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9
청은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는다·
각성신공의 공능으로 대기의 흐름을 피부로 읽어내니 제 몸 주변 사방팔방으로 좁은 범위를 촉각으로 본다·
살수가 위아래로 뻗는 비수의 움직임이 감각에 잡힌다·
목으로 향하는 두 자루 단도· 그리고 단도가 두 자루 더·
살수 뒤에 합체라도 한 것처럼 딱 붙어서 양 겨드랑이 사이로 뻗는 손이 두 개가 더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추가 두 자루 단도가 각각 단전과 우측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마치 팔이 네 개 달린 살수가 동시에 네 개의 칼날을 뻗는 듯한 훌륭한 합격술이다·
목과 하복강 비장이라는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리는 정밀한 공격이기도 하고·
그에 맞서는 청의 손은 두 개 뿐이다·
그러나 두 개면 충분하다·
청이 왼손으로 목 앞을 가로막고 동시에 복근에 힘을 빡 주었다· 흡!
신체의 단단함으로도 이미 인간을 초월한 청이며 혹독한 추위와 싸워 피워낸 호신경이 무아의 경지 자동방어에 이른 청이다·
호신강기로 방어가 안 되는 목덜미만 딱 막아내면 나머지는 그냥 뭐· 오게 두어라·
마침내 단도의 시퍼런 칼날 끝이 따끔·
잘 갈린 단도의 끝이 청의 손바닥에 막혀 멈춘다· 복부로 향하던 두 자루 단도 역시 복근을 뚫지 못해 피부에 따끔하게 생채기만 낸 채로 정지했다·
그리고 청은 아직 손이 하나 남았다·
한껏 뒤로 당겨진 팔꿈치에 곧게 편 손가락· 이내 거침없는 한 획으로 내질러 점을 찍는다·
일이관지·
하나의 이치가 모든 것을 꿰뚫는다·
거창한 초식명과는 달리 그냥 삼재검의 세 번째 초식일 뿐이지만·
삼재검은 청의 기준으로도 하얀색 테두리를 가진 삼류 중의 삼류 굳이 말하자면 구류 무공쯤 되니 일이관지가 일수에 모든 것을 꿰뚫기는 무리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 두 명 정도는 동시에 꿰뚫을 수 있다·
제법 단련한 복근을 뚫고 말캉탱글하니 몽글한 내장지방을 뚫고 손바닥과 손등을 스치는 내장을 넘어 등가죽 뚫어내니 와! 한 번 더! 다시 복근이!
그야말로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타쌍피 일구이살 병살의 기쁨인 것이다·
살수들은 억울했다·
단검은 손바닥에 막히고 심지어 복근조차 뚫지 못했는데 맨손인 청은 손끝으로 둘의 배를 뚫어버렸으니까·
억울하면 강기를 썼어야지·
원래 억울하면 고수해야 하는 법이다·
초절정이 되려는 노-오-력이 모자랐다고도 하겠다·
“하으·”
청이 저도 모르게 쌍살의 기쁨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내를 둘이나 꿴 손을 수평으로 뻗어 번쩍 들어올린다·
사내 두 사람분의 무게를 한 손으로 번쩍 드는 역발산(산을 뽑음)의 괴력이다·
사람은 본디 머리를 포함한 상체가 복부 아래보다 무거우므로 자연스럽게 꿰인 살수들의 몸이 갸우뚱 한쪽으로 쏠린다·
그에 본능적 판단인지 살수가 제 양손으로 청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어 뒤집어지려는 제 몸통을 지지한다·
앞에 놈은 잡을 데가 있는데 뒤에 꿰인 녀석은 잡을 데가 없다·
그러니 어째 앞에 놈을 와락 끌어안으니 일시에 두 명 분 무게가 한 놈에게 쏠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몸이 홱 돌아 머리 두 개가 아래로 대롱대롱 두 놈의 가랑이 사이로 이제서야 몸을 일으키는 접수책이 보인다·
청이 손을 갈퀴처럼 굽혀 팔을 늘어뜨렸다· 그에 바깥쪽 놈이 바닥에 머리를 꿍 뒤이어 앞에 놈도 꿍·
사내 둘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나니 청의 손아귀에 곱창 두 줄이 잡힌 채로 아래에 쌓인 놈들의 뱃가죽과 주욱 늘어진다·
청이 내친 김에 내장을 하나로 튼튼히 묶어주었다·
이제 둘은 내장으로 엮인 사이니 아주 내밀한 속을 공유하는 사이 세상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우정이라고도 하겠다·
청이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접수책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나올래?
이거 보고도 투지를 가지고 덤빌까?
