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1
“이런 스님· 괜찮으세요?”
청이 쓰러진 월봉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청의 눈이 예쁘게 휘었다· 혹은 요사하고 요망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괘 괜찮소이다· 그 괜찮은 것이외다·”
“그럼 어서 일어나시지 않고는· 자요·”
청이 몸을 펴고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월봉이 순순히 손을 잡고 일어나-
“헉·”
돌연 갑자기 월봉이 청의 손을 확 뿌리치더니 어딘가 참담하고 곤란하며 수치스러운 기색으로 시선을 피한다· 일어서려던 자세가 뭔가 엉거주춤하니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 모양새였다·
“스님?”
“먼저 먼저 가시오· 내 따라가리다·”
경공을 쓰다 엎어졌으니 창피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청이 따각따각 수련신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소림승들 일행을 따라잡았다·
“하핫 고 녀석· 그렇다고 너무 놀리진 말게· 산중에만 있다 보니 여인에게 낯선 것을 헤아리질 못했구먼· 혹여나 노하지는 말게· 다 자연스러운 현상인 게지·”
쑥맥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건가?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무학은 그저 짓궂게 허허 웃으며 마보 열두 시진 추가다 하고 흉악한 소리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마보 열두 시진이면 하루 온종일 아닌가? 아무리 고수라도 명복을 빌어줘야 할 정도일 것 같은데·
“그런데 저 보살은 저대로 그냥 놔둬도 되겠나?”
일행이라고 하기 뭐한 일행이 또 한 명·
거리를 벌린 채로 청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따라오는 빙설화 설이리가 있었다·
“음· 어딜 가든 그건 설 소저의 자유니까 딱히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보통은 동행을 요청하지 않던가? 특이한 인물상이로구만·”
보통 미행이라 하면 기도비닉을 유지하여 들키지 않고 따라붙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천하제일인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남들의 상식 따윈 따르지 않겠다는 것인지 당당하게 청을 따라오는 설이리였다·
어쨌거나 개봉에서 숭산은 지척이라서 거리로도 삼백 리가 채 안 된다·
청의 고향 땅 내공도 없고 근육도 없는 비리비리한 청춘들도 백 리 정도는 무거운 짐을 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한 판에 고수들에게 삼백 리야·
애초에 거리라고 할 만한 정도가 못 되니 천천히 반나절 여유를 두고 경공으로 천천히 달리면 이제 좀 땀이 날랑 말랑 근육이 좀 당길랑 말랑 할 때쯤 도착하는 가벼운 거리인 것이다·
물론 본인이 초절정 이상이거나 아니면 경공에 자신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덕분에 설이리는 도중부터 조금씩 멀어지다가 집요하게 와닿던 시선도 함께 뒤편 능선 너머로 뒤쳐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일행 미만 모르는 사람 이상으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설이리다·
그러니 챙기기도 참 민망한 일이었으므로 어차피 목적지는 숭산 그 거대한 산이 이동식으로 도망칠 기동성도 없으니 뭐 따라오겠지 하고·
그리하여 숭산!
중원에 이름난 다섯 산이 있어서 이름하여 오악이라 했다· 중원인의 분류 및 색인 정신은 산이라 해도 피할 수 없어서·
그리하여 동서남북 순서대로 태산 화산 형산 항산이 존재했다·
유명한 산에는 무림방파가 무조건 꿰차고 있기 마련이니 바로 사방검파라 불리는 검 쓰는 도문이 되시겠다·
그리고 숭산은 중악· 가운데 있으니까·
소림마저 검을 썼다면 오악의 무공이 모두 검술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눈치 없는 땡추들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나·
그리하여 소림사!
중원의 가장 이름난 사찰이자· 천하제일의 문파이기도 한 정파 무림의 중심이다·
일단 소림의 입구 산문부터 그 위용이 대단하다· 사찰이 아니라 군사 요새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그 웅장함으로부터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그 유명한 소림사 지객당으로 부터 시작하여 계율원 팔대호원 천왕전에 대웅보전 장경각 들이 위치하지만 청은 어차피 모른다·
모를 뿐만 아니라 알 필요도 없다·
어차피 소림은 금녀의 성지 청이 살아 생전 눈으로 확인할 일이 없으니 알아봐야 어차피 쓸모도 없는 지식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 소림의 산문에 인파가 잔뜩 몰려 시끌시끌하니 고성이 오갔다
“무엄하다! 마마께서 드시고자 하시는데 어찌하여 너희 무도한 것들이 길을 막는단 말이냐! 세상에 법도가 없다 한들 어미의 출입을 막는 자식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아미타불· 소림의 계율은 공께서도 이미 익히 아시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부디 말씀을 물러 주십시오·”
“뭣들 하느냐! 당장 길을 열지 않고!”
