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9
사마춘봉이 만족스러운 인세의 동반자 혹은 천재들끼리의 자존심을 건 숙적과의 대담을 반추했다·
“그래· 승패를 가려 봐야지·”
일단 외모·
음· 아름다움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 법이니 화려하지만 새초롬히 도도한 미모와 본녀의 한 자루 잘 버려진 명검과도 같은 미모의 우열을 가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동 동점· 무승부 무승부다!
하지만 천화검은 여인치고 키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적당히 큰 본녀의 승리·
가슴은 본녀가 더 크지만 으음 천재의 소양이라는 측면에서 본녀의 승리·
업적으로 따지면 혈교 토벌과 잠룡비무회 우승 불쌍한 짐승의 계몽 정도겠지만 이 역시 무림맹의 부군사보로서 수많은 업무를 처리해 민생을 위로한 본녀의 승리·
그리고 두뇌의 뛰어남 역시 본녀의 승리·
물론 무인으로서 경지로는 패배다·
하지만 총군사가 될 몸으로서 일개 개인의 무력보다 모두를 지휘하는 본녀의 힘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크큭 본녀의 압승이로다· 천화검 본녀와 어깨를 견주려면 더욱 분발하여야 할 것이야·”
워낙에 천재이자 완벽한 사마 랑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아예 덜떨어진 범재들과는 달리 본녀와 어울릴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아주 만족스러운 결론이었다·
청이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서 서문수린류 핵폭격을 가했을 만한 사항이었다· 무력이 뛰어나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면서·
—-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딴 여인을 데려와선 동침하자고 그렇게 당당하게·”
“미안· 그런데 모용 소저 꼴 좀 봐· 아주 개판이 됐잖아· 밤에 아예 잠을 못 잔대· 너도 그간 봤잖아· 연무장에서 궁상떨고 있던 거· 내 목소리 들리면 안심이 돼서 그렇게 궁상맞게 졸고 있었대·”
당난아는 모용주희의 피랍 사실을 아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칫· 하는 수 없지· 청아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저런 뻔한 수작에 넘어가 주고·”
너무 착한 청(취미 살아있는 악인 해체)이 정신이 아픈 애를 돌보겠다는데 근본이 의원인 당난아라서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미리 말해두는데 난 너 싫어· 그런데 또 청아 아프게 하고 그럴까 봐 감시하려고 같이 자는 거야· 이런 걸로 혹시나 친구라던가 그딴 생각은 하지도 말아·”
당난아가 그리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모용주희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성깔은 아니었으니·
“하· 누가 할 소리를· 독 풀어놓고 사과 한마디 안 하는 또라이 미친년이 세상에 누가 너 같은 년이랑 친구를 하는데?”
“쓰읍· 모용 소저· 나쁜 말 안 돼요·”
“하지만 쟤가 쟤가 먼저 그랬잖아요·”
“난아가 죽으면 모용 소저도 죽을 거예요?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굴 거예요?”
거의 아니 아예 애 취급이다·
그러나 모용주희도 거의 애처럼 굴었으니 상황에는 맞았다고 해야 하나· 모용주희가 억울하게 볼멘소리했다·
“하지만 하지만···!”
“쓰읍· 혼나요· 그리고 난아는 나쁜 말은 안 했잖아요· 난아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앗 혼이 그게 당 소저 미 미···”
모용주희가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외쳤다·
“미친년아!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아흑·”
결국 호되게 꼬집히고 나서야 모용주희가 사과를 건넸다·
사과를 받는 당난아의 표정이 떫었다·
“뭔가 뭐지? 좀 이상한데· 왜 기분이?”
“미안하다잖아· 좀 받아주고 그래·”
“아니 얘 좀 이상하지 않아? 이게 무슨 되게 만족스러운 표정이잖아·”
“원래 먼저 사과하는 쪽이 후련하고 막 그래· 모용 소저 참 잘했어요· 그런데 벌을 받기 전에 말 좀 들으면 안 될까요?”
“그 그게 음· 팔 안쪽은 적응이 좀 된 것도 같아요 다른 데 다른 데를···!”
“봐바 쟤 좀 이상하다니까·”
“아파서 그래· 아파서· 괜찮아 질 테니까· 그렇죠 모용 소저?”
