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1
군사들이 불을 놓을 때 풍수사들이 예측하기로 동남풍이 불 수도 있다고 했다·
책임 회피를 위해 최대한 넓은 범위를 잡아내기는 하지만 일기 예보는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통계에 의존하는 과학이다·
그러니 풍수사들의 의견 역시 이 동네에 이맘때쯤 동남풍이 불었다는 많은 자료를 근거로 제시가 된 것이다·
저 과거 제갈량도 바람이 안 불면 우리 다 뒤지는 상황에서도 여유만만 ‘온다 바람이 올 것이다’ 하고 무속인 흉내를 낼 정도였다·
후대의 분석으로야 당시의 적벽은 본래 북서풍이 심하게 불고 나서는 이후에 높은 확률로 동남풍이 부는 동네라고·
거기에 몇몇 날씨의 징조들 예를 들어 먼 남쪽의 비구름이나 낮게 나는 벌레들 유난히 뻐끔거리는 물고기 등을 관찰해서 확신을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풍수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제갈공명이 자리하고 있었다면 안심하고 불을 지르십시오 내일쯤 제가 비구름을 빌려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잘난 체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청이 때아닌 새벽초부터 환호성이 터지는 통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마치 국가 대항전에서 우리나라가 득점이라도 한 듯한 환호성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지만)
그리하여 무슨 일인가 창을 열어 바깥을 보니 초겨울에 웬 굵은 빗줄기가 추적추적 쏟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학적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여름이 너무 더웠으니까·
그 여파로 겨울임에도 남해가 미처 식지 않았으니 비구름이 크게 발생한다·
그러니 비구름이 남동풍을 타고 날아오다가 화마가 뿜는 새까만 연기 잿가루 잔뜩 섞인 뜨거운 연기를 뒤집어쓰고는 곧장 눈이 매워 눈물을 쫙쫙 뽑아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청은 모른다·
미개한 중원의 원시인들 역시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화마를 잠재워줄 큰비에 그저 환호작약하며 감사를 표할 뿐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상제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상에 난 재앙을 하늘이 막았으니 이는 역시 천자께서 덕이 높으신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새벽녘부터 비 맞으며 만세들이 터져 나온다·
황상!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오래 살다 그 황상!
천자시여! 만수무강하소서!
본래 좋은 일은 무조건 죄다 황상의 덕이요 은혜인 법이다·
반면에 나쁜 일이 생기면 죄다 백성의 탓 백성을 달래야 하면 황실에 악녀가 들은 탓이라면서 여인의 탓으로 돌리면 된다·
그 소리를 듣는 청이 흥 콧방귀를 뀐다·
만세는 개뿔·
애초에 불 지르라고 한 놈이 그놈인데·
그런데 도대체 어떤 인간상일까·
애써 생각하기 싫어 미뤄왔던 생각이다·
황후 마마의 말이 맞다면 아마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는 셈이겠지만·
청이 강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로는 분명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님이 틀림없었다·
황후 마마도 이를 아득바득 가는 것이 여인의 한이 가득 담겼으며 과거 연술 공주를 굉장히 구박했다는 것도 같고·
그걸 떠나서 나라 꼴이 꼴이여야지·
일단 백성 알기를 개돼지만도 못하도록 취급한다는 사실은 알겠다·
적어도 개와 돼지는 필요가 없으면 잡지 않고 기르는 가축이 아니던가·
그냥 입막음이랍시고 산적 행세까지 하며 죽이고 불을 지르고 할 정도라면·
하지만 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
애초에 청은 청이다·
부덕한 황제를 응징하겠다며 반란의 기치를 치든다거나 나라의 근본은 백성! 민주주의 네 글자를 피로 쓰겠다며 ‘우리의 삶은 오로지 혁명을 위한 것이오 서명하시오 동무 붉은 사상이야말로 하나의 유령이다’ 하고 비장하게 연판장 돌릴 이유가 없다·
강호의 무부 서문청이 굳이 높으신 분들 나라 다스리는 일에 끼어들 일이 있으려고·
자유 역시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겨울날 비를 맞으면서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연신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연호하는 불쌍한 이들을 본다·
그 하늘께서 화마를 내려주신 것을 알까·
하지만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들에게 천자란 곧 하늘이다·
사람은 하늘을 원망할 수 있을지언정 끝내는 하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벼랑 끝에 내몰려서는 결국 하늘을 찾아 빌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성현께서 군왕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도리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어질지 못한 하늘은 그저 벼락을 내리쳐 세상을 태울 뿐이니 땅에 넘치는 것이 눈물과 비탄뿐이다·
그렇다면 하늘이 난폭함에 저 불쌍한 자들이 그저 자비를 구걸하며 삶을 연명해야 할 것인가·
‘뭐 결과적으로는 잘하고 있는 거 아냐?’
