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8
청의 진천뢰같은 발언에 조용하던 때다·
왜 진짜냐는 막석의 혼잣말이 벽력처럼 크게 울려퍼진다·
“전하를 뵙습니다!”
북부군이 곧장 허물어지며 파팍! 무릎이 아주 깨지도록 땅에 치박고 팔꿈치를 땅에 붙였다·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
나라의 공주님이 거한과 같은 덩치를 하고서는 생고구마를 아작아작 씹어대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금의위 칠기씩이나 되는 어사 나리가 하는 말이다·
심지어 그 말에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의문이 듬뿍 담겼으니 더는 의심할 바가 없다·
사내라면 응당 가지는 공주님이라는 환상이 와장창 깨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하시며 가련한 한 송이 꽃 한 떨기 꽃잎처럼 연약하시기에 충심을 다해 지켜드려야 할 절세가인이라는 영문 모를 환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찬바닥에 이마 대고 있는 북부군들은 어쩐지 울컥 눈물이 치미는 것만 같았다·
내 공주님 공주님을 돌려줘····
바닥이 너무 딱딱하고 차가워서일까·
마음까지 얼어붙는 듯 춥고 괴롭다····
연 파는 깜짝 놀랐다·
어쩌다 황후까지 연이 닿았을꼬!
청이 공주님일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다면야 아무리 궁을 오래 떠나 계셨다고 해도 총명하신 왕야께서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으실 테니까·
금의위는 상당히 난감한 상태다·
금의위 위사 몇 명이 넙죽 무릎을 박고 팔을 들어올리다가 도중에 눈치를 보니 저네 대장이 여전히 서 있지 않나·
뭔가 다른가보다·
무릎 땅에 박고 팔 앞으로 모으던 위사들이 원래 그러려 했다는 듯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몇 번 쭉쭉 펴는 척을 한 후에 아주 자연스러움을 호소하며 다시 일어났다·
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청이 인상을 팍 찌푸린다·
“네놈은 어찌 아직도 무릎이 떠 있느냐?”
“분명 황후 마마의 패가 분명합니다만 공주님께서 여기 계실 리가 없음을 아니 아니라면 목숨으로 사죄하겠습니다· 혹여 옥안을 뵈는 영광을 허하여 주시겠습니까?”
막석이 일단은 존대로 대답했다·
하지만 말만 존대지 못 믿겠으니 가린 얼굴을 까 보라는 소리다·
달리 말하면 저 놈은 연술 공주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뜻인데·
청이 어쩔까 하다 일단 황후 마마를 믿어보기로 했다·
황후 마마가 딸을 잃은 슬픔에 광증이 치민 것이 아님에야 내 얼굴이 진짜로 연술 공주 얼굴이겠거니 하고·
그에 청이 면사를 걷었다·
얼굴 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천하제일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 미모가 만천하에 훤히 드러난다·
막석의 눈이 터질 듯이 커진다·
초점이 흔들려 열댓개의 형상이 부스스한 청의 시야에서도 알아볼 만큼이었다·
그러고 나니 청도 의문스럽다·
그러면 진짜 황궁에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단 말야? 하고·
하지만·
“크흠 깜빡 속을 뻔 했군· 네년 아니 음 허나 그으 혹시 황후 마마를 모시는 분이십니까? 공주님의 대역을 하시는 분이시라던가·”
막석이 공손하지도 못하고 불손하지도 못한 미묘한 태도로 쭈뼛쭈뼛 물어오는 것이다·
“무슨 불경한 소리냐·”
“연술 공주님과 분명 닮으셨습니다만· 그 연술 공주님은 그렇게까지···”
청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말꼬투리 잡기로는 천하에서 청을 대적할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다·
“아 그래· 연술 공주는 이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못생겼다? 네놈이 정녕 돌아버렸구나· 황실을 얕잡아보아도 유분수지 네가 귀한 핏줄을 감히 평가하느냐?”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제가 본 그분의 옥안은 크흠 그 얼굴에 열꽃의 흔적도·”
“오라· 네가 아는 연술이란 못생긴 년에 얽은 자국까지 남은 년이로구나! 그래서 내 미인이기에 가짜이다?”
청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했다·
나랑 똑같이 생긴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황후 마마께서도 어미의 눈썰미로 딱 알아보았다 이리 말씀을 하셨으니·
저 금의위도 닮았다고는 하고·
“그 어찌 서궁부에서 본궁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입니까? 덕현왕을 처리하는 것은 분명 황상께서 명하신···”
“닥쳐라!”