“네· 덕분에요· 항상 감사해요·”
당난아의 눈이 가늘어진 채로 떠질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당난아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모용주희가 앞으로 청을 뒤로 당난아를 끼고 누워서는 거의 호흡 네 번에 까무룩 기절을 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디든 누우면 일 각 안에 자는 청조차 숨을 네 번 들이쉬고 네 번 마시는 동안에 잠들지는 못했으니
도대체 그간 얼마나 피곤했길래 이렇게 실신을 하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에 청이 당난아를 타박했다·
“거봐· 그간 얼마나 못 잤으면 이래? 왜 아픈 애한테 자꾸 이상하다느니· 물론 애가 좀 막돼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잘 해줘· 원래 아플 때 기억이 오래 남는다?”
“끙· 얘가 진짜 정신적 충격이 컸었나 봐· 나는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나····”
—-
새로 급조된 대연단이 개봉 구석에 있는 바람에 무림맹에서도 제법 거리가 있게 되었다· 수상비무대를 누군가 제대로 해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군가는 일찌감치 폐회식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갑자기 면사녀 대량 출몰?”
아닌 게 아니라 면사를 쓴 여인이 계속 눈에 띄는 것이다·
일행에 팽대산이 있었으므로 여인의 인구 밀도는 넘치다 못해 장벽을 형성하며 주욱 폐회식장으로 밀려나는 형세다·
그러니 그 중심에서 주변을 죽 둘러보면 다섯 중 하나 꼴로 면사를 썼다·
청이 그에 으쓱거렸다·
“이런 중원에 유행을 선도하고 말았군· 그럴 만도 하지· 초절정 초절청님을 따라 할 수밖에는·”
“하· 웃기는군· 스스로를 너무 과대 평가하고 있지 않나·”
“왜· 뭔데· 틀린 말 했나? 나 따라한 거 아닌가?”
“따라 하기야 널 따라 했겠지만 결국엔 나한테 잘 보이려는 수작이겠지·”
“에이· 산이야말로 자의식이 비대한걸· 무슨 온 세상 여인들이 다 산에게 잘 보이려고 음· 보이려고 하나 보다·”
팽대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던 청이 순간 일제히 향하는 면사의 모자챙에 말을 바꿨다·
면사를 뒤집어쓸 만큼 절박한 연심이다·
청의 무엄한 여우짓에 면사를 뚫을 정도의 강맹한 눈빛을 쏘는 것이다·
“그 소문도 안 났대? 왜 여인들이 아직도 벽을 세워서 쫓아다녀?”
“그 소문은 났어요· 그 젖이랑 궁둥이만 큰 여인이 면사만 쓰면 거지라고 해도 눈이 뒤집혀서 달려든다고 저도 우리 참여인회 회원들에게 들었어요·”
모용주희가 쪼르르 일러바쳤다·
용봉지회의 모용주희네 패거리 이름하여 참여인회 회원들이 걱정하러 많이 와 주었다고· 와서 떠들던 이야기 중 셋 중 하나는 옥기린 이야기였으니 요즘에 천하제일미남의 취향이 심상치 않다면서 한 말이었다·
“그렇다는데?”
“바뀌는 것이 없길래 소문이 안 퍼진 줄 알았더니 다행히 잘 퍼진 모양이군· 그런데도 아직 이 꼴이라고?”
팽대산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청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지랑 붙어먹은 놈이라고 소문이 쫘악 퍼졌는데도 여전히 아· 거지 차림 하고서 이제는 면사까지 썼구나·
꽃거지 대량 양산이네····
어쩐지 거의 개근에 가까운 반검쌍도회 최고 열혈 회원이다 싶더니 천하제일미남의 애로가 여전하여 대피를 온 것이었다·
“저기 산· 혹시 말야·”
“뭔가·”
“그럼 가슴을 훌러덩 까고 다니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 볼 생각은 없어?”
“왜지?”
“어디까지 따라오나 궁금하지 않아? 사실 사심 가득하긴 한데· 보기 좋잖아· 어차피 보는 풍경이면 살색이 좀 많이 비쳐야지·”
“흠· 천하의 색마 취급이라도 당해야 좀 떨어져 나갈 것 같으니 상관이야 없다만· 어떻게 소문을 낼 생각이지? 네가 옆에서 네 말대로 남들 앞에서 훌러덩 까고 다닐·”
팽대산이 말을 하다 말았다·
그리고는 안색이 딱딱해지는 것이 청이 그 표정을 읽었다·
뭐지 왜? 왜 기분이 상했지?
