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0
“읍! 읍!”
“재갈을 물려 놨네요?”
“이 불경한 것이 자꾸 혀를 깨물려고 하지 뭡니까·”
“음· 혀가 잘린다고 죽지는 않는데·”
“아가씨· 이런 놈들이 혀를 깨무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수작입니다·”
“와· 의리의 사나이 나셨네· 혀 잘리면 말도 못하니까? 용기야 가상하지만 담도 참 크다· 나 같으면 그 짓거리 눈 뜨고 못 봐· 후회할 때까지 두고두고 살려서 절대로 못 죽게 만들어 놓을 텐데·”
“오오· 과연! 훌륭하십니다! 그렇게 어디 전시해 놓으면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훗· 자· 들었죠? 어설프게 혀 깨물고 그러면 팔다리 잘라서 짐승처럼 기를 거야· 애초에 뭐 좋은 일 한다고 의리를 지키는지 모르겠네·”
청이 그리 말하며 재갈을 풀었다·
“퉷!”
풀어주자마자 공격을 시도하는 살수였다·
안타깝게도 청이 손에 든 재갈을 들어서 가볍게 막아내고 말았지만·
“이놈이! 감히!”
표국 아저씨가 분개했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막아내지 않았던가·
“오우· 무시무시한 공격· 맞았으면 살과 뼈가 녹아내리고 악취에 코가 멀어버리고 만다는 독침인가요?”
“죽여라· 할 말은 없다·”
“왜요? 죽기 전에 좋은 일이나 한번 하고 가지· 해로운 쓰레기들 치우는 데에 아주 쬐끔?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
“입을 다무시겠다? 이거· 불타오르는걸· 어떻게 해야 이 쓰레기가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까· 오·”
청이 저 혼자 말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정답을 말하고도 헤매고 있었구나·
“표국 아저씨· 여기서 불 피워도 돼요?”
그러자 돌연 표국 아저씨가 무릎을 털썩 꿇는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환기가 좋지 못해서 숯불을 피우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제가 아가씨의 존귀하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러한 불경이라니! 제 팔로 사죄를 드리곘습니다!”
그러고는 품에서 장도(긴 단도)를 꺼내드는 것이 진짜로 제 팔이라도 자를 기세다·
물론 청이 생각하기에는 어차피 말릴 거 알고 하는 일종의 공연이지만 이 아저씨는 굉장한 박력으로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죄송하니 마니· 그리고 제가 빌려쓰는 판인데 이것저것 까다롭게 구는 거지 왜 아저씨가 그래요?”
“크흑· 자비로우셔라···”
그러나 표국 아저씨는 심장이 덜커덕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천마신교의 상징은 신령한 불 성화다·
신교의 성화는 광명으로 밝게 타오르나 정작 신령한 불 아래에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사람이 꿰뚫어 볼 수 없는 암흑이다·
이는 선과 악 광명과 암흑을 모두 주관하시는 천마지존 그 자체라고도 하겠다·
그러므로 지상에 계신 현인신께서 죄인을 단죄하시니 성스러운 불을 쓰시는 일이 그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이러한 당연하디 당연한 해가 뜨고 지며 달이 뜨고 지는 일과 같이 자연스러운 이치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정말로 부끄러워 죽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졸자의 눈이 어두워 광명한 빛을 두고도 뜻을 알지 못하니 전능하신 내 주인께 가로되 미천한 종이 팔을 덜어내 사죄하고자 하니 이는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 그 무게가 일곱 근입니다 그리하며 존귀하신 천마지존께서 웃으며 이르시되 당신께서 지상에 당도하되 모든 것이 너희에게 빌려 비롯한 것이니라 그러니 너희는 너희 어리석음으로 번민하지 말라 나는 이미 만족하였으니···
표국 아저씨 대 천마신교 본당 성화신전 소속의 상급 교리전사가 무궁한 감격으로 차후 후대에 남길 경전을 마음속으로 마구 써내렸다·
“미친 놈들···”
그 주접을 바라보던 살수가 입만 살았다·
아직도 기가 죽지 않은 것이다·
