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6
능파미보는 보법이자 진법이다·
팔괘의 여덟 가지 변화 음양의 이치 그리고 삼십육방의 천문을 다시 삼재로 나눈 일백팔의 방위법을 근본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 가능성이 일천칠백스물여덟 갈래이며 개중 가장 안전한 길로 나아가는 보법이라고·
그리하여 팔괘의 한 축 이백십육의 변화를 계산해낼 때마다 잔상이 한 개씩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대성에 이르렀을 때 여덟 잔상과 함께 허상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연 파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 맹한 계집이? 정말로? 하고·
“크흠· 주제에 재간은 좀 있구나·”
“원래 제가 한 재간 해요·”
“쯧쯧· 그런 부분이 문제다· 계집이 칭찬을 들었으면 수줍을 줄 알아야지 의기양양해서는 아주 천방지축이 따로 없어·”
“헤헤·”
청의 필살기 밉지 않게 웃기!
연 파가 그에 한숨을 푹 쉬었다·
“과거 강호에 기이한 신비문파가 있어서 그들의 무공이 하나같이 산을 부수고 황하를 가르는 경천동지할 것이라고 했다·”
“신비문파요? 어떤 문파인데요?”
“이름은 모른다· 사문의 이름을 아는 자를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해괴한 법도가 있었다고 하니 세상 사람 중에 그 문파의 이름을 알고서도 산 자는 그들뿐이오 외인은 전부 죽었으니 이름이 알려질 리가 있나·”
“그런데요?”
“능파미보가 바로 그 신비문파의 무공이다· 왜 뒤에서 나타나느냐고 물었지· 본래 능파미보는 북명신공이라 하는 무공과 짝을 지어 만들어졌다고 하니 신공을 익히지 못한 이는 변화에 통달하여도 정해진 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앗·”
북명신공· 분명 천하십대마공을 죄다 십 성까지 성취하면 보상으로 준다던가 하는 무공이었던 것 같다·
“그럼 연 파가 그 신비문파의-”
“내 이름을 모른다 하지 않았느냐·”
“맞네·”
연 파가 신비문파의 소속이었으면 모른다가 아니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해야 했으므로 이미 소속이 아니라 밝힌 것과 같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안 되나?
역시 관상은 과학이라서?
“굉장히 불퉁한 표정이다만 계집이 표정 관리조차 못하고 하아·”
“그럼 어찌 능파미보를 갖고 계셨어요?”
“망한 문파의 비급이니 누가 가지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
“오잉· 망했어요? 무공이 막 세상을 부술 정도로 센데요?”
“알려지기로는 저들끼리 누가 무공을 가질 것이냐를 두고 싸우다가 공멸했다지· 흥· 제 사문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들이 아니냐? 저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이들만이 제 정체를 감춘다· 여기 이 늙은이를 포함해 왕야를 모시는 천것들처럼· 그러니 망할 만도 하지·”
청이 자유의 하인들을 떠올렸다·
연 파는 늙은 년 견 노 늙은 개 양상구자 도둑 겸 개새끼 창여인도 그렇지·
하나같이 머리 위의 숫자가 붉은색을 띤 악인들이었더란다·
“그럼 전륜마겁도 신비문파에서-”
“그건 아니다· 천운이 닿았다고 할까·”
능파미보도 어쩌다가 줍고 전륜마겁도 천운이 닿았으면 뭐지? 무공을 전문으로 찾아다니시는 분이신가?
연 파도 무공창 쓰고 그러나?
하지만 목소리에 짙게 배인 어떤 회한 뼈에 사무친 후회가 있으니 청이 캐묻지는 못하고 대신 화제나 돌렸다·
“그래서 전륜마겁은 무슨 마공인데요? 뭐 알아야 익히든 말든 할 거 아녜요·”
“바로 이러한 무공이다· 강기가 차륜처럼 회전하여 그 위력을 배가시키는 음· 그래· 눈깔이 병신이라 하였지·”
연 파가 수강을 일으켜 마공을 선보이다 그저 미간에 주름 잡은 채로 ‘음 저게 대체 뭐시당가 도대체 보이지가 않네·’ 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청의 표정을 보곤 한숨을 푹 쉬었다·
“가까이 좀 대 주시면 안 돼요? 지금 좀 안 보여서·”
“하 지금 수강을 눈앞에 밀어달라는 소리더냐? 계집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연 파가 절 공격하실 것도 아니잖아요·”
“쯧· 옜다· 이쯤이면 보이느냐?”
“쪼금만 더요·”
“위험하니 대충 그쯤에서 봐라· 전륜마겁이란 이러한 무공이다·”
더 가까웠으면 좋겠지만 위험하다니 굳이 갖다댈 생각은 없다·
청이 눈을 찌푸려 억지로 초점을 잡아서 보니 연 파의 손에 수강이 어리고 모양이 삐죽빼죽하니 톱날과 비슷하다 싶더니만·
앗· 돈다!