문득 청의 말이 떠오른다·
감히 용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사천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는 하나 그저 눈에 띄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지 저들의 삶을 좋게 하겠다는 뜻을 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들은 저를 죽이려 한 하늘에 감사하는 저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은·
순간 번쩍 천지 사방이 한 순간으로 번쩍인다·
우르릉···!
한 박자 늦게 따르는 우레 소리가 세상을 울리나 이미 자유의 얼굴에 다시 음영이 진 상태였다·
—-
광서성 남녕현 계림검파·
사실 남녕현에 계림검파라니 뭇사람이 듣는다면 헛웃음이 나올 법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광서성에는 계림이라는 도시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계수나무가 우거져 천하의 절경이자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계림은 중원 남쪽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저 먼 옛날의 원시인들은 척박한 산지와 늪지 그리고 무성한 밀림을 정복하지 못했으므로 광서성 땅에 살 만한 자리라곤 계림 하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람이 길을 내어 수레를 끌고 물길에 배를 띄워 물량이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높은 산세가 둘러싸 감춰놓은 옹강 평야에까지 닿게 되었다·
그리하여 광서성의 중심지 광서성 성도 남녕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계림검파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원래 계림에서 나온 문파였다·
어째서 계림검파가 계림을 버리고 남녕현으로 이사했는지는 남겨진 바가 없다·
하지만 굳이 조사님들께서 이유를 남겨야만 알 수 있지는 않았으니·
그야 계림보다 훨씬 크고 발달한 도시인 남녕에 자리를 잡는 것이 수입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훨씬 이득이 아니겠는가·
원래 성공하려면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라고·
그래서 성공했다·
광서성을 대표하는 정파 문파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으니 계림검파라 하면 세상 사람 모두 이름 정도는 들어본 수준으로 그 영명을 떨친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광서성이긴 하다·
광서 귀주 운남 세 땅은 사실 중원인에게 중원이 아닌 변방 새외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광서성 제일이라고 굳이 수식을 달아봐야 와 거기도 사람이 살아요? 거기 사는 오랑캐들은 어때요? 하고 웃지 못할 농담이나 날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한 성의 대표다·
계림검파는 당당한 광서 정파 무림의 태두로서 오늘도 광서성의 정의를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 달이 차고 기우는 이치로 무엇이든 흥망성쇠가 있고 화무십일홍이라 그 어떤 꽃도 십일 이상을 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영원히 빛날 것만 같던 계림검파 역시 사라지고 말 때가 오고 말 터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당장 코앞이었다·
“천화검은 아직 기별이 없습니까? 대체 언제 도착한다고 합니까? 아무리 무림맹의 일처리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팔뚝이 통나무만 한 거한이 분통을 터뜨린다·
계림검파의 장제자 도달전이다·
“곧 도착하겠지·”
그에 침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중년인은 계림검파의 문주 강수양이다·
“그 곧이 언제랍니까! 이제 모래면 춘절을 앞두고 있는데 검파의 현판이 내려가고 나서 도착하면 도로 되돌아가 무림맹에 계림검파가 망했다고 기별이라도 전해줄 것이라 기대해야 합니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 아니냐·”
“하 그리고 이제사 오면 뭘 한답니까! 뻔히 사파련 놈들의 수작임을 천하가 다들 아는데 천화검 한 명 있다고 두려워서 못 쳐들어오겠냔 말입니다! 아니면 겨우 초절정 한 명 들인다고 열세가 극복이라도 되느냔 말입니다!”
발단은 두어 달 전 요가염방의 제자와 시비가 붙으면서였다·
겨우 소금이나 찌는 정사지간의 방파 주제에 겁도 없이 시비를 거나 했더니 돌연 폭발적으로 문도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남녕 제일의 무림방파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 뒤에 사도련 사파련 새끼들의 수작이 있음은 바보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정사지간에 속한 요가염방이 사도협의 깃발을 올림과 동시에 정예한 전투부대 두 개와 더불어 갑자기 사파의 고수들이 마구 문파를 옮기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이거 큰 사단이 나겠구나 하고 몸을 사렸다·
하지만 닷새 전에 여제자 하나가 희롱당할 위기에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았다가 명분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후 통첩·
올해 안까지 현판을 내리고 장원을 비워내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무림의 방식으로 결판을 내겠다는 것이다·
“천화검이 그 전에만 도착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파련 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정파의 신룡을 상대로 칼을 뽑아들지는 못했을 것 아닙니까!”
