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7
위사들의 표정이 굳는다·
철강노는 중원의 최첨단 병기다·
어마어마한 장력으로 강철판을 뚫는 흉악한 강노이며 심지어 장전 한 번에 철창 다섯 자루를 쏜다·
그러나 막석은 코웃음을 쳤다·
“오라 이리같은 놈이 아주 역심을 드러내는구나· 감히 황상을 받드는 이 칠기 막석 님께 활부리를 내밀어?”
“북부군 역시 황상을 모십니다만·”
“마당이나 지키는 개새끼들이 감히 하인과 겸상하려 드느냐? 네까짓 비루한 개새끼들이야 얼마든지 갈아치우는 흔한 짐승이 아니더냐·”
일개 천호장 주제에 건방지게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흔한 천것 주제에·
너희는 그냥 금수고 금의위쯤 되어야 황상을 보시는 하인쯤 되는 것이다·
감히 금의위 나리께 대드느냐·
“저 여진 오랑캐 놈들을 한 놈도 베어본 적이 없는 샌님 주제에 입만 살았군· 개들이 집을 지킬 동안 식량이나 축내는 무능한 밥버러지가 할 말인가? 전장에서 가장 먼저 도망치는 것이 밥버러지들의 보은인가?”
근처에서 알랑거리며 하는 일 없이 국고나 축내는 무능한 놈들 주제에 말이 많다·
작전 완수도 안 보고 도망친 새끼들이 무슨 하인 운운이냐·
살벌한 기싸움 중에 청이 생각했다·
누가 그랬더라?
노예로 지내다 보면 서로 목줄을 자랑한다? 목줄이었나? 쇠사슬? 발찌였나?
누가누가 더 황상의 충견인가 대결?
그러나 청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란 상대적이고 다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화의 정신은 두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노예 되기 싫은 자 일어나라!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게 만들어주겠다!
그리하여 중화에는 항상 노예 되고 싶은 자들만 남았으니 노예 되고 싶은 자들이 저네들의 목줄과 족쇄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자랑하는 일은 아주 당연한 문화인 것이다·
애초에 선비를 뜻하는 글자 사(士)는 사지를 쭉 편 사람이 비굴하게 땅에 딱 붙어서 존경을 표하는 모습에서 나왔다·
일명 오체투지라는 자세로 몸의 앞부분 전체를 한 군데도 빠짐없이 완전히 땅에 붙여 바닥에 눕는(올바른 오체투지는 한 방에 이마가 깨져야 한다) 완전한 굴종을 표하는 비굴한 자세이다·
여담으로 저기 동쪽 오랑캐들은 오체투지를 큰절 비슷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한다나 어쩐다나·
그러니 천것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이들 선비조차 개보다 비굴하게 땅에 눕는 자다·
그러니 당연히 목줄 자랑이라고 하면 중원인의 습성 습성을 넘어 중화 그 자체다·
그러나 청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조금 김이 샌다·
칼까지 뽑아놓고는 말로만 싸울 셈인가?
누가 더 충견인지 좀 짖다가 음 원래 짖는 개는 안 문다고도 하니까····
다만 안 싸우고 빠지는 것도 괜찮다·
귀한 짐짝 두 개가 수레에 실렸다·
일단 안전하게 빼돌려야 뭘 할 거 아냐·
몸만 멀쩡했으면 아주 몽땅 도륙을 내놓는 건데 옆구리 터진 춘권이라서 그것도 못 하고·
우울하다 우울해·
청이 애달픈 마음을 담아 분노의 고구마 씹기를 시전했다·
분노는 나의 힘! 세상을 고구마처럼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아유 왜 이리 달아·
청이 고구마를 세상처럼 콱콱 씹었다·
금의위 팔기장 중 칠기 막석은 몸을 부들부들 떠는 중이었다·
저가 말싸움을 걸고는 제 마음이 긁혀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히 감히···!’
막석의 정신이 나약해서 부들거리는 것이 아니다·
막석에게는 장군이 당연한 아랫것이자 하인이며 미천한 촌놈에 불과하다·
본래 저보다 못한 놈에게 욕을 먹으면 더 화가 나는 법이다·
그에 비하면 장군은 천호장에 불과한지라 품계상 상전인 금의위 어사에게 욕을 먹어봐야 별 타격이 없다·
어차피 맨날 욕이나 하는 애들한테 욕을 먹어봐야 별 감흥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막석이 어디 꼬투리 잡을 것이 없나 진짜로 피를 볼 생각으로 트집거리를 찾아 눈깔을 번들거린다·
그리고 계속 아작아작 고구마를 씹어대는 청을 보았다·
“너 네년!”
