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6
“장흥상방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고작 금자 몇 개 먹자고 사업을 벌이겠나? 그러니 어째· 자재 줄이고 싸구려로 바꾸고 돌로 대충 채워 넣고·”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아주 뚫린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막 내뱉는데·
“낙녕에서 죽은 사람이 이천 명이 넘어· 실종된 사람 포함하면 삼천 명도 더 된다고도 하고· 실종이 뭐야 그냥 시체도 못 찾은 거지·”
그에 장 목수의 표정이 흐려진다·
“그건 재수가 없었던 게야· 나름 딱 핵심 축은 제대로 공사를 해 놨단 말야· 비가 그렇게 지랄맞게 오지만 않았어도·”
“비 때문이 아니에요· 당신들 때문이지·”
“설계가 조금만 싸게 먹혔어도-”
“설계 탓하지 말고· 꼬라지를 들어 보니 비싼 설계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터졌을 거 아냐? 어차피 남겨먹겠다고 날림으로 지어대는데 그 비를 어떻게 버텨?”
“으음···”
“말해 봐요· 공사에 비용이 반절이었으면 설계대로 다 지었을 것 같아?”
“음···”
장 씨가 불편한 신음만 내뱉었다·
할 말이 없는 이의 반응이다·
설계대로 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자재 빼돌리고 싼 것들로 갈음했다는 변명은 순 헛소리다·
어차피 빼돌려먹는 새끼들이 그걸 신경이나 썼을까·
설계가 싼 비용이면 더 많이 남겨먹겠다고 똑같이 했을 테니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어떻게 해도 터져버렸을 터다·
“내세를 기약하기는 개뿔· 삼천 명이나 생목숨 잡아먹고 내세가 어디에 있어? 내가 봤을 때는 지옥에 처박혀서 세상이 끝장날 때까지 난도질이나 당할 상이야·”
“염병할···”
“그래서 누가 시켰어요? 장흥상방에 그 아가씨인가 하는 사람이 공사를 지휘했다고 들었는데· 그년이 자재 빼라고 시켰어요?”
“그래· 그년이야· 다들 우려하기는 했지· 하지만 상전이 시키면 따라서 해야지 어째· 섬서성 공사판에서 장흥상방 말을 거스르면 일은 다 했다고 봐야 하는데·”
시키는 대로만 했다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청은 장 씨의 악업을 보인다·
시키는 대로 한 것치고는 높지 않나·
거기에 더해 청은 새끼 목수다·
목수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도 목수 일 좀 했거든요? 아저씨도 개인적으로 자재 좀 빼돌렸죠?”
“세상에 안 그러는 목수가 있나···”
“그야 그렇겠지· 상방에서 빼돌리고 대장 목수들이 저마다 제 몫 챙긴다고 또 한둘씩 빼먹었을 테니 와 대체 뭐로 지었대? 무슨 꼬맹이 진흙 놀이하듯이 황토로 빚었나?”
“···”
“그러니까 아까 말대로 허름한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칼 맞아 죽지· 댁은 자연사니까 누구 원망하고 할 자격도 없어· 죽을 놈 죽었으면 그게 당연한 거지 뭐 억울하고 슬픈 일이야?”
“끄응· 나는 죽을 놈이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함세· 내 숨겨둔 금은이 좀 있는데 그래도 마누라라는 년하고 자식새끼한테 꺽·”
무어라 말하려던 장 씨가 돌연 켁 숨통 막히는 소리를 냈다·
목덜미에 발이 척 올라와 짓누르면 세상 누구라도 말을 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청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아저씨가· 내가 할 일 없어서 무슨 유언이라도 들어주러 온 줄 아나· 게다가 사람 목숨으로 번 돈을 왜 물려줘?”
배때지에다가는 오른손 척 붙여서 빙산이 커다랗게 솟은 탓에 장 목수가 남은 왼팔을 휘두르며 바동거린다·
목수라면야 실전 압축 근육으로 단련이 된 인간들이지만 그래봐야 양민 수준에서 건달하고 비비는 정도다·
청은 초절정에 달한 고수고·
목수의 바둥거림이 점차 필사적으로 더 격렬하게 숨을 탐한다·
그러나 청의 발은 태산처럼 그 자리에 딱 숨통을 막는 무게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툭 가는 실이 끊어지는 듯한·
온 힘을 다한 필사적인 발버둥이 일순간 허물어지는 바로 그 순간 정말로 그 묘한 찰나의 순간이다·
“에이· 시간만 버렸네· 저기 다른 놈 또 없어요?”
