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9
청이 소리에 집중하며 땅을 기어-
“끄흑···!”
청이 기어가려 팔을 쭉 뻗는 자세에서 그대로 정지 전위적인 자세의 조각처럼 우뚝 멈춰서 정확히 말하자면 파들파들 떨었다·
뭐야 뭐 지금 내 몸이 어떻게 뭐가 뭐 어떻게 되어 있는 건데·
-와씨! 야 방금 들었어? 들었지?
-뭐가? 왜 갑자기 지랄인데?
-신음 소리 같은 거 못 들었냐고· 시발·
-신음? 죽어가는 놈이 낸 거 아냐? 방금 전에도 한 놈 있길래 끝장내 줬는데·
-여인 목소리였다고· 귀신 귀신 아니냐?
-병신아· 여기에 여인 귀신이 왜 있냐? 만약 그렇다면 난 가능·
-뭔 가능이야 미친놈아·
말소리가 두런두런 티격태격 사이좋게 저편으로 멀어진다·
그래 일단 이참에 좀 빠져나가서·
청이 이를 악물고 다시 땅을 기었다·
멍청하게 다친 옆구리를 아래로 깔고 팔을 뻗었으니 체중이 쏠려 아플 수밖에는·
반대로 누워 한 팔로 쓱쓱 기어가니 악 대환단이 최고의 영약이니 여벌의 목숨이니 하더니 그거 맞아? 왜 아직도 아픈데?
그야 대환단은 내상과 원기 회복이 전문이고 외상은 본래 시간이 치료법이라서·
바르는 금창약 따위가 그 시간을 줄여줄 수는 있겠지만 영약 좀 먹었다고 새살이 솔솔 돋아나지는 않는 것이다·
일단 상처를 좀 살펴야겠는데·
여기서 빠져나가야 뭘 살피건 말건·
그리고 청이 다시 반 장쯤 기어나가다 문득 생각이 들기를 내가 왜 기고 있지?
그냥 찢고 나가면 되잖아·
청이 긴 월광검을 기둥처럼 세운 후에 청자검으로 채광창을 냈다·
일단 나가기보다는 환부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리하여 살살 옷고름 풀고 옷고름 풀고 또 옷고름 풀고 그 안에 옷고름 풀어 그 안의 옷고름을 풀어내서야 다섯 겹으로 겹쳐 입은 옷 안의 살결이 드러난다·
찢어낸 천막으로 침침한 빛이 들고 나니 온 세상의 색들이 번지고 얽혀서 청의 고향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기를 들여다본 것처럼·
음· 눈은 아직 병신이구나·
이건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것 같고·
어디 보자·
빨간 건 내 가슴가리개·
하얀 건 내 살·
그리고 옆구리 붙은 시커먼 덩어리는·
“와· 씨·”
괜히 봤다·
인간은 제 상처를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덜 아픈 본인의 관측이 고통의 수준을 결정하는 재미난 습성이 있다·
따끔하길래 살펴봤더니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으면 이후로는 극심한 고통이 뒤늦게 밀려오는 식이었다·
즉 눈으로 보고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된 이후부터야 제대로 아프다는 소리다·
시야가 떠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옆구리가 시커멓게 죽은 채로 산처럼 부풀었다는 사실은 알겠다·
청은 랑중대인이 인정한 일 인분 의녀다·
제 상처를 꾹꾹 눌러보고 살살 문지르며 자기가 건드리고 자기가 아파서 눈물을 글썽이는 자해스러운 진단이 이어졌다·
다행히 골반은 멀쩡한데 금만 갔네·
갈빗대 제일 아래쪽에도 금이 가고·
근육은 다 터졌고· 내 복근 짝짝이 확정이라 낫고 나면 왼쪽으로만 운동해서 균형 맞춰야겠네·
비장에는 고름이 끼어 부었고·
종막에도 담이 껴서 물이 찬 것 같은데·
뼈에 금이 가면? 시간이 지나면 붙는다·
터진 근육은 약 발라야 하고·
비장은 시간 지나면 회복되고·