아니면 동료의 원수라며 분개할까?
아니면 살려달라고 빌까?
악업 보니 살려주기는 글렀지만·
그러나 접수책의 대응은 셋 다 아니었다·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제 품에서 무언가 꺼내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럼 이제 우리 대화를 야!”
청이 깜짝 놀라 꽝 진각을 밟아 천마님 축지법 쓰신다 초고속으로 달려나가 놈의 멱살을 쥐었다·
“크큭 저승에서 기다리겠아으으윽!!·”
나름 비웃음까지 탑재한 비장한 유언이었지만 턱을 붙들고 잡아빼는 손길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만다·
청은 막되먹은 년이라서 남이 유언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주 능숙하게 턱뼈를 탈골시킨 청이 제 길고 흰 아름다운 손가락을 접수책의 입 속에 아주 깊숙이 깊숙이 쑤셔 박았다·
“억 으걱 오오엑 오오오엑 우웁!”
고약한 헛구역질이 점차 고조되다 분출의 전조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떨림에 청이 호다닥 손을 빼고 접수책을 내팽개쳤다·
불쌍한 접수책이 나동그라진 채로 속에 든 것들을 전부 토해놓았다·
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더러·
마침 책상 위에 찻주전자가 있길래 일단 좀 씻어줄 겸 머리를 향해 예쁜 포물선을 그리도록 던져주었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며 찻물을 뒤집어쓰니 좀 나은 것도 같고·
“이게 뭘 잘했다고 자살 시도야? 아주 의리의 화신 나셨네· 사람 잡아먹고 사는 쓰레기들끼리 아주 죽음으로 사수하는 의리가 있다? 안 그래?”
“커흑 너 즈근 누글 근드리는지-”
“무서워서 자살하려던 놈이 기세가 등등하네· 이봐 친구·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야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지· 그러니까 내가 죽고 싶도록 고통스럽게 만들겠지만 그래도 목숨을 포기해서는 안 돼· 악으로 깡으로 버텨·”
“···?”
“자살을 뒤집으면 뭐가 되는 줄 알아?”
청이 접수책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리고는 어깨 아래을 척 붙들며 지 혼자 묻고 지 혼자 대답을 하는 것이다·
“정답은 타살이야·”
“아악!”
어깨에서 팔뼈 빼고 골반에서 다리뼈 빼는 동작이 아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뼈가 자리에서 이탈해도 근육과 힘줄은 붙어있으니 힘을 아예 못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파서 보통 정신이 혼미하고 눈에 뵈는 것이 없으니 그게 사지 전부가 되면 아파서 기절조차 할 수 없이 목청이 터져라 비명만 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씨 시끄럽게·”
청이 놈의 소매를 북 뜯어다가 대충 꼬아 한 줄로 빠진 턱 위와 뒷목으로 한 바퀴 둘러 팩 잡아당겨 단단히 매듭지었다·
“아읍· 으흐흡!”
입을 아예 막아버리면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단 말이지·
조금 소리는 새지만 시끄러울 정도는 아니니까·
그리고는 머리채를 잡으려다가 아까 독약 지지야 뱉어 과정에서 지저분한 꼴이라 대신 발목을 척 붙들었다·
탈골된 다리를 잡혔으니 그 고통이 어떠할 것인가·
물론 청은 딱히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대뜸 독약 삼키는 놈은 또 처음이네· 저도 죽을 짓한 거 알면서 왜 쓰레기같은 명줄 붙들고 있나 몰라· 자 구녕아· 가자·”
“또 구녕이라고 했어요· 군 영· 군 영이에요·”
“구녕하고 구녕하고 사실 발음상으로는 둘이 같은 거라서 그래· 연음? 뭐 뭐시기 법칙 뭐 그런 게 있다더라· 그래도 속마음으로는 구녕이라고 똑바로 발음했는걸·”
설이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이 그에 씩 웃으며 왼손을 허리춤에 슥슥 닦아내곤 척 내밀며 말했다·
“됐구· 이제 돌아가자· 자 손·”
그에 설이리가 순순히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진짜 구녕이라고 부르면 안 돼? 진짜 귀여운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럼 구멍이는 어때?”
