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2
청이 출도 이전에 어떤 재미있는 그림을 보았기를 어느 이름 모를 외딴 섬나라의 흥겨운 축제를 보고 여행객이 묻는 장면이 있었더란다·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건가요?
그러자 섬주민이 대답하기를·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하고·
그래도 이 여행객은 전혀 모르는 문화권의 이국적인 문화를 접했다고 하는 변명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청은 이제 중원에 대해 알 만큼 다 아는 처지다·
그러니 화악 아무리 청이라도 순식간에 피가 머리에 몰리며 새빨갛게 익어버린 낯빛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는 없다·
게다가 수육 편육 동파육이라니!
초면에서부터 아주 덜떨어진 저능아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물론 수육 편육 동파육은 맛있다·
수육 편육 동파육에 장육 아! 장육! 장육도 먹고 싶지만 이게 아니라·
청이 중원 육채(고기요리) 삼종을 당당하게 외치며 등장한 데에는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기는 했다·
본래 잔치에서는 다들 흥겹게 떠드는 법·
거기에 대고 오향육이니 장계니 목소리를 높여도 와하핫 웃음이나 크게 터지고 말 일이다·
늦게 온 것도 미안하고 잔치에 냅다 끼어들기보다는 한 번 큰 웃음 주고 당당하게 즐기자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음· 장례식이네····
“실례했습니다· 저는 고기를 찾아 강호를 헤메는 탐육미인 언연영! 언! 연! 영! 이라고 합니다· 잔치가 아니로군요! 그럼 본녀는 이만 모두 백운저수·”
청이 커흠 굵은 목소리로 아주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아주 언연영 팔기가 입에 붙은 청이다·
언연영이 청이고 청이 언연영인 경지 즉 언청이의 경지에 도달했다고도 하겠다·
청이 스윽슥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꽝! 강맹한 진격으로 파라락 외투 자락을 흩날리며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장내에 깊은 침묵이 서렸다·
방금 뭐야? 미친년인가? 아니 미친년이 맞기는 한데 진주언가의 어녀녕? 이름이 뭐라고 했지?
어녕년 아니었나? 언영년?
아니 어떻게 사람 이름이 언연영인데?
수육 편육 동파육? 맛은 있겠다만·
모두 백운저수는 또 무슨 인사란 말인가·
참고로 백운저수는 옆동네 광동성 성도 광주의 특산 요리 광주식 흰 족발 찜이다·
대뜸 고기를 찾으며 스스로 미인이라고 자처하는 년을 뭐라 불러야겠는가·
탐육광녀 언연영의 악명이 광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순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말고·
그러거나 말거나 뻥 뚫린 대문으로 들어와 창문 아니 담을 넘어 도망친 스무살 처녀 서문청이 황급히 대로변을 가로지른다·
그리하여 저기 골목 한구석 음영에 대어진 마차를 향해·
자유와 연 파가 황급히 안으로 파고드는 청을 본다·
계림검파에 친왕이 들어도 되겠냐고 미리 양해를 구하러 나간 청이었다·
(감히 친왕의 방문을 허락해야 하는 계림검파가 되고 말았지만 아무리 친왕이라도 막 들이쳐서는 안 된다고 청이 우겼다·)
“금방 돌아오는군· 이제 가면 되나?”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의복이 이게 아니다 싶어서· 신녀문 제자니까 신녀문 도복을 입어야지· 나 옷 갈아입게 잠깐 눈 좀 감고 있을래?”
그에 자유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눈을 감으라고?”
