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
청이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은 청만 알았다·
그래서 다들 그냥 하던 일 했다·
태평검문은 보호 제공자로서의 정당한 댓가를 재차 요구했다·
장 사장은 억울함을 항변해 본다·
하지만 태평검문의 무인들 역시 사실은 조직의 말단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저네들이 판단해 보호비를 받고 안 받고 할 권한이 없었다·
결국 장 사장이 억지로 보호비를 내놓았다·
이미 예전에 결정되었던 미래였기에 별로 특이한 것 없는 일이었다·
특이점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태평검문의 삼 조장 남강정은 사실 주점에 들어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여인이 있었다·
과거 고금제일미인 서씨가 얼굴을 찌푸린 이후로 중원 인민의 절대 다수는 찡그린 얼굴이라는 기이한 성적 기호를 가졌다·
남강정은 평범한 무인이었으므로 성적 기호 역시 남들과 같았다·
어딘가 불편한 듯 세상에 지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여인의 모습이란!
게다가 그렇게까지 미인은 아니라서 더 마음이 갔다·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엄한 사문의 일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달려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했을 것이다·
그랬던 참에 제게로 다가오는 여인을 보았다·
심지어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남강정의 머리 속으로 꿈결 같은 상상들이 펼쳐졌다·
남강정은 청의 얼굴보다 손을 보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술병의 모가지를 꼬나쥐고 다가오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이가 없다는 술집의 오래된 경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선자불래 내자불선·
선한 자는 이렇게 오지 않고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청은 절대로 선한 상태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남강정의 행복한 미래 계획은 머리와 술병의 물리적 충돌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었다·
싸구려 자기병과 두개골의 대결이었다·
그 결과는 누구나 쉽게 예측하는 바로 그 결과였다·
파작·
산산조각난 자기 조각들이 화주의 향과 뒤섞여 세상을 날았다·
독한 술을 흠뻑 뒤집어쓴 남강정이 비틀거렸다·
취해서는 아니고 정수리를 제대로 맞아서·
그러나 이류의 말미에 든 무인이 겨우 술병에 쓰러지진 않았다·
이류의 말미라 표현하는 이유는 고작 이류 나부랭이를 초중후로 나눌 만큼 세상 사람들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강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행패· 난동· 그리고 또 음 진상짓·”
청이 자신의 행동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본래 이쯤에서 검이 뽑혀야 했으나 청의 외모가 남강정에게 한 번의 인내를 부여했다·
“소저· 지금 소저는 대태평검문의 제자에게 몹시 무례를 범하는 중이라오· 혹여 너무 과음을 하신 것이 아닌지···”
“뭐지?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태평인지 뭔지한테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그냥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데·”
남강정은 그 둘이 뭐가 다른지 고민했다·
청이 순순히 답을 알려주었다·
“보호비 받았잖아· 보호비라는 게 술집에서 행패 난동 진상짓 하는 사람한테 가게를 지켜주고 받는 비용 아닌가?”
“···?”
청이 길쭉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진상·”
청이 손가락을 접으며 앞으로 툭 밀었다· 남강정의 턱이 살짝 돌아간다·
이어 청의 반대편 주먹이 반원을 그렸다·
남강정의 돌아간 턱이 교정되었다·
아무래도 힘이 좀 더 들어간 일격이라 반대편으로 크게 돌아버리고 말았지만·
턱을 맞은 남강정이 비틀거리다 풀썩 쓰러지고 청이 깍지를 끼며 피고 털었다·
“자· 이젠 난동 추가· 구경만 할 거야?”
그 말이 신호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끝내 칼을 뽑지는 않았는데 딱히 정파라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여류 무인을 만만히 보는 시류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수금이나 다니는 문도들이니 그 무위가 특출날 리가 없다·
청이 치고 쳐내고 때리고 휘둘렀다·
팔목을 잡아 밀면 둘이 와장창 쓰러진다·
우로 달려드는 놈의 정강이를 발끝으로 콕 찍자 아주 양손으로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보통 실력이 아니다! 모두 발검!”
잠깐의 뇌진탕을 극복하고 정신을 차린 남강정이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래도 역시 귀여운 수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은 아예 내공을 배제하고 싸우는 중이었다·
내공을 쓰면 때리는 게 아니라 터뜨리고 말 테니까·
그런데 청은 원래 내공이 없어도 천하장사다·
익힌 무공의 성취와 함께 증가하는 능력치들이 하나둘 모여 이제는 순수한 힘만으로도 중원에 손꼽히는 역사였다·
기본 능력치가 워낙에 뛰어나기도 했다·
청이 아무런 지식도 없이 현대인의 물렁물렁한 마음을 가지고도 칼부림이 평범한 일상인 중원의 초반을 버틸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청이 칼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아픈 데를 골라서 때리던 와중에 문득 앞으로 쓰러지는 중인 사내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 나도? 핵꿀밤 할 수 있나?
