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
사실 근대 이하의 유사 인류 원시인이나 현대인이나 지능의 차이는 없을 터이다·
하지만 둘의 차이가 도드라지는 방면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인은 조상들보다 훨씬 육체적으로 연약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도구에 대한 적응력을 얻었지만·
적어도 현대인들은 도구를 조작하는 데에 있어서는 좀 만져 보면 감을 잡는다·
이는 청 역시 마찬가지라서 천유학이 제 스승에게 온갖 구박을 다 들어가면서(하 그것도 못 외우냐 아주 나중에 제자 팔다리 근맥을 다 잘라먹겠구만 아이고 신투도 여기까지인가보다 에휴 등등) 외운 유류연련 수련대의 조작을 착착 익혀나갔다·
나름 생산직 출신으로서 이런 비 전기적 원시 기계 장치라고 하면 한 가지만 지키면 고장은 안 나는 법이었으니까·
억지로 힘을 주지 않는다· 하나면 끝·
덕분에 이리저리 돌리고 죄면서 만져본 결과 청은 제법 능숙하게 수련대를 조작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조작 미숙으로 아까운 손가락을 세 개나 천천히 끊어지는 촉감을 즐길 새도 없이 마디마디 반대로 꺾어 부러뜨리고 말았지만·
“으읍! 으으읍! 으으으읍!”
“할아버지·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읍! 읍!”
경담간이 격렬하게 응수했다·
청이 그에 잠시 고민했다·
음 이걸 풀어드려야 하나 그러다가 혀라도 깨물면 음 깨물어?
청이 이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내려치고는 경담간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정파의 무인으르는=”
청이 상하운동을 하는 경담간의 턱을 턱 붙잡는 통에 뒷부분은 발음이 뭉개져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재갈은 이빨하고 또 혀를 깨물지 말라고 채워드린 거였네요· 그런데 우리가 서로의 치아 건강까지 챙겨드려야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리고는 청이 경담간의 아가리 안에 제 손가락을 마구 쑤셔 넣었다·
경담간이 온 힘을 다해 씹어댔지만 천하인이 두려워하는 소수마공의 아름다운 손이 이빨 따위에 상한다고 하면 오히려 우스운 일이리라·
“아· 제가 뭘 할 거냐면요· 할아버지의 모든 생니를 다 뽑아버릴 거예요· 그러면 굳이 재갈을 하지 않아도 다치는 일은 없으시겠죠?”
“아아!”
“뽑은 이빨은 모용 소저한테 선물로 줘야겠다· 할아버지도 생니 뽑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모용 소저 어금니를 네 개나 뽑으셨던데· 복수는 백 배 천 배로 해야 하니까 죄다 뽑아서 가져다주면 위로가 되겠죠? 자아· 한 개·”
“아악!”
“두 개·”
“아악!!”
“아씨 더럽게 남의 손을 왜 핥아요? 할아버지가 개야? 아 개새끼 맞긴 하지· 혀로 민다고 손가락이 밀리겠어요? 그냥 포기하고 말년에 죗값을 다 치르는구나 해요·”
“아악!”
“자· 네 개 갑니다· 아유 늙은이가 아주 건치네 건치야· 고수들은 왜 치아 건강도 이리 좋은지 몰라· 신비한 내공의 힘인가·”
청이 한 개 건너 하나씩 경담간의 이빨을 하나씩 뽑았다·
본래 사람의 치아를 이 짐승의 치아를 이빨이라 부른다· 그렇게 따지자면 경담간의 것은 이빨이라 부르는 편이 옳았다·
청이 생각하기에는 조립식 장난감처럼 단단히 붙들려 있다가 쏙 뽑힐 줄 알았는데 이거 의외로 단단한 힘줄 같은 게 오옷·
그야 치아 뿌리가 단단히 붙들고 있으니 청이 힘을 주면 진득하니 살점 채로 뜯겨 나가며 아주 단단하니 알찬 감동이 있었다·
아프면 몸부림을 치는 것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신경을 분산시키는 생물의 본능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몸부림도 못 치게 하면 고통이 배가 된다는 뜻이다·
“크아악!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년 같으니! 너 같은 게 어떻게 정파의 협객이냐! 천하의 살성 같으니!”