청이 도착했을 때는 문을 막아선 스님들과 길을 뚫으려는 관군의 치열하지는 않은 승부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치열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정확하다·
소림사 무승들의 의복은 상체에는 한 줄기 가사 자락을 둘러 짝가슴만 드러냈으니 돌덩이 같은 근육을 훤히 드러낸 겉으로만 봐도 외공의 고수들이다·
소림승들이 내외공 모두를 단련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사내라서 허락된 파렴치한 의복을 입은 소림사의 무승들이란 관군이 감히 대적하기 어려운 고수인 것이다·
한편 소림승들 역시 신성한 산사에서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적당히 달려드는 척만 하는 관군과 적당히 밀어내기만 하는 소림승들의 합작으로 별로 치열하지 않게 몸만 부대끼는 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아이고· 아미타불···”
무학 대사가 짧게 불경을 중얼거리나 싶더니 이내-
“갈!!!”
소림 사자후 원조 갈! 이 뜨고 말았다·
갈이라고 하면 꾸짖을 갈喝을 말하는 것으로 이놈! 하는 표현과 일맥상통했다·
굳이 이놈이 아니라 갈을 외치는 것은 무림인의 체면이란 함부로 요놈 저놈 외치다가 원수가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사자후는 불교 경전 유마경에 써진 말이다·
사자 울음소리에 모든 짐승들이 굴복하듯이 부처의 설법이 모든 마귀를 굴복시킨다는 글귀였다· 그러므로 사자후는 부처의 큰 말씀을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심상을 두어 만들어진 소림 무공 사자후는 정신에 낀 사기를 지워내고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능을 가진 심후한 음악 치료 아니 음공이었다·
그 청정한 소리에 소란이 뚝 멎었다·
천하제일인의 사자후라서 사자후 중에 가장 강력한 사자후인 것이다·
그러나 사자후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는 소림승들도 관군들도 아닌 바로 청이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속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목구멍으로부터 비릿하게 신물이 역류하니 뭐지 체했나? 하고 꿀꺽 삼키는 청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니 유난히 맑다·
“나무아미타불· 여러분 여기는 불가의 사찰이외다· 소림이 비록 속세로 기울었다 한들 명목상 출가한 외인들이 불경을 외는 장소인즉 어찌하여 고요를 지키지 못하고 소란을 떠시는 게요·”
“방장 스님!” “큰스님!” “대사!”
그에 소림승들의 표정이 해맑다·
또래끼리 싸우던 와중에 아빠를 만난 아이의 표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의외인 점은 관군들의 표정도 밝다는 점이었다· 설마 천하제일인이 나타났는데도 자살 돌격을 시키지는 않으리라는 뭐 그런 계산이다·
“흠·”
그러자 개중에 한 사람이 나타나 오만한 턱짓을 한다· 그에 부관으로 보이는 자가 깃발을 흔드니 관군들이 산문에서 우르르 물러나 뒤로 방진을 쳤다·
앞에 선 자는 오만하고 당당했는데 그도 잠시 입을 열자마자 인상이 확 변하는 것이었다·
“소인은 경사태감 만리형이라 하옵니다· 천하만민의 어머님 국모 되시는 채 황후를 모시는 미천한 환관이옵니다· 국모께서 금일로부터 석 달간 천하의 제일가는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시고자 함일 뿐입니다·”
환관 특유의 간드러지며 여인의 애교 같은 그러한 어투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사내보다 여인에 가까운 미성은 나름 사내답게 각이 진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와는 별개로 경사태감이라 하는 환관이 말하는 바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국모 그러니까 천자 마누라 되는 황후가 직접 행차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확실히 그 뒤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차 한 대가 놓였으니 금이 가지는 특유의 반짝임으로 아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크흠· 불공이라 함은 대저 사찰의 크기와 유명함이 그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외다· 또한 소림이 천하제일의 사찰이라고 한들 이는 일신의 무력으로 유명한 것이지 불경의 공부로는 오히려 쟁쟁한 불승들께 누가 될 지경이 아니오리까· 태감께서는 이를 헤아려 말씀을 물려 주시게나·”
좋은 절에서 불공을 드린다고 뭐 별거 있겠나· 굳이 반기지 않는 장소에까지 와서 그러지 말고 다른 데 가 봐라·
“허나 국모께서 치성을 드리시온데 어찌 범상한 무명사찰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십니까· 황가의 은혜로 소림의 공덕이 이리 드높았으니 그 일말이라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후께서 오셨는데 뻗댈 것이냐· 그리고 너네 주변 전답도 다 황실에서 내려준 거 아니냐· 땅 받을 때는 천하의 영광이고 불공 좀 드리려니까 이제 와서 빼는 것이냐·
“허나 보리께서 내리신 말씀으로 여인의 출입을 금하고 정진하라 하셨소이다· 이는 여인의 공덕까지 빌어주기에는 모자라고 멍청한 놈들이라 그러한 것이외다· 만약 여인사의 신묘한 공덕을 원하신다면 사천 땅의 아미가 가진 덕이 드높지 않소이까·”
사내들만 있는 데서 여인이 공덕을 빌어봐야 무슨 영험함이 있겠냐· 차라리 저기 아미파로 가라· 거기가 여인 전문이다·
“물론 사조의 말씀이 귀한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는 승려의 규율이지 세속의 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불도를 걷는 이가 헤메는 중생을 어찌 이리 가혹하게 내치시려 든단 말입니까?”