그와는 별개로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말고· 어디 보자· 오 저기 단흉한 소저 보여? 청의에 붉은 채대· 와· 저대로 살짝이라도 뛰면 다 쏟아지겠네· 자· 이제 저길 뚫어져라 봐·”
“뭐?”
“그냥 시야에서 제일 살색 많은 여인만 계속 쳐다보면 되는 거 아냐? 그러면 다들 어딜 보나 하다가 어머어머 팽 공자님이 가슴 보신다 당당하게 보신다 하면 이제 뭐 다들 따라 하는 거지·”
남들 골탕 먹일 때만 아주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청이었다·
“흠· 나쁘지 않군·”
팽대산도 도대체 저 행색이 어디까지 해괴해질수 있나 궁금했던 참이었다·
이미 다섯 중 하나는 거지 차림을 하고 넷 중 하나는 면사를 쓰고 있는 참이었다· 심지어 가슴과 엉덩이가 심히 부자연스러운 여인도 종종 눈에 띄었으니 뭘 넣으려거든 표는 안 나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내 하나 여인 하나가 파인 복장만 노골적으로 쳐다보면서 폐회식장으로 들어서니 팽대산의 하해와 같은 미모를 관찰하던 여인들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않으며 해산하고 말았다·
반검쌍도회 회원들이란 본래 청 빼고는 죄다 정파 무림의 미래 지도자 즉 지배층에 속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과 겸상하지 않는다·
사다리 위에 마련된 특별석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특별석 좌석에 척 앉자마자 생각이 들기를 이건 또 언제 끝나나 시작하기도 전에 지루해지고 만다·
폐회식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 했지마는 그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혈교 토벌 소식이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비밀 작전을 통해 혈교의 사악한 종자를 물리쳤음을 기쁜 마음으로 강호의 동도들께 알립니다!”
“와아아!!”
“무림맹 최고다!”
가히 열화와 같은 성원이었다·
그리고 또 우리도 흑점 조진다는 선언·
하지만 마교를 돕는 것은 아니고 그리고 따라하는 더더욱 절대 아니다·
비밀 작전으로 혈교 잡느라고 미뤄두었을 뿐이지 세상의 해악을 끼치는 사악한 흑점 무리를 손 놓고 방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노라고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이 선언 이후에 창백하게 질려서는 급히 빠져나가는 사람이 제법 나왔다·
이것이 바로 정파 무림의 협의다·
흑시는 반은 무인이요 반은 양민들이라·
미리 말을 하고 조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부터 제대로 조져놓을 테니 빠질 놈은 빠지라고·
그 이후에는 진주언가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십대 세가의 발표였다·
“지난날 우리는 정파 무림의 큰 기둥 하나를 잃어야 하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허나 기둥 잃은 슬픔에 집을 보강하지 않는 누를 범할 수는 없는 법· 그리하여 강호의 여러분께 새로운 기둥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청이 연단 위에 선 공손요예와 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십대세가는 공손공가다·
사마춘봉의 주장에 따르면 사마세가는 본래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가풍이라나 뭐 어쨌다나·
떨어진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해 봐야 아무 설득력도 없었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고·
공손요예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굳이 오지도 않았을 터다·
중대 발표라고 해도 구대문파 십대세가 그 외 굵직한 고수들은 이미 전해듣거나 혹은 아예 판단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폐회식에 참가한 높으신 분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구색 맞추기로 방파마다 적당히 높으면서 적당히 떠넘김을 받을 만한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
서문수린은 아예 문파를 오래 비웠다면서 떠나버렸으니 이미 볼장을 다 본 사람의 홀가분함으로 웃으며 떠나가셨더란다·
자랑할 만큼 다 자랑하고 잘난 제자를 향한 부러움이란 부러움은 아주 다 받아낸 서문수린은 청이 보기엔 와 저렇게 웃으실 줄도 아시는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청이 같이 떠나지 않은 이유야 땡중들과 같이 소림사 절검벽 보고 겸사겸사 빙 둘러 최대한 보고 돌아오라는 분부 때문이었다·
그리고 친구네 집에 경사가 열렸다는데 어째 축하도 해 줘야지·
청도 열심히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환호를 날려 주었다·
공손요예가 귀빈석을 훑나 싶더니 용케도 청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환한 아주 해맑게 미소짓는 여인의 그 유난히 하얀 건치가 반짝 빛난다···
유월의 끝물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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