톱날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속도가 붙어 잔상을 그린다·
그러다 마침내는 톱날의 길이만큼 수강이 두꺼워진 형상이었다·
청에게는 어쩐지 익숙한 작용이였다·
이거 전기톱 전기톱이잖아·
“강기공이니까 강기의 성질을 바꿔내는 거죠? 검강에도 쓰고 도강에도 쓰고·”
“당연한 것이 아니냐·”
전기톱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아?
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부작용 같은 건 없어요? 마공이니까 포악해진다는 건 말고요·”
“눈깔에 태가 난다· 전륜안이라고 해서 남들 앞에서 쓰면 이년이 전륜마겁을 천하십대마공을 익혀서 쓴다고 소리치는 것이나 다름없지·”
“어 그럼· 확실히 죽일 놈한테만 쓰면 된다는 거네요?”
“네년 방금 뭐라고···?”
연 파가 귀를 의심했다·
이게 정파의 여협에게서 나올 말인가?
마공을 쓰면 무조건 들킨다·
그러니 어차피 들켜도 되는 확실히 죽일 놈에게만 쓰면 되지 않느냐·
물론 그게 될 리가 있나·
마공을 쓸 때는 당연하지만 살의가 치솟거나 마음이 동하면 저절로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면사 쓰고 싸우면 괜찮으려나? 전륜안이 어떤 건지 보여주실 수 있어요?”
“이년이 어디다 얼굴을 들이밀어?”
“하지만 안 보이니까·”
“맹랑한 계집 같으니라고· 어찌 계집년이 이리 허물없이 얼굴을 막 내밀고 그래?”
“에이 빨리요·”
청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마치 개밥그릇 든 주인 얼굴을 바라보는 개 같은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연 파가 떫은 표정으로 전륜마겁의 강기를 운용한다·
그에 눈동자에 떠오르는 세 개의 혼불이 빙글빙글 서로의 꼬리를 쫓아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앗· 이거· 대단히 우려스러운 모양인데· 뭔가 폭풍 폭풍이·”
“마음이 동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니 살인멸구 따위의 흉흉한 소리는 말거라· 아니 도사년이 할 소리더냐?”
“세상이 흉흉하다고 하셨잖아요·”
“아주 말 한마디를 안 지는구나·”
“헤헤·”
“웃지 마라 이것아· 계집년이 웃음이 헤퍼서는 하 그렇지· 인제 보니 아주 이것이 큰일이로구나· 함부로 웃음을 흘리고 다니지 마라· 지아비 말고는 이빨 보이는 것이 아냐 이것이 어쩌려고· 쯧쯧· 그 벌어진 입 당장 다물지 못해?”
“흐흐흣·”
청이 시키는 대로 입을 다물고 콧구멍으로만 웃는 소리를 냈다·
그에 연 파가 하 이 년을 대체 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전륜안이 떠올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밤이 늦었으니 들어가 자라·”
연 파가 그리고는 말을 잇기를·
“음 그래· 왕야께서 추위를 타실 수도 있으니 네가 좀 보듬어 드리고· 남녀가 유별하다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으니 부탁 좀 하마·”
아주 사심 가득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안 통했다·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번을 설 테니 들어가서 몸 좀 더 추스르세요·”
“내일 적진을 살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눈을 붙여야지·”
“초절정이 하루 안 잔다고 뭐 얼마나 또 피곤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연 파의 회복이 우선이고 그게 왕야를 모시는 데에도 훨씬 도움이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걷는 것도 불편하시잖아요·”
“무슨 소리를· 늙은 년이라고 무시하냐 아직 정정하고 멀쩡하다· 눈이 뵈지도 않는 년이 뭘 안다고·”
“에이 아까 오실 때 소리가 발을 끄시던데· 저는 괜찮으니까 눈 붙이시고 아니면 운기조식을 더 하셔도 되고요· 제가 호법 겸해서 딱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크흠· 자빠져 있던 년이 귀신같기는· 그 어째 더 늙은 년이 말하는데 듣는 척도 안 하고· 이리 막돼먹어서야 쯧쯧·”
청이 연 파의 툴툴거림을 해석했다·
“고맙긴요· 젊은 놈이 해야지· 쉬세요·”
“흥·”
그렇게 연 파가 바위틈으로 돌아간다·
다시 발라당 팔다리 쫙 펴고 누운 청이 이번에는 속상한 생각 말고 다른 화두로 머리를 굴렸다·
아니 전기톱을 어떻게 참아?
전기가 아니라 진기니까 진기톱?
강기공이니까 강기톱?
회전하니까 그냥 회전톱이라고 하나?