도달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천화검이 계림검파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요가염방이 시비를 걸어대는 수작도 일단 멈추고 대기하였을 터다·
그러면 천화검에게 부탁하여 좀 더 머물러달라 하고는 맹에 무인을 요청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청은 늦었다·
이미 통첩을 날렸으니 천화검이 있다고 결판을 미뤘다가는 사도련 전체가 무림맹이 두려워서 한 발 물러났다는 뜻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파의 체면이 군자의 것이라면 사파의 체면이란 두려움을 모르는 포악한 야수의 사나움이다·
그러니 사도련에서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크흠·”
문주 강수양이 신음성을 냈다·
장제자 도달전이 감히 문주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고 문주 대신 화를 내는 상황이다·
내심 강수양이 하고 싶은 말이라서·
문주쯤 되면 화조차 마음껏 낼 수 없으니 마땅히 장제자가 그 속을 헤아려 화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문주님 그놈이 또 왔습니다!”
문밖에서 내는 보고에 문주와 장제자의 표정이 동시에 팍 썩어들었다·
꽝! 끼이익 탕·
겨우 못질하여 붙여놓은 문짝이 기울더니 바닥에 쓰러져버리고 만다·
“이거이거 문이 이리 약해서 쓰나· 하· 이걸로 사람이라도 좀 쓰쇼·”
남의 대문을 걷어차 쓰러뜨린 무뢰한이 전낭에 손을 집어넣어 동전을 한웅큼 쥐어 뿌린다·
금자도 은자도 아니고 동전이다·
그에 건드려진 벌집처럼 계림검파의 문도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온다·
그 사이에서 이대의 대사저 우나람이 낭창한 연검을 빼어들며 외친다·
“네놈! 이 무슨 짓이더냐!”
“네놈? 하 장족의 계집 따위가 감히 누구에게 놈이니 뭐니 삿대질을 해? 이것 좀 보십시오! 저 천한 오랑캐년이 감히 사람에게 칼을 겨누는 꼴을 좀 보시오!”
무뢰한이 뒤로 우르르 구경꾼들을 몰고 닥쳤으니 칼 든 오랑캐 앞에서 맞장구는 못 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광서 사람 넷 중 하나는 저들이 비웃는 오랑캐 장족 사람들이라 그에 분노를 띄우는 사람도 그만큼이기는 했지만·
“원숭이와는 할 말 없다! 네 주인을 데려오너라!”
그에 우나람이 입술을 깨문다·
그때였다·
“어찌하여 남의 장원에 들어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장제자 도달전이 제자들 사이로 쿵쿵 그 육중한 근육덩이로 땅을 울리며 등장한다·
무뢰한이 잠깐 움찔하다가 이내 겁먹은 기색을 지우고는 비열한 미소를 띄운다·
“남의 장원이라니? 내 장원에 내가 들어 살펴보겠다는데 문제가 있나? 이제 이틀이면 내 집이 될 터인데 미리 살펴보는 것이 뭐 문제라도 될까?”
“말을 삼가시오·”
도달전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지만 차마 검을 뽑을 수는 없어서 애써 점잖게 대답했다·
“분명 올해 안으로 장원을 비우라고 통첩을 보내지 않았나?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짐을 싸는 이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아서 말이지· 춘절이 겨우 이틀 남았는데 곱게 떠나면 목숨이라도 보전할 것을 굳이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겠나?”
“저 놈이!”
이대 대사저 우나람이 연검을 든다·
도달전이 팔을 들어 제지하면서도 분을 참지 못해 이를 으득 갈았다·
저 방자한 새끼는 요가염방 방주의 셋째 아들 요민이라는 놈이다·
당장이라도 저 건방진 새끼를 베어내고 싶지만 애초에 요가염방주가 노리는 바가 그러했으니 죽으라고 떠민 내다버린 자식이다·
물론 아비가 버림패로 쓰는 자식이니 그 무능함이 오죽할까·
그러니 계림검파 제자들의 눈에 핏발이 서고 손은 분노로 덜덜 떨리며 심장이 쿵쿵 뛰는 와중에도 그저 이를 악무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에 요민 제가 죽으라고 사지로 떠밀렸음조차 알지 못하는 머저리가 기세가 살아 어깨가 으쓱으쓱 하늘로 치솟는다·
그때였다·
계림검파의 제자들이 요민의 뒤로 시선을 던져 한눈을 판다·
-아씨 좀 비켜 봐요· 뭔 사람이 이렇게 무슨 잔치라도 났나? 앗 잔치? 이야 춘절 앞두고 미리 잔치인가? 딱 맞춰서 왔네·
-밀지마 밀지 말라고·
-어어 떠밀린다 무슨 힘이···!
군중들이 웅성거린다 싶더니만 사내를 좌우로 갈대밭 가르듯이 가볍게 쫘악 밀어 젖혀버리며-
“결코 다시 잔치! 편육 수육 동파육!”
잔뜩 신이 난 고운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며 나타난 여인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민족의 명절 설입니다· 음 새해 복 찾기에는 이미 한 달이나 지났지만·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넣어두시면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저도 역시 이제 귀성길에 오릅니다·
다만 그로 인해 연휴간 연재 여부는 최대한 노력을 해 보겠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부디·
살아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2월8일 : 이전화가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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