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9
천하의 화경 고수조차 산불 앞에서는 다급하니 일개 무명병의 심정이 어떠하랴·
진 십호는 그야말로 혼비백산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나갔다·
그때였다·
돌연 가도의 오른편에서 볼록 솟은 언덕 너머에서 수레가 튀어나와 하늘을 난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
수레가 허공에 떠 있다·
마구를 찬 거한이 한 발을 쭉 펴고 다른 발로는 무릎을 번쩍 들고는 양 팔을 뒤로 젖혀 우마牛馬축을 붙들었다·
그야말로 어디든 심지어 시간이라도 되돌려 달려나갈 기세로 하늘을 난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은 모두 하늘에 있다·
쿵!! 끼이이익!
거칠게 착지한 수레가 반원을 그려 철 테 두른 수레바퀴가 가가각 가도에 불똥을 튀기며 맹렬히 미끄러진다·
서역 말로는 드리프트라 하는 고급의 기예였다·
불꽃을 튀기며 바닥을 긁는 수레바퀴가 장 십호에게 닥쳐온다·
그제야 장 십호는 그제야 지금 이 현상 시간이 멈춘 것처럼 수백 배 느리게 흘러가는 이 기이한 체험을 무어라 부르는지 깨달았다·
이런 씹 이거 주마등-
마침내 쾅!
하반신이 부서질 듯한 충격과 함께 장 십호가 차인 돌맹이처럼 붕 떠올랐다·
천벌을 받을 게야! 천벌을!
문득 기억도 안 나던 과거 첫 약탈에 나섰을 때였던가 폭우 속에 저주를 퍼붓던 늙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장 십호가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가도 왼편 수풀을 쏙 뚫고 날아가 버렸다·
청이 관성에 따라 쭉 옆으로 밀리는 수레를 제어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양발로 도로를 디디나 지이이익 미끄러져 아씨 또 왼팔 써야 하나 하고 고통에 대비하여 이를 악무는 그 때!
퍽 하고 우마축으로 닿는 충격과 함께 쏠리는 힘이 확연히 약해지니 청이 때를 놓치지 않고 천마달리기의 수법으로 직진 변속을 넣는 데에 성공했다·
뭐지 뭔가 쳤나?
저도 모르게 일 승을 적립한 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뭐 깔린 게 산적 호소인인데 몇 놈 칠 수도 있지 뭐 하고·
“비켜! 마차 아니 인력거 나가신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비키지 않으면 뒈지는 수가 있다!”
청이 나름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본질적으로 맑고 청량한 아름다운 목소리라서 좀 긁는다고 해도 여성 치곤 낮고 남성 치곤 고운 중성적인 미성이 될 뿐이었지만·
다만 길을 비키라는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주목을 사고 말았으니·
두꺼운 외투를 껴입었으니 청의 고향식 단위계로 일백칠십육에 달하는 장신에다가 가슴둘레만큼 몸통이 불어 거의 전설의 야만족 대장과 같은 풍채다·
물론 육 척 반은 넘어가는 야만족 치고는 키가 좀 작은 편이 되겠지만 그래도 둘레가 대단하니까?
그러니 사람이 수레를 끌어서 체력 좋은 군병의 전력 질주보다 더 빠르다는 기묘한 광경이지만 끄는 이의 덩치를 보면 의외로 설득력이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나도! 나도 태워줘!”
“살려 줘! 나도!” “나도! 제발!”
여기저기서 탑승 요청이 쇄도한다·
청이 이마에 핏대가 볼록 솟는다·
이것들이 누구를 인력거꾼으로 아나·
설렁탕을 코로 먹여줘야 어쩐지 재수가 좋았다고 후회하게 되려나·
음? 아니지·
얘네 잔뜩 태우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보니 괜찮은 비책이다·
청이 끼이익 세 장이나 가도를 미끄러져 수레를 멈춰 세웠다·
곧장 멈출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수레가 뒤집힐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멈춘 청이 엄지를 들어 제 뒤를 척 가리키며 외친다·
“야! 타! 선착순 여섯 명! 전우 좋다는 게 뭐냐! 전우니까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누가 전우를 의심하기라도 하겠어!”
뒷부분이 무척 부자연스러운 대사다·
자유와 연 파 들으라고 군대인 척 빠져나가겠다고 설명하는 부분이라 당연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는·
그러나 병사들은 다급하다·
불길이 쫓아오는 가운데 선착순이란 소리까지 듣고도 고작 대사가 부자연스럽다는 데에 신경을 쓸 정신이 있겠는가·
“믿고 있었다고!” “고마워!” “살았다!” “비켜 내가 먼저야!”
