으세요· 겨우 혈 잡아서 지혈한 정도로는 다시 피가 콸콸이거든요? 오래오래 사시라고 치료해 드리는 거니까·”
“으읍!!”
“아니 상처 좀 지졌다고 아주 죽을라고 하시네· 그냥 좀 따끔한 걸 가지고는· 늙은이가 아주 엄살은·”
청이 경담간의 팔목을 바싹 익혔다·
불을 직접 갖다대어 구웠으니 굳이 분류하자면 직화구이가 될 것이다·
아· 삼겹살 먹고 싶다·
사람 팔목을 산 채로 구워내며 할 소리를 아니었지만 고기 익는 냄새가 코를 찌르다 보니 청도 어쩔 수 없었다·
청도 직접 겪어서 알지만 유류연련 수련대에 제대로 묶이고 나면 정말 아주 조금의 미동조차 할 수가 없다·
관절과 힘줄을 정교하게 끊어내는 작업 도중 피시술자가 움직이면 아예 불구가 될 수도 있기에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까닭이었다·
그러니 읍읍 재갈 너머로 비명이나 토해내던 경담간이 축 늘어져버리고 말았다·
“앗 죽었나!?”
청이 급히 경담간의 맥을 짚었다·
초절정 고수의 명줄은 상처를 지지는 의료 행위 정도에 끊어지지는 않는다·
청이 그에 심히 안도했다·
그리고서 무천각으로 돌아가니 오래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앗 할아버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냐 잘 지냈느냐?”
온화하게 웃는 곱게 나이를 먹은 노인은 바로 당가의 태상가주 청이 부르기를 독 할아버지였다·
독 할아버지가 슬쩍 묻기를·
“음· 그래· 수린이가 여기 있다던데?”
“아· 사부님께서는 혈교의 대장을 정리할 겸 아래에 계셔요·”
“그래?”
태상가주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춘약 좀 만들었다고 걷어차여 부러졌던 정강이가 아직도 비만 오면 시렸다·
서문수린의 등장 소식을 듣고 나서는 아예 무천각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렸더란다·
하지만 이선혈고를 잡았다는데 정강이가 시린 것이 문제겠는가·
타인의 고독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다·
청이야 그냥 배때기 쑤셔 뽑아버렸지만 애초에 죽일 생각이라서 한 행동이었다·
창자에 구멍이 나서도 큰일이지만 고독을 억지로 잡아 뽑으려 들면 품은 독정을 뿜어대기에 맹독이 체내로 흘러들고 만다·
청은 잠깐 즐기는 동안에만 숨이 붙어있으면 되니 막 잡아 뽑았지만·
하지만 모용주희와 낭인들에게 그럴 수는 없었으므로 독과 의학 둘 모두에 통달한 거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야심한 밤·
유리병에 살아있는 이선혈고를 잔뜩 챙긴 독 할아버지가 신이 나서 돌아가 버렸다·
청이 인체 해부의 달인이 부리는 솜씨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확실히 인체 전문 칼잡이인 의원다운 신기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선혈고는 의외로 음· 귀엽나?
청은 기생충이라기에 지렁이나 벼룩 따위 정도를 상상했더니 정작 꺼낸 내용물을 보니 반투명한 도롱뇽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넓대대한 머리통에 가로로 두 줄이 그어져서 이래서 이선혈고라 부르는구나 하고·
그런데 원래 이런 생물이 있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생각해보니 내공이라 하는 신비한 힘을 쓰면서 사람이 광선검을 뿜고 아예 막 날아다니는 세상이 아니던가·
기생형 도롱뇽쯤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겠거니 싶기도 하고·
그러고 나니 이제 스승님만 돌아오면 될 텐데·
마침 좋은 교보재가 생겼으니 유류연련 시술법을 좀 배워둘 생각이었다·
나중에 청도 제자에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하니 이참에 배워두면 좋겠다 싶어서·
게다가 감각으로 거의 파괴되기 직전까지 관절과 힘줄을 끊어낸다고 하는 작업은 와 그저 생각만 해도 너무 기대가 되어서·
그러나 천유학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늦어지니 걱정은 말라는 천유학의 전언만 전달했다·
음· 왜 심부름꾼은 착불로 보내셨나요·
스승님 돈도 많으시면서·
늦는다 걱정마라 제자야 열 글자에 은자 다섯 냥은 좀 비싸잖아요·
결국 천유학은 뭘 하고 있는지 늦는다는 것이었다·
묶어둔 경담간은 점점 쇠약해지니 이러다 죽겠다 싶은 청이 결단을 내렸다·
게다가 혈교 무사들 중계기들이 살아있을 때에 여왕 고독의 자폭 신호도 보내야 하고·
뭐 손잡이들 돌려보면서 어떻게 작동하나 직접 해 보면 굳이 스승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독학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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