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4
멍이 다 빠지지도 않은 가슴을 다시 쥐어짜이고 있으니 비명이 나올 수밖에· 심지어 아직 낫지 않은 탓에 저번보다 훨씬 통증이 더 심했다·
모용주희가 잔뜩 메인 물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구해준 건 고마워· 하지만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나는 절대 절대 용서가 안 돼· 세상 끔찍한 년 괴물 괴물이야 넌·”
“악 손 손·”
청이 가슴을 쥐어짜는 모용주희의 손아귀를 잡고 낑낑거렸다·
힘을 주어 떼어내려니 안 되고 양 손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자니 모용주희의 반대편 손도 거들어 하나를 떼면 하나가 쥐어짜는 것이다·
“아파 아프다고! 진짜 아파!”
“너도 너도 아픈 줄은 아는구나?”
“좀 놓고-”
꽈악·
“아윽·”
정말로 아프면 비명은 요란하지 않다·
청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들어가는 숨과 나오는 소리가 부딪쳐 컥 억 아윽 큰 소리조차 내는 청을 보며 모용주희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딴 거· 어차피 약점밖에는 안 돼· 하! 아주 맥을 못 추네· 이딴 거 이딴 거 이젠 필요없으니까·”
“놔 놔 줘 진짜 너무 아픈 어억!”
청도 이쯤되면 화가 치민다·
이 년이 내공까지 쓰고 앉았으니 진짜로 작정하고 터뜨리려는 수작이었다·
그러니 청도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엔·
청이 모용주희의 손목을 꽉 쥐어짰다·
강철도 우그러뜨리는 청의 악력이었다·
끄아악!! 새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모용주희의 손이 맥없이 떨어져나왔다·
손목을 잡힌 모용주희가 악을 질렀다·
“내가 내가 우스워!? 이빨을 내밀면 덜덜 떨면서 병신같이 굴 줄 알았어!? 뭔데· 그래! 나 병신같이 잡혀서 생니 뽑힌 멍청한 년이다! 이 중에 맞는 거 있으면 끼우기라도 할까! 겨우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앗· 청의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별생각 없이 선의로 했던 선물이다·
하지만 정신에 새겨진 상처를 아주 제대로 건드리다 못해 헤집어놓고 소금을 뿌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미안해요· 그런 의도는 절대로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위로라니! 그게 어떻게 위로가 되는데! 애초에 너 이상하다고! 너는 네가 나한테 시킨 짓이 눈만 감으면 아직도 으웁·”
모용주희가 역류해 치미는 위액에 말을 잇지 못하고 제 입을 가렸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선명한 그때·
살아있는 자의 살을 가르고 근육을 끊던 촉감· 억지로 이끄는 우악스러운 힘에 못 이겨 내 손으로 내가 쥐어짠 죽어가는 이의 처절한 비명· 흐느낌과 절규 사이에 있던 그 끔찍한 소리가·
마침내 숨이 끊어지는 순간 밀려들던 그 죽음의 촉감들 마치 가냘픈 실이 끊어지듯 툭 떨어져 버린 장식처럼 그렇게·
“왜 왜 그런 거야? 그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아무리 그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고 해도 나는 윽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응? 왜 왜 나는 그런데 더 최악인 게 뭔지 알아!?”
고통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모용주희는 아주 제대로 병든 상태였다·
청의 처방은 복수였다·
물론 너무 극단적이지만 않았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천살이 날뛰던 청이었다·
악인 앞에서는 불가의 가르침조차 천살을 굳이 막지 않았으니 무공이 타인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서 자비가 아니라 세상의 살업을 끌어안아 세상을 구제하는 뜻의 부처상이기에·
하지만 청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지? 뭐가 안 되는데? 혈교 놈들을 고문해서 죽인 게 뭐가 문제인데? 왜 안 돼?
충분히 고통받아 마땅한 놈들이었는데·
“그· 모용 소저· 그놈들은 당연히 고통을 받아야 했어요· 무고한 모용 소저와는 다르게요· 모용 소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지만 혈교 놈들은 달랐으니까요·”
“그게 뭐야· 왜 왜 그렇게 되는데?”
