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9
막석이 다급히 수장을 뻗는다·
쩡! 검끝과 손바닥이 충돌하여 요란한 소리로 폭음이 터진다·
헹· 나도 이제 사이비 화경에게 고전하던 절정 나부랭이 따위가 아니란 말씀·
이제는 초절정 초월 초절정인 초절청으로 진화했으니까·
청의 막대한 내공이 줄줄 새는 강기로 화하여 막석의 손바닥에 둔탁하게 파고든다·
막석이 피를 쫘악 뿌리며 뒤로 다섯 보 가량을 쭈우욱 밀려났다·
청은 청대로 쌓인 울화가 있다·
“내가! 공주라는게! 그렇게! 꼽냐! 내가! 뭐가! 어때서!”
한 마디 한 마디에 감정이 듬뿍 실린 강맹한 검격이 날아든다·
연신 검강이 반원을 그리니 막석이 계속 화룡 다만 시간이 모자라 불지렁이 정도로 피워내며 검격을 쳐내기에 바쁘다·
곧게 날아오나 싶더니 도중에 휘어 팔뚝을 베고 가던 검격이 돌연 급격하게 삐쳐 꺾인다· 그럼에도 강맹한 검격이다·
검의 궤적들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군문의 월녀검과 닮은 것이다·
그러다 어설프게 도중에 뒤바뀌고 휘다가 의미없이 칼을 돌려대며 직각으로 꺾이는· 무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나 할 법한 멍청한 동작의 연속이지만·
그러나 검격은 기이하만치 강대하고 도저히 다음을 알 수 없어 그저 몰아치는 검강을 막아내느라 급급하다·
그러다 돌연 셋으로 갈라지는 강기!
막석이 이를 악물어 화르륵 제대로 피어나는 불꽃이 어깨를 휘감는-
퍼억·
돌연 뒤로부터 거칠게 떠미는 힘에 막석이 저도 모르게 휘청하고 만다·
북부군들이다·
겁도 없이 초고수들의 싸움을 돕겠다며 창을 내지른 것이다·
다만 군사들도 찌르고는 어이가 없다·
시퍼렇게 날을 갈은 월도 다섯이 동시에 뒤를 찔렀음에도 절벽을 때린 듯 손아귀는 찢어질 것 같고 상처는커녕 한 발짝 겨우 밀어내는데에 그치고 말았으니·
그러나 고수의 승부는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법·
청 역시 눈 한번 깜박였다가 젖무덤이 셋으로 늘어나는 참변을 당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막석은 도중에 휘청였다·
청의 월광검이 그리는 초승달 세 개가 비스듬히 겹쳐 휘몰아치고 나서는 옆구리가 쩍 손가락이 비스듬히 잘려나가 후두둑 언 땅에 쏟아진다·
“크아악! 감히!”
막석의 눈이 팩 돌아간다
갑자기 전신을 뒤덮는 푸른 강기들 맑은 하늘의 빛으로 가닥가닥 연신 하늘을 향해 흘러내리는 태청한 강기다·
곤륜파가 보았다면 막석처럼 눈이 돌아갈 만한 장면이지만 저기 이역만리 먼 곳에 사는 곤륜의 도사들이 어찌 보겠는가·
강기를 하늘로 흘려대며 막석의 몸이 천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청이 경계하며 몸을 바짝 낮추는 순간·
거뭇한 것들이 날아들어 막석을 덮친다·
거무튀튀한 그물이다·
그것도 한 개가 촤악 막석의 위로 끼치고 그 뒤로 연달아 쫘악쫘악 사방에서 거미줄처럼 쫘악 펼쳐진 그물들이 막석에게 걸려 무게추 휘두르며 촥촥 감긴다·
그물 다섯 개를 뒤집어쓴 막석이 신공이고 뭐고 허우적거리다 세 척 높이에서 떨어져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는다·
“좋네!”
와 그물!
청이 당할 때는 이만큼 짜증나는 수법도 없었다·
하지만 적한테 쓰고 나니 세상에 이만큼 신묘한 병기가 따로 있나 생각이 든다·
청이 히죽 웃으며 연신 칼로 찌른다·
아주 비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잠깐 악 치사 정정당당 억·”
“뭐 치사? 마차 끌 때 떼로 덤빈 놈이 무슨 정정당당이냐!”