막석이 곧장 청을 알아보았다·
곰 같은 덩치가 가슴줄 매고 수레를 등지고 있으니 저년이 그년인가보다 하고·
그리고는 머리속에 폭죽이 터진다·
“너 너희 놈들이 역모 역모를!”
“말조심하시오· 역모라니? 금의위가 저네 출세를 위해 무고한 이를 역모로 엮는다고 하더니만 괜한 소문이 나는 게 아니었군·”
“웃기지 마라! 네놈이 저년을 이용해 감히 금의위에 칼을 들이밀지 않았더냐!”
막석이 청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장군이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한숨을 푹 내쉬여 고개를 저었다·
“저년이라니? 혹시 눈깔에 문제라도 있소? 어디에 년이 있단 말이오? 이제는 아주 억지를 부리는군·”
“크흠· 그러게 말입니다·”
청이 사내 목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
다만 청은 목소리도 천하제일이다·
애써 목을 긁어 사내 목소리를 내 봐도 본래 너무나 고와서 귀에 착 감겨오는 미성이다·
사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야 사내 치고는 목소리가 사내답지 않군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이 한 번 들면 꾸며낸 목소리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진짜 여인이었나? 어쩐지 쓴 면사가 여인의 것이다 싶더라니· 애초부터 속이고 빠져나갈 생각이었군· 어사 이쪽은 우리 천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이다·”
“앗·”
잠깐 분위기 갑자기 공공의 적인데·
의리 없는 새끼가 갑자기 말을 바꿔?
청이 슬그머니 가슴줄에 손을 얹었다·
“하 웃기지 마라! 저년이 수레에 네놈들 깃발을 달고 가는 것을 보았다· 너희 놈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년에게 부대의 깃발을 덥석 넘기느냐?”
“그건····”
“저년이 감히 금의위를 습격해 여섯을 해하고 둘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러고도 너희 놈들이 역적이 아니라 우기느냐!”
“말은 똑바로 하지? 얌전히 수레 끌고 가고 있는데 그쪽이 먼저 습격했잖아· 대뜸 갑자기 공격하길래 산적 새끼들인 줄 알았지· 그래 내가 분명 저 깃발 좆같은 군사 놈들 당장 잡아 죽이라고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은 것 같거든?”
청이 이간질을 시도했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의외로 진실을 꿰뚫는 소리였다·
그에 장군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그러니까 대순군의 깃발을 보고 곧장 공격을 했단 소린가? 어사? 이게 어찌된 일이오? 황상을 모신다는 이들이 황상의 군대를 이유 없이 공격했단 말이오?”
“흥! 내 분명 방화선에 불이 닿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물러나라 하지 않았느냐· 그럼에도 건방지게 대놓고 깃발을 펄럭이며 도망치는 놈을 놔두란 말이냐?”
“으음·”
장군이 불편한 신음성을 냈다·
죽으라는 명령도 명령이기에 불복종의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라서·
거기 담긴 큰 고민에 막석의 기세가 확 살았다·
다만 막석의 언행에서 훤히 드러나듯이 저네는 하인이요 북부군이란 집 지키는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인들은 개가 저네들을 물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장군의 고민을 저 마음대로 생각했으니 이제야 기세가 죽나보다 하고·
하지만 장군의 고민은 따로였다·
깃발을 보고 대뜸 공격할 정도라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사가 대순군을 아주 원수처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겠다·
이대로 살려 보내면 화근이 닥친다·
지엄한 황상의 가장 하인들을 공격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장군이 진짜로 역적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막석은 아주 기세등등했다·
“그래 너희 놈들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다·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아라· 도대체 저 수레에 빼돌리려 한 것들이 누구냐?”
“···대순과는 상관없다 말했습니다만·”
“그래? 내가 보기에는 분명 저 수레에 역적이 타고 있을 것이다· 역적 놈이 휘하에 마두들을 들여 역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저년 역시 역적이 거둔 마두 중의 하나겠지·”
청의 눈썹 사이에 팍 골이 패였다·
저게 미쳤나 마두?
사람 피로다가 경지 올린 새끼한테 내가 마두 소리를 들어야 해?