와· 이 녀석은 만만치 않겠는데·
청이 마침내 호적수를 만난 것 같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이제부터 팔다리 끝에서부터 천천히 구워서 아주 바짝 구워 태워버릴 건데요· 음· 도중에 아는 것들 전부 털어놓는다면 아주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요·”
“미친년· 누가 그딴 소리를 듣고 정보를 토해놓는단 말이냐·”
“대신 어깨랑 여기 다리 끝까지 홀라당 숯이 될 때까지 버티면 그쪽이 이긴 걸로 치고 살려줄게요· 평생 살려 줄게요· 늙어 죽을 때까지 돼지죽만 먹으면서 살게 만들어줄 테니까· 사람이 먹고 자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돼지랑 붙어먹게도 해줄게요· 그때는 죽여 달라 빌어도 무르기는 없는 거 알죠?”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였다·
과거 사악하기로 하늘에 닿아서 세상에 글자 하나를 지워버린 여태후가 하는 말이 바로 이러했을까·
고대에 본래 돼지를 이르는 한자로 가장 널리 쓰는 글자는 돼지 체彘 자였다·
그러나 유방 부인 여씨가 인간 돼지 인체라 하는 극악무도한 형벌을 선보였으니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끔찍하게 여겨 돼지 체 자를 꺼려 더는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태후도 억울할 수 있다·
유방이라는 천하의 개자식을 남편이라고 온갖 뒷바라지 다 하고 돌아다녔으니 남편 대신 죗값을 치르겠다고 한 옥살이가 도합 수 년이 넘는다·
당시에 옥살이란 옥리들의 심심풀이 장난감과 같은 끔찍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남편 대신 죗값을 치른 것이다·
그럼에도 지조를 잃지 않고 남편 하나만 지극정성으로 따르던 여태후였으나 유방은 정작 황제가 되고 나서는 더럽고 사악한 년이라며 홀대했으니 당연히 사람이 홱 돌아버릴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애초에 유방이란 놈이 배신 그 자체다·
항우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아부하며 온갖 혜택은 다 받아처먹고 나서 뒤통수를 친 혐오스러운 인성이 제 부인에게라고 잘해줬으리라고·
그 인성이 핏줄 타고 쭉쭉 내려오다보니 당연히 나라가 망해 최초의 민란 녹림병이 등장하고 그 후배 격인 황건적도 나오고 동탁이며 조씨 따위의 역적들이 득세했다·
심지어는 유씨랍시고 돗자리 팔던 거지새끼까지 천하를 논할 지경이 아니었던가·
재미있게도 서양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있어서 구두나 닦던 거지새끼까지 주식에 대해 논할 지경이 되니 대공황이라는 동반 자살 축제가 열리지 않았던가·
동양에서는 돗자리나 팔던 거지새끼까지 천하를 논했으니 당연히 천만 단위로 사람이 죽어나간 끔찍한 시대가 열릴 수밖에는·
다행히 이 혐오스러운 유씨의 계보도는 사마씨가 목을 잘라내며 끝을 고했다·
이후에는 천하를 얻고도 포기하며 열여섯으로 나누어 양보하기까지 했으니 이것이 바로 사마씨가 중원 역사상 최고의 협객이라고 꼽히는 이유였다·
“이 이 끔찍한 년! 그게 사람으로서 할 소리냐! 차라리 죽여! 죽이란 말이다!”
“사람 죽여서 먹고사는 놈한테 듣기에는 좀· 그런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 한번 크게 잘못 건드려서 비참하게 죽게 될 거라고· 아니면 남의 목숨 팔아서 연명하는 기생충이 어머 술병아 미안· 기생충 혐오가 아니야· 쨌든 무슨 존경이라도 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갈 줄 알았냐구요· 쓰레기처럼 살았으면 쓰레기처럼 가야 맞지 않나? 옳게 된 세상이 그런 세상 아니에요?”
세상의 주인께서 이르시되 악행의 끝에는 비참한 최후만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는 너희가 가꿔내야 할 올바른 세상의 모습이라···
옆에 듣고 있던 상급 교리 전사 표국 아저씨의 눈빛이 희번덕희번덕 번들거렸다·
“크큭 그래· 쓰레기처럼 살았다는 말에 부정은 하지 않으마· 그럼 네년은· 네년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러한단 말이냐· 사람 죽이는 건 너나 나나 똑같지 않나·”
“엥· 사람? 여기 사람이라고는 나랑 음· 표국 아저씨는 선행을 좀 더 베풀어야겠다· 간당간당 쪼끔 위험하네·”
“노력하겠습니다!”