종막에 찬 물도 시간 지나면 서서히 빠진다·
다행히 뭔가 처치를 할 필요는 없었으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결론이다·
그 거대한 망치에 제대로 찍혔으니 뭐·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칭찬할 정도다·
잘 버텼구나 내 몸아· 역시 내 몸 답다·
이래서 초절청님의 신체라고 할 수 있지·
그리하여 최종 진단·
죽나? 괜찮아 안 죽어·
움직여도 되는가· 된다·
막 움직여도 되는가? 할 수 있으면·
무시무시하게 아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환부를 보고 나니 아픔은 더해도 참을만은 한 괜찮아 안 죽으니까·
내장이 상한 부분이야 조금 우려스럽기는 해도 대환단 먹었으니까 괜찮을 테고·
그리하여 서문청 부활·
부자연스럽게 솟은 전막이 세로로 사악 소리 없이 갈라지며 청이 네 발로 기어나와 끄윽 하고 두 발로 땅을 디딘다·
아까 그놈들이 뭘 찾는 것 같던데·
안 될 말이다·
전리품 획득은 승자의 권리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청이 죽인 악인의 물건은 청의 것이다· 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끼들 누가 산적 새끼 아니랄까 봐 제 직업의식을 못 버리고 남의 물건 훔치러 살살 기어들어 왔구나·
청의 눈빛이 표독해졌다·
—-
배종구는 녹림 제 일 채 비공식 서열 구십오 위 공식 서열은 서열 외·
녹림은 오십 위 이하는 서열로 치지 않기 때문에 비공식이다·
비공식은 철저하게 비공식으로 친하게 지내던 서열 일백칠 위 태윤과는 친구라고 할 수도 있는 사이였다·
비공식이나마 서열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친구 사이인 이유는 어설프게 서열 외들이 형님 동생 하다가 걸리면 좆만한 새끼들이 흉내나 낸다며 뒤지게 처맞기 때문이다·
재수 없게 마침 형님들 기분이 대단히 나쁘다면 진짜 뒤질 때까지 처맞아 죽을 수도 있고·
새삼 생각해보니 좆같은 직장이었다·
진작에 때려치워야지 때려치워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 까닭은 어차피 그만둬도 먹고 살 길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녹림은 이제 영업 종료다·
삼류 실력으로 다른 산채에 가 봐야 허드렛일이나 하게 될 테고 딱히 먹고 살 만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하나·
‘총채주 이건 장보도 아닙니까?’
‘누가 장보도인지 몰라서 물어? 그래서 이게 어디냐고·’
‘중원에 이렇게 생긴 동네가 한둘입니까· 제대로 된 지도가 있다면 맞춰보고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혹시 하나 구해오시렵니까?’
‘오· 알 수 있단 말이지? 그래서 그 제대로 된 지도란 거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
‘도지휘사사 군사참모실이요·’
‘야이 미친 새끼야 지도 한 장 훔치자고 군사 삼만한테 쫓길래? 이 새끼가 요즘에 안 처맞았다고 개소리를·’
‘정확도는 좀 떨어지지만 위지휘사사 군사참모실에 있는 소전략지도도 괜찮습니다· 다만 지역별로 털어오셔야· 악 뼈 뼈 맞았습니다· 지도 조각만으로 위치를 특정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거지 진짜로 그런 소리가 아니라 악 아악!’