병사들이 곧장 달려든다·
둘 넷 여섯· 여덟· 청이 탑승객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땅을 박찼다·
예기치 못한 가속에 한 놈이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안전띠를 꼭 해야 하는 이유다·
—-
산자락 동쪽에 진지를 잡고 있던 군병들은 화광이 피어오르자마자 빠르게 후퇴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쪽으로 달려 도망치다 저 고개 위쪽으로 장창을 든 병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망쳐 나온 군병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안도한다·
“큰일! 큰일입니다!” “산불입니다!”
“허억 헉 후우우·”
죽어라 내달린 군병들이 차단선을 지나치자마자 힘이 탁 풀려 주저앉고 바닥에 드러눕고 난리가 났다·
그에 투구 쓰고 붉은 수실 흩날리는 장군 하나가 지엄하게 소리를 친다·
“이놈들! 차단선에서 무슨 추태들이냐! 당장 고개를 넘지 못할까!”
“예 옙···”
아무리 군기가 빠진 폐기물들이라도 감히 장군의 명령에 뻗댈 정도는 아니다·
그리하여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고개 꼭대기로 그리고 고개를 넘자마자 반대편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데 모아 쌓은 발가벗은 시체들·
그 옆에서는 유쾌한 기색의 군사들이 아직 벗지 않은 시체들의 옷가지를 벗겨낸다·
“이 무슨 커윽·”
군병이 고개를 내린다·
제 가슴 심장을 뚫고 나온 창끝을 내려다보며 피를 한 움큼 토해낸다·
안 그래도 전력 질주로 후들거리는 다리가 아예 힘이 빠져 쓰러지고 만다·
“야 외투 상하잖아· 머리를 후려치라고· 대가리를 팍! 피는 니가 빨 거야?”
“이게 손맛이 좋다니까? 그런데 영 물러· 여진 야만족들 찌를 때는 딴딴하니 근육을 후비는 맛이 있는데· 퉷 녹봉 받는 새끼가 뭐 이리 비실거려?”
“이런 잡병들이 그렇지 뭐· 그래도 외투 안 상하게 조심해· 이거 때깔 봐라· 올겨울엔 보급 외투들 갖다 팔아도 되겠는데?”
“보급을 입고 이걸 파는 게 낫지 않나?”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소리에 상황을 깨달은 군병이 생각한다·
‘어찌 이런 짓을 사람을 죽이고는 재물을 탐하며 낄낄거리다니 짐승만도 못한 놈들 용서 못 한다 천벌을 받을 놈들 지옥에나 떨어질 놈들!’
그러다 문득 촌락을 습격할 때면 항상 듣던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나도 지옥에 가겠구나· 착하게 살걸·
그러나 화가 눈앞에 닥쳐서야 하는 후회는 그저 후회일 뿐 절대 반성이 아니다·
언덕 칠 부 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장군이 저 아래 굽은 길에서 나타나는 아주 긴 행렬의 피난길을 본다·
털옷 위에는 갑옷을 갖춰 입고 등에는 거대한 철강노를 맨 이가 반절 월도를 맨 이가 반절이다·
북부군의 용사들이다·
북부의 정예 용사들답게 언덕을 씩씩하게 뛰어 올라와서는 헐떡거리면서도 장군을 향해 척 군례를 올리는 것이다·
“충! 맹과니 호의 백장 삼연종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차단선은?”
“장군님 화마가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산불이 남쪽 방화선을 넘었습니다! 그에 제 재량으로 전원 철수했습니다!”
“맹과니 호라고? 분명 그래 창양 호가 너희 서쪽을 잡았을 텐데?”
“화광을 보고 바로 철수하였고 도중 작전 중인 용사들을 합류시켰습니다· 이상입니다!”
“크흠· 일단은 잘했다· 후방의 작업을 도우며 명령을 대기하라·”
“충!”
장군의 표정이 굳었다·
기어코 불이 번지고 말았으니 맹과니 호라면 남쪽 차단선의 허리에서 오른쪽을 맡은 용사들이다·
왼쪽을 맡은 용사들의 생사가 전원 불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산불이 이리로 밀려온다는 사실이다·
화마는 저지대보다 고지대를 향해 더욱 빠르게 번진다·
남령산맥의 남쪽으로 남하하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그리고 여기가 바로 서쪽의 고지대가 아닌가·
장군이 급히 자리를 박차 뛰어나간다·
“어사님 화마가 방화선을 넘었습니다· 현재 남쪽 허리를 넘었을 겁니다·”
“뭐야? 방화선을 어떻게 파 놨길래 불이 번져? 흥 무능한 놈 같으니· 그래서? 뭐?”