너네도 몰래몰래 들여주는 거 다 안다·
괜히 빼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에 들여보내 주지 않으련?
사실 여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계율은 세상 여인들아 너네 못 들어온다 꽝꽝 하고 도장 찍은 국법이 아니다·
소림사의 계율은 소림승이 지켜야 할 법칙이라서 신성한 절간에 여인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쪽에 가깝다·
물론 계율에 있어서 온건파인 무학 대사의 해석이기는 해도·
실제로 한 해에 서너명 계절마다 한 명 꼴로 남장하고 들어오는 여인들이 있었다·
걸린 이가 그 정도니 안 걸리고 불공을 드린 여인들을 따지면 아마 제법 되기는 할 것이다·
“크흠·”
무학 대사가 불편한 신음을 내뱉었다·
애먼 양민이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온 것을 모질게 벌을 주지 못했으니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하고 쫓아낼 뿐이다·
물론 무림인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야 그러하외다만 어찌 불공을 드리겠다는 태도임에도 이리도 많은 군사를 휘몰아쳐 천하 만민이 모두 알도록 하는 행사가 된단 말이오· 관무불가침이라 청정한 산사가 달리 이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외다·”
그러면 몰래 오지 이렇게 대놓고 왔냐·
몰래 왔으면 몰래 들여보내서 불공이나 좀 드리고 말았지· 온 천하에 소림의 규율이 깨지는 꼴을 똑똑히 보여 알리고 싶어 하는 모양새인데 인제 와서 어떻게 들여보내 주겠냐고·
그리하여 자존심 강한 두 수장의 말싸움이 지리멸렬하게 주욱 이어졌다·
물론 무인이라면 말싸움 말고 몸싸움을 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당장 싸우면 몰살을 면하지 못할 관군들이다·
다만 소림도 와 이겼다 다 죽였다 하고 끝이 아니라 이후에 포탄이 거센 비처럼 쏟아지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슬픈 사실만 되새기게 될 터이니 뭐 함부로 손을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무학 대사는 이쯤에서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관무불가침이고 황궁의 힘이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라 해도 천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러니 참으로 고약하게 되었구나 분명 황실에도 또 무림에 대한 야욕을 이렇게 또 드러내는구나 하고·
어쩌면 또 무림에 큰 혈사가 불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직감에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쉴 때였다·
달칵· 그리고 철푸덕·
문이 열리는 작은 소리와 무언가가 굴러 떨어져 쏟아지는 나지막한 소음이었다·
그러나 그 작디 작은 소음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장내를 휩쓸었으니-
“국모님 국모께서 나셨다! 당장 예의를 갖추지 못할까!”
그에 무림인과 군사와 양민이 가리지 않고 앞다투어 합장을 하며 허리를 깊게 숲이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으며 또한 양 손을 이마께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청도 허둥지둥 무학 대사를 따라했다가 아 이건 스님식이구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동작을 전환하며 무릎을 땅에 붙이고 큰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니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찔러서 고개를 돌리니 다소곳이 꿇어앉아 허리를 둥글게 접은 설이리가 그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 큰절이 아닌가? 청이 설이리를 따라 엉거주춤 대례를 올렸다·
사실 설이리도 잘 알지는 못했으니 둘 다 상관없기는 했다·
인사법은 신분과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어쨌거나 황후는 국모 모두의 어머님이시니 감히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소림의 산문 앞에서 탁 탁 맥없는 힘없는 발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뭐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나선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
“얘야· 고개를 고개를 들어보겠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몸살이 들면 제일 고약한 것이 뭘 해도 편하지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푹 쉬고 싶어도 누우면 머리는 아파 침 삼키면 목구멍은 쓰라려 전신는 근육통이 내달리니 누워도 서도 앉아도 푹 쉬기는 글렀습니다··
그래서 눕다가 이럴 바야에 하고 한 백여자 쓰고 아 이건 아니네 안되겠다 하고 눕다가 또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 몸을 일으켜서 또 백여자 쓰고··
꾹꾹 담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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