아무리 그래도 남녀가 유별-(이하 생략)
청과 여행하는 사내라면 응당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사색 거리였다·
“왜 그럼 나가서 기다릴래? 춥잖아·”
“아가씨의 말이 맞습니다· 날도 추운데 옥체를 보전하셔야지요·”
연 파가 청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면서 자유에게 연신 눈을 찡긋찡긋 자유의 눈썹이 팍 휘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대체 무어냐 엿보기라도 하라는 것인지·
“크흠 잠깐이야 별일 있겠나·”
자유가 면사를 쓰고 마차 밖으로 나가고 청이 제 입은 옷을 슥슥 불어터진 튀김옷 벗겨내듯 간단히 훌러덩 벗어던진다·
옷 갈아입는 데에는 도가 튼 청이다·
천하에서 가장 날카롭다 하는 청자검을 들고서도 슥슥 잘만 갈아입는 환복 실력이 하물여 양 손 쓰면 그야말로 전광석화 의복이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신녀문 도복으로 갈아입은 청이 다시 마차 밖으로 나섰다가·
“아· 자유· 나 면사 좀 바꿔줘·”
그리하여 면사까지 갈아 완벽하게 새사람이 된 청이 마차 대어놓은 골목 바깥으로 향한다·
한편 한창 긴장감이 끌어오르던 계림검파 장원에는 한참이나 정적이 돈다·
육식광녀 언연영의 난데없는 고기 타령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크흠 아까 하던 이야기로 넘어가서·”
요가염방의 셋째 내다 버린 자식 요민이 애써 다시 분위기를 잡아본다·
“분명 올해까지 참고 넘어간다 했으니 길한 춘절에 피를 보고 싶지 않으면-”
그에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올 춘절에는 동파육을 좀 해 보라고 할까· 아서라 동파육이 보통 손이 가는 줄 아나? 그냥 음 편육 편육이 편하기는 하지· 회과육도 괜찮지 않나? 백운저수 말을 듣고 났더니 당기네 있다가 한 잔?
“썅 닥치지 못해!?”
요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구경꾼 잔뜩 끌고 가서 아주 망신을 톡톡히 주라는 명령을 받고 왔건만 웬 미친년 하나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다 망쳐놓았다·
“달리 할 말이 없으면 돌아가시오· 딱히 용건이 있는 바는 아닌 모양이오만·”
청의 본의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계림검파 제자들도 평정을 되찾았다·
평정을 되찾다 못해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맛까지 싹 돌아버린 제자도 있는 판이다·
그래도 분노에 차서 시뻘건 얼굴로 파들파들 몸을 떠는 꼴보다는 훨씬 낫다·
“썅 재수가 없으려니· 카윽 퉷!”
분위기상 도발은 이미 조졌다·
결국 요민이 건들거리면서 침을 퉤 뱉어놓고는 몸을 돌리려는데·
다른 면사녀 하나가 구경꾼 사이를 가르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키가 훤칠한 것이 아까 그 언년년? 분명 그년 같은데-
그러나 면사녀의 말이 곱지 않다·
“남의 문파에 가래침을 뱉는 버르장머리는 누가 가르쳐 주셨나요? 신성한 도관에 침을 뱉다니 너는 너네집 제사상에다가도 찍찍 침을 뱉으실까요?”
계림검파도 일단은 도문이다·
뒤에 파가 붙은 정파 혹은 그 비슷한 문파는 대개 도문이라고 보면 된다·
“하 이건 또 뭐야? 천화풍? 천화검인지 뭔지 그년 하나 때문에 개나 소나 얼굴에 거적 뒤집어쓰고 아주 난장판이구만·”
인제 보니 아까 그 미친년이 아니라 도문의 도복을 입고 있는 여도사였다·
“흠·”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군중 뒤편에 애써 고개 디밀며 안쪽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대충 자초지종을 들었다·
요즘 저 새끼가 아주 하루가 멀다하고 계림검파에 발을 들여서는 깐족거리며 약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말씀은 소녀가 개나 소라는 말씀이시네요?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으시겠어요?”
“큭 할 수 있으면 해 보아라· 하지만 날 건드리면 네년이 무사할 줄 아느냐? 지금 우리 대 남녕요가에는 사도련의 어르신들께서 힘을 보태고 계시는- 악!”
청의 검집이 요민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월광검(십호)는 자체로 무거운 거검이고 검집을 씌우면 당연히 더 무거워진다·
“자 건드렸답니다· 이제는요?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요? 갑자기 벼락이라도 치는 걸까요?”
“너 감히! 넌 이제 죽었다!”
“와· 내가 죽었어요? 여기가 저승인가? 이승하고 다른 바를 모르겠는데· 여러분 제가 죽었다는데 여러분들은 어찌 저승에 발을 들이셨나요? 저승길 가는 길이 춥고 삭막하더디니 겨울 치고는 날씨가 포근하니 참 좋은 날이네요·”
그에 킥킥 웃음이 터진다·
“죽여버리겠다!”
