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불벼락이 떨어졌다·
“도대체가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스승의 성씨도 모르느냐! 아무리 희성이라 하나 도대체 상식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이 되는구나!”
“어 서씨가 아니셨던····”
“서문이다· 후우· 이 모자란 년이····”
“아·”
아청은 조금 억울해졌다·
중원 사람 이름을 다섯글자까지 봤다·
서씨인지 서문씨인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청아· 제자야·”
“아 그렇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아청보단 청이 나았다·
사람 이름이 아청은 좀 그렇지 아무래도·
“그래· 이름은 되었으니 일단 중요한 무공을 전수해 주어야겠지·”
“오우 앗·”
청이 말버릇대로 하다 급히 틀어먹았다·
그러나 늦었다·
딱! 핵꿀밤이 날아들었다·
“모자란 말뽄새 하고는···· 이 할미가 알려줄 것은 서후천애심결이라 하는 연공법이란다· 같은 도문의 심결이니 익히기는 어렵지 않을게야·”
“서후천애심결···”
“서후천애심결을 대성한다면 제자에게 무엇보다 큰 성취가 있을 것이란다·”
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이름이 멋있고 여중제일인이 직접 전수하는 무공이니 보통을 아닐 것 같았다·
“그게 어떤 성취인가요?”
그러자 서문수린이 대답했다·
“예뻐진단다·”
“···네?”
“아름다움을 가꾸어 준단다·”
“어··· 그게 다에요?”
딱! 핵꿀밤 한 대 추가·
청이 머리를 붙잡고 울상을 지었다·
이거 혹 난 것 같은데·
“여인이 자신을 감추는 방법은 아름다워짐이 가장 상수에 있는 법이란다· 자· 구결을 불러줄 터이니 일단 외우려무나· 상고여일 안명위지···”
서문수린이 서후천애심결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청이 바짝 긴장해서 구결을 집중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무림인의 방식대로 무공을 익힐 수가 있나?
뭐 안 되면 비급을 보여달라거나 책으로 써서 달라고 하면 그만이긴 했다·
그런데 웬걸·
구결을 다 듣자마자 또 상태창 알림이 떴다·
무공창에 새로 추가된 항목이 하나·
파란 테두리의 내공심법이 하나 추가되었다·
기껏 배우는 게 고작 파란색이라 조금 실망-
으억 머리가!
순간 글귀들이 머리에 불쾌하게 파고들었다·
“···다 외웠느냐?”
“네· 다 외웠어요·”
“다 외웠다고? 그걸 한 번에?”
서문수린이 놀라 되물었다·
애가 영 무식한 모지리 같더니만 갑자기?
“들려줄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예로부터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얼굴이 밝아 어떤 행동도 없이 그저 사랑을 받는 재능에 있었다· 이를 아름다움이라 한다· 신농 염제께서 여러 자식이 있어 개중에 이 아름다움으로 덕을 이룬 딸이 있었는데···”
아청이 머리속에 든 글귀를 줄줄 읊었다·
아주 대놓고 하는 부정행위였다·
사정을 모르는 서문수린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재능이 무공으로 쏠린 아가인 모양·
그러니 아직 한참 기어 다녀야 할 나이인 아가가 절정 후기에 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진기도인을 해 주마· 돌아 앉거라·”
진기도인은 타인의 기를 인도하여 올바른 진기의 운용을 직접 체험하게 해 주는 행위였다·
스승 좋다는 이야기가 반은 여기서 나왔다·
아무리 둔재라도 제 몸속에서 직접 겪은 일은 어지간해선 잊어먹지 않는 법이었다·
몸속에서 진기가 지멋대로 돌아다녔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쏠림이 단전에서 신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러자 또 상태창의 알림이 떴다·
서후천애심결의 1성 달성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상태창은 고깝지만 자유수련점은 아꼈다·
“한 번 주천을 해 보겠느냐? 옳지· 곧장 배우는구나· 훌륭하구나· 참으로 장한 일이야·”
서문수린이 연신 칭찬을 던졌다·
역시 차기 천하제일인의 재목이다·
그래 이제 여류 무인에게서 천하제일인이 나올 때가 되었다·
애초에 무공은 여인의 것이다·
사람에게 자연의 도를 전해주어 진기를 다스리는 법이 모두 신인 구천현녀께 비롯된 것이다·
구천현녀께서 현세에 강림하셨을 때에 모습을 감추고 본인을 소개하시기를 그저 평범한 여인에 불과하다 하여 사람들이 부르기를 그저 월국의 여인이다 월녀라 했다·
월녀가 푸른 옷을 즐겨 입으시어 또 아청이라 불렸다·
그리고 그 이름이 닿은 인연이 여기에 있었다·
자질은 이미 천개를 뚫었다·
그러면 여류 고수로서의 품격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요 망아지 같은 아가를 어떻게 사람을 만들까·
마약과 같은 칭찬 폭탄에 청이 헤실거렸다·
서문수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면 아마 그렇게 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머리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보자꾸나·”
“머리를 다스리는 방법이요?”
