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2
그에 장안의 군중들이 꼴깍 침을 삼켰다·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참담한 죄악이라고 하지 않나·
도대체 누가 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서두가 길어 뜸을 들이나 하고·
“낙녕 땅에 수해로 큰 재난이 밀어닥쳤다는 소식을 들으신 바가 있으신지요· 간밤에 큰 물이 일시에 덮쳐 성문이 박살이 날 정도였답니다· 그에 낙녕 땅에 죽은 이가 이천이요 시체조차 찾지 못해 사라진 이가 일천이 넘으니 도합 삼천이 넘는 생목숨이 하룻밤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네 강역이 아니면 남의 일이 되기에 하남성에서 터진 재난에 섬서성 사람들이야 그저 안타깝구나 쯧쯧 하고 우리네 제방이나 한 번 더 살펴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사람 삼천이 죽어나갔다는 소리는 또 섬뜩하니 중원에서 홍수라고 하면 누가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남의 재앙이 아닌 까닭이었다·
“이토록 큰 피해가 있었던 이유는 그 해 겨울에 새로 지어 완성한 강언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그저 흐르게 놔두었다면 도시가 조금 잠기고 말았을 일을 굳이 물길을 막아 한 방에 흘러내렸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 강언이 본래는 터져서는 안 되는 황상의 은혜이나 강언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외려 삼천 명의 생목숨이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청의 마지막 한 마디에 순간 일시에 사위가 고요해지다 못해 싸아악 모두의 핏기 빠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괜히 강언을 지었기에 괜한 치수 공사를 벌여서 사달이 벌어졌다고 공사를 명한 저 황상의 잘못이라고 하는 말이라서·
그야말로 역적이 하는 소리다·
이거 더 들어서는 안되겠다고·
사람들이 급히 눈치를 보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때였다·
청이 능숙하게 과오를 돌렸다·
“물론 지엄하신 황상께서는 그저 백성을 위하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공사를 명하셨을 뿐이시니 그 은혜는 각골난망 뼈에 새겨서 잊지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황상께서 굽어 돌보심에 우리 모두 한데 소리높여 만세를 부르며 감사를 드릴 일이 아니겠어요·”
휴우· 역적질 하자는 소리가 아닌가보다·
안도의 한숨이 일시에 터지니 그 나지막한 소리가 태풍처럼 온 사위를 휘감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강언이 터졌어요· 삼천이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잃고 그보다 더 더 많은 이들이 또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황상께서 내려주신 강언이 터진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청이 여기서 한 번 끊고 주변을 쓰윽 둘러보며 눈을 마주쳤다·
꿀꺽 침 삼키는 모양들로 잘 듣고 있다는 대답들이 돌아온다·
청이 그렇게 뜸을 잘 들이다 마침내 결국 이 한마디를 토해놓는 것이다·
“애초부터 강언이 무너지게 터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들어가야 할 자재가 채 반절조차 그래요! 반절조차! 채 반절조차 넣지 않았으니 폭우를 견디지 못했어요! 그 삼천 명의 목숨을 그저 자기가 금은을 챙기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터지도록 지어놓은 무리가 있단 말입니다!”
“허업·”
“누가 일부러 강언을 터뜨렸단 말이오!?”
“세상에 누가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돈을 벌려고 강언을 터뜨렸다고!”
여기저기서 유난히 목소리 크게 분개하는 이들이 있었다·
청은 몰랐지만 우리 존귀하신 천마지존께서 말씀하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나선 바람잡이들이었다·
“그래서 그게 누구란 말이요!?”
“낙하의 치수 공사는 여러분들께도 익히 알고 계시는 장흥상방에서 맡았답니다·”
그에 다시 군중이 경악했다·
장흥상방은 섬서제일상방 말 그대로 섬서에서 제일가는 상방이며 장흥이란 장안이 흥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즉 장안 사람들의 자부심 중 하나다·
“마 말도 안 돼!”