그에 설이리에 이마에 힘줄이 빠직·
그리고는 손을 뿌리치려 들었으나 청이 힘주어 붙드는 바람에 붙잡은 손만 파닥파닥 흔들리는 미수에 그쳤다·
“어허· 이게 어디서 앙탈이야? 이제 내 손은 필요없다 이거지? 좋아· 놓는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래· 아이 착하다·”
발목 하나 붙들어 몸통 질질 끌어 돌아가는 길이 마치 잘 놀다 떠들며 돌아가는 것처럼·
—-
청이 접수책 질질 끌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아 그래도 계단 오를 때에 통통통 머리 박는 꼴은 좀 재미있었지만 어쨌든 기다리고 있던 최리옹이 혀를 잤다·
“계집년이 꼴이 이게 뭐냐· 선불 맞은 망아지가 따로없다 아주· 쯧쯧·”
“에잉· 이번엔 좀 얌전하게 굴었거든요? 이 정도면 깔끔하지 뭐·”
“깔끔은 개뿔이·”
청은 억울했다·
내가 뭐 피를 뒤집어쓰기를 했나 다른 때처럼 큰 핏줄 잘라서 피로 머리 감고 막 그러지도 않았는데·
그냥 불가피하게 얼굴에 튀어 묻은 정도지 막 피가 턱에 맺혀 뚝뚝 떨어지고 하는 정도도 아닌걸·
최리옹이 미리 준비해둔 모양으로 무려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청의 얼굴을 살살 문질러 닦아주었다·
따뜻하기도 따뜻하거니와 혹여 아프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손길에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히히·”
“채신머리없게 히히가 뭐냐·”
“아니 할아범· 내가 뭐가 된다고 채신머리를 찾아요? 막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후후· 이렇게 웃어야 하나?”
“음·”
최리옹의 욕심으로는 신교의 주인으로서 좀 더 품격과 위엄이 있었으면 좋겠다마는·
그러나 그리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러고 있으니 어쩐지 물끄러미 와 닿는 시선이 있다·
시선뿐만이 아니다·
잡은 손에 꼬옥 조금 더 힘이 들어오는 것이다·
“얘는 있다가 물어볼 테니까 죽지만 않게 처치해 줘요· 그리고 물수건 더 있어요?”
“혹시 몰라서 더 준비해 놓았다만·”
청이 새 물수건 받아서는 간식 든 주인 바라보듯이 아련한 눈빛으로 청을 바라보는 설이리의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아주었다·
청이 딱히 악감정이나 귀찮아서 거칠게 문댄 것은 아니다·
다만 저 아득한 과거 코흘리개 시절에 어머니가 때 밀어주실 때면 아주 살가죽을 한 겹 벗겨버리는 가혹한 고문을 가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고·
“아파요·”
말이야 그렇지만 눈꼬리가 아주 살짝 휜 것이 설이리 사육의 권위자인 청이 보았을 때는 아주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얘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지가 안 닦고 나한테 눈치를 주고·
돌아와서는 출출하니 청이 야식을 조금 먹고 정확히는 야식을 만찬인 양 돼지처럼 흡입하고는 일월표국 지하실로 향했다·
“음· 좀 시끄러울 수도 있는데·”
“우려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아가씨· 수백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더라도 세상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완벽한 방음으로 설계된 음 창고 창고입지요 핫 하핫·”
“오·”
그러다가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창고에 왜 방음 설계를 해 놨어요?”
“어 음· 그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소인도 모르겠습니다· 그 원래부터 이랬던 것으로 소인도 궁금합니다· 하 하핫·”
“음·”
원래부터 이랬다니· 불순한 용도였나?
어쨌거나 마침 잘 된 일이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니 일월상단의 표두라는 아저씨가 멀쩡한 문짝 놔 두고 벽을 더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우르릉 하며 잘 위장된 철문을 힘겹게 열어젖혔다·
와 철문 두께가 무슨 한 치는 되겠네·
청이 완벽한 방음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두께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여닫지도 못할 무게일 텐데 소리가 어떻게 이걸 뚫고 밖으로 나가겠는가·
“오우· 비밀 창고·”
“자· 이쪽입니다· 아가씨·”
안쪽에 걸린 등불들에 불을 붙이고는 양손에 척 집어든 쌍수등불 표두가 등불 한 개는 청의 발밑을 남은 하나는 청의 발밑을 비춰 두 배로 밝히며 뒤로 걸어서 내려간다·
음· 나야 발밑이 환하기는 한데 도대체 이럴 거면 뭐하러 등불을 두 개 씩이나 들고 있담·
“내가 하나 들어줄게요·”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제 삶의 기쁨! 그러니까 아가씨의 앞길을 비춰드리는 것이 제게는 큰 기쁨이라는 뜻으로 다른 뜻은 없으며 그저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다는데야· 뭐·
그렇게 극진하게 비춰주는 계단 타고 쭉 내려가 또 제법 뻗은 복도를 나아가니 또 철문이 하나 나와 그 안쪽에 잡아온 접수책이 대자로 뻗은 받침대에 예쁘게 잘 묶인 채로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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