“그래·”
“그건 어떤 공부인가요?”
“말 그대로 여인의 생명과도 같은 머리채를 다스리는 방법이지·”
“···네?”
청이 눈을 끔벅거렸다·
왜 갑자기 머리채를 다스려?
청이 황당하든 말든 서문수린이 말을 이었다·
“제자에게 마흔 두 가지의 머리 묶는 법을 알려주마· 모두 외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야·”
“그 머리 묶는 법이 무공에 도움이 되나요?”
“이런 온통 그 생각뿐이로구나·”
서문수린이 엄한 기색을 띠었다·
“제자는 이미 여류의 고수란다· 그러나 세상이 여무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여무인이 약하면 나약한 여인이 무얼 하겠냐·
그렇다고 강하면 또 그대로 말이 나온다·
미색이 모자라면 그래 얼굴이 못났으니 무공이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냐·
미색이 뛰어나면 저 얼굴로 얼마나 많은 고수를 꿰어 저 경지에 올랐겠느냐·
무인이 적을 베어 그 수급이 천지에 날리고 피가 흐르더라도 참으로 호쾌하구나 의지가 굳건하고 기상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무인이 같은 행동을 하면 여인이 속이 사갈과 같아 악독하고 끔찍하니 저러한 살겁을 저지른다고 말했다·
하다못해 굶주린 거지에게 적선을 해도 그랬다·
사내가 하면 참으로 마음이 넓다·
여무인이 하면 그렇게 역시 마음이 연약하고 여린 여인이라 강호의 비정함을 버티지 못하겠구나 하고·
“어···”
청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선생님?
갑자기 그렇게 경로를 트시면 좀 곤란한 기분이 드는데요·
많이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데·
“그러니 강호를 떠도는 제자가 모든 여류 고수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본신의 실력과 더불어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태를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란다·”
내가··· 여류 고수의 대표?
청이 경악했다·
세상 모든 여인들 중 단 한 사람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그··· 스승님?”
“자· 그럼 이제 배워보자꾸나·”
어떤 반론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청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서문수린이 말하기를 제자의 천성이 망아지와 같아서 절대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습관으로 새겨놓아 여인다움을 바르게 만들어 주겠다고·
딱 반년만 있다가 하산하라고·
반년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던 것이 실착이었다·
그렇게 청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그 주체는 핵꿀밤이었다·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풀려있으면 핵꿀밤·
의복이 단정치 못하다고 핵꿀밤·
걸음걸이가 야단스럽다고 핵꿀밤·
발언이 가볍고 투박하다고 핵꿀밤·
식사가 아니라 먹이를 처먹는다고 핵꿀밤·
다리 좀 벌리고 앉지 말라고 핵꿀밤·
핵무장으로 국력 민생 경제 문화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모 독재자가 생각이 날 정도다·
괜히 핵꿀밤이 아니다·
한 대 맞으면 저도 모르게 입이 오무라든다·
눈가가 뜨뜻하게 달아오르며 두개골에 금이 가고 두피가 찢어지는 아픔이 따른다·
청이 진작 도망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진장명의 덕분이었다·
“언니 괜찮아?”
“죽을 것 같아· 이대로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어떡해· 언니· 안 그래도 몹쓸 머리가·”
진장명이 청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쓰다듬지 마라· 머리 풀려·”
아청이 머리를 풀고 다시 붙잡아 틀어올렸다·
오늘은 이십 삼 번· 비녀 두 개 줄이 하나·
생각하지 않고도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손길이었다·
오 개월 다섯 달 동안 처맞으면 이렇게 된다·
진장명이 앞에 털썩 앉아 등을 내밀었다·
“나도· 해 줘·”
“귀찮아· 니가 해·”
“나도 귀찮아·”
진장명이 그대로 뒤로 드러눕더니 머리로 청의 배를 꾹꾹 눌러댔다·
청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몇 번?”
“삼십 오 번·”
“하필 삼십 오냐·”
청이 진장명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옆머리를 두 갈래씩 땋아서 한 바퀴 둘러 꿰야하는 삼십 오 번 머리다·
정말로 귀찮기 짝이 없는 머리법이었다·
고작 다섯 달 만에 진장명은 볼품없는 열 살 꼬맹이에서 쪼그만 여중생쟝이 되고 말았다·
성장보다는 진화에 가까운 변화였다·
원래 순음지혈와 같은 희귀 선천지기의 소유자들은 단전만 생기면 그 내공의 성취가 아주 쭉쭉이었다·
거기에 대환단의 약성까지 고스란히 처먹었다·
진장명은 내공으로 한정해 벌써 일류 후기를 넘었다·
몸이 건강해지니 키도 자라고 살도 붙었다·
다만 서문수린이 말하기로는 이미 성장할 때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여기서 얼마나 더 크지는 않을 거라나·
“곧 미시지? 오후 수련하러 가야지·”
“응·”
청이 자신의 모옥을 나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쩌다보니 한편 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