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4
자신 있으면 한번 신고해 보라는 소리다·
그에 남문성삼이 흠칫 그리고 선뜩·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기에 흠칫·
그리고 아예 씨를 말리려는 험악한 적의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는·
“이년이! 이년이! 무슨 무도한 소리냐! 이··· 이년이!”
말문이 막히니 나오는 소리가 이렇다·
아씨· 이걸 어떻게 참아·
청이 큰 유혹에 갈등하다 마침내 불쑥 치밀어오르는 충동에 저항하지 못하고 기어코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년인지 일 년인지 너무 길게 잡으시지 마시고 당장 그 아가씨란 죽일 년부터 내 앞에 무릎 꿇려 대령하지 못하실까요?”
“크음···”
남문성삼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당장 이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
포정사와 호형호제한다는 말은 사실이고 심지어 내년에는 둘째 아들과 포정사 어르신의 아주 큰 근심이었던 못생긴 따님의 혼사가 예정되어있는 것이다·
어차피 증인들 치워버리고 관부에서 조사하는 척이나 하다 흐지부지 흘러버릴 수 있는 그런 사안이었다·
치수 사업으로 얻은 황금에다가 있는 가산 더해서 하남 쪽 어르신들께 성의를 표시하면 고작 낙녕 그 작은 도시의 일 따위란 아무 일도 없었다 하고 파묻어버릴 수 있는 그런 사안이었다·
“이보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왜 늙은이가 알아요? 그쪽도 치수 공사 자재 빼돌리는 데에 한 몫 보탰어요? 오라· 인제 보니 아가씨가 아니라 상방주가 직접 나서서 낙녕을 수몰시키려고 작정을 한 거였네요·”
“아니 오해 오해일세· 우리 이러지 말고 둘이서 이야기를 좀 하지· 응?”
둘이서 이야기하자면야 할 소리야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청이 코웃음을 쳤다·
“이봐요 늙은이· 내가 낙녕 구휼 사업에 쓴 황금이 금자로 사십 관이 넘어요· 그게 가진 전부라서 그랬지 더 있었으면 그대로 다 풀었어· 내가 뭐 받아먹으려고 이러는 것 같아?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그 개년이나 내 앞에 데려다 놔요·”
좌중에 오오 하는 탄성이 터졌다·
그러니까 전 재산 털어서 낙녕 구휼 사업에 밀어넣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안 그래도 낙녕천녀니 낙녕 땅에 선녀가 났다느니 하는 소문을 들어본 것도 같다·
물론 녹림도들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도적으로 사는 이상 빼앗긴 놈이 떠들면 병신 취급이나 했던 삶들 주제에 뭐 할 말이 있으려고·
“내 말 모르겠어요? 이봐요 늙은 님아· 자식 교육을 개한테 맡겼거나 혹은 춘화집으로 시켰어요? 다른 자식은 모르겠는데 딸 농사 하나만은 아주 제대로 망해서 천하의 마귀 같은 개년이 나왔으니까 집안 꼴이라도 보전하고 싶으시면 당장 여기 데려다 놓으시라구요·”
“감히 어디서 그런 망발을···! 내가 내가 누군지 알고!”
“어이쿠· 한 대 치시겠어요? 그럼 덤벼· 칼 든 강도가 여기 나셨으니 그 잘난 재산으로 때려 보시든 어쩌든 해보시라구요·”
청이 반짝반짝 얄밉게 검강을 껐다 켰다 내보이며 이죽거렸다·
사람이 아니꼬운 만큼 힘을 얻는다면 이 순간 남문성삼은 천하제일인에 단숨에 이를 정도의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칼은 가깝고 법은 가깝기는 해도 그보다는 덜 가깝다· 적어도 남문성삼만한 부자에게는 법이 멀리에 있지 않으므로·
원래 법이란 없는 자에게만 세상 가장 두려운 괴물이다·
법이란 있는 자에게는 꼬리 흔들며 오줌 지리고 배를 까뒤집는 개새끼마냥 충성을 다하는 심복이라서·
하지만 중원에는 칼이 있다·
턱 아래까지 들어온 칼은 지엄하고 비열하신 국법의 수호조차 손 쓸 도리가 없다·
“이러고도 후환이 두렵지도 않으냐!”
기껏 하는 소리가 두고보자라니·
청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해 주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늙은이도 초절정쯤 되는 초고수가 되어 보세요· 막 이래· 검강 막 뿜고 하면 간도 막 커지나 봐·”
“으윽·”
남문성삼이 비틀거렸다·
억울하고 분해 눈물이 다 날 것 같지만-
“뭐야 늙은이 울어요?”