눈깔이 뒤집힌 요민이 도를 뽑아 치켜들어 달려든다·
요민이 화경쯤 되면 모르겠지만 고작 일류의 실력으로 달려들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나 넘쳤다고도 하겠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요민이 직각으로 꺾여 바닥을 나뒹군다·
청의 불꽃 싸다구 아니 소수마공의 지독한 한독이 깃든 원독 싸다구다·
“크아악! 네년!”
요민이 벌떡 일어나 재차 달려든다·
짝!
이번엔 반대쪽 뺨을 얻어맞은 요민이 흰 이빨을 흩뿌리며 나가떨어진다·
요민이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고수 그것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다·
그걸 이제야 눈치챘으니 오죽하면 요가염방주가 죽으라고 내다 버린 멍청한 자식이겠는가·
“나 날 건드리면-”
“소녀가 그 천화검 서문청이랍니다·”
그에 웅성거리며 터져나오는 이름들·
천화검! 천하제일미! 경국지삼두!
청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니 왜 뭐가 점점 늘어나는데?
경국지삼두는 도대체 어떤 새끼가·
내가 목소리 딱 기억해 놨다 걸리기만 해 봐라·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한다·
다행히 그 기분을 풀 상대가 눈앞에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감히 신성한 도문에 침을 뱉으셨나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사람에게로 돌아가야 할 테니 혀에서 나온 것을 혀로 깨끗이 핥아 치워 주시겠어요?”
“그런·”
청이 적어도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세상 사람 누가 보아도 이견이 없이 인정할 만한 섬섬옥수를 치든다·
“자 여기 보세요 반짝반짝·”
그러자 황금빛 수강이 반짝반짝·
“강기로 뺨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소녀는 참으로 궁금한데·”
“히익·”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요민이 결국 끝내 바닥에 엎드려 땅을 핥는다·
날름 흙을 한 층 훔쳐낸 요민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안 가득 드는 모래알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요민의 눈앞에 척 월광검의 칼끝이 드리운다·
“시·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러자 청의 검이 스으윽 밀려 옆의 땅을 가리키는 것이다·
“앗 거기였나요? 거기가 아니라 여기 여기잖아요·”
“여기 이게 침 자국 아닌가요? 왜 애먼 땅을 핥고 계세요?”
“아· 맞다· 여긴가? 여기 뭉친 거 돌이 아니라 모래 같은데?”
“아· 여기다· 죄송해요·”
“사실 어디든 상관없으니 제가 고개를 들어도 좋다고 할 때까지 계속 땅이나 핥아 드시겠어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던데 죽는 것보다는 흙을 핥아먹어도 사는 편이 낫잖아요?”
그에 요민이 연신 땅을 핥아먹었다·
이제 요민은 죽을 때까지 땅을 기며 흙을 핥아먹은 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별호는 아마 토식지룡 흙 먹는 지렁이 수준에서 넘어갈 수 없을 터이고·
물론 요민 혼자만의 치욕이 아니니 이는 사문과 가문에 아주 제대로 망신을 끼치는 행위이기도 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이러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이라며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죽으라고 보낸 줄도 모른 덜떨어진 놈은 어쨌거나 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도 아직도 구경만 하지?
청이 계림검파의 제자들을 흘끗 살폈다·
멍하니 놀란 표정 그러나 어쩐지 느슨한 입가를 하고는 그저 바닥을 기는 요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흠·”
청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과장된 동작으로 계림검파의 제자 개중 가장 덩치 큰 사내를 바라보았다·
대놓고 눈치를 주는 동작이다·
그제야 덩치가 정신을 퍼뜩 차려 한 발 앞으로 나와 입을 여는 것이다·
“그만 충분하니 그만하시오·”
장제자 도달전이 어째 웃음기가 아주 듬뿍 담긴 태도로 만류했다·
그리고 말을 잇기를·
“나 같으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소 땅을 기고 흙을 핥아먹으며 사문을 욕보이고 가문에 불명예를 안기지는 않을 텐데· 그러니 그만합시다· 내 부탁드리겠소·”
말이야 말리는 말이지만 실상 사람들 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도문의 주인께서 이리 부탁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내 특별히 용서해 드리겠어요·”
청이 그에 장단을 맞췄다·
이러면 계림검파는 오히려 청을 만류하여 요민을 구해준 셈이 되는 것이다·
반면 요민은 트집 잡으러 왔다가 세상 추한 꼴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는 심지어 은혜까지 입어버리는 아주 기막힌 수완가가 되고 만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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