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0
중원 사람들에게 있어서 순위 선정 및 분류 작업이란 각별하다·
고대 원시 미개한 중원에서 놀려면 돈이 들어가니 돈푼 안 들이고도 즐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놀잇거리라고 해도 좋았다·
그리고 무림대회란 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최고의 놀이에서 정보를 선점하여 먼저 즐길 수 있는 거대한 행사이니 온 중원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는·
그리하여 현 개봉을 뜨겁게 달구는 소재는 바로 서문청이었다·
스무 살에 초절정에 진입한 그 위대한 무천대제마저 이루지 못한 고금제일 말 그대로 과거에서 이어지는 유구한 세월 속에 가장 빨리 성취를 이룬 역사의 기린아다·
그러니 무공에 대해서는 차기 천하제일인이자 현 후기지수중 최강자 그야말로 잠룡지후 잠룡제일인 중원제일후기지수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래서는 재미가 없다·
순위 및 분류 놀이란 서로의 의견을 뜨겁게 부딪치는 격렬함에 있는 것이니 과열되어 상대의 대가리를 깨고 패싸움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한 과격함이 있어야 참맛이 나는 것이다·
서문청이 천고의 기재라는 사실은 모두가 이견이 없었으니 자연스레 중원 사람들의 전투 본능은 그 아름다움으로 향했다·
청이 보통 당난아를 끼고 다닌다·
요 며칠은 모용주희도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서 돌아다닌 상태였다·
그러니 스스로 비교를 자처한 꼴이다·
청의 고향 식으로 표현하면 배우 옆에 가수가 붙어다니는 느낌이었으니 따로따로 보면 각개가 엄청난 미인이지만 같이 보면 개중에 한 여인만 눈에 들어오더라 하고·
그러니 꽃중의 꽃 가장 아름다운 꽃·
꽃 중에 천화가 있더라·
화중천화 서문청!
사실상의 천하제일미인 칭호였다·
그러나 여기서 큰 전쟁이 벌어졌다·
무림오화도 각기 다른 매력을 갖춘 여인들이다· 취향과 성향에 따라서 각기 저마다 추종자들이 있는 상태라서·
애초에 무림오화는 이단 일중 이장·
당난아와 모용주희는 이단 키가 작은 두 명이다·
독화와 검화는 추종자들의 취향이 아담하고 귀여운 여인상에 있다·
그러니 청을 보고도 아름답기야 더 아름답지만 위 중앙 아래 순으로 너무 크고 너무 크고 너무 커서 삼진 과다로 과함이 과해 취향은 아니라고·
그래도 둘이 굳이 청 옆에 붙어 비교를 당했으므로 그 추종자들도 청의 미모 하나는 인정하는 바다·
귀엽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하제일미라 할 수 있겠다고 시원하게 인정했더란다·
그러나 다른 셋의 추종자들은 아직 반발이 심한 상태다·
일단은 일중· 키조차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 특색이 없는 백합 진설·
진설의 매력은 가장 완벽한 크기와 모양으로 소문이 자자한 그 가슴이다· 백합이 과감한 단흉으로 훤히 까고 다니는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이장· 키가 큰 편인 두 명·
차가움에도 요염한 눈물점이 대비되어 화룡정점을 찍는 늘씬한 냉미녀인 설화·
차갑지만 내 사내에게는 누구보다 뜨거울 것이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설화의 추종자들이다·
그리고 흉악한 인상임에도 누구나가 인정하는 미인이라면 그야말로 제일의 미인이 아니냐는 논리를 펼치는 현화의 추종자들·
그러니 새로 생긴 서문수호단 추종자들과 독화 검화의 세력들이 청을 천하제일미로 밀고 나머지 셋의 세력이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천하제일미인 화중화 서문청이었으나 결국 무수한 패싸움으로 대가리가 여럿 깨져나간 끝에 화중천화 서문청으로 애칭은 천화라고·
그러니 청이 무림제일미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셋과도 딱 붙어다니며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하고 미모를 과시하던가 뭐 여러 귀계와 책략이 있겠지마는·
물론 청이 아무 생각이 없다·
“하· 내가 예뻐서 뭐해? 내 님이 예뻐야지· 어차피 내 얼굴이 내 눈에 보이나?”
청이 하는 말이 이러하니 가끔 거울 들여다보면 늘 새롭고 짜릿하긴 해도 딱 그뿐 괜히 사람 몰려서 귀찮기나 하지·
게다가 네 얼굴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여 유명해지라면서 서문수린이 면사를 압수하여 가져가 버린 탓에 감출 수도 없고·
그래도 청은 별 생각이 없다·
사내들은 옥기린의 추적자들이 하듯이 막 극성으로 유난을 떨지 않는다· 흘끗흘끗 사시처럼 눈동자만 열심히 돌리다가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넘어지거나 할 뿐이니까·
그 아니라도 본래가 사람이 담백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러한 천성으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만날 때는 따뜻하게 반기고 놀 때는 잘 놀고 헤어질 시간에는 시원하게 갈라서야 한다·
의외로 꽤 흔한 부류다·
먼저 연락은 하지 않으니 잠수를 타는 것 같다가도 연락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근하게 대답이 돌아오는 인간상들·
그러니 눈물을 글썽이는 당난아를 사실 조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면 또 언제 봐···”
“어쩌다 보면 또 보지 않을까?”