막석이 팔 한번 휘두를 때마다 투두두둑 그물 끊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다섯 겹을 뒤집어쓴 상태다·
그물을 연신 끊어도 끊어도 어딘가 몸에 걸린다·
손을 뻗으면 옆구리를 콱 찌르고 뒷걸음질 치면 발아래 그물이 붙들며 허리를 돌리면 머리채가 틀어잡힌 것처럼 좌로 우로 팩팩 쏠린다·
막석의 눈에 점점 큰 분노가 어린다·
아· 내가 저 느낌 알지·
청이 십분 공감하며 검을 쭉 잡아당긴다·
이어 세차게 뻗어나가는 검극이 막석의 오른쪽 가슴 아래 가슴과 배의 근육 사이로 둔탁하게 파고들었다·
청의 눈에 혼불이 돌고 회전하는 강기에 무른 속이 딸리고 엉켜 찢겨나가는 촉감 청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검을 거칠게 뽑아낸다·
“커헉·”
막석이 피를 울컥울컥 토해낸다·
그대로 바닥에 웅크려 내장 조각 섞인 핏덩이들을 연신 쏟아내는 꼴이다·
흉포한 전륜마검의 회전 강기에 내장이 갈가리 찢겼으니 실상 숨만 붙어있는 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청이 검을 한 번 휘둘러 묻은 피와 내장 조각을 촤악 흩뿌린 후에 조금 낑낑거리며 월광검을 납검했다·
검이 길고 묵직해서 좋기는 한데 너무 길다 보니 팔까지 쭉 뻗어야 하는 통에 척 멋진 모습을 보이기에는 옆구리가 좀····
막석은 수십의 창끝이 향하는 교차점에서 그물에 휘감긴 채로 숨을 거뒀다·
금의위 고수가 온전하지 못한 화경이라는 점을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으니 막석이 죽고도 경계가 그치지 않고 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장군이 다가가 시체를 발로 밀어 뒤집고 그 품을 뒤적거린다·
그리하여 옥패를 손에 쥔 장군이 제 품으로 정성껏 닦는 척을 하며 유심히 살핀다·
용의 발톱이 다섯 공작의 꼬리가 아홉·
상식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천자의 반려만이 가지는 상징이다·
감히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 가늠할수조차 없는 아름다운 황금 새김을 정성껏 문질러 닦으며 장군이 머리를 마구 굴렸다·
도대체 어떤 암투에 휘말린 것인가·
황제는 제 형제를 남몰래 죽이려 하고 황후가 공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방해하고 친왕을 구해내고자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장군은 북부군에서도 유능하기로 이름이 높은 대순 천호의 대장이다·
이는 곧 야심의 증명이다·
야심이 없는 이는 유능하더라도 드러내지 않아 이름이 높아지지 않으며 야심만 갖춘 이는 유능하지 못해 이름을 높일 수 없다·
황궁에 심상치 않은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때야말로 야심가들이 기다리던 순간이다·
날개를 활짝 펼쳐 날아오를 기회!
장군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옥패를 내민다·
“북부군의 이 모가 공주님을 뵙습니다· 감히 용안을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자비를 구함을 허하여 주시겠습니까·”
“내 정체를 감추고 있었으니 딱히 그대의 탓을 할 생각은 없노라· 그러니 장군은 무고하다· 내가 보증하겠노라·”
청이 흔쾌히 용서했다·
정신적 뿌리도 그러하지만 본래 사람이 담백하기 짝이 없는 청이다·
반말 좀 했다고 딱히 기분이 상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마음 상할 대우를 받지도 않았고·
“전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북부군이 뒤에서 일시에 부복해 외친다·
장군이 흘낏 수레를 본다·
분명 저기에 덕현왕이 타고 있음은 분명한데 따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은 그냥 없는 것으로 하자는 뜻이다·
자 그럼 어찌해야 할까·
장군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튼다·
“귀하신 마마께서는 이제 어디로 향하고자 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감히 모셔드리는 영광을 가지고자 합니다·”
“아니다· 내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니 너희는 북방을 비워두고 있는 참이 아니냐? 너희는 군의 소명을 다하도록 해라·”
여기서 남쪽이라면 광서 혹은 광동이다·
그리고 광서성에는 수시왕부가 있다·
장군이 작전의 진의를 이해했다·
친왕들의 회합이란 천자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한 개 성의 군사를 모두 통솔하는 친왕이 서넛만 뭉쳐도 그 군사가 도대체 얼마인가·
그야말로 역심을 품었다고 고백하는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러니 덕현친왕은 남들 몰래 움직일 수밖에는 없다·
공식 행차를 했다가는 친왕의 회합이 될 것이니 역심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테니까·
몰래 움직이니 천자도 손을 쓸 수 있다·
산적으로 위장해 몰래 참살하고 금의위도 말하기를 제사는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비웃지 않았던가·
역적이라고 말하지만 죽더라도 왕작은 유지시키겠다고 몰래 죽이고 국상을 치러 주겠다는 소리다·
수상한 친왕의 회합·
그 낌새를 눈치채고 막으려는 황상·
그런데 황후가 친왕을 지지한다?