산뇌계략부 건물 뒤편 자리 깔고 철사를 꼬고 있던 배종구와 태윤이 녹림 서열 일 위와 이 위(혹은 삼 위)의 수준 높은 대화를 고스란히 엿듣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의 총채주도 바깥에 한참 철사를 꼬는 두 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본래 하인이란 어디에나 존재하는 물건 같은 것이라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더란다·
점원이 신경 쓰여 떠들지 않는 손님이 없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점원도 사람이다·
귀 있어서 듣고 눈 있어서 보고 머리가 있어서 생각할 줄 한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나니 그러면 혹시 그 장보도라도 어디 남아있지 않을까·
무려 장보도가 아닌가·
구하기만 하면 인생 역전이다·
한탕 크게 벌어 도시에 떵떵거리며 살자·
그런 셈으로 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시체 밭에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온통 사방이 시체 시체 시체·
그나마도 온전한 형태를 갖춘 시체가 드물어 팔다리를 볼 때마다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막아내기도 힘에 부치다·
심지어 여인의 귀곡성을 들은 것도 같고·
태윤의 꼬드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불길한 자리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들어온 것을 어째·
장보도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그리고 또 악귀가 저를 해하지 않도록 공자님 부처님 삼황오제에 관우 조식 등등 알고 있는 모든 신령하신 분들께 연신 자비를 구하면서·
그렇게 총채주의 전막을 뒤지던 배종구의 손이 멈칫 간이 치고는 굉장히 호화로운 침상 아래 침상 틀에 묶어둔 부자연스러운 형체를 발견해서·
배종구가 주변을 살핀다·
태윤은 다른 전막에서 돈 될 만한 것을 찾아보겠다고 갈라진 상태·
그럼 장보도를 찾아서 숨기면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쳤으니·
아래로 기어 들어가기는 좁다·
침상을 부수거나 뒤집어야 행낭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수는 소리에 태윤이 올 수도 있다·
혼자 뒤집기에는 힘에 부치다·
그러니 어쩌랴·
배종구가 그제야 친구를 불렀다·
“이봐 태윤! 태윤! 여기! 빨리 와봐!”
배종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어째 대답이 없다·
사위는 조용하니 제가 외치는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윤의 성격상 제 목소리를 듣고 나면 찾았냐! 찾았냐고! 하며 오만 방정을 떨며 달려와야 정상일 텐데·
“태윤!? 너 거기 있냐?”
그러나 온통 시체뿐인 폐진영에는 그저 적막감만 감돌 뿐이다·
“태윤? 장난치지 말고? 거기 있지?”
그때였다·
막사 입구에 팔이 쭉 뻗어 괜찮다는 듯이 위아래로 휘젓는다·
잔뜩 쫄아있던 배종구가 자지러진다·
“아악! 후 후우 씨발 누 누구야!”
그러자 눈치를 보는 아이처럼 전막에 빼꼼히 고개를 들이미는 머리통이 하나·
친구 특유의 히죽 웃는 인상을 본 배종구가 안도했다·
“이 새끼야 지금 장난칠 때냐? 이리 와서 나 같이 이것 좀 뒤집어 봐·”
그러자 태윤이 고개를 젓는다·
“뭐야? 왜?”
다시 도리도리·
“뭐야 이 새끼야· 말을 해· 말을·”
그러자 태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갸웃 고개를 기울인다·
순간 배종구의 전신에 소름이 치닫는다·
도대체 어떤 자세를 취해야 사람 머리가 어깨 높이에서 옆으로 빼꼼히 들여다 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몸을 굽히더라도 사람 머리가 완전히 옆으로 누워 바라볼 수가 있나?
“너 너! 뭐야! 너 어떻게···!”
그에 태윤의 머리가 아래로 푹 꺼졌다가 위로 솟아오르며 빼꼼히 내민 얼굴이 위아래로 마구 오르락내리락·
“아아악!!!”
배종구가 소스라치며 그대로 엎어져 뒤로 마구 기어 물러난다·
툭 침상에 부딪쳐선 등으로 침상을 밀어낸 기세로 땅을 짚어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툭·
태윤의 머리가 가랑이 사이로 떨어져 데구르르 소중한 부위를 툭 건드리며 하필 면상이 위로 배종구가 눈을 딱 마주쳐···
“으아아악!!!”
