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6
춘절!
청에게는 설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명실공히 중화 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물론 중화 민족 아니더라도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날을 기념하지 않는 민족은 없기는 하다·
과거 먼 옛날에 큰 뿔을 가진 년(年)이라는 요괴가 있어서 해가 바뀌는 날이면 인간 세상에 기어올라와서는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요괴 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붉은 색 등불 폭음이라고·
그리하여 중화 사람들은 이 요괴 년을 쫒아내기 위해 설날이 되면 붉은 종이를 대문에 붙이고 등불로 마을을 채우며 대나무를 짝짝 두들기며 폭음을 냈다·
그러다 화약이 나오고 나서는?
화약은 빛을 만들고 빛은 우렁찬 포효로 요괴를 쫓는다·
이는 수박도에도 그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초하루를 앞두고 남녕에 수천개의 등불이 거리를 밝혀 대지가 밝다·
일 년 중 단 며칠만 허락된 합법적 밤놀이에 술꾼들은 벌써 거나하게 취해 떠들고 아이들은 히히덕거리며 뛰놀며 거지들은 오랜만에 배가 불러 퍼질러지고 연인들은 손에 손잡고 가정 이룬 사내들은 부인과 첩들에게 둘러싸여 거리를 노닌다·
홀로 외롭던 사내와 여인들도 이때만큼은 과감히 손을 내미니 그야말로 추운 대지 위에 풍요와 기쁨 다산이 넘치는 밤이다·
그러나 일 년에 단 하루뿐인 이 좋은 날을 즐기는 양민들이 아니꼬운 뒤틀려버린 인성의 소유자들이 있었다·
즐거워하지 말라고!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한 놈 걸리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 딱 그러한 뜻이다·
바로 요가염방의 무사들이다·
이런 시벌 누구는 정월 초하루부터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구만·
애새끼들은 뛰놀고 저 애새끼들 아주 지옥에서 다 불타야 해 저기 손잡고 곧 붙어먹을 연놈도 다 불타야 해 저기 웃고 있는 새끼도 저기 술 처먹는 새끼도 다 불태워 버려야 하는데·
물론 염방의 무사들이 본래 인성에 문제가 좀 있기는 한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줄만 하다·
이제 곧 벌어질 전투에서 선봉 다른 말로는 칼받이에 나설 신세였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이 좋은 정단(춘절의 옛 이름)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서 아침 해를 보고야 말겠다 하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급 무사들의 심정이다·
사도련 소속의 세 개 전투단이 염방 무사들의 뒤를 따르니 진심인지 허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피를 볼 일이 생겼으니 올해는 대길이 아니겠냐고 시시덕거리는 와중이다·
바로 요가염방의 진격이었다·
아주 사파놈들 다운 만행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기한을 올해까지로 두었다고 해서 해가 넘어가자마자 공격을 가하는 놈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병법이라는 사파련 휘하 전투부대 백웅단 단주 백련철권 조광앙의 강력한 의견이 있었다·
반대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광앙이 한 마디로 반대 의견을 전부 침몰시켰다·
‘설마 두려운가?’
청의 고향식으로는 ‘야 쫄?’이라고 하는 사나이의 최종오의이자 크고 작은 부상을 포함한 참사를 불러일으키는 원흉이었다·
그리하여 요가염방주 요환절과 사파련의 고수들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죽상을 한 염방의 일반 문도들이 뒤를 따르며 그 뒤로 사파련의 전투단 파견대가 도망치는 놈이 없나 눈을 부라리는 현태였다·
그리하여 결전전야 아니 결전당야!
요환절이 남녕요가로 발돋움하여 가문의 새 터전이 될 계림검파의 장원을 향한다·
계림검파 놈들 이리 빠르게 휘몰아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식이 전해졌다면 부랴부랴 대문을 닫고 제자를 모으겠지만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요가염방의 (염방주의 주장상)정예한 무사들과 사도련의 원군 앞에 손쓸 틈도 없이 쓸려나가리라 하고·
“음?”
그런데 웬걸·
전투 준비는커녕 장원의 거대한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온통 등불을 달아 화려하게 밝혀놓았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부로는 이미 잔칫상 가득히 차려놓고는 모두 밝은 표정으로 깔깔거리는 와중이 아닌가·
요환철과 조광앙 그리고 사사의 보열 등 고수들이 저들끼리 바라보여 눈빛을 교환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이겠소?’