“뭐얏 나만 아쉬워? 청아는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 헤어지면 기약도 없는데·”
“에이 내가 당문에 놀러 가도 되고 아니면 난아가 신녀문에 놀러 와도 되고· 그 아니라도 무림오화가 떴다고 하면 벌써 그 주변까지 소문이 자자할 텐데· 근처에 있으면 내가 안 찾아갈까 봐·”
“왜 남일처럼 말해? 너도 꽃이야 하나 더해서 무림육화잖아·”
“아직은 비공식 아닌가? 뭐 초절정 초절청이 떴다고 하면 난아가 만나러 와도 되겠네 그럼·”
“으이구·”
당난아는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혈교의 고독을 입수한 당가다·
당가의 가장 뛰어난 독제사 중 한 명이 그 연구에 빠질 수는 없으니 그리고 본인 역시 하루빨리 미지의 독정을 알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상태이기도 하고·
그렇게 끝나자마자 고독하고 놀아야 한다며 허둥지둥 당가가 떠나버리고 그리고는 하나둘씩 먼 길 혹은 가까운 길을 떠나는 것이다·
“검후배 다음에 만날 때는 초절정끼리 볼 수 있겠어? 이거 친구라고는 해도 영 격이 맞지 않네·”
“크윽· 두고 보세나·”
남궁가는 안휘성으로·
“청아가 이참에 놀러 오면 딱 좋을 땐데· 하북 땅은 정말로 시원하거든· 올 여름은 더울 것 같다고 하니 피서를 오려거든 꼭 가문에 들르려무나·”
“네 초려· 산도 잘 가고·”
“다음에 보지·”
산이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서문 소저 혹시 강소성을 지날 일이 있다면 꼭 남경의 본가에 들러 주시겠어요?”
“오· 남경· 남경· 왜 입에 익지? 남경에는 뭐가 있어? 뭐가 유명해? 혹시 폐가 아니면 장명이 데리고 다녀오기에 적당하려나·”
“어· 그· 남경은···”
공손요예의 어깨가 축 처졌다·
“더워요····”
중원에서 가장 더운 도시를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남경이다·
물론 중원에는 사막이 여기저기 존재하지만 애초에 그런 변방은 새외 중원 땅으로 안 친다·
청의 고향 한민족들이 수도 이외를 모두 시골로 분류하는 이치와도 통한다 하겠다·
“에이 더워봐야 뭐 얼마나 뜨겁겠어· 내가 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뜨거운걸? 우리 애정이 겨우 더위에 넘어가는 사이야?”
“앗···”
청이 얼굴을 붉히는 공손요예의 손을 꼭 잡아주며 자연스럽게 속으로 생각했다·
더운 건 딱 질색인데· 가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조만간 다시 볼 사이들이니까·
난아와는 달리 무림맹과 가까이에 사는 후기지수들은 가까운 만큼 쉬이 불려나간다· 원래 한 방에 같이 살아도 불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매번 켜는 법이었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한참 내세우기 좋은 청년 초고수인 청도 그러할 예정인 것이다·
여류 고수의 대표이자 최초의 여류 천하제일인으로 세상에 아주 적극적으로 팍팍 내세워지기를 바라는 서문수린의 바람과도 통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청이 피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아유 너무 싸돌아다녔더니 뼈마디가 다 시린다· 올겨울엔 제자가 팔다리 좀 주물러 주냐? 나도 제자한테 수발 좀 받아 볼 수 있냐?”
“그럼요· 제자가 팍팍 주물러 드릴 테니 그때까지 관절 열심히 시리고 계세요·”
“욘석이·”
절검벽 한 바퀴 돌아 신녀문에 돌아갔다 가을까지 지내고 올 겨울에는 한림원에서 못다한 신투 수련을 끝마치는 일정이었다·
“옜다· 이제 돌려줄 때지·”
“앗· 맞다· 내 복신적·”
청이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보물을 보고 반색했다· 사실 뭐 피리 불 일이 있어야 그립든 말든 하지 옆구리에 안 끼고 다니니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천유학이 혀를 쯧쯧 찼다·
“아니 이 귀한 걸 맡겨놓고는 아맞다가 뭐야 아맞다가·”
“에이· 무인이 피리 챙겨다가 뭐 해요· 아· 그럼 이건 돌려 드려야-”
“됐다· 너도 꼴에 여인인데 여인이 비수 하나쯤 품고 다녀라· 혹여 못된 놈이 못된 짓 하려 들면 푹 찔러버려· 천하에서 제일 날카로운 단검이니 힘은 크게 안 줘도 될 거다·”
“헤헤 감사합니다·”
청이 청자검을 다시 품에 챙겨 넣었다·
천유학은 밀린 한림원 학사업무를 봐야 한다면서 넌더리를 치며 떠나갔다·
“그 서문 소저·”
“모용 소저· 몸은 좀 어때요?”
