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2
월녀검결은 워낙에 불편한 검술이다·
매 초식마다 가장 어울리는 칼이 길이 무게 모양이 모두 달라 몇몇 초식은 아예 건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검과 도를 구분하지도 않았으니 남궁신재가 말하였던가 둘이 다르지 않아 그저 칼이라 불리던 저 먼 과거의 검술이라 그러했을 것이라고·
음· 검우 검지인 뭐 어쨌든· 아주 검타인 검원수까지도 가겠어·
검에는 빠삭한 것 같더니 그래도 이번에는 틀리셨구만·
월녀검이 여러 칼을 써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에 쥔 것이 검이었음을·
긴 가지 짧은 가지 흔들리는 버들가지와 부지깽이와 쇠막대 날이 없어도 단면이건 양면이건 그저 손에 쥐어 검이었기에·
어느새 청은 제가 벽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시야를 몽땅 가릴 정도로 높은 벽·
그 너머에 뭐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게 저 하늘 끝까지 쌓아 올려 결코 넘볼 수 없도록 세상을 단절한 방벽이었다·
거기에 난 거대한 철문을 본다·
좌우로는 내달려야 할 정도로 넓고 청의 몸통 두 배는 되는 거대한 경첩이 무수히 저 위로 이어져 까마득하다·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근엄하게 생긴 주제에 잔뜩 붙은 것들이 깨알같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라·
갖가지 모양과 언어의 출입 금지 부착물들이 난잡하게 붙어있으니 이건 무슨 현대 미술도 아니고·
오냐· 이게 벽을 넘는다는 현상인 모양이지?
진짜로 벽이 있네? 문 열고 나가면 초절정이겠지?
그럼 나가야지·
청이 짝짝 손을 부딪쳐 털고서 양 손바닥을 단단히 붙였다·
그리고 힘껏 밀어붙였다·
기이이익 문짝이 둔한 비명을 지른다·
청이 온 힘을 다해 문을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얘 너머로 나가려고?
청이 고개를 돌리자 멋지게 뻗은 나뭇가지를 쥔 여자아이가 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잘 빠졌는지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한 물건임에도 탐이 날 지경이었다·
음 혹시 구천현녀님이신가?
그게 중요해? 그런데 나갈 테야? 저 밖에 뭐가 있을지 알고? 두렵지도 않아?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하는 말두 몰라? 이불 밖도 그러한데 저 밖으로 나갈 거야?
청이 주춤한다·
어· 이거· 혹시 좀 위험한 건가·
그에 아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저 너머는 별빛의 세상인걸· 자· 들어 봐·
저 너머에서 네가 오기만을 널 잡아먹길 고대하는 거대한 악의가 어떠한지·
벽 너머로부터 거대한 표효가 대지를 뒤흔든다· 악의 그 자체와 같은 울부짖음이·
청을 부르는 소리다·
어서 오라고· 널 기다리고 있노라고·
네가 살며 느낀 알량한 고통이 결코 고통이라 할 수 없는 장난에 불과했음을 모든 장기를 각각 떼어 전시해도 죽지 못하는 그 영원한 아픔 속에 가두어 놓겠노라 으름장을 놓는 소리였다·
청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다리 뿐이랴·
손이 몸이 턱이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이빨을 따다닥 부딪쳐대며 무서워서 저 너머에 도사린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
거봐· 그냥 얌전히 기다리는 게 낫지?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네게로 해결책이 날아오지 않겠어? 초절정에 이르는 임무가 언젠가는 나타날 텐데· 굳이 너머에 뭐가 도사리는지 모르는 털끝 하나 엿볼 수 없는 이딴 벽이나 넘지 말구· 그냥 안전한 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잖아·
그러나 청은 떨지언정 쓰러지지는 주저앉지는 않았다·
청이 아이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젓는다·
뭐야· 구천현녀님인 줄 알았네· 아니었잖아·
그러자 아이가 훌쩍 자라나 여인의 태를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녀 거울을 보면 항상 거기에 있는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놀라운 미모를 겸비한· 도대체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고 늘 짜릿한 아름다움이·
청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내 놔·
그러나 청의 거울상은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을 치며 멀어지며 청을 만류한다·
아직은 아냐· 기다리자· 기다리면 해결이 될 거야·
네가 정말로 저걸 저 너머의 악의를 감당할 수 있어?
청이 아직 떨리는 몸을 하고서도 웃는다·
달라니까 안 주고· 안 줘도 어차피 내 거거든?