“증좌가 증좌가 있소!?”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진다·
청이 그에 마음껏 떠들도록 잠시 기다린 후에 다시 이목이 모이고 나서야 어여쁜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바로 그 증인입니다· 혹시 추가목방의 사람들이 계신가요? 여기 추가목방의 장목수인 염한수라는 이예요·”
그에 단상에 선 이 중 하나가 청의 곁에 올라선다·
다만 아주 제대로 흠씬 얻어맞아 얼굴이 두 배로 부어올라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기는 했다·
물론 진짜 염한수는 자객의 칼에 맞아 뒈졌다· 그의 가족들은 안타깝게도 같이 죽고 말았으나 악업의 차이가 있을 것이 분명하여 저승에서 재회가 가능한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덕분에 살막 살수가 사칭해도 민감하게 진짜냐 아니냐를 따질 만한 인물이 없으니 무어·
“저는 추가목방의 장목수 염한수입니다! 저는 장흥상방의 명령을 받아 설계에 쓰인 자재를 절반으로 줄이고! 강토를 모래로 주회를 자갈로 갈음하여 시공했습니다! 이는 본래 쓰여야 할 자재를 훨씬 싼 것으로 바꾸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 또 좌중에 술렁술렁 큰 웅성거림이 번졌다·
추가목방이라 하면 서안에서도 알아주는 목방이고 그러한 목방이라도 대장 목수라 하면 서너 명이 전부이니 장목수 염한수의 이름을 들어본 이가 한둘이 아닌 까닭이다·
밝은 대낮에 당당히 하는 고발이다·
대역을 끌고 와서 사기를 칠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맹점인 것이다·
얼굴이 부어 알아보기는 힘드나 처맞을 짓을 한 놈이라서 처맞았구나 아주 개새끼가 따로 없구나 할 뿐·
그때였다·
날카로운 외침이 좌중을 할퀸다·
“그럴 리 없다! 저놈은 염한수가 아니다! 가짜란 말이다!”
또다시 웅성웅성·
음· 설마 했더니· 알아보는 놈이 생기네·
청이 흐읍 숨을 들이켰다·
“방금 누구시죠? 어느 분께서 장목수 염 씨를 가짜라고 하셨나요? 숨지 말고 이리 오셔서 당당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자요!”
“이 사람이 그랬소!”
원시 중원의 미개한 놀이 문화로 인해 이렇게 흥미진진한 대결을 놓칠 중원 사람들이 아니다·
곧장 소리친 이가 이리저리 떠밀려 좌중 앞에 툭 튀어나온다·
그는 당황한 안색이다가 이내 흠흠 목청을 더듬고 후읍 크게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막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때에-
빡!
대지 바로 위를 스치듯 날아간 청의 발등이 사내의 종아리 옆을 호쾌하게 후려찼다·
똑 하고 뼈 부러지는 깔끔한 촉감이 발등 타고 올라오는 통에 청이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좌중 앞에서 사람 차고 웃으면 고발하는 이가 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청이 무너지는 사내의 멱살을 쥐고 좌우로 쫘악! 호쾌하게 팔을 벌리니 여항적의 반역적인 힘 앞에 옷가지 따위가 버릴 요량이 있으랴·
순식간에 사내를 상의 탈의남으로 바꾼 청이 번쩍 들어 단상 위로 훌쩍 뛰어 복귀했다·
“여러분! 여기 이 문신이 보이시나요! 이 이심이라는 두 글자는 살막이라는 자객들 사람을 죽여 먹고사는 식인종들이 몸에 새기는 글자입니다!”
얼굴이 두 배로 부어 이게 염한수 본인이 맞는지 아닌지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럴 리 없다? 가짜다?
가장 하나 잘못 들였다가 사이좋게 떠나버린 일가족조차 여기에 있었다면 한눈에 못 알아볼 상태를 단박에 눈치채는 놈이 있다?
진짜를 죽인 장본인이나 혹은 그에 연관된 놈이 아니라면 술 먹고 자취를 감춘 염한수가 죽었는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설마설마 그렇게 멍청하게 굴어서 걸릴까 싶었는데 그 설마가 여기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최근 장목수 댁에서 줄초상이 났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장흥상방이 저네 죄를 감추기 위해 공사에 참여한 장목수들에게 자객을 보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 중에 목수 일 하시는 분이 있다면 최근에 이름난 장목수들이 죄다 죽거나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그에 또 웅성웅성·
진짜로 목수 일 하는 이들도 개중에 몇 명 자리를 잡았으니 저 아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아주 신이 나서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맞아! 맞다고! 왕 목수도 강 목수도 장 목수는 둘 다 초상이 났어! 조왕목방에는 아예 장목수 둘이 다 나르는 바람에 장사 접어야 한다고 난리라던데!