청이 준엄하게 호통을 쳤다·
“이제 보니 네놈이 아주 돌아버린 게로구나· 무엇이 어째? 네 정녕 말하기를 황상께서 그분의 혈육을 치우라고 직접 명하셨다는 말이냐? 너는 네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막석의 심장이 뚝 떨어졌다·
그야 당연히 제대로 된 명령 계통을 통해 떨어진 명령이 아니다·
물론 아주아주 고대 은나라 주나라 시절로부터 중원 황제들의 우애들이 이러하기는 했다·
죽일 수 있을 때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천하에 같은 태양을 두고 살 수 없는 원수로 여긴다·
다만 선황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끼리 서로 죽이는 꼴을 못 본다·
그리하여 자기는 신나서 자기 형제들을 몰살한 황제들이 저 자식들한테는 그러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고 온갖 제약을 붙여두었다·
이러한 판이니 대놓고 친왕을 죽였다가는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용상의 주인이 바뀌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아실만한 분께서 그러시면·”
막석은 억울하다·
명령대로 따랐을 뿐인데!
“알다니? 설마· 황상께서 그분의 군대를 산적으로 꾸며 그분의 백성들을 모두 참살하고 그도 모자라 산에 불을 내어 화마를 불러일으키라 명하셨단 말이냐? 네 정녕 그리 주장하는 게야?”
“헙·”
막석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을 꺼낸 청도 아주 기가 막혔으니까·
이거 황제 새끼 아주 개새끼 아닌가?
내가 말했지만 진짜 이건 말이 안 되네·
이런 놈이 어떻게 황제까지 하고 있어?
짜증이 확 치민 청이 무릎 꿇은 북부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성치는 않지만 그래도 얘네 중에는 악업 세 글자가 드물다·(없지는 않았다)
대개는 악업 두 자리 간혹 한 자리 개중 몇 놈은 심지어 푸른 글씨가 번진다·
“내 북부군에게 용안을 뵙는 영광을 허하노라·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그에 북부군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다가-
헉·
고구마 씹어먹던 덩치 큰 인력거꾼은 어디로 가고 하늘에서 강림한 듯한 선녀가 떡하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본래 의복의 완성은 얼굴이다·
솜이 뭉친 털옷조차 청의 미모를 이기지 못했으니 괴력의 거한이 아니라 청빈한 차림새의 절세미인께서 자리하고 계시더라·
면사 하나 걷었을 뿐인데 내 공주님은 이렇지 않아! 했던 절규가 무색하게 오오 완전 공주님 역시 공주님 참으로 고우시다·
심지어 북방군이다·
군사들 중에서도 최전방 여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혹한의 땅에서 국경을 수호하는 용사들이라서 여인에 대한 역치가 아주 심각하게 낮은 이들이다·
그저 저자의 평범한 여인만 보아도 진짜 예쁘다 침을 주르륵 흘리는 굶주린 야수들이 고금제일미인 후보를 보았으니 그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넋이 빠져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보고 또 봐도 경이로워 평생 지켜보다 죽었으면 좋겠다····
“거기 장군에게 묻노라· 네 앞에 천하에 다시 없을 역적이 비단옷을 차려입고 황상의 용명을 더럽히는구나·”
청은 밑천이 많지 않다·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몰아쳐야지 생각할 시간을 주면 청만 곤란해진다·
다른 증거 있냐고 하면 우리 같이 황후 마마께 달려가서 내가 진짜 딸이 맞나 아닌가 한 번 물어볼래? 할 수는 없으니까·
“너희는 두고만 볼 것이냐?”
장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판단은 어렵지 않았다·
진짜 공주인가? 모른다·
그러나 패가 진짜인가· 맞는 것 같다·
금의위 편을 든다고 해서 저 자식이 원한을 접고 어깨동무하며 친하게 지내자고 할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쏴라!”
맥락 없는 명령이다·
그러나 본디 훈련이 잘 되어 군기가 엄정한 군사들은 명령 앞에 허둥대거나 망설이지 않는 법·
타탕탕!