그리고는 어느새 청의 손에 들린 검이 한 자루·
볼품없는 반토막짜리 녹슨 검·
그래· 오랜만이지· 월광검이 굶주릴 때도 되었는데· 그간 무심해서 밥을 안 줬나보다·
내일은 언제나 두렵다· 미지의 악의는 언제나 내일에 있었다·
그러나 언제 한번이라도 내일을 미리 알아 엿본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내가 죽지 못했던 죽을 수 없었던 이유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그래·
어쩌면 내일은 이걸로 쥐라도 한 마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씨 좋은 행인에게 겨워서 은자라도 한 개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수련점 채워서 일 성 더 올리면 왕거지 놈도 죽일 수 있을까·
그러니 괜찮을 거다·
언제는 두렵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잘 해왔듯이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청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여전히 두렵고 떨리지만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청의 손이 떨어져 내렸다·
월광검이 시리게 푸른 달빛을 뿌린다·
거대한 방벽에 빗금이 간다·
구우웅 세상이 기우는 소리· 천천히 저 뒤로 쓰러져 넘어가는 거대한 방벽 꽈릉 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자욱하게 하늘과 땅 사이를 전부 메우는 흙먼지·
점차 가라앉기 시작하여 그 너머에는·
뭐야· 아무것도 없네· 별거 아니었잖아·
청이 배시시 예쁜 미소를 지었다·
—-
서문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갑자기?
특등석의 고수들도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조마조마하게 유년기의 한 무인이 드디어 알을 깨는 모습을 지켜본다·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내는 미약한 별빛 한 무인이 제 심상으로 빚어 스스로 빛나는 온전한 순간이다·
관객들도 모두 숨을 죽인다·
무학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왜냐하면 별의 탄생 새로운 별이 넓은 우주 속에 자리를 잡아 최초로 그 색채를 토해내는 순간이기에·
그리하여 신성이 그 첫 울음을 토한다·
순간 지켜보던 관중들이 헉 폐에 들어찬 공기를 일시에 빼내고 만다·
그저 남은 것은 한 자루의 검·
분명 검을 든 여인이나 여인을 보면 검이 보이지 아니하고 검을 보면 여인이 보이지 아니하니 둘의 구분이 없어 사람과 검이 하나 검을 쥔 검객으로 완성이 된 형상이다·
사람이자 검 검이자 사람이 춤을 춘다·
청의 단전에서 와글와글 진기들이 서로 부딪쳐 구겨지고 짓이겨지면서도 먼저 나가겠다고 난리를 부렸다·
최초로 별빛으로 맺어지는 순간 이 순간 도가의 선기건 마공의 마기건 절대로 놓칠 수가 없는 존재의 증명이기에· 그리하여 모든 진기가 일시에 풀려나온다·
부드럽게 너울거리며 휘몰아치는 느릿한 검· 색색의 검강들 저무는 노을처럼 따스한 노랑 희망찬 봄의 푸름이 온통 새까맣게 집요한 원한이 냉랭하게 희고 차가운 냉기· 그리고 음란하기 짝이 없는 붉은· 다섯가지 색의 꽃잎들이 풀려나온다·
오방색 모든 색의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천하의 색을 말함이다·
수천 수만의 검강들이 꽃잎으로 흩날리니 한들거리며 흐르고 저들끼리 뒤엉켜 까불거리고 회오리치며 용솟음치며 온 사위를 그저 찬란하게 빛내는 색채의 무용이다·
그야말로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이어졌으면 하는 절경·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덧없으니 결국 시들어 지고 마는 것이라·
천지를 메우던 색채가 자취를 감춘다·
아아 하는 탄식이 모든 이에게서 동시에 터져 세상이 온통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청이 눈을 떴다·
“후· 뭐 별것도 아니네·”
“서문 소저? 방금 도대체 무엇을···?”
공손요예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제 눈으로 본 광경이 믿기지가 않아서·
“방금 그 그 무공은 그게 대체 뭐죠?”
다급히 재우쳐 묻는 공손요예를 보고 청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응? 내가 뭔가 했어? 미안 비무 중에 멍하니 서 있었지? 그래도 이제 벽을 넘었다 이 말이야· 이제 이 몸 초절정 청 나를 초절청이라고 불러주시겠어요? 그럼 다시 해 볼-”
청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유류연련 수련을 마쳤을 때처럼 전신의 모든 근육이 ‘이제 한계다 차라리 죽여라·’ 하고 절규하듯 일시에 파업에 들어갔다·
“어 어?”