‘나도 몰라·’
심지어 활짝 열린 대문에 번조차 세우지 않았으니 잔칫집에 문지기를 치운다고 함은 곧 누구라도 꺼리지 말고 들어오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히며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곧 쫓겨날 놈들이라고 침울해 있거나 혹은 이미 야반도주 모습을 감췄거나 아니면 사생결단이라도 내자고 기세가 등등하기라도 해야지 이건 웬 잔치를 벌여놓고·
“과연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 이건가! 계림검파 놈들이 계략을 쓴 모양이군!”
자칭 병법의 대가인 조광앙이 저 혼자 납득하고 감탄을 하는 것이다·
“길일이라 웃고 즐기며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면 차마 공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크흐 순진하기도 하지 사도의 길은 곧 패도의 길 인정 따위는 사치일 뿐 우리는 수라의 길을 걷는다!”
백웅단 단주 조광앙이 멋대로 소리쳤다·
흑웅단 단주 혜주비호 사흔과 백호단 단주 복주제일검 문정역은 동의한 적도 없는 대뜸 수라의 길이었다·
제멋대로 수라의 길을 걸어가는 조광앙을 따라 다급히 염방주 부방주 두 단주와 세 부단주 외 한가닥 하는 놈들이 먼저 대문 안으로 들이친다·
그러자 넓은 장원 마당에 정면을 보고 가장 크게 차려놓은 상석에서 계림검파 문주 강수양이 놀란 표정을 한다·
“아니 소금 파는 요가 녀석이 아닌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는가?”
대뜸 하대에다 소금 파는 요가놈이라니·
일개 천한 소금장수 주제에 웬일이냐고·
요환철의 속을 첫 마디부터 제대로 뒤집어 놓는 강수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파의 방식이다·
쌍욕은 천박하니 돌려 먹이는 방법을 늘 강구한다고 할까·
이러한 점에서 청은 사파인에 가까운 아니 사파인이 보아도 악랄하기 짝이 없는 독설마녀에 가깝지만·
“아 자네도 문안 인사 올리러 왔구만·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술 한 잔은 올려야지· 암· 마땅히 그래야 하고 말고·”
“누가! 누가 인사를 한단 말이냐!”
“응? 인사를 올리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온 무사들을 다 이끌고 왔기에 마땅히 인사차 들른 줄 알았는데·”
“같잖은 수작은 집어치-”
“그만!”
돌연 조광앙이 염방주의 말을 끊었다·
염방주 요환철이 울컥했다·
아무리 사도련의 고수라지만 그래도 한 방파를 이끄는 수장인데 이렇게 대뜸 말을 끊으면 도대체 체면이 뭐가 된단 말인가·
염방주의 빈정이 단단히 상했지만 애초에 그런 속을 헤아릴 인물이면 말을 끊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핫 문주가 기책으로 화를 면하려 드는 모양이시다만 병서를 더 읽으셔야겠군· 모름지기 기책이란 정공법 앞에 속수무책인 법이며 손자께서 상무를 강조하신 바가 바로 최고의 방어는 대비에 있다 바로 늘 전투가 준비된 전력이라먈로 진정한 방어인 법이라오·”
그에 강수양이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 하는 눈빛으로 뚱하니 조광앙을 바라본다·
“하하 문파의 운명을 건 기책이 간파당하니 당황하셨소이까? 하지만 너무 낙심할 것은 없소이다· 신묘한 병법으로 널리 이름이 퍼진 이 백련철권 조광앙에게 밀렸다고 하여 자존심이 상할 필요는 없지·”
순간 청이 눈을 빛냈다· 하나 둘·
“백련철권!”
청이 대뜸 혼자 소리를 빽 질렀다·
게다가 성량이 보통 성량이여야지·
좌중의 의아한 눈빛이 모여들자 청이 진땀을 뺐다·
아씨 이거 별호 복창해 주는 것도 뭔가 현지인들끼리 공유하는 무슨 규칙이 있나 보다· 지금은 아니었나 봐·
“어 음··· 그냥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그 하시던 대화 마저 나누세요· 아 이거 이게 먹고 싶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 무슨 탕 그래 음 탕 맛있어 보이네·”
“형님? 그건 탕이 아니라 훠궈에 걷어놓은 기름-”
“쉿· 눈치 좀 챙겨·”
청이 어색한 소리와 함께 나중에 요리에 쓰기 위해 걷어놓은 기름을 한 숟갈 떠먹고 ‘음 역시 이게 제일 맛있어 기름이라 그런지 참 기름지다’ 따위의 개소리를 하며 억지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하여 조광앙이 생각하기를·
좀 덜떨어진 년인가? 하여튼 하고·
“흠 흠· 어쨌거나 문주· 기책은 기책에 불과한 법· 장부가 칼을 뽑았으면 되돌릴 수 없으니 적습 앞에 잔치를 즐기다가 당했다는 멍청한 전과를 남기지 말고 지금이라도-”
조광앙이 한참 그렇게 으스대로 있을 때였다·
갑자기 심후한 내력이 담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좌중을 뒤흔든다·
“왕야께서 왕림하신다! 덕현친왕께서 자리에 드시니 모두 아비를 맞이하는 극진한 예로 인사를 올리거라!”