화약 터지는 듯한 굉음이 일제히 울려퍼진다·
강철판을 뚫는 철강노의 활대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내는 폭발음이다·
오십 대의 철강노에서 이백오십의 철창이 대기를 찢는다·
개중 몇은 병기에 튕겨 막히고 그러나 대부분은 살과 뼈에 파고들어 뻔뻔하게 자리를 잡는다·
기운이 남은 놈은 사람의 몸을 뚫고 뒤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청이 보기에는 무언가 쌩 날고 파바박 금의위 위사들이 춤추며 쓰러지는 광경이다·
그러나 개중 아직도 서 있는 놈이 몇 명·
제일 앞에 있던 놈은 멀쩡한 것 같다·
애초에 막석은 철강노 앞에서도 태연히 서 있었으니 화경 고수 더하기 황은으로 내려진 금강불괴의 신체를 믿었으니까·
다만 부하들은 불안해했으니 조금 덜한 황은으로 내려진 대충 난괴(손상이 어려움)쯤 하는 신체가 철시를 이길 수 있나 없나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러하니 그 결과는 어떠하랴·
청의 고향에서 성공학 강사들 즉 아무런 자격증이나 딱히 쌓인 토대도 없는 주제에 성공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오만한 사기꾼 새끼들이 보았다면 눈을 번뜩일 만한 결과였다·
보십시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데 어떻게 시련을 이겨내겠습니까!
자신감 자신감을 가진 자는 화살도 몸으로 막아 튕겨내는 법입니다!
여러분 제가 몇 번이나 사업에 실패하고도 결국 성공한 이유는! 아무리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무한대로 자금을 지원해 주신 부모님 덕분이 아닙니다!
온전히 내가 잘나서입니다!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갑자기 세계 일주를 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솟아나 가득 차는 통장 때문이 아니란 말입니다!
결국에는 다 때려치우고 ‘희망 전도사’로 일년 강의 예약을 꽉 채울 만큼 성공하고 만 본 잘난 강사의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십시오!
나에 대한 확신! 나는 성공한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은 그 자신감이 성공의 시작 마음이 정신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자 따라하세요! 나는 성공한다! 나는 될 놈이다! 나는 화살도 두렵지 않다! 하고·
그리하여 자리에 서 있기라도 한 금의위 위사의 숫자는 다섯·
개중에 어디 한 군데 화살이 박혀있거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한 이는 막석 한 명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감의 차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여기 또 자신감을 가진 이가 한 명· 자신과 더불어 부하들에게도 강인한 신뢰를 보내는 명장이다·
“쳐라!”
“와아아!!” “죽여!” “치라고 하신다!”
군사들이 일제히 창 혹은 월도를 꼬나쥐고 돌격을 감행한다·
청이 역시 양손으로 가슴줄을 뚝 끊어내고 월광검 뽑아서는 꽝! 땅을 짓밟는다·
“이 이 놈들이! 감히! 오냐! 죽고 싶다면 내 친히 보내주마!”
막석이 노성을 터뜨리며 팔을 휘두르니 창대가 우수수 잘려나간다·
그에 신속하게 물러나 척척 전열을 갖추는 북부의 군사들·
그러나 반편이 화경이라도 화경은 화경이었으니 화살처럼 쏘아진 막석의 수장 화르륵 피어오르는 화룡이 팔을 휘감아 손에 어리는 때에 맞춰 군사의 머리를 후린다·
군사는 시선 가득 들어오는 수장에 문득 고향집의 모습을 떠올린다·
저물녘 쌀 찌는 냄새 피어오르는 고향집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철없이 까불거리는 동생들 그리고 다리 불편한 아버지께서 아들 보며 말씀하시기를-
“흑염룡 멈춰!”
순간 숨이 턱 막히며 그리운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후웅! 화끈한 열풍이 얼굴로 쏟아지고 몸은 뒤로 쏠려 날아가는 아찔함·
청이 이름 모를 멋진 수공에 머리가 박살이 날 뻔한 군사의 뒷덜미를 낚아채 구해내고는 뒤로 홱 떨쳐버린다·
그러자 잔뜩 경계하며 청을 바라보는 막석·
청이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흠· 그 무공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황룡십팔장입니다”
황룡!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 사방에 신수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에 황룡께서 존재하시니 이는 즉 황실을 뜻하는 상징이다·
개방도가 들었다면 극대노할 소리다·
관부 놈들이 무공 훔친 것도 모자라서 이름마저 제멋대로 막 바꾼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황궁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기는 하다·
원래 이름은 너무 역모스러운 것을 어째·
용을 대적하는 무공이라니 이름부터가 아주 역적의 무공 그 자체다·
불퉁하게 대꾸한 막석이 억울한 소리를 낸다·
“어찌 황상께서 하시는 일에 서궁부가 방해를 한단 말입니까· 아무리 황후 마마라 하셔도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습니까?”
서궁은 황상의 여인들을 모시는 궁전이니 이름만 들어도 황후의 세력을 말하는 것이지만 청은 그런 당연한 상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닥쳐!”
청이 훌쩍 날아 검극을 앞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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