감정에 따라 눈이 그 뭔가 표절스럽지만 멋진 모습이 된다는 부작용은 괜찮다·
그렇게 따지자면 자전마공도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빠직빠직 인간 전기 주머니가 되어 몰아쳤어야 하는데 무공창 덕분인지 아니면 몸뚱이가 사람같지 않아서인지 단전의 특이점이 온 까닭인지 그러한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제어가 가능하니까·
그래도 쓸 때는 감출 수 없겠지만·
하지만 어차피 죽일 놈한테만 보여주면 된다·
환하게 밝을 때는 면사를 쓰면 태가 안 날 것이다·
다만 어두울 때는 그게 좀 많이 쨍쨍한 야광이라서 면사 써도 들킬 것 같기는 해·
사실 단지 멋져서 익히려는 건 아니다·
멋지기는 하지만·
손맛이 엄청나게 기대되어서도 아니다·
손맛이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회전 톱날으로 썰면 손으로 우드드드 오는 촉감이 와 상상만 해도 침이 흐르네·
하지만 그래서도 아니고·
이상하게 단단한 놈들이 있었다·
무슨무슨대법 혈 자 들어가는·
분명 걔네도 그거 받은 놈들이 아닐까?
분명 반으로 쪼갰어야 할 일격이 코뼈도 다 못 가르고 머리에 박히고 팔을 잘라내려 한 강기가 어깨뼈에 턱 박혔다·
한두놈 상대할 때야 상관없지만 그런 놈들이 막 떼거지로 덤비면 어떡해?
청은 병기가 상대에게 박혀 빠지지 않는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일 년 차에 이미 깨달은 지가 오래였다·
그러니까 천운이 닿아서 마침 딱 필요한 무공이 그리고 사부님도 강기공을 익혀보라고 하셨으니까·
연 파도 말하기를 도가의 무공 익혔으니 마공 한 개가 대수냐고 하셨고·
이미 여럿 배웠는데 하나 더 추가된다고 갑자기 내가 막 회까닥 돌아버리고 하지는 않을 거 아냐·
절대 손맛 때문은 아니고·
필요하니까·
아주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다가 혹여 나중에 북명신공이란 게 필요하게 되거나 하면 그 준비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리 생각하는 청의 눈동자에는 이미 세상에 없는 불길한 색채가 번지는 와중이다·
이성적이고 나발이고 청은 지금 번을 서는 중이다·
무공 모르는 귀한 분 하나 그리고 겨우 몸이나 가누는 부상자 하나를 두고서·
이러한 때에 눈을 까뒤집고 팔다리를 쭉 뻗어 덜덜 떨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기괴한 소리나 뱉어대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 알 테지만·
물론 그냥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서문청·
천하십대마공 중 전륜마겁 육 성·
—-
남량산에 자리잡은 전막 안이었다·
비단 장포를 입은 사내 머리에 쓴 투구에 닭 머리가 용맹하게 솟은 점이 참으로 인상깊다고 하겠다·
“짐승은? 아직 못 찾았나?”
“예· 못 찾았습니다·”
“빠져나간 건 아니겠지?”
“예· 빠져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차단선에 어떠한 이상도 없습니다·”
“몰래 빠져나갔는데 몰랐다거나·”
“최고로 정예한 용사들입니다· 일당백까지는 아니어도 백이 뭉치면 충분히 일만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는 강병입니다·”
“흠· 그럼 됐네· 도망만 안 쳤으면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새끼야· 방화선 공사는 어찌 되어 가고?”
“이미 완료되었습니다만 풍수사가 말하기는 아직 위험한 부분이 많아 더 보완을 해야 한다하여 추가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에 계두(닭 머리) 투구를 쓴 무장이 씩 흉험한 미소를 짓는다·
“흠· 그래? 언제든지 불을 피울 수는 있단 말이지? 당장 화공을 실시할까?”
“불이 번지기라도 하면 남령산맥 전체는 물론이고 호남 귀주 광서 광동 일대가 온통 불바다가 될 겁니다· 그로 인해 상하는 인명만 수만이 넘을 것입니다·”
보고하는 사내 멋진 갑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군부의 장군으로 보이는 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계두 사내는 비웃을 뿐이다·
“흥· 황상께서 제 재산을 조금 태우고자 하시는데 그깟 천것들이 뭐 어쨌다는 것이냐· 애초에 하늘의 산천에서 빌붙어 사는 기생충들이 좀 타죽는다고 별건가· 수만? 과거 조적이 서주 사람을 직접 묻은 숫자만 십만이 넘을 터인데 겨우 수만쯤 죽어봐야 어차피 태도 안 나·”
이것이 바로 중화의 정신이다·
과거 조적이 서주에서 인신공양으로 큰 효도를 벌일 적에도 동탁의 전횡으로 수천만이 죽었는데 겨우 서주 사람 몰살해봐야 태도 안 난다 하지 않았던가·
먼 미래에서도 중화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가뭄? 수해? 역병? 중화 인구가 몇인데 겨우 수백만명이 대수냐 하며 아주 큰 정치를 대국적인 정치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뭐· 되었다· 그 마귀같은 늙은 년이 크게 다쳤다고 하지? 그러니 아마 당분간은 도망칠 생각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빠르게 보완 공사를 마치도록 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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