실제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청은 가차없었다·
“와 여러분 여기 이 눈물이 보이시나요? 생목숨 삼천 명을 잡아먹은 늙은 괴물이 억울해서 눈물을 막 흘리고 있답니다! 너만 아니면 여기 모여 계신 장안의 협사분들만 아니라면 아무도 모를 수 있었는데! 이 극악무도한 죄악을 잘 감출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여러분 협사님들께서 힘을 보태주신 덕분이랍니다!”
“옳소!”
독실한 신도들이 곧장 화답하며 함성을 지르니 군중에 큰 불이 번지듯이 와아아!!! 하고 천하를 뒤흔드는 함성이 터진다·
그에 남문성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눈물이나 삼키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업이 문제가 아니라 가문이 씨몰살을 당하기 직전에 이른 것이다·
애초부터 청이 요구한 것이 상방 댁 개년이었다·
다른 말로 순순히 딸을 내놓고서 꼬리를 자르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을 그것도 아들아들아들딸 세상 가장 예쁜 막내딸이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딸 하나 살리겠다고 살리지도 못하고 온 식구가 씨몰살을 당하느니 내어주고 후에 이 원한을 갚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늙은 상인이 여기까지 빼앗고 짓밟으며 올라왔으니 그 독심이 이러한 것이다·
“이보시오 여러분! 내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치수 공사 사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 딸이 혼자서 이뤄낸 사업이라오· 나는 하늘과 조상님들께 맹세코 군말 한 마디 동전 한 문 조차 돕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상방의 후계를 정하는 중이라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였소·”
그에 군중들이 미심쩍은 눈으로 상방주를 바라본다·
“믿기시지 않으시겠지만 그러하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본방과 거래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알 것이오· 지금 네 명의 자식이 저마다 별개로 사업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모른다· 다른 자식들도 모른다·
온전히 딸자식 혼자 한 짓이라고·
그리고 전혀 거짓 없는 진실이기도 했다·
이미 반쯤 은퇴하며 내후년까지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자식에게 상방을 물려주겠다 하고 선언을 한 상태였으니까·
그에 군중에서 그건 그렇더라 하는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서 퍼져나갔다·
장안가에 있던 장안 상인이 장흥상방의 물정을 모를까·
안 그래도 네 명 중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하느냐로 갈팡질팡 고심하거나 혹은 우정 역시 선착순이라며 빠르게 한 놈 찍어 친구 도장을 꽝 찍어놓거나 한 판이라서·
듣고자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청력의 소유자인 청이 그 웅성거림을 들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진짜로 늙은이는 몰랐던 모양인데·
전혀 관여한 바가 없는데도 악업 수준이?
도대체 어떤 추악한 삶을 살았길래?
그냥 죽이는 게 세상에 이롭지 않나?
하지만 청이 살심을 접었다·
죽여도 되는 놈이 꼭 죽여야 하는 놈은 아니었으므로 여기서 피를 보면 뒤에 깔린 군중이 약탈자들 떼강도로 돌변하는 것도 순식간일 테니까·
청은 이제 중원 놈들의 한계를 잘 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악행이란 군중을 이만큼이나 이끌고 온 자신의 탓이다·
게다가·
상방 주인은 죽일 놈이지만 무력하게 뻥 뚫려버린 문지기부터 여기저기 불안한 낯을 하고 쳐다보는 상방 직원들 중에는 무고한 이들이 제법 있었으므로·
그리하여 잠시 후·
드디어 하인들에게 양 팔 붙들려 바동거리며 질질 끌려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바로 그! 장흥상방의 아가씨와 감동적인 대면이 이루어진 것이다·
“놓지 놓지 못해! 감히 꺅!”
하인들이 놔 달래서 놔 주었는지 아니면 옮길 만큼 다 옮진 짐짝이라 놔 주었는지는 누구라도 정답을 맞출 수 있으리라·
청이 아가씨를 보았다·
평범한 미인이였다·
삼천 명의 목숨을 잡아먹고도 입이 두 개 눈이 네 개 달리지는 않았으니 길 가다가 보면 시선을 계속 줄 정도는 되는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그러나 무려 네 자리수 악업·
음· 어녕이하고 비슷한가?
음· 그러면·
청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면 여녕이 걔가 당시에 이미 삼천 명 어치는 목숨을 잡아먹었단 소리 아닌가?
걔도 무슨 강언이라도 터뜨렸나?
어떻게 하면-
“흑 저는 소녀는 억울합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청의 딴생각을 깼다·
청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눈물을 짜는 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뭐지? 선수필승? 선수水 빠른 눈물?
이 눈물이야말로 억울함의 증거입니다?
청의 고개가 조금 삐딱해졌다·
“억울이요?”