“덕분에요·”
모용주희는 요 며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마음도 정했다·
그간은 속에 끓는 미움들이 너무 많았다·
그 혹독하고 처참했던 고문들 고통 뿐만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한 끔찍한 시간들·
그걸 해소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속이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증오가 청에게 향해버리고 말았다·
네가 조금만 일찍 와 줬다면 아니면 네게 그런 끔찍한 해체를 경험하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미워 너 때문이야·
그러나 이제는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결국 평생 지고 갈 아픔임을 문득 생각날 때마다 몸서리치며 아파할지라도 버티고 버텨서 언젠가 흉터만 남도록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용주희가 보는 서문청은 괴물이었다·
산 사람을 해체할 때 느끼고 말았다· 그 처참한 분해를 이루어내면 귓가에 번지던 교성에 가까운 음란한 희열· 그래서 괴물이라고 미워해도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미쳐버리지 않으면 버티질 못하니까· 서문 소저도 그런 아픔이 평생을 가지고 갈 어떤 광증이 있으리라고·
그러고 나니 그 고마움을 알겠다·
자신이 아픔에도 남을 보듬어줄 수 있는 그 선량함이 나름 선의를 베풀었던 행동이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품속이 괜찮다 괜찮을 거다 하는 속삭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고마워요· 내게 해준 것들 전부 다요· 날 구해주고 이끌어 주고 보듬어 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이 말을 아직 안 했던 것 같아서요·”
“아유· 이제는 생색을 내도 되는 각이에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흥· 그럼 잘 가요· 언젠가 다음에 또 만나겠죠·”
청이 시원스레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모용주희는 미적미적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버텨야 한다는 거 그저 내가 감내할 일인 거는 아는데요 혹시 너무 힘들면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픈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죄면 혹시 그러면 서문 소저님께 조금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음? 뭔데요?”
모용주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서늘함 손톱으로 지긋이 깨물듯이 꼬집어서 따끔과 동시에 치던 벼락이 온 몸이 꿰뚫리는 것처럼 강렬했던 따끔· 꼼짝도 할 수 없던· 좋아 이런 아픔이라면 아픈 기억을 덧씌워 아물게 해줄 수 있기에· 목소리· 시원한 손길 뱀처럼 아름다운 속삭임· 따끔·
“모용 소저?”
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갑자기 요의가 확 밀려든 사람처럼 몸을 꼬는 모용주희를 바라보았다·
뭐지 여름 감기? 개도 안 걸린다는?
“아니 아니에요! 괜찮 괜찮을지도 그 아쉬워서 이제 진심을 전해드렸는데 가시면 또 언제 그으·”
“음· 정 힘들면 신녀문에서 요양을 좀 해요· 사부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면 아마 제자들 사이에서 지내도록 해 주시겠죠·”
“제가 감히 그래도 될까요?”
“모용 소저가 온다고 제가 꼭 신녀문에 있는 건 아니겠지만 다들 착한 친구들이니까· 아· 혹시나 신녀문에서 말썽 피우면 벌이 아니라 앞으로 아예 안 볼 거예요· 착하게 있어요 알았죠?”
“착하게· 네 넷!”
모용주희가 각오를 다졌다·
착하게 착하게 있자·
그러다 서문 소저님과 다시 만날 때에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부탁드리면 상냥하신 분이니까 분명히···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아직 상태가 안 좋나? 그런 것 치곤 눈빛이 대단히 맑은데· 하고·
—-
청은 소림사 가는 소림승들에게 합류했다·
사실 숭산은 진짜 개봉의 코앞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서 일정이랄 것도 없다·
다들 경공 수련 겸 속보로 슥슥 나아가니 저녁은 숭산에서 먹는다 뭐 이런 기세다·
아직 속보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따각따각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는 청이었다·
그러다 애써 앞만 바라보고 있는 월봉 스님을 따라잡았으니·
“월봉 스님· 혹시 앙금이 남은 거 아니죠? 저는 다 털었으니까 스님도 달리 할 말 있으시면 우리 지금 푸시는 게?”
“아니 아니외다· 앙금은 무슨 소승의 불공이 모자라서 그 죄송 송구하게·”
“스님? 눈을 좀 보고 말씀해 주실래요? 왜 땅만 보고 계세요?”
그에 월봉 스님이 청을 보고는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발을 헛디뎌 와장창 땅을 구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를-
“큭 번뇌! 번뇌로다! 나무아미타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긴급 요양으로 보일러 풀가동에 전기장판 켜고 약먹고 누웠는데도 일어나니 몸살이네요··
독자 여러분들도 조심하세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