물론 이빨 다 나간 경담간의 발음은 매우 부정확했지만 청이 이렇게 알아들었다·
“아이고 죽인다! 죽여버린다!”
“음· 틀렸어요· 죽인다가 아니라 죽여줘· 아주 공손하게· 제발 죽여주세요·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하며 빌어도 들어드릴까 말까 한때에· 어차피 안 들어줄 거지만요·”
청이 해맑은 미소로 말했다·
아직까지 긴가민가 헷갈리던 경담간이다·
악인은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야만 한다는 정파 중에서도 아주 과격파에 속한 무인의 복수인지·
아니면 그저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살성의 즐거움을 위한 행사인지·
그리고 이제는 알았다·
이건 나와 비슷한 종류로구나·
“어머· 이제 좀 두려움을 보이시네요· 음· 원래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이제 좀 공손하게 구시겠어요? 새파랗게 나이 처먹은 늙은이가 어디 손주 뻘 되는 어리신 젊은님한테 버르장머리 없게 반말이나 찍찍 싸고 말야· 하여간 요즘 늙은 것들은 위아래가 없어요 쯧·”
거의 노소 역전 세계 같은 발언이었다·
어차피 나오는대로 지껄일 뿐이라서 청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아주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어린애 같은 심리일 뿐이다·
“살려 살려···”
“아이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살려 줘가 아니라 죽여 줘· 노인네는 그렇게 빌어야 해요· 하지만 안 들어줌· 헤헤· 약오르죠?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이빨도 없는데 혀라도 깨무실래요?”
“나는-”
청이 그저 방긋방긋 곱게 미소를 지으며 경담간의 말을 끊었다·
“지옥 가기 전에 예습한다고 생각하세요· 아· 그리고 여기 방음도 되게 좋고 저도 비명 듣는 거 정말 좋아하니까 참지 말고 마음껏 내지르셔도 돼요·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 볼까요 우리?”
시끄럽고 즐거운 시간이 흘러갔다·
청은 인체에 대한 이해를 한층 드높였다·
관절과 힘줄이 어디까지 버티는지 구동 한계에 도달했을 때 어느 정도의 저항감이 따르는지 거기서 얼마나 더 힘을 주어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수많은 시도 끝에 완전히 통달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지탄광마의 모든 관절부가 불구가 되고 나서는 청도 힘에 부쳐서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하지만 온몸의 관절부가 끊어졌을 뿐이지 아직 뼈와 살이 멀쩡하니 아직도 즐길 거리가 한참이나 남은 것이다·
유류연련 수련대는 정말이지 중원 최고의 기물이라고 청은 단언코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청이 아주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듣기 좋은 비명을 꽥꽥 질러대던 대마두가 어느 순간 이후로 점점 성량을 줄였다는 점이었다·
청이 지탄광마의 목청을 응원하기 위해 입안에 소금물을 퍼부어도 봤지만 그래도 그때 뿐이었다·
“제발 죽여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죽여 죽여주세요· 제가 잘못 아주 죽여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니 죽여주세요···”
“에이씨 사람 누워서 쉬는데 시끄럽게·”
“헙·”
“죽여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놀이는 끝났으니까·”
“감사 감사합니다·”
그에 청이 픽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놀이는 끝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죠· 역시 피를 안 보니까 재미가 없네· 묶은 건 풀어드릴 테니까 산 채로 해부되기 싫으면 도망치세요· 도망 안 치면 동의하신 걸로 알고 손끝부터 살을 발라볼게요·”
전신의 힘줄 중 뼈에 붙은 부분이 남아있지 않은 지탄광마 혈교의 대마두였다·
이제 와 풀어준다 해도 꿈틀거리기 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없는 것이다·
“히익 죽여 죽여 줘 죽여 달라고!”