청이 살수를 보며 표정을 지웠다·
“지금 뭐 말로 싸우자는 거 아니잖아요· 그쪽한테 듣고 싶은 말이라곤 장흥상방에서 의뢰 맡은 놈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정도인 거지· 그쪽이 하기 싫은 말도 그거니까· 우리 고문을 통해서 한번 누가 이기나 붙어 보자는 거고·”
“미친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개년보단 미친년이 낫지 않나? 자 그럼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해요· 벙어리 신세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사지를 다 태워서 상전 모시듯 돼지우리에 처박아드려야 하니까·”
—
“도대체 왜 그럴까? 이해를 못 하겠네·”
“무얼 말씀이십니까?”
표국 아저씨 초대암이 그 혼잣말을 넙죽 받아주었다·
“굳이 말을 할 거면 좋게 말할 때 하면 좋잖아요· 왜 사람 번거롭게 일이란 일은 다 시키고 나서야 질질 짜면서 털어놓냐는 거지· 아씨 탄 냄새 다 뱄잖아·”
살막 접수원은 죽음을 각오했다·
어릴 적에 주워서 어엿한 한 사람의 살수로 키워준 살막의 은혜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기꺼이 죽음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아주 굳게 다졌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손끝부터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지기 시작하고 나서는 곧장 깨달았다·
와아· 이게 내 생각보다 더 훨씬 진짜 미치도록 아픈 거였구나· 안 되겠다· 인간적으로 이걸 어떻게 버티냐· 살수 아니라 부처가 와도 이건 못 버틴다· 진짜 천창 천살님 걸고· 살수적으로 이건 아니지·
살막 접수원이 이러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살막 접수원은 울었다·
너무 아파서 울었고 괜히 버티다가 이 꼴을 당한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고 그렇게 목숨으로 지키고자 한 살막을 배신한 자신이 한심해서 울었다·
다만 청은 남을 괴롭힐 때는 바보가 아니다·
고문으로 얻은 정보의 신뢰도란 형편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으로 그게 정말 믿을만한 정보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일단 아프고 나면 당장 모면하기 위해 아무 소리나 하는 생물에다 아프게 한 이를 미워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너 좆되라고 거짓말을 섞기 십상이라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더 바짝 구웠다·
태우고 물어보고 태우고 물어보고 태우고 물어보고 또 태우고 물어보고·
굽기 전의 태도가 워낙에 극성맞은 손님이었기에 여러 번의 확인 작업을 마칠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이래서 사람이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잡히자마자 공손하고 겸손한 태도로 존경심을 내보이며 정보를 뱉었다면 이렇게 아픈 꼴까지는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다만 들인 수고에 비해 얻은 바는 딱히 별로 없었으니·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해야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아주 멋은 다 부려놓고· 결국 하는 소리가 특급 손님 정보는 특급 선을 따라가야 안다는 소리뿐이야?”
“아가씨· 그러면 이후는 저희에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청이 얻은 바는 많지 않았지만 초대암이 얻은 정보는 막대한 것이었다·
살막의 딱 중간쯤 되는 놈이 아는 살막의 내부 정보였다· 일부의 구조도로부터 하급 암호책 표식 연락 수단 거기에 더해 중간 관리자의 신상과 호출 및 연락 방법····
“엥· 일월표국에서요? 왜요?”
“그 음· 그것이· 음 음 은· 그렇습니다 금은이 살수 놈들 털면 제대로 금은이 막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표국 사업에는 금은이 무척 들어가는 일인 것입니다· 게다가 저 쓰레기 같은 살수 놈들을 뿌리 뽑으시려는 아가씨의 뜻에 소인 역시 큰 감명을 받지 않았습니까· 놈이 말한 정보 대로라면 저희도 저희 방식으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음· 아무리 금은이 좋아도 이건 위험하지 않겠어요? 아주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고 칼부터 뽑고 덤비던데·”
“최 어르신께서 도와주시면 그리 위험한 일도 아닙니다· 우려해주시니 너무나 감사 그야말로 대자대비 무량한 자애이십니다·”
“음· 할아범이면 뭐·”
화경의 고수인 할아범과 아마도 천마신시의 탈북자로 추정되는 설가상회 직원들도 일류 이상씩은 하는 무인들이더라·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다만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발 빼요· 알았죠?”
“크흑 옙! 알았습니다! 이 소인 목숨 목숨으로 사수하겠습니다!”
그에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알아들은 거 맞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럼프가 또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턱턱 막혀서 글도 안 나와 온종일 억지로 짜내도 마음에 안 들어··
진짜 와장창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면 그냥 외면하고 도망치기나 하지 도움이 안 되더라구요·
이럴때일수록 억지로라도 짜내며 쓰고지우고쓰고지우고 막힌 혈을 뚫어야지··
그러니 당분간 연재시간이 흔들리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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