그에 척 미리 말을 맞춘 계림검파의 제자들이 일시에 즐기던 연회를 뚝 그치고는 무릎 꿇은 자세로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
계림검파의 제자들은 친왕이 왕림하실 적에 이미 절을 올렸으니 산 사람에게는 한 자리에서 두 번 절하기 금지 법칙에 따라 그저 무릎을 꿇고 공손하면 족하다·
그에 염방주 외 고수들이 크게 당황했다·
왕야? 친왕? 갑자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 하고·
그때 자유가 본당에서 나와 강수양의 뒷자리에 앉는다·
알고보니 상석 뒤에 한 단 높은 자리가 있어서 최고 상석을 따로 마련해둔 것이다·
그리고 식탁에 팔꿈치를 딱 붙여 턱을 괴고는 말하기를-
“흠? 무엇이냐· 저것들은 무엇 하는 작자들인데 감히 천자의 핏줄을 보고도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있느냐?”
“전하· 저기 앞에 선 녀석은 소금을 파는 요가라 하는 이인데 전하께서 왕림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문안차 온 모양입니다·”
“오 그래? 고가 언뜻 듣기로는 누가 인사를 하느냐고 성을 낸 것도 같았는데?”
요환철이 그제야 사색이 되었다·
‘미친 놈들! 장원을 비워달랬더니 친왕을 불러들여!? 관무불가침도 모르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새끼들!’
아직 자정을 알리는 종도 안 쳤다·
묵은해가 지나가지도 않은 때에 쳐들어온 이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치사는 치사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평소 가장 흠모하는 친왕 전하께 인사를 올리고자 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요환철이 절을 하려다 멈칫했다·
시큰둥하게 앉은 정체 모를 친왕 앞으로 떡하니 자리를 잡은 계림검파 문주 강수양 때문이었다·
이대로 절을 하면 마치 강수양에게도 절을 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음 문주· 무림인의 인사란 본래 이리도 불손한가? 아무리 황족이라 해도 무릎을 굽힐 수는 없다?”
“아닙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요환철이 거의 몸을 던지고서 양 팔을 번쩍 들어 천세를 외친다·
자유의 시선이 아직도 어쩔 줄을 모르는 사파련의 파견 고수에게 향한다·
“강호랑중인 보 모가 전하께 문안을 드립니다! 천수무강하소서!”
“복주의 화 모가 문안을 드립니다!”
“혜주의 사 모가 인사를 올립니다!”
“형양의 조광양입니다! 강녕하십시오!”
보열을 선두로 사파련의 고수들도 다급히 몸을 날렸다·
장원 접수고 나발이고 친왕께서 거하는 장소가 바로 중원의 성역인 것이다·
“오냐· 아직 새해는 좀 남았다만· 너희 역시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마· 흐음 근데 어찌 바깥에 인파가 많아 보이는데·”
그에 강수양이 넙죽 대답을 드린다·
“전부 전하께 인사를 올리고자 좋은 밤에 몰려든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참으로 기특한 자들이로다· 허나 하나하나 문안을 받으려면 모처럼의 초하루 좋은 밤이 다 지날 것 같으니· 그래 기분이다· 고가 직접 행차하여 문안을 받아줘야 하겠구나·”
그리하여 자애로운 덕현친왕께서 친히 문밖으로 행차하시매 몰려든 문안객들을 마중하셨으니·
“덕현친왕 천세! 천세!”
“덕현친왕 천세! 천세!”
그에 감동을 받은 강호의 무부들이 일제히 무릎과 팔꿈치를 이마를 땅에 붙이고 존귀한 왕호를 세상이 떠나가라 외쳐댄 것이다·
온 남녕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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