청이 진기를 돌려 억지로 일어나려다 텅 비어버린 단전에 당황했다· 정말로 진기 한 줌 한 숨으로 드는 미약한 내공조차 남지 않아 깨끗하게 비어버린 단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단전을 비워본 적이 없는 청이었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는·
남은 것이라고는 단단히 눌러붙어 말도 안 듣는 바윗덩이같은 파천마기가 전부였다· 어차피 못 쓰는 거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이지만· 그나마 움직이던 아주 일부분도 사라졌으니 뭐야? 초절정 되면 자원 초기화라도 되나?
자원을 채워주는 게 아니라 비워주는 거?
“음· 그· 내가 비무를 계속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미안· 한참 흥이 올랐는데 이만 빠져야겠는걸· 저기요 심판분-”
청이 막 심판을 불러 패배를 선언하려는 때였다·
우르르 진동과 함께 선상비무대가 요동을 치고 흔들리나 싶더니 와장창 무너지며 쏟아져버렸다·
풍덩 청이 대운하 물길 속에 떨어졌다·
다행히 토막토막 크고 작게 잘린 나무토막이 수면을 가득 메워 둥둥이라 청이 개중에 하나 튼실한 것을 잡아 매달리려는 때에-
어림도 없지! 청의 모든 근육이 그렇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경지를 한참 뛰어넘은 신위를 무의식적으로 마구마구 펼쳤으니 전신 근육이 고문 수준으로 혹사당한 이후다·
청의 근육들이 그 원한을 제 주인에게 토해놓았으니 근육의 복수는 바로 경련 쥐가 난다고 하는 세상 가장 끔찍한 고통 중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다·
“악! 쥐! 쥐! 엎 으프 꿀꺽 쥐! 살려!”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어깨와 등 근육 그리고 목 근육까지 마구 발광하며 원한을 풀어낸다· 심지어 턱 근육까지 왜 턱에도 쥐가 나냐!
청은 몰랐지만 의외로 턱에 쥐가 나는 일은 아주 흔한 증상이기는 하다· 밥을 너무 열정적으로 먹으면 간혹 일어날 수 있다·
청이 놀라야 할 부분은 턱 근육이 아니라 복근이다· 복직근에 쥐가 나는 일은 정말로 드문 일인 것이다·
“어윽 펍 꼴깍 파핫 컥 끄엑·”
요동치는 턱 근육에 청이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물만 아주 배가 터져라 들이켰다· 그러다 코로 물이 들어서 기도가 화끈하니 불에 타는 것처럼 아프고 정신은 하나도 없고 살려 사람 살려···
청이 까무룩 의식을 잃어갈 때에 어쩐지 사부님이 얼굴이 보인 것도 같고·
비무회의 성대하고 비참한 마무리였다·
—-
본래는 비무회가 끝나고 나서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인사를 드리는 식순이었다·
하지만 청이 선상비무대를 너무 빠르게 철거해준 덕분에 식순은 무산되었다·
여담으로 무림맹 진행위원들은 진심어린 비명을 질렀더란다·
일단 모든 식순이 엉망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만들어 짜고 사람을 통제해야 하는 군사부 위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선상 비무대를 곱게 해체해다가 목재로 내다 팔 생각을 하고 있던 총무부는 우주적 공포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고·
“어 제가요? 제가 그랬어요?”
청이 눈을 끔벅거렸다·
신검합일? 내가 검이랑 합체를 해?
그게 말이 되나?
사람이 어떻게 검이랑 합체를 해?
‘그 표정’을 본 서문수린이 낙심했다·
이건 글러먹었구나·
그냥 무아지경에 어쩌다 한번 속에 든 것이 풀려나온 모양·
그래도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 몸으로 펼쳤으니 아주 호재 좋은 일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초절정을 이루었으니 대견하기 짝이 없는 제자이기도 하고·
이로써 최연소 초절정 기록도 갱신·
여류 무인 서문청이 무려 딱 방년· 스무 살에 이룬 것으로 무림사에 영구 불멸 남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청의 추태는 기록에 남지 않았다·
최연소 잠룡비무회 우승자이자 최초 여류 무인 우승자 동시에 최연소 초절정 무인 달성과 여류 무인 최연소 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운 경이로운 업적의 소유자가 전신 근육의 반란으로 곧장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다는 어이가 없는 추태였다·
다행히 청의 상태를 주시하던 서문수린이 곧장 검 타고 날아가 핵 병기의 정밀 타격으로 능숙해진 제자 찾기로 건져왔기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무림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연이 발생할 뻔한 것이다·
그때 신녀문 제자가 물에 빠져 죽지만 않았더라도 두 번째 무천대제 무천무후가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겠느냐 뭐 이런 아무런 의미 없는 과거사의 이랬다면 하는 그러한 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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