이건 잘못하면 용상의 주인이 바뀌는 그래 새 치세의 공신이 될 기회가 아닌가·
장군이 아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소설을 쓰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도 유능한 이라서 그런지 얼개 자체는 크게 틀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애초에 황후는 딸이 어디 가서도 기죽지 말라고 가진 옥패를 넘겨주었을 뿐이다·
서궁부에서 가짜 연술과 사이한 천축의 마녀들을 몰아내려는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딱 그뿐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장군의 눈빛은 결연하다·
“공주님 부족한 소신입니다만·”
그리고는 척 품에서 패를 하나 꺼내들어 공손히 또 내미는 것이다·
“북부의 군심을 모아 대기하겠습니다· 마마께서 필요로 하신 때에 언제라도 한 몸 불태울 것입니다·”
청은 원래 주는 선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뭘 주길래 받을 뿐이다·
그리고 사실 패 모으는 것도 점점 갯수가 늘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고 할까·
하지만 청이 패를 받아드는 때에 장군은 심장이 쿵쿵 뛰고 짜릿하니 벼락이 통하는 것만 같다·
장군이 제 신분패를 넘긴다 함은 이후에 어떤 일을 벌임에 휘말려도 상관없다고 그러니 마음껏 부려먹으시라는 충성 맹세와 같은 것이라서·
“그럼 저희는 전장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부디 보중하십시오·”
금의위 위사들 시체 치우고 증거를 인멸하고 나서 떠나겠다는 소리다·
청이 그러하라 하고는 더 엮이기 싫은 마음에 수레를 끌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눈이 성치 않은 꼴을 들키기 싫어 일단은 받고만 말았는데 청이 장군의 패를 코앞에 잡아당겨 눈을 찌푸려 어찌어찌 살핀다·
앞면에는 북군 대순 장·
뒷면에는 이름으로 추정되는 세 글자가 박였으니 앞뒤를 종합하면 이러했다·
북부군 대순군 대장 이자성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걸 왜 줬지?
북부에 놀러오라는 뜻인가?
왜 친구들도 꼭 놀러오라면서 하나씩 주고 가지 않았던가·
물론 청에게 준 것이 아니라 황후 마마께 전해달라고 준 것이기는 하다·
장군에게 청은 황후와 한 배를 타고 한 몸이나 다름없는 공주였으니까·
하지만 청은 몰랐다·
왜냐하면 청이니까·
—-
금의위가 모두 죽어버렸으니 딱히 북쪽 피해서 갈 이유가 없다·
그러니 북쪽으로 한나절만 수레를 끌면 수녕현이라는 도시가 나올 테니까·
그렇게 수레를 끌고 있자니 어쩐지 조용하던 자유가 슬그머니 입을 여는 것이다·
“음· 친우· 아니 음· 그러니까· 음 그래 공주라고? 연술? 소할이냐?”
왜 이제까지 몰랐나 싶을 정도다·
어릴 적의 태가 그대로 남아있지 않나·
사실 어릴 적이라고 해도 열 살 꼬맹이 때로부터 꼬맹이인 적이 없는 당시에 열일곱 살 왕자와 키가 비슷했던 조카가 아니었던가·
그래 어쩐지· 사천에서 처음 보았을 때에 그 태가 목소리가 어디서 들어본 듯해 저도 모르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제 정체를 숨기고 삼촌과 친구하자 할 이유가 있던가?
그에 청이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몰라·”
“모른다고?”
“몰라· 기억이 없어· 중원에서 내가 가진 기억이란 오 년 전인가? 와 벌써 오 년인가? 시간 참 빨라· 어쨌든 처음 보는 동굴에서 눈을 뜬 게 전부니까· 그러다 이번 여름에 소림사에 불공 드리러 오신 황후 마마를 뵈었는데 궁에 있는 공주가 가짜고 내가 진짜라느니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크흠·”
“친구도 연술 공주를 알아? 내가 그렇게 닮았나? 아까 금의위는 내가 더 예쁘다고 하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듣고 나서 생각하니 아주 빼닮았어· 그런데 기억이 없다고? 내 듣기로는 크게 앓았다던데·”
“몰라· 기억에 없다니까? 왜 친구가 보기에도 내가 공주같아 보여?”
“솔직히 말하자면 뿔난 망아지 그대로로군·”
그에 자유의 입매가 장난스러운 곡선을 그린다·
“흠 조카야·”
“아씨 조카는 무슨 개뿔이 조카야? 나는 서문청이거든? 연술 공주가 아니라 서문청· 아까는 앞뒤로 적을 둘 판이라 어쩔 수 없이 이름 판 거고·”
“그렇다고 본 핏줄이 어디를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조카야· 삼촌에게 버르장머리없이 그 무슨 말본새냐·”
대화를 듣던 연 파의 안색이 굳었다·
이 대화는 무엇인가·
이 천박한 말괄량이 새아가가 진짜 공주라도 되는 듯한 소리지 않은가·
진짜라면?
만약 서문청의 정체가 진짜 공주라면?
연 파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새아가의 정체가 공주라면·
연 파의 눈빛이 환희로 물든다·
그야말로 최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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