“자객이 든 것을 보면 더 찾아봐야 이미 늦었을 터네· 애초에 이런 추적은 자객들이 전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런 은신처들이 그쪽으로는 영 신뢰를 못 하는 법이네·”
이런 은신처들은 필연적으로 하오문이나 그와 비슷한 하류들 모임에 닿는다·
그리고 자객들이란 그네들과 친한 사이를 유지하는 놈들이라서 남들 눈 피하기에는 좋아도 자객 눈 피하기에는 영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음· 그럼· 뭐 어쩔 수 없나·”
청이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동네방네 소문 내서 망하게 만들랬더니· 딱히 증인도 없고· 그냥 장흥상방 아가씨 잡아다가 죽일 놈 더 있나 물어보고 나서 음· 사지 근맥 잘라다 낙녕 유가족들한테 전달해 드려야겠다·”
역시 최고의 치유는 복수다·
엄밀히 말하자면 치유라기보다는 끝맺음이라고 할 것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아픔은 희미해질 뿐이니 복수를 해 봐야 결코 낫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증오와 원망을 매듭짓고 앞으로 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수단임에는 틀림없을 테니까·
“장흥상방의 만행을 널리 알릴 생각이라면야 아직 증인이야 한참 남았다네·”
“어차피 나머지도 다 죽을 거라면서요? 자객보다 빨리 찾아낼 방법도 없고·”
그에 설가놈이 척 해답을 내놓았다·
“그러니 자객 놈을 잡으면 될 거 아닌가· 자객 놈이 암살 의뢰를 받았다고 증언하면 세상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도시 목수들 다 죽어나가는데 당연히 뒤가 구리다고 여길 테지·”
“와! 역시! 이제부터는 지역 최고의 지성으로 올려줄게요· 동네는 이 빛나는 지성을 품기에는 너무 좁아·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요· 응· 응· 역시 섬서성 최고의 지성!”
청이 설가놈의 평가를 격상했다·
설가놈은 영 불편한 표정이었다·
“진짜로 똑똑한 이들이 널렸는데 나 같은 게 뭐라고· 남사스러우니 그 소리 좀 하지 말게·”
“겸손하기까지 하다니깐·”
“거 진짜 사람 말 안 듣는군····”
“그런데 자객은 어떻게 찾아요?”
“자객 찾기가 뭐 어렵겠나· 돈 받고 사람 죽이는 놈들인데· 돈 받는 놈들부터 착착 조져보면 알 것이 아니겠나· 내 또 알아볼 터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감세·”
“든든하다! 믿음직하다!”
“하여간· 사람 하고는·”
그러면서도 슬며시 입가가 휜 것이 나쁜 표정은 아니더라·
—-
중원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속담이라서·
이 속담에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설이 있다·
일단은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오는 빈대에 빡친 상남자가 그냥 집채로 태워버렸다고 하는 설이 있다·
빈대에 물리면 모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가렵다고 하니 문득 간지러움을 깨닫고 밤잠을 설쳐본 이라면 그 빡침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빈대를 잡는 전통적인 살충 요법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빈대를 잡기 위해 살충 효과가 있는 풀 대마나 개구리밥 등을 태워 집안에 그 연기를 가득 채웠다고 하니 그러다 불똥이 잘못 튀면 초가 풀로 엮은 주택이야 순식간에 홀라당 불이 번져버리고 만다·
장안에서도 이렇게 불이 번지고 있었다·
물론 장흥상방은 빈대로 취급하기에는 그 덩치가 크고 서안쯤 되는 대도시가 겨우 불씨 좀 튄다고 해서 홀라당 타버리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나 낙녕에서 물난리로 피어난 불똥이 장안에까지 튀어 처음에는 제 발 저린 장흥상방이 기술자들을 태워 없앴다·
그러나 잔불 처리가 미흡했으니 이번엔 그 불꽃이 자객들에게 옮겨붙었다·
그리하여·
이유 있는 폭력이 자객들을 덮친다!