배종구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른다·
그 꼴에 청이 킬킬 딱 두 번 웃음 소리를 내가다 아윽 인상을 찌푸리며 월광검을 쫙 뿌렸다·
머리를 꽂아두었더니 핏물이며 기름 따위가 묻었기 때문이었다·
꽤 격렬한 동작에 아윽 또 인상을 찌푸리는 청이었다·
“이봐요 남의 물건을 막 함부로 가져가려고 하면 아니 이 새끼· 개도 아니고·”
배종구의 바지춤이 급격하게 짙은 색으로 물들고 그도 모자라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까지·
수원지에 바짝 붙은 채 젖어가는 태윤의 머리는 베어낼 때의 히죽거리던 표정 그대로지만 아마 저승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뒤야 항상 하던 대로·
새끼야 가진 거 다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아는 것도 다 불어·
부 불겠습니다·
(대충 장보도가 어쩌구 하는 내용)
그리고는 감히 내 물건을 훔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살려주십시오!
싫다! 살려준다고는 안 했잖아!
그래도 살려주십시오!
그럼 나 대신 침상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행낭 좀 꺼내 오던가· 내가 좀 불편해서·
(대충 배종구가 해냄)
그러면 뭐 늘 그랬듯이·
수고했다! 죽어라!
살려준다면서!
또 속았구나! 살려준다고는 안 했다!
“이게 바로 도둑질한 못된 손!”
검광이 번뜩여 배종구의 팔이 툭·
“이건 네가 더럽힌 태윤의 몫!”
반대쪽 팔도 툭·
“이건 네가 오염시킨 대지의 원한이다!”
그리고 목이 툭·
“아 내 몫을 챙기는 걸 깜빡했네·”
그리고 나서야 청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흐으··· 쓰읍·”
악인 베고 장난칠 때는 참을 만했다·
그런데 마치고 나니 옆구리에서 왜· 왜 그랬어요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낫기 싫어요? 저 이러다 덧나는 수가 있어요? 저 썩은 상처가 되어 버려요? 하는 격렬한 항의가 밀려든다·
그러니 어째·
조용히 하세요! 하고 옆구리를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럽고 서러워도 낫고 싶은 청이 참을 수밖에는·
청이 행낭을 열어 침상 위에 쏟았다·
일단 비급이 한 권·
제목이 무어라 써 있기는 한데 눈탱이가 병신이라 도통 번져서 읽을 수가 없다·
다만 청의 방식은 눈이 아니라 손이다·
들어보니 무공창이 반짝반짝 임시 등록이 된 빨간색 테두리 같은 글씨는 더 작기 때문에 까만 건 글자 푸른 건 상태창·
목함이 한 개·
부해서 잘 모르겠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약함이 틀림없다·
열어서 향을 맡아보니 향은 좋기는 한데·
사람 처먹는 게 뭐가 문제냐 하는 새끼가 가지고 있던 거라 쪼끔·
음· 나중에 알 만한 사람 있으면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또 뭔가 분홍색으로 하늘거리는 것이 손수건처럼 보이는 아니 느껴지는데·
청이 총채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머리통의 위와 아래로 숱이 과하게 많던 그 털복숭이가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손수건을?
생각해보니 숱이 많은 건 유전인가 보다·
그 딸내미도 진짜 굉장했는데 마치 열대우림 마치 산호초·
아? 딸 주려고 했나?
그때였다·
임무창이 반짝반짝 발광을 한다·
청은 어느 순간부터 임무창이 새 소식을 알려도 그냥 곧장 켰다가 치워버렸더란다·
어차피 임무창 아니어도 청은 청이 하던 대로 할 뿐이니까·
나쁜 놈 베고 착한 놈 있으면 도와주고·
하지만 이번에는 청이 임무창을 켜고 쭉 바라본다·
[전조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신가보고의 장보도를 입수했다·]
임무 수행을 위한 행동
(알 수 없음)
[이 선택은 천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근데 좀 짧지 않나? 내용이 부실한가?
청이 상태창을 들여다보는 척을 했다·
바라본다고 해서 읽지는 못하는 상태라·
헹 약오르지? 어차피 안 보이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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