“너희와는 상관없다 말했느냐? 그러면 너희가 직접 역적의 목을 쳐서 무고를 증명해 보아라·”
그에 차자작 청의 주변으로 샤샥 잽싸게 거리를 벌린 군사들이 창끝을 겨눈다·
연 파가 마차 안쪽으로 자유를 밀어넣고는 청을 향해 눈빛을 던진다·
저를 놓고 가라고 자유 챙겨다가 도망치라는 결연한 눈빛이었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젠 진짜 어쩔 수 없지·
그리하여 청이 한숨을 푹 쉬고는-
“무엄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빳빳이 고개를 치들고 있느냐· 감히 천자의 핏줄 앞에 무릎을 띄우고 선 놈들이로구나·”
“크하핫! 네년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제 와서 친왕의 위를 내세울 생각이더냐! 아서라 네 주인은 일개 역적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장례는 치러 사후에도 왕작이 취소되지는 않을 터 네 주인에게 얌전히 목을 내밀라 전하거라·”
애초에 덕현친왕을 잡으러 온 놈들에게 친왕의 권위를 들먹여봐야 통할 리가 있나·
청도 당연히 주지하고 있단 사실이다·
“네가 눈이 있어도 감히 네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니 당장 빼어놓아야겠구나· 고가 바로 연술 공주의 작을 받은 너희 것들의 주인이거늘· 황실의 적통이 바로 너희 눈앞에 있거늘 어찌 여전히 무릎이 허공에 떠 있느냐?”
내가 바로 나라의 공주다!
청의 입술에서 지엄한 호통이 흐른다·
그렇다 청의 정체는 바로 지엄한 황실의 적통 공주의 위를 받은 연술 공주였던 것이다!
장내에는 정적이 흐른다·
까악 까악·
때를 맞추어 겨울철 굶주린 까마귀가 우렁찬 울음 소리로 하늘을 가로지른다·
“···?”
금의위 위사들이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
북부군 역시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했다·
“···!”
모포 아래 웅크리고 있던 자유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소할 그 뿔난 망아지! 멧돼지 같은 큰 꼬맹이!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지?
“···하아·”
연 파는 이마를 탁 짚는다·
“오잉· 뭐야· 고가 공주라니까? 여기 공주님 계시는데 무릎 안 꿇어?”
두 대장이 고개를 살살 젓는다·
“네년 음 마두년이 무공이 아주 강맹하더라니 마성이 머리에까지 미친 모양이로구나· 쯧쯧·”
“어쩐지 용력이 뛰어나더라니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양이로군·”
어쩐지 매우 딱하다는 눈빛이 돌아온다·
청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내가 공주님이다 하는 개도 안 믿을 계책이냐 하는 듯한 아주 한심함을 숨기지 못하는 연 파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울컥 화가 치민다·
뭐야 내가 뭐 어때서?
내가 공주님 좀 하겠다는 게 그렇게 안 어울려서 다들 이렇게 날 보고 있는 거야?
그야 차림새부터가 지저분한 데에다 솜이 몰리는 바람에 오른쪽으로 볼록하니 울퉁불퉁 볼품없는 부한 솜옷을 입은 거한이다·
거기에 가슴에는 가슴줄 턱 매고·
한 손에는 먹다 만 생고구마 들고·
그걸 또 아작아작 듣는 이마저 맛있도록 말싸움 내내 야무지게 씹어먹던 년이다·
게다가 숙련된 인력거꾼에 힘이 항우장사인 꼴을 여기 모인 이들이 빠짐없이 죄다 보았다·
인제 와서 짠 공주였습니다 하면·
그야말로 개도 안 믿을 소리다·
청이 제 꼴과 말씨와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는 그저 혼자 열이 올라 이마에 핏대가 볼록 솟는다·
청이 뒤로 손을 돌려 행낭에 쏙 집어넣고 뒤적뒤적 안을 헤집는다·
잘 안 잡히는지 아씨 작은 소리와 함께 아예 행낭을 앞으로 홱 돌려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를 찾는다·
다들 저 년이 또 뭘 하려나 어이없고 또 한편으로 기대가 되는 심정으로 지켜본다·
청이 마침내 무언가를 찾았으니 휙 던져 포물선을 그리며 막석을 향해 날아간다·
얼떨결에 받아든 막석이 손에 쥔 것을 내려다본다·
정교하게 조각이 된 옥패·
막석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용과 공작이 금으로 새겨진 옥패다·
용의 손가락이 다섯 개!
공작의 꼬리깃이 아홉 개!
그리고 백색 흑색 홍색 금색 청색의 오방색에 귀하신 자색까지 여섯 종류의 실이 늘어진 육색의 수실!
이는 천하에서 단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상징이니 바로 온 나라의 어머니 되시는 황후 폐하의 신물이다·
막석이 눈을 끔벅이고 눈을 비벼보고 불경스럽게 패를 손으로 더듬어도 본다·
“이게 이게 왜 진짜···”
그야 진짜 황후의 신물이니까·
딸을 생각하는 어미의 마음 그 자체이고·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