“단순히 숨통 끊어서 사후에 지옥 불에 그 죗값이라도 치를 것 같으면야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죽음은 그저 무책임한 끝에 불과한데·”
모용주희의 몸이 덜덜 떨렸다·
모용주희에게는 그저 끔찍한 일이었기에·
“너 너는 즐거워했잖아! 그냥 나쁜 놈이 있어서 그러게 잔인하게 굴어도 되는 놈이 있으니까 히죽거리면서 사람을 갈랐겠지! 죗값이니 그딴 변명은 집어치워!”
청이 뺨을 긁적거렸다·
“음·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울면서 억지로 고통을 주었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말인가요? 그렇더라도 결과는 같은 것이 고통받아 마땅한 놈들이 고통받으며 죽지 않았나요? 그 과정에서 제가 제 즐거움을 좀 채웠다고 잘못된 행동이 되는 건가요?”
모용주희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물건이라도 쳐다보듯 청을 바라보았다·
“너 너· 넌 괴물이야· 그래서야 피에 미친 살인귀잖아·”
“살인귀라는 말까지 부정하진 않을게요· 하지만 괴물은 좀 말이 심하지 않나요? 전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은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 하아아· 아니에요·”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신이 아픈 애다·
이성적인 대화가 통할 리가 없지·
이게 그 피랍자가 납치범 편을 든다는 뭐 그런 건가? 아니면 자기가 너무 아파서 아픈 사람만 보면 이입을 하고 마는 걸까·
“미안해요· 모용 소저가 그렇게 아파할지 몰랐어요· 제가 힘들게 만들어서 이빨을 선물한 건 그런 의도는 조금도 없었는데 미안해요· 음· 그럼 쉬세요·”
청이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본인이 싫다는데야 어쩔 수 있나·
어차피 청이 손해 본 건 아픈 가슴밖에는 없으니 준이랑 가주님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쯤 정리해두면 되겠지 하고·
그때였다·
“자 잠깐!”
모용주희가 다급히 외쳤다·
“왜 그러시나요?”
“어디 어디 가는데?”
“제가 있으면 오히려 힘드신 것 같아서· 그 제가 다시 들르는 일은 없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다 가시면-”
“자 잠깐만· 잠깐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런 건 없는데 그게·”
“아니면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제가 있으면 모용 소저만 더 불안해하실 것 같으니까·”
“잠깐만! 그게 아니라·”
모용주희가 청의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청이 얘가 또 왜 이러나 이번엔 손목이라도 쥐어짜 볼 속셈인가 하고 내려다보니 고개를 푹 숙인 모용주희에게서 모기 나는 듯한 작고 선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만 있다 가·”
“예?”
“너 때문에 그래! 너 때문에! 다시 끔찍한 기억들이 떠올라 버려서 너라도 지금 옆에 있어야 지금 나 혼자는 못 있겠어· 너 때문이니까 책임 맞아 네가 책임져· 옆에 있으라고·”
모용주희가 붙잡은 손목으로 덜덜 가냘픈 떨림이 전해져왔다·
청이 떫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있으면 계속 떠오르지 않나요? 음· 난아라도 불러드릴 테니-”
“너 너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네가 옆에 있어야 해· 다른 사람은 안 돼· 내 옆에 있어 내가 잘 때까지만 있어 줘·”
“하지만 제가 옆에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날 텐데요· 그리고 소저는 절 미워하시는 게 아니었나요?”
“아니야!”
모용주희가 표정을 바꾸어 애걸했다·
“미워하는 것까지는 아냐· 그냥 끔찍한 쪼끔 끔찍한 거뿐이야 나 있잖아 너 안 미워해· 어떻게 미워하겠어· 그냥 널 보면 그때 생각이 자꾸 나서 그랬어· 미안· 너한테 화를 낼 일이 아닌데· 하지만 나한테 네가 그랬잖아· 난 사람 같은 거 그렇게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네가!”
“모용 소저?”
“아냐아냐아냐· 나 멀쩡해· 미안· 미안해· 내가 말이 너무 심했지? 진심이 아니야· 나 혼자 두지 마·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아· 애가 발작 중이었구나·
청이 또다시 올라오는 한숨을 꾹 참으며 모용주희의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손목을 타고 전해오는 떨림도 서서히 잦아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숨소리·
최고 객실의 드넓은 침대 위 모용주희가 차지한 공간이란 몸을 말아 움츠린 조그만 공간뿐이었다·
청이 아직도 상자에 갇힌 듯이 찌그러져 잠든 모용주희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발작 단추 비슷하게 변한 것 같은데· 들어보니 초심자에게 본격 해부학은 너무 일렀던 것도 같고·
솔직히 아프다고 오냐오냐는 해주는데 이래서야 좀 아니 많이 귀찮게 굴 상이다·
그러니까 얘한텐 괜히 얼굴 내밀지 말아야겠다 하고·
-라고 생각했더니· 음·
“뭐야 저거· 왜 저러고 다니는데?”