물론 그런 치고는 목수의 비중이 제법 높은 편이었는데 신앙심으로 목수에 빙의한 열혈 신자들이 열심히 바람을 잡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여기 웃통 까고 있는 놈들이 죄다 살막의 식인귀들이에요! 모두 왼쪽 가슴 아래에 이심이라는 문신을 새겼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좌입니다!”
누가 멍청하게 나 살수요 하고 문신을 새기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범죄 조직이야말로 문신을 새겨 그 소속을 명확히 밝히는 법이었다·
원시 고대 미개 중원에서 문신을 찍는 이는 딱 한 종류뿐이다·
범죄자·
이미 들킨 범죄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대문짝만하게 문신을 찍어 천하인 모두가 알 수 있는 낙인으로 삼는다·
아직 안 들킨 범죄자들은 문신을 찍어서 배신을 막고 소속감을 기른다·
누군가 배신해 이탈한다면 그 동네에다 소문을 내면 그만인 것이다·
어느 동네에 누구씨가 실은 범죄자 출신이라더라· 어디에 문신이 있으니 보면 안다더라·
그러니 문신이 찍히고 나면 기본적으로 범죄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개새끼들 모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이름을 정하고 다음으로 문신을 정하는 이유였다·
이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신의 인식이 저 아래 처박혀 천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신이 주술적으로 쓰인 것은 저 고대의 원시인들이나 하던 짓이고 사람이 사회라 하는 터전을 마련한 이후에 문신이란 사실 낙인에 불과한 것이었기에·
“저는 살막의 살수인 초주남이라 합니다· 오가미곡에서 쌀 파는 이로 위장하여 살고 있었고 실은 살막의 인급 살수로 지금까지 쉰 건 이상의 의뢰를 악·”
청이 살수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의뢰는 무슨? 제대로 말 안 해?”
“금을 받고 쉰 명 이상을 살해했습니다! 이번에는 장흥상방의 의뢰로 치수 공사에 동원된 장목수 왕중삼을 죽였습니다!”
뒤이어 손가락 없는 간혹 손목까지 없는 살수들이 차례대로 이름과 위장 신분 또 죽은 장목수의 이름을 밝혔다·
청은 약속을 지킨다·
거짓 증언의 대가로 살게 될 이들이다·
다만 오른손부터 조져놓았고 자기 조직을 배신한 놈들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 책임질 필요는 또 없지 않겠는가·
살고자 하면 살게 될 것이요 재수가 없으면 뭐 죽든가 어쩌든가 내 알 바인가·
여기까지 오니 상황은 명백해 보였다·
장흥상방이 치수 공사에서 자재를 반이나 빼돌려 막대한 사망자가 나온 수난이 났다·
이 죄악이 들킬까 염려한 장흥상방이 장목수들에게 자객을 보냈다·
그것도 그 장목수들은 장흥상방과 함께 오래 일해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범죄의 고발이었다·
“여러분 이제 저는 장흥상방으로 가서 이 추악한 죄악이 누구의 계획인지 그리고 또 죗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따져 묻고자 합니다! 부디 여러분들께서도 이 추악하디 추악한 범죄의 결과를 함께 지켜보셨으면 해요!”
그리고는 청이 훌쩍 우아하게 단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따각따각 걸어나가니 군중들이 주춤주춤 물러서 청이 가는 길로 천천히 길이 열린다·
설가상회의 직원들이 저마다 살막의 배신자들을 하나씩 꿰차고 아주 당당하게 코를 치들고 천하에서 가장 뿌듯한 사람의 표정을 한 상태로 그 뒤를 따랐다·
감히 청 앞에 나서지 못하는 죄인이라서 바람이나 잡던 천마신교의 요원들이 그를 세상 가장 부러운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음은 물론이고·
그리하여 우르르 청의 뒤를 따라 비작부 요원들이 그 뒤를 따라 장안가의 온 군중들이 그 드넓은 대로를 가득 메우며 함께 행진했다·
청이 그 선두에 서서 곁을 지키는 설이리를 한 번 보고 한숨을 푹 내쉰 후에·
그리고 반대쪽을 지키는 할아범을 보며 슬그머니 묻는 것이었다·
“할아범 근데 이쪽이 장흥상방으로 가는 길이 맞아? 생각해보니 길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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