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0
부관이 하늘을 훌훌 날았다·
놀라운 우연인지 아니면 하늘이 점지한 인연인지 타의에 의한 비행에 성공한 부관이 장군 앞으로 철푸덕·
“억!”
“으음· 괜찮은가?”
장군이 부관을 붙든다·
그에 부관이 숨을 화악 터뜨린다·
“허억 예· 괜찮습니다· 음? 어째서 제가 괜찮습니까?”
“안 괜찮은 것 같은 소리를 하는군· 그야 보기엔 요란해도 아예 해할 요량은 아니었는지 밀어 찼으니 멀쩡하겠지·”
그야 소리는 요란해도 무릎의 반동을 이용해 차기보다는 떠밀었으니까·
붉은 번짐이 두 칸 악업이 두 자릿수라 손속 아니 발속에 자비를 두어 밀었으니 살아남았지만 그 이유까진 알 수 없다·
다만 그래도 일부러 봐줬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깃발도 가져간 것 같고·”
“으윽· 곱게 받으면 될 것이지·”
아무리 떠밀렸다 해도 하늘을 날 정도의 충격에 바닥에 떨어지고 나면 여기저기 몸이 뻐근하여 안 쑤시는 데가 없다·
“내 호에 들어오면 그때 갈구면 될 것이 아닌가· 뭐 부상자라도 태우고 있으면 마음이 급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갈구기 뭐하잖습니까···”
한편 다시 땅에 발을 꽝 다시 달리는 청의 손에는 깃대가 턱·
뭐가 막 펄럭거리길래 잡았는데 뭐야?
어차피 마구는 가슴 위에 찬 상태라 오르막길을 오르는 때에 딱히 양손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청이 생소한 문양의 깃발을 보고 군기? 군기 같은데· 이거 들면 공격 안 받으려나·
청이 제 뒷목 목덜미 안쪽으로 깃대를 쏙 쑤셔 넣었다·
덕분에 뒷덜미로 찬 공기가 들어 땀물이 주욱죽 흐르던 등판이 화악 시원하게 더운 몸에 숨통이 탁 트인다·
그리고 언덕배기의 끝이 코앞이다·
여기만 넘어가면 괜찮으려나·
청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으니 그대로 수레가 고개길의 꼭대기를 지나친다·
시야가 확 트이고 고속으로 방지턱을 밟은 마차와 같이 수레가 허공으로 붕 뜬다·
쿵! 가도로 내려앉은 수레·
수레가 내리막길 급경사를 탄다·
하늘을 향하던 진행방향이 돌연 저 아래 지하를 통해 처박히며 내리막길을 구른다·
“으아아악!” “추락 추락한다!”
최소 오백 년은 이른 선진 놀이기구 미래 체험에 탑승객들이 으아악 비명을 질러낸다·
개중 한 놈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는지 뛰어내려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으니 미래의 놀이 문화를 즐기기에는 중원인의 의식 수준이 무척이나 미개하다고도 하겠다·
고개 아래 군막에서 철수를 준비하던 북부군들도 내리막길을 미쳐버린 속도로 폭주하는 인력거를 본다·
다만 인력거꾼의 등 뒤로 깃대가 섰다·
찢어질 듯이 활짝 펼쳐져 펄럭거리는 깃발은 그 유명한 대순군 대순 천호의 문양이다·
북부군치고 대순 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부대가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모두 존중의 마음으로 길을 터 준다·
물론 존중은 이 할 정도다·
일단 저기 치이면 뼈와 살이 분리가 되는 수가 있겠다 싶어서 얼른 몸을 비켰을 뿐·
청이 그 사이로 쌩쌩 내달렸다·
그리하여 내리막길 지나 가도 좌우로 펼쳐진 군막들 사이를 폭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열린 목책 틈새로 쏙·
그러고는 인적 없는 산길에 접어든다·
군사들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청이 그제야 천천히 수레를 끌지 않도록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
계두 투구를 쓴 사내를 선두로 가도의 좌우로 비단옷을 입은 금의위 위사들이 줄지어 행군하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머리에 투구 하나씩 눌러쓰고 투구 앞부분에는 죄다 새대가리 하나씩 장식되어 쭈욱 긴 목을 앞으로 내민 채다·
청이 보면 질색할 법한 이 촌스러운 조두(새머리)두갑(투구)는 사실은 중원의 모든 무관들이 가장 바라는 물건이기도 하다·
무관 중에서도 높은 분들만이 착용할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개중에 가장 귀하게 치는 새대가리는 바로 닭대가리다·
중원에서 닭대가리라 하면 의외로 아주 길한 상징으로 가장 의미가 큰 순서대로 학문과 부귀 용맹 행운을 불러온다고·
그러니 계두 투구는 위사대의 어사 나리쯤 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보다 높은 투구는 봉황 투구 하나뿐으로 천자께서 친정을 나가실 때에 쓰시므로 감히 양민이 꿈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계두 투구는 일개 개인이 쓸 수 있는 투구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기도 하고·
청이 알면 경악할 만한 촌스러움에 유감스러울 테지만·
아니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보기만 해도 경악스러우니까·
그래서 청은 경악했다·
수많은 새대가리가 목을 쭉 뻗어 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뭐지 중원의 유행 수준이 이렇단 말야?