돈 받고 사람 죽여대던 망종들이니 사실 이유 없는 폭력이라도 상관없겠지만·
그러니 자객이라는 말도 아깝다·
중원 역사에 의로운 자객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들을 높여 부르기에 자객이지 다른 말로는 살수라고 했다·
중원 살수의 살수업 판도는 아주 거대한 다섯 업체 살천성 살막 살곡 자림 천살문 이렇게 유명한 단체들이 각기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꼴이다·
개중 실력으로나 가격으로나 최고로 치는 암살단은 살천성이다·
그런데 최근 살천성이 영업을 접었다·
하지만 딱히 다들 이상하다 여기지는 않았는데 살수 업체야 언제든 망할 수 있는 그런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살수 업계의 뜨거운 화제 장안의 화제는 바로 살천성 놈들이 어떻게 왜 누구에게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냐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정말로 큰 의문점이 하나·
살천성의 살수들이 개중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텐데 실력으로 유명한 그 고절한 살수들의 생존자가 대체 왜 없냐는 것이었다·
나타나기만 하면 막대한 금은을 주고서라도 데려올 텐데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라곤 그 악명 높은 살천성의 살수들이 실제로는 그저 그 직업을 바꿨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어둠 속의 살수는 없다·
광명한 태양 아래에 당당히 얼굴을 까고 새로운 천마께서 이끄시는 선량한 세계에서 만족스럽게 햇볕을 쬐고 있을 뿐·
덕분에 이제는 양지로 나와서 연애도 해 보고 친구도 사귀어 보고 이웃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어 보기도 하고 더러는 아예 가정을 이루기도 하며 이것이 진정 사람이 사는 즐거움이구나 하고·
그리고 이 모든 은혜가 모두 오롯이 위대하신 천마지존께서 베풀어 주셨으니 그야말로 결사옹위 죽음으로 사수하여야 할 신앙이 아니겠는가!
비작부 소속 요원(전 살수)들이란 무조건 기승전천마지존이다·
천마신교가 오랜 세월 체계화하여 완성한 극악한 세뇌 기술을 통해 어려서부터 아주 단단히 머리가 고장이 나버린 인간들이라서
안 그러면 중원에 파견된 비작부 요원이 당장 배교하고 이탈해 버릴 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살수 업계 돌아가는 꼴은 살수들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그렇기에 일월표국은 이미 서안 내 모든 살수 청부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청은 다음 날 점심을 먹는 중에 곧장 서안 시내 모든 살수 청부소의 위치가 담긴 책자를 받아낼 수 있었다·
“와 이렇게 빨리요?”
“표국에서 마침 자료를 갖고 계셨네·”
“하으읏 하윽 하앗···”
“엥· 표국이 왜 살수의 자료를 가지고 있어요?”
“내가 알겠나· 하지만 본래 도시에서 큰 사업을 벌이면야 그쪽에서 먼저 선을 대고 이용해주십사 고객을 늘리는 판이 아닌가·”
“후 후욱 하아아···”
“막 털었는데 일월표국 장부 나오고 그런 건 아니겠죠?”
“그랬으면 순순히 자료를 넘겨주었겠나? 저들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자신감이기도 한 것이 아니겠나·”
“핫 하흐 하 핫 하···”
음· 밥 한번 진짜 추잡하게 먹네·
청이 팔팔 끓는 탕을 일단 입 안으로 퍼넣은 후에 후웃 하읏 들숨 날숨으로 용케도 식혀 먹는 설이리를 바라보았다·
그냥 탕이 아니라 오사갱이라는 이름의 뱀고기 탕이다·
이름 그대로 다섯 종류의 뱀을 푹 고아 만든 보양식이자 아주아주 고급 요리다·
그런데 이 오사갱은 광동 요리고 광동 요리에서 탕이란 물 반 기름 반에 전분까지 들어가 걸쭉하니 온도가 끓는 기름과 다름없는 용암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 이걸 식히지도 않고 처먹어?
사람 맞아? 차력 공연 수준 아닌가?
물론 팔팔 끓인 후에 나온 것이라서 진짜 끓는 기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름이 반인 걸쭉한 국물은 끓는 물보다는 훨씬 더 뜨거울 텐데·
음· 그래도 남이 밥 먹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딱히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신기한 구경이나 하겠지 뭐·
“그럼 오늘 밤부터 차곡차곡 털어보면 되겠네요· 음· 어디서부터 털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망종들이 한가득이라니·
이거 완전 자유 이용권 무제한 식사권 공짜 통행증 아닌가?
흥겨워진 청이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참지 못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민족의 명곡들이 흘러나왔지만 어차피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고대 중원이니 상관은 없을 터였다·
듣는 이가 참으로 듣기 좋다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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