순간 스치는 기나긴 모멸의 순간들·
차마 스승님에게 돌려드릴 수는 없던 은혜·
그 마음으로 제자가 베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청이 중지가 도드라진 주먹을 말아쥐는 때였다·
“그만! 그만!”
어지간히 얻어맞은 남강정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미 눈두덩이가 시퍼렇고 퉁퉁 부은 채였다·
“손속에 사정을 두어 감사하오· 부족함을 알았으니 이만 물러감을 허락해 주시오·”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 아니라 그냥 팼지만·
그래도 내공 두르는 흉내라도 내는 놈이라 뼈가 상하지는 않아 멀쩡히 선 꼴이었다·
“뭐야· 여기는 너희 태평검문 오우 이걸 외우네· 쉬워서 좋다· 어쨌든 너네가 보호하는 업체 아니냐? 이대로 물러난다고?”
“이미 말했듯이·”
“됐고·”
청이 남강정의 말을 끊었다·
“목숨은 살려줬으니 대신 검은 여기 두고 가· 나도 얻는 게 좀 있어야지·”
그 말에 태평검문의 무사들이 서로 눈치만 보여 어물거렸다·
그래도 조장이라고 남강정이 나섰다·
“소저 검은 모름지기 검수의 생명과 같은·”
“됐고· 나도 검객이거든? 우리 생명 걸고 칼싸움 한판 진하게 벌여 볼까?”
청이 턱짓으로 앉아있던 주탁을 가리켰다·
얌전히 기대어 있는 월광검(8호)를 본 무인들이 결국 검을 놓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빠져나가는 태평검문도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나름 재미있었· 지· 만· 이런· 썅!
놀이가 끝나자마자 다시 무지근하게 덮쳐오는 통증 및 온갖 잡스럽게 몸을 쑤시는 저림 시림 엉킴 뭉침에 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심지어 조금 새어 축축하고 찝찝했다·
세상 여자들이 다 이렇게 살았나? 세상에!
진짜 초절정 못 찍어서 서럽다 서러워·
청이 술을 찾다가 아차 싶었다·
한때는 병이었던 것과 함께 흐트러졌다·
내 술····
“여기 점소이···”
“저기 손님·”
점소이가 아니라 사장이 직접 나섰다·
손에 들린 둥근 병은 포장에서부터 고급진 태가 났다·
청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딱히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게 아니라· 이거 받으시고· 그·”
금 사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못하는 말이 뻔했다·
이만 나가달라는 소리겠지·
“이봐요 사장님· 내가 지금 나가면 사장님은 무사하겠어요? 분명히 저 새끼들 엄마 데리고 온다· 그때 내가 없으면 대신 사장님이라도 족치겠지· 안 그래요? 장사 하루 이틀 하시나·”
청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무림 방파에 소속된 새끼들은 꼭 도망가서 엄마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를 불러오곤 했다·
청이 하류 인생일 때는 크게 데이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나· 고수· 엄청난 고수·
근데 아주 상태가 안 좋은 고수·
“여기서 내가 뒷수습까지 다 해줄 테니까 술이나 내놔요· 아오 짜증나· 씨이·”
청의 짜증이 넘쳐 새어나왔다·
금 사장이 질린 얼굴로 술동이를 놓고 빠르게 주방 혹은 그 비슷한 장소로 사라졌다·
청이 동이의 기름먹인 천을 벗겨냈다·
열자마자 독한 주향이 훅 끼쳤다·
어린애 머리만 한 술 동이지만 고수쯤 되면 용량이 콩알 다섯 개 쯤 되는 작은 잔에도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셔보니 이게 술인지 주정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몇 잔 안주도 없이 연달아서 들이키고 있으니 웬 늙은 거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보시게 어린 선자·”
“뭐에요· 안 사요· 저리 가요·”
청이 퉁명스럽게 팔을 내저었다·
“허허 어린 선자가 매정하기도 하지·”
“할아버지· 제가 거지들이랑 좀 안 좋은 추억이 많거든요? 제가 매정해도 노인 공경은 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시죠?”
“허허···”
“아니면 확 노인 공격을 하는 수가 있어요·”
청은 원래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렀다·
여기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란 연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주름을 감출 수 없는 나이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말했다·
“커흠 커흠·”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서 묘하게 제 허리춤을 더듬었다·
꼭 여기 좀 봐달라고 하는 모양새였다·
청이 흘끗 보니 복장은 아주 상거지꼴인데 허리에 건 밧줄만 빳빳한 새것이었다·
청이 이런 거지들을 안다·
바로 아주 쎈 거지들이었다·
이 고대 중국에는 심지어 거지들조차 무공을 배운 놈들이 있었는데 그런 놈들이 허리에 저런 밧줄을 묶고 다녔다·
청의 지식이 으레 그렇듯이 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청의 지식이 으레 그렇듯이 짧았다·
하지만 이제 청은 고수였다·
거지가 강해 봐야 거지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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