당난아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 시선 끝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모용주희가 있었다·
굳이 대련장까지 불편한 발로 절룩거리며 찾아와서는 인사라도 건네면 친한 척하지 말라면서 쳐내버리고· 그렇다고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거리를 벌리고 처량하게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몰라· 혈교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 봐· 정신이 아픈 모양이던데·”
“아니· 그림이 이상해지잖아· 무슨 우리가 괴롭히고 따돌리는 것 같이·”
“몰라· 내가 저 속을 어찌 알겠니····”
병문안 이후 다음 날부터 저러더니 그게 벌써 삼 일째였다·
대련장 구석에 앉아서 머리 처박고 있다가 식사 시간에 그냥 놔두기도 뭐해서 같이 먹자고 하면 또 친한 척 말라고 하고·
처량하게 저러고 있으니 마냥 무시하기도 마음이 불편한데 도대체 왜 저러나 몰라·
그렇게 조금 불편한 관람객이 반검쌍도회 수련장에 개근하다가 보니 어느새 날짜가 또 흘러서 준결승 비무가 바로 내일이었다·
천유학의 복귀가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아이고 제자라는 년이 허술하니 스승이 고생을 하는구나· 아이고 이년아 어깨 좀 주물러 봐라· 아이고 뻐근해라·”
“아니 뭐예요 갑자기 자리를 비우시곤·”
청이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어깨를 꽉꽉 주물러 주었다·
“아주 손맛이 야무지구나· 이 맛에 제자를 키우나 몰라· 크흐흐·”
“그리고 소식 전하는데 착불은 또 뭐예요? 열 글자 전하는데 은자를 다섯 냥이나 줘야 해요?”
“이것아· 돈을 미리 주면 말을 전하겠냐? 전하고 나서 받으라고 해야 딴 데로 안 새고 곧장 가서 말을 전할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은자 다섯 냥은 해야 눈이 벌게져서 서둘러 달려갈 것이고·”
“으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기는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부를 보낸 것이라서 그럼 은자 다섯 냥 달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래서 청이 그냥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뭘 하다 오신 거예요? 갑자기 열흘씩이나 자리를 비우시고·”
“크흐흐· 저기 상자에 사람 대가리 하나 들었는데 놀라지 마라· 무려 혈륜마귀라고 하는 혈교의 대마두가 아니겠냐·”
“오잉· 걔가 왜 거기서 나와요?”
“야이 모자란 것아·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서 덮쳐놓고는 정작 옥상으로 빠져나와 도망치는 것도 몰랐느냐? 고독에 대해 잘은 몰라도 부리는 놈 잡을 때는 멀리멀리 떨어진 데서 잡아야 하니 내가 하남성까지 쫓아가서 쳐 죽이고 왔지 뭐냐·”
“와 멀리도 다녀오셨네요·”
“자· 이제 이거 낭인 놈들 갖다주고 품은 고독을 제거해도 된다고 해· 진짜 신투가 나타나서 머리통 훔쳐다 줬다고·”
“음· 스승님· 고독 일은 이제 다 해결이 났는데요· 되게 늦으셨어요·”
“뭐가? 혈륜마귀는 내가 잡았는데?”
“나머지는 제가 다 잡았어요· 고독도 다 제거가 끝났고·”
청이 천유학이 자리 비운 새에 일어났던 일을 전달했다·
“뭐야 그럼 괜히 개고생한 거 아니냐? 이거 쫓아다닌다고 내가 아주···”
“에이 개고생이라니요· 그래도 대단하시네· 혈륜마귀가 화경 고수라고 안 했어요? 그걸 일대일로 잡으신 거예요?”
“자 들어봐라· 내가 말이다···”
천유학이 우쭐대며 이야기를 풀었다·
아주 창대한 뒷북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아주 깔끔한 마무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각 서문수린은 또 다시 어이가 탈출하는 기분을 경험했다·
“이것들이· 저번엔 몰랐다고 쳐도···”
그야 현객당으로 돌아간 낭인들이 또다시 서문수린을 모시고자 청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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