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3
장흥상방은 섬서에서 제일가는 상방이다·
그리고 상방이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란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알토란같은 비싼 땅에 위풍당당한 큰 건물을 올려놓고 간판을 떡하니 올려놓으면 세상 사람 누구라도 와 진짜 잘나가는 집이로구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안에서 제일가는 상방이 어디에 자리를 잡겠는가·
그러니 장안가 끝 혹은 시작 지점에 떡하니 거대한 담벼락 세워 끝도 없이 이어 놓았으니 청이 사람들 모아서 떠든 장소에서 도보로 이 각(삼십 분) 정도 걸리는 바로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흥상방 나빠요 죽일 놈들이야 하는 호소에 안색이 변해 호다닥 빠지는 이들이 있었으니 곧장 내달려 헉헉 가쁜 숨으로 장흥상방 쪽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물론 단체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상하의 직급이 엄중한 법이다·
장흥상방쯤 되면 한 방에 직통으로 상방의 주인에게까지 닿을 수는 없다·
“큰일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저자에···”
저자에 사람이 우르르 강언이 와르르 살수가 푹푹 목수가 으악 장흥상방 이 개새끼들!
“뭣이 아이고 진짜 큰 일이 났구나 내 이럴 때가 아니라 당장 알려드려야···!”
그리고 또 호다다닥·
“큰일이 났습니다요! 지금 저자에···”
“뭐야? 그게 무슨 아니 일단 보고부터 젠장 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리고 또 호다다다닥·
“큰일입니다! 지금 저자에···”
그렇게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니 청이 알았다면 무슨 방송에서나 볼 법한 말 전달 놀이를 하고 자빠졌냐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보고 체계가 있고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해도 나중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트집거리가 될 수 있으니 당연히 상급자에게 보고하여 순서를 차려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본인만 손해를 보니까·
그리하여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부총관이 어렵사리 방주의 계단을 올라 상방주의 존안을 뵐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어디 창고에 불이라도 났나?”
귀한 난초를 애정을 담아 쓱쓱 쓰다듬던 상방주 남문성삼이 심드렁하게 물어보았다·
사실 창고가 수십이라 개중 한 개쯤 불이 난다 해도 아깝기는 하지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남문성삼의 생각이다·
“그것이 지금 저자에 사람이 몰려 있사온데·”
“그게 왜 우르르 몰려서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디?”
“그렇습니다! 그것이···”
부총관이 다급히 설명한 사정에 난초를 닦아내던 남문성삼이 그대로 아끼던 난의 이파리를 잡아 뜯었다·
“뭐야!? 치수 사업이 아니 당장 해아를 고것부터 불러 와!”
남문성삼은 이제 겨우 쉰넷 젊다면 젊고 늙었다면 늙은 나이였지만 겉으로 보면 거의 팔십 세 노인네처럼 생겼다·
그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에는 도시 외곽 자그만한 상방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아는 섬서성 제일 상방이 되었으니 이 성세를 삼십 년 하고 오 년 만에 이끌어낸 고생이 그를 겉늙게 만든 것이다·
젊어서 한 고생이 늙어서 골병이라 온갖 좋은 보약에 전속 의원 들여 관리를 해도 요즘 비오는 때면 온몸이 저려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판이다·
그러니 자식새끼들 모아다 너희도 이제 저마다 성과를 보이라고 개중 제일의 상인만이 장흥상방의 주인이 될 것이라 선언하고는 은퇴 준비나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큰 성과를 가진 자식은 막내딸 남문해였다·
기어코 치수 공사를 따내 건설 사업으로 제 오라비들을 아득히 추월했으니 사실 오라비들 뿐만 아니라 장흥상방에서도 한 건의 사업으로 벌어들인 최고액을 경신했을 정도로 막대한 금은 은 빼고 금으로 채워진 수레가 두 대나 들었으니까·
그러니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아이고 아이가 욕심이 과해서 기어코 큰 화를 불러들이고 말았구나 하고·
물론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상인이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때였다·
-상방주는 소명하라! 소명하라!
-소명하라!!! 소명하라!!!
-장흥상방은 해명하라! 해명하라!