“철수해야 합니다·”
“흠· 철수라· 철수· 철수···”
계두 사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비열한 웃음이 번진다·
“그래· 내 이 장군에게 큰 기회를 베풀어 주지· 황상께서 직접 명하신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할 기회다· 한 개 백호와 함께 현재 차단목을 지키며 혹여 역적이 도망치거든 처단하고 철수하도록· 혹은 차단 지역이 전체가 생존 불능 상태임을 관측하고 보고해도 좋다·”
불이 코앞까지 번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 도망쳐 나오는 이들을 죽이라는 뜻이다·
다만 화마가 코앞에 닥치면 벗어나기는 요원한 일이다·
그러니 차단선을 지키다 죽어버리라고 그러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거부권은 없다·
황상께서 직접 명하셨다고 말을 꺼낸 이상 거부하면 곧장 역적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내 부탁하지· 아마 이번에 군공을 세우면 큰 장군으로 추대될 수도 있겠군· 멋진 동상이 세워질 수도 있고 말야·”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어찌 그런 이 개같은 새끼들 비단옷 입은 새끼들 오랑캐에게 돌 한 번 던져본 적 없는 병신새끼들이 감히·”
“다 죽기야 하겠나· 산 목숨은 살아야지· 대순 호에서 자원자 삼십만 뽑아·”
“삼십만 남으려 들겠습니까? 장군님 명이라면 그야말로 불에라도 뛰어들 텐데 아니 진짜 불이로군요·”
“서른· 처자식 없는 놈을 우선해· 의복을 완전히 물로 적시고 철강노와 월도는 철수 편에 보내고 최대한 가볍게 무장한다· 현 시간부로 차단선을 언덕 위로 물린다· 화마가 백 장 이내로 관측되는 순간 전원 철수할 것이다·”
“충!”
그리하여 북부군이 철수를 준비한다고 바삐 움직이며 목책 등을 고개 꼭대기로 올리느라 분주한 때였다·
저 고갯길 아래 굽은 가도 너머에서 돌연 거대한 인력거 하나가 인력거라고?
장군이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시 봐도 인력거 우마나 끌 법한 수레에 군병을 잔뜩 태우고는 맹렬하게 고개를 오르는 인력거가 인력거를 끄는 거한이 있는 것이다·
“저게 무슨?”
그야말로 항우장사나 보일 법한 신위다·
북부군이 아닌 용사에도 용사다운 이가 있었던가? 아니 저런 장사를 왜 폐기물에 섞어서 안쪽에 들여보냈단 말인가·
그러고 나니 음 폐기물이라고 전부 다 무능력하지는 않다·
상관에게 밉보이면 폐기물이다·
전우를 살리겠다고(?) 짐승이 끄는 수레를 제 몸으로 끄는 훌륭한 병사라도 얼마든지 폐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그렇듯이·
“아니 저게 무슨···”
“햐 저게 사람의 힘이여 뭐여·”
철수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북부군이 하나둘 몸을 돌려 그 기막힌 광경을 본다·
“저건 죽이기는 아까운 용사로군· 딱 내 군사에 어울리는 용맹이 아니냐·”
“어떻게 할까요?”
“깃발 있지? 들려주고 통과시켜· 이런 데서 처리당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다·”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서도 인력거의 속도는 줄지 않는다·
철수 준비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부관이 직접 깃발 하나 들고서 용사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청이 흡 흡 후우우우 흡 흡 후우우우 필사적으로 숨을 고르며 내달렸다·
거진 십 리가 넘는 그것도 사람 여덟을 얹어놓은 수레를 끌고 전력으로 달리기란 아무리 초절정 초월 초절정 초절청 님이라도 조금 숨이 찬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에서 오중창으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버틸만하다·
버틸만은커녕 어느 순간부터는 콱 쑤셔 헤집는 듯한 고통이 시원하게 덜 붙은 딱지를 억지로 잡아떼는 듯한 그런 느낌이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묘한 느낌이·
그러나 흐르는 땀은 반갑지 않다·
두껍게 입은 아래의 살가죽에 습기가 가득 속옷은 이미 축축한 상태로 차오른 땀은 정말로 오랜만이라서 더욱 불쾌하다·
안 그래도 심장은 쿵쿵 뛰고 숨은 차오르는데 폐를 부풀릴라 치면 옆구리에선 ‘우리 환자에요 잊지 말아요’ 하고 쿡쿡 찌르면서 눈치를 주고 땀은 흘러서 축축한데 심지어 앞조차 뿌옇게 흐려서 안 보인다·
그야말로 짜증 일백 배인 상태!
그 와중에 누가 길을 턱 처막고 있으면 당연히 열이 뻗친다·
“비켜! 안 비키면 친다!”
“잠깐 멈춰!”
청도 십 리가 넘는 산길을 헤치면서 여러 요령이 붙었다·
청이 살짝 땅을 박차고 우마축을 붙잡아 몸을 띄운다·
하지만 바퀴는 계속 구르고 수레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만 수레의 뒤가 내려앉고 지렛대의 원리로 앞이 번쩍 들렸으니 양 팔을 곧게 우마축에 평행봉 하듯이 매달린 청이 양 발을 모아 앞으로 쭉·
그리하여 청의 양발이 길 막은 놈의 가슴팍을 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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