이렇게 촌스러운 투구를 쓰고 다니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가도 양옆으로 철수하던 위사들이 달달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구르는 인력거에 죄다 시선을 뺏겼으니 저마다 투구에 하나씩 달아놓은 새대가리들 역시 인력거를 향할 수밖에는·
위사들은 위사들대로 어리둥절이다·
뭐지? 인력거? 추락하는 인력거인가?
동쪽으로 산세가 낮아지는 남령산맥이라 쭉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맹렬하게 흘러내리는 인력거가 한 대·
계두 사내는 기가 막힌다·
감히 하늘의 산천을 불태우고 양민을 수탈한 ‘산적’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죄다 죽여야 한다 명령을 전했거늘·
그런데 그 산적이 인력거 끌고 산적들 데리고 당당하게 길 중앙을 달려오고 있을 뿐더러 심지어 저 깃발·
대순 호의 깃발을 본 계두 사내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꼴뵈기 싫은 이가 놈의 깃발이 아닌가·
그러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이가놈이 저 혼자 살겠다고 위장하여 빠져나가는 길은 아닌가?
죽으라고 사지에 남겼더니 감히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
계두 사내의 눈에 선연한 증오가 어린다·
장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저 두어 번 대들었던 대가로는 너무 큰 미움이 미움을 넘어서 증오가 아니냐고·
하지만 본래 인간의 속성이 이렇다·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는 데에는 단 한 마디조차 필요 없는 것이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왠지 꼴 보기 싫고 그런 놈이 잘나가기라도 하면 부모님의 원수처럼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서·
청의 고향 땅 미래의 문명 세계에 비하면 계두 사내는 순박한 편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미워할 이유가 있어서 미워하고 있지 않았는가·
얼굴도 이름도 성격도 직업도 뭐 하나도 아는 바가 없어도 그냥 별 의미 없는 글귀 한 줄이 거슬리면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 제발 고통스럽게 죽기를 기도하는 이들이 바로 미래 문명인들이기에·
어쨌거나 계두 사내가 길을 막아서며 내공을 담아 호령한다·
“멈춰라!”
청이 머리를 핑핑 굴렸다·
제일 촌스러운 투구 쓴 놈이 멈추라는데 표정부터가 표독하여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속내를 숨길 생각조차 없다·
악업도 번진 숫자 세 개·
거기에 좌우로 새대가리 뒤집어쓴 놈들은 일단 걸음걸이 보법부터 다르니 제대로 무공을 익힌 놈들이다·
얘네도 번진 숫자 세 개·
그러면?
다 죽여야 할 놈들 아니 지금은 일단 자유부터 피신시켜야지·
“싫다!”
“뭐 뭣!?”
“죽기 싫으면 비켜! 닭대가리야!”
청이 월광검(십 호 특대형)을 뽑아들어 앞으로 향한다·
서역 기사들의 거창 돌격과도 같은 풍모!
“네년!”
그에 계두가 노성을 흘리며 제 팔을 교차해 앞으로 내세운다·
거창 돌격을 몸으로 막으려는 태도이니 이 또한 서역식으로 해서 거대한 풍차를 대적하려 들던 신경분열성 피해망상증을 앓는 미치광이 늙은이와 같은 담대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계두도 믿는 바가 있었으니 순간 화르륵 불길 같은 강기가 피어오르며 팔뚝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순간 청이 월광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들어 어깨 뒤로 길게 빼낸다·
청의 눈에 떠올라 회전하는 혼불 그리고 웅웅 떨리는 노을빛 강기가 반달을 그린다·
찌르는 척 허리를 노리를 횡베기·
계두가 기겁하며 팔뚝을 내리는 순간-
꽝!
강기와 강기의 충돌로 육중한 소리·
낫 모양으로 옆으로 휜 계두가 무지막지한 힘에 떠밀려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청 역시 허윽 하고 바람을 뿜는다·
본래 검을 휘둘러서 싹둑 자르면 와닿는 충격이 없지만 그게 막히면 내지른 힘의 일정 부분이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극소수 인류 최고의 지성들만이 쓰는 학술 용어로는 반작용이라고도 하며 이는 너무나 어려운 개념이라 감히 일반인은 이해조차 할 수 있는 학문의 영역이다·
계두 사내가 부딪쳐 날았기에 온전한 반작용은 아니지만 터지기 직전인 옆구리가 터질 듯한 격통을 불러오기엔 충분하다·
빌어먹을 왜 대체 낫질 않는데!