-해명하라!!! 해명하라!!!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계집의 미성과 그 뒤를 잇는 수많은 군중들의 우렁찬 합창에 바닥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답답하게 보고 체계를 타고 한 칸 한 칸 올라오는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장안가의 군중들이 대문 앞에 몰려들었다는 보고였다·
이리 급한 일이라면 허리를 생략할 만도 한데 이런 중한 사안에도 경직된 보고 절차가 지켜지고 있음은 평소 위아래와 절차를 강조하며 중시했던 상방주의 잘못이라고 하겠다·
급하다고 절차를 건너뛰어봐야 혼이나 날 텐데 자기 보신 하나는 끔찍한 중원 인민들이 어길 수가 있겠나·
다만 타고 올라가던 소식이 상방주의 귀에 닿기 전에 시간이 초과되고 말았다·
아무리 으리으리한 장원이라도 담벼락이 성벽이 아니고 대문이 성벽이 아닌바 절세 고수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청이 기세 좋게 행진하다 후진을 해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순전히 재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장안가 중심이 사거리라고 하나 위아래로 뻗은 도로는 좌우에 비해 넓이와 규모 면에서 손색이 많았으니 애초에 장안 거리 오른쪽과 왼쪽 둘 중 하나가 정답에 이르는 길로 확률은 반반이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기세 좋게 따각따각 꽁무니에 사람들 붙여 장흥상방까지 도달하고 나니 이미 소식이 들어 대문이 굳게 닫힌 상태로 문지기들이 창을 빼들고 있는 것이다·
“이봐요 상방주님을 뵙고자-”
“도 돌아가십시오·”
얘는 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가래·
청이 무시하고 하던 말 마저 했다·
“하는데요·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불가합니다· 돌아가십시오· 돌아가시지 않으면···”
덜덜 떨며 말하던 문지기가 돌연 말끝을 흐렸다· 돌아가시지 않으면 뭐? 어떻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청의 눈이 번뜩인다·
“돌아가지 않으면요? 어떻게 하시나요?”
지가 어쩔 건데·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창으로 푹 찌르기라도 할 테야?
“그으· 그래 관아에 신고를 하겠습니다·”
“이 인파를 뚫고서요?”
“어· 음· 듣고 보니 또 그렇습니다?”
문지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래요?”
“아이고 나리 제 입장도 한 번만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안 돼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무림인답게 힘으로 해결하도록 해 볼까요· 자 다칠 수 있으니 물러나세요·”
“자 잠깐···!”
한낱 문지기가 초절정 고수 앞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용기가 가상하게 말려보기라도 했으니 나중에 면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별빛이 번뜩여 대문의 정중앙을 세로로 훑고 지나간다·
성인 허벅지보다도 굵은 무쇠 빗장이 걸려있던 대문이나 강기 앞에서는 무인이 든 병기가 아니라면 쇠붙이가 무용한 법이다·
“히익·”
길게 면으로 늘어지는 검강을 곁에서 본 문지기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니 청이 비켜준 것으로 간주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하여 적 조무래기 물리쳤다!
활짝 열린 대문으로 청이 따각따각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걷기로 나아가니 그 뒤로 사기충천 사기가 하늘에 닿은 군중들이 뒤를 따랐다·
다만 왜 사기가 높은지도 모르고 어째서 사기가 높아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리하여 청이 장흥상방의 거대한 장원만큼이나 드넓은 앞마당에 사람들 이끌고서 척 자리를 잡았으니 살면서 보고 겪어서 배운 대로 하는 것이다·
“장흥상방은 치수 사업의 부정에 대해 해명하라!”
“해명하라!!!”
본래 사람은 일정 숫자 이상이 모여들고 나면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장흥상방 앞마당을 메운 군중들이 청의 말끝을 복창하며 도대체 이게 뭐 어디서 나온 문화인지 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어쨌거나 소란이 점점 번지니 활짝 열린 대문으로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리다 쓱 들어와 묻는 것이다·
이 무슨 일이요? 잔치라도 열렸소?