“그건 처음에 대답해 줬잖아요? 어차피 안 들어줄 거라고· 남들 고문하는 걸 평생 해 오셨는데 이 정도도 못 버티면서 무슨 고문을 하겠다고· 에라이·”
청은 버텨낸 사람으로서 그것도 세 시진짜리 긴 과정을 훌륭하게 버텨냈으니 그리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청이 웃으며 청자검을 뽑았다·
혈교 무사의 순순한 협조를 통해 되돌려 받은 날카로운 신병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왜 꼭 욕실에서 고문을 하나 했더니· 끝나고 깔끔하게 바로 씻으니까 얼마나 좋아· 다들 좋은 건 알아가지고·
욕탕을 나서는 청의 눈빛이 깨끗했다·
어떠한 욕망 한 점 남아있지 않은 그야말로 열반에 이른 부처와 같은 온화한 눈빛이었다·
—-
청의 다음 대진은 의자를 사용한 폭력의 달인 왕노필이었다·
하지만 배를 가르고 독성 도롱뇽을 빼낸 후유증으로 비무에 나갈 수 없어서 기권을 신청했다·
“기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제가 살살 해 드릴 수도 있었어요· 의자라도 좀 멋지게 휘두르고 내려가시지·”
“하핫악·”
왕노필이 사내답게 웃으려다 제 명치를 붙잡았다· 호탕한 웃음이란 생각보다 복근을 심하게 소모하는 행동이라서 완전히 붙지 못한 배가 쑤시는 것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봐야 아는 일이 아니겠소이까? 서문 소저께서 아무리 검의 달인이라고 하신들 비무의 승패는-”
“죽순이랑 대나무를 굳이 대 봐야 어느 쪽이 긴 줄 알아요? 이거 순전히 명예로운 패배시네·”
“명예로운 패배?”
“어차피 졌을 텐데 수술 때문에 비무에 못 나갔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명예로운 패배 아닌가요? 배때기에 구멍만 안 났어도 잠룡비무회 우승자는 팔 강에서 내가 해치울 수 있었다 이런 소리 하시려고·”
그에 왕노필이 다시 웃다가 찌그러졌다·
“우승을 당연하게 여기시는군·”
“그야 당연한 일이니까?”
무천각 삼 층에 무단으로 세를 든 낭인들의 병문안을 마친 청이 이번에는 척척 계단을 올라 제가 쓰는 꼭대기로 향했다·
청과 서문수린 둘이 쓰는 무림맹의 가장 좋은 객청에 또 다른 무단 거류자가 한 명·
“모용 소저· 몸은 좀 어때요?”
“히익·”
모용주희가 어깨를 크게 움찔하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내려 눈만 빼꼼히 청을 바라보았다·
청이 측은함을 담아 모용주희를 보았다·
“뭐 뭐야! 그 눈빛! 기분 나쁘거든!?”
“괜찮아요· 다 이해하니까요· 저기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물이에요·”
청이 고운 비단 꾸러미를 건넸다·
모용주희가 의심 반 떫은 반으로 꾸러미를 풀다가 화들짝 놀라 소스라쳤다·
그 서슬에 하얗게 잘 닦아놓은 경담간의 치아들이 하늘을 날아 사방으로 튀었다·
“무슨 짓이야!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 지탄광마의 이빨이에요· 모용 소저에게 위로가 조금이라도 되었으면 해서요· 물론 전부 산 채로 뽑았답니다·”
“이딴 이딴 거 필요 없어! 왜! 대체 나한테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좀 꺼져! 난 너 싫어! 밉다고! 꼴도 뵈기 싫다고!”
모용주희가 발작하듯 외쳤다·
아니 그냥 발작이 맞았다·
청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씨 이게 구해줘도 지랄이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진 꼴을 당했으니 정신이 병들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청은 청 나름대로 위로를 건넸다·
마교에서 청이 한참 힘들 때에 의매가 해 주었던 그 위로였다· 왜냐하면 그게 정말로 큰 위안이 되었으므로·
청이 모용주희를 억지로 끌어안았다·
“놔! 놓으라고! 뭔데!”
“괜찮아요· 쉬이· 괜찮아· 모용 소저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나쁜 놈들은 제가 다 처리했어요· 안 좋은 꿈을 꾸었다고 끔찍한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모용 소저는 강한 사람이니까 떨쳐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몸도 마음도 강한 사람이니까·”
“놔 놔라고···”
모용주희의 목소리가 축축했다·
“다 괜찮으니까· 그리고 모용 소저의 일도 결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할 거예요· 아는 이도 네 사람 뿐이고 모두 마땅히 입을 다물 줄 아는 사람들이니 안심하세요·”
모용주희의 납치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곤 청과 서문수린 그리고 당난아와 독 할아버지 네 명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회복에 신경을 억! 아악!”
청이 돌연 위로하다 말고 치미는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청의 고통 가득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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