옆구리가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 터져버리고 싶을 속마음이다·
나을 시간을 줘야 낫던가 말던가 하지·
“어사님!”
위사 하나가 몸을 날려 계두를 붙든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 쭈우욱 밀려난 계두가 시큰한 제 팔뚝을 깊게 파여 피가 줄줄 흐르는 팔뚝을 확인한다·
남의 피는 별 거 아니어도 제 피는 천금과도 같다·
계두의 눈이 뒤집혔다·
“감히! 죽여! 역도들이다!”
위사들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
달리는 수레를 향해 경공을 펼쳐 쇄도한다·
청의 경공은 천하일절 감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뒤에 사람 잔뜩 태운 짐수레를 달고서는 아니다·
곧장 달려든 선두의 위사가 높이 뛰어올라 수레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순간 진기 실린 창 한 자루가 날아 위사의 복부를 강타한다·
허공에서 창을 맞은 위사가 볼품없이 나가떨어져 우당탕탕 수십 번을 구르다가 제 동료의 발을 걸고 둘이 엉켜 나자빠진다·
“수레에도 고수가 있다!”
“일단 세워! 바퀴 바퀴를 노려!”
“뭣들 해! 이 놈들아! 바퀴를 지켜!”
연 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그에 좌우로 앉은 무명병들이 저마다 쥔 산적 무기를 붕붕 휘두르며 바퀴로 향하는 위사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무공 익힌 위사들을 상대로 일개 병사들이 얼마나 버티겠는가·
그나마 한쪽은 연 파가 막아준다 쳐도 남은 한 쪽은?
그에 청이 다급해졌다·
안에 자유가 실려있으니 수레가 나가면 나가리다·
내리막길이니까 굳이 안 끌어도 알아서 내려가기는 할 터 일단은 마구를 좀 벗고·
청이 황급히 가슴에 두른 마구를 붙든다·
그러나 무거운 수레 끌면서 당기는 힘에 점점 조여들던 마구다·
이미 죄일 대로 꽉 죄어 겨드랑이가 아프도록 살속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청이 낑낑거리며 안간힘을 써 보지만 아래로 거대한 살봉우리 위로는 어깨뼈에 막혀 요지부동 벗겨낼 수가 없다·
청이 어쩔 수 없이 힘을 주어 끊어내려는 찰나였다·
“네년!”
어느새 따라붙은 계두가 탁탁탁 현란한 보법으로 청과 나란히 서서는 왼팔을 쭉 뻗어 강기 이글거리는 수장을 뻗는다·
청도 그에 어쩔 수 없이 마주 검을 뻗어 응수한다·
그 순간 계두의 눈이 번쩍 청의 검을 덥석 쥐어 붙드는 것이다·
이 새끼 봐라? 잡아?
청의 눈매가 거칠어진다·
눈동자에 혼불이 확 피어오른다·
끼이이잉!! 철판 갈리는 소리가 일며 계두의 손아귀에서 불꽃이 튄다·
제 손아귀가 따끔하니 계두가 화들짝 놀라 손을 떨친다·
그 틈에 월광검이 성난 궤적을 그려 계두의 어깨를 퍽!
아씨 이거 단단한 새끼·
정신없이 내달리는 와중이라 검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검강 두른 검을 내리쳐서 서걱도 쩍도 아니고 퍽이라니·
항우장사의 힘으로 어깨를 얻어맞은 계두의 몸이 휘청 제 발에 제가 걸려 붕 떠올라 바닥을 구른다·
그러나 꼴에 고수라고 벌떡 일어나 다시 내달려 거리를 좁히며 소리치는 것이다·
“전륜마겁! 저주받을 마인 놈!”
“누가 누구보고 마인이래! 화염마공 쓰는 새끼가!”
청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강기가 불길처럼 피어오르며 손이 빨갛게 물드는 수공이라면 이미 이전에 보았다·
강기 서린 검을 손으로 붙잡을 자신감이라면 화염마공이 맞을 것이다·
그러자 계두가 빽 고함을 지른다·
“화염마공이 아니다! 황은화염신수다!”
“또 사이비 황은 짝퉁이냐! 나도 전륜마겁 아니고 시공영웅신겁이다! 누가 마공이래!”
계두 사내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사이비 황은이라니! 어찌 그런 불경한!
그리고 신겁이 대체 무어냐!?
겁 앞에 신이 어찌 붙는단 말이냐!
듣는 연 파의 이마에도 힘줄이 솟았다·
이 고약한 계집년이 기껏 비급을 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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