잔치가 아니라 화형식입니다· 실은 말입니다····
아니 이 천인공노할 개새끼들을 보았나· 해명하라!!! 소명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엉덩이 무거운 상방주가 천화검의 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으니·
청이 그 풍채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음· 이거 이 늙은놈도 아주 개새끼였네·
장목수의 악업으로 미루어 볼때 치수 공사 보다는 그냥 개같이 살아온 늙은이인 모양·
사실 상업에 있어 평판이 매출에 기여한다는 이러한 평판에 기댄 상술은 현대에서나 정립이 된 아주 고도화된 기술이다·
저 서역의 미래에 버 대협이라는 걸출한 선동가 및 날조자가 있을 예정이다·
버 대협께서는 선동과 날조를 통해 아예 서역 사람들의 아침 식사 문화를 바꾸는 큰 업적을 남겼으니 든든하게 아침을 잘 챙겨먹던 서역인들이 계란과 훈제 돼지를 처먹도록 바꾼 장본인 되시겠다·
버 대협을 보고 감명받아 제자를 자처한 이로 그 유명한 괴 대협이 있을 정도로·
어쨌거나 버 대협의 상술학에서야 평판과 심상이 최초 등장했으니 아예 새로운 관점의 제시 신세계의 개척이었다·
상인들의 우주관을 바꾼 거대한 업적이라고도 하겠다·
그리하여 청의 고향에 와서는 상술에 있어 평판의 중요성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 미개 원시 중원에는 그러한 일 따위는 없었으니 천하에 이름난 거상이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타인을 착취하는 일을 기쁨으로 삼는 개새끼일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상도라고 하는 상인들의 미덕이 있어서 상생하라 베풀라 나누어주라 강조를 하기는 한다·
그리고 이런 미덕들이 다 그렇듯이 상인 새끼들이란 도무지 상생하고 베풀고 나누지 않는 망종들이라 계속 강조할 수밖에는·
그러니 청이 남문성삼의 악업을 보고서는 와 늙은 새끼가 죽일놈이네! 하고 곧장 판단을 내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실 장흥상방 아가씨가 벌인 일이라니 그 단죄의 범위가 어디까지 가야 하나 또 고민을 했었으나 이제는 명쾌하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형·
“이게 무슨 짓들이냐! 국법이 두렵지도 않으냐! 어찌 도적떼처럼 밀려들어와 이리 패악을 부린단 말이냐!”
음· 어째 하는 말들이 다 비슷비슷하네·
그에 청이 응수했다·
“그런데요? 자· 여기 보세요· 반짝반짝·”
청이 칼을 높이 들어 검강을 발했다·
누가 보아도 선뜩하게 시린 별빛이었다·
“검강 쓰는 도적 수령이 도적떼 데리고 들이닥쳤다고 쳐요· 상방주님이 무얼 하실 수가 있죠? 칼 들고 싸우실래요? 그래요 지금 덤비시겠다면 일백 수 정도는 양보해 드리도록 할게요· 일백 한 수에 목이 잘리시겠지만요·”
대놓고 하는 협박에 남문성삼의 말문이 콱 막혔다·
그래서 네가 어쩔 건데? 하는 말이 정말 말 그대로라 이대로 군중들을 이끌어 약탈하기 시작하면 상방에 모신 식객들로도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문성삼은 일가를 일군 거상이라 어버버 하다 밀려나버린 문지기와는 격이 다르다·
일궈올린 부의 무게가 남다르니 쌓인 경험이 얼굴 가죽에 켜켜히 쌓여 두껍기가 사람의 꼴이 아닌 것이다·
“네 정녕 도적떼의 수괴더냐? 그래 그리 상방을 약탈하면 국법이 네년을 가만히 둘 것 같더냐!”
“아· 국법· 맞다· 섬서성 포정사 나으리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고 하셨던가요?”
“흥· 그저 나 혼자 포정사 어르신을 흠모하여 그리 여길 뿐이다·”
포정사는 한 성의 최고 관리다·
이러한 고관이 아무리 섬서제일의 상방이라 해도 일개 상인과 호형호제한다고 아예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호형호제는 맞다고·
그렇게 대답하는 남문성삼이었다·
그에 청이 응수했다··
“그러면 관군 부르세요·”
“뭐야? 오라 네년이 믿는 바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데 불러도 괜찮겠어요?”
청이 싱긋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만약 감히 황상께서 명하신 치수 공사 사업을 일부러! 금은을 벌기 위해 자재를 빼돌려 망쳐버린 죄인이 여기에 있다면요? 그 포정사 나리시건 안찰사 나리시건 당장 추포하여 죄를 묻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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