“오해 오해가 있으세요! 소녀가 어떻게 감히 지엄하신 하늘께서 명하신 큰 사업에 사익을 챙기려 들었겠어요· 소녀는 분명히 손해가 나도 좋으니 하늘의 뜻에 따르라고 그렇게 지시를 했단 말이여요!”
그에 군중들이 웅성거린다·
이야기가 또 다르지 않나?
이러면 누구 말이 맞는 것이야?
“대장 목수들이 한 이야기랑은 다르네요? 아가씨께서 직접 그것도 반절은 빼돌려야 한다고 지시하셨다던데?”
“모함입니다! 소녀는 결코 그러한 무도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어요! 정말이여요! 그 하지만 소녀가 그래요! 여러분들께 소녀의 죄를 고하겠습니다!”
뭐지? 갑자기 고백 시간인가?
청이 무슨 소리 하나 궁금해서 팔짱을 탁 끼다가 문득 아 팔짱 안 끼기로 했는데 하고 슬그머니 팔을 내렸다·
왜냐하면 팔짱은 너무 편하다·
가슴 아래에 딱 팔을 붙여서 거기 붙은 지방덩어리를 딱 올려놓으면 어깨가 가볍고 홀가분한 것이 무림 출도 이전 군역을 치를 적 등에 맸던 군장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하기 그지없는 자세다·
하지만 또 민망하기 짝이 없는 자세기도 해서 버릇 들면 큰일난다고 지금까지 자제하여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청이 삐딱하니 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한번 해 보라고·
“강언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그제야 소녀 역시 공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목수들이 제가 계집이라 모를 것이라고 몰래 자재들을 빼돌려 사익을 취했다는 사실 역시 알아냈지만 저는 그저 너무 두려워서 그 화가 미치는 것이 두려워서 자객을 동원하고 말았답니다·”
나는 전혀 한 푼도 재료 빼돌리기로 이득을 취한 적이 없다·
오히려 손해까지도 감수하고 튼튼하게 잘 지어달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내가 계집이라 만만하게 본 목수들이 전부 다 목수들이 빼돌려서 그렇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사실이 들킬까 너무 두려워서 목수들에게 자객을 보낸 것이 내 죄다·
나는 암살 사주범이지 감히 천자께서 내려주신 공사에 장난질을 치지 않았다고·
청이 솔직히 감탄했다·
히야· 이거 머리 잘 굴러가네·
한 성의 제일상단의 딸내미쯤 되면 이리 머리가 막 굴러가는 건가?
그러나 감탄은 감탄이고·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무고한 아가씨께서는 그런 천인공노할 범죄에 연루될까 두려워서 수해로 피해를 입은 낙녕 땅에 구휼을 베풀기는커녕 곡식 값을 쉰 배로 올려서 빚을 지우라고 명하셨군요?”
“저는 그러한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요!”
“그러면 쉰 배로 올려받는데도 모른 척을 하셨나요? 강언이 터져서 본인이 죄인이 될까 두렵고 삼천 명의 생목숨이 죽어나간 참사에는 내 탓 아니니 그냥 쭉 지켜보기만 하셨네요?”
“그건·”
흠칫 몸을 떤 아가씨가 눈동자를 불안하게 막 굴리다가 다시 엉엉 우는 소리를 냈다·
“소녀가 잘못했어요! 저는 그러한 그런 슬픔에 대해서 제가 아직 어려서 생각이 짧고 모자란 탓에 잘못 잘못했습니다!”
와· 이거 봐라·
먼저 울고 눈물에 호소하고 큰 범죄는 감추고 작은 범죄를 대신 던져주며 심지어 거기에다가 이젠 어려서?
철없는 아이의 일탈이었다?
아주 정석 중에 정석 종합 선물 모둠과 같은 놀라운 소명이었다·
네· 아주 잘 들었습니다·
청이 그에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그늘이 지자 땅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던 아니면 흐느끼는 척을 하던 아가씨가 청의 기척에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청이 그에 발등으로 화답해 주었다·
호쾌한 발차기가 아가씨의 뺨다구에 냅다 틀어박히니 발등과의 격렬한 충돌이 빡!!!
허연 이빨 조각들이 주둥이에서 튀어나와 자유롭게 허공을 난다·
아마도 제 주인의 역겨움을 버티다 못한 이빨들이 난 이 개년에게서 빠져야겠어 하고 치열에서 긴급 탈출을 하는 모양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벨피아에서 후원 메세지 작성 기능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독자님들이 귀한 금은을 후원해주시며 써 주신 각별한 서신들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벨피아 측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후원 메세지를 통해 동업 제의가 연신 날아들곤 했으니까요·
그것도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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