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1
계림검파의 장숙수가 항의했다·
“요리 가짓수를 줄이던가 검사를 덜 하던가· 둘 중 하나라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일일이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강 숙수 나라고 하고 싶어서 이러겠습니까?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습니까·”
그에 제자 숙수들 한 구석에서 산더미같이 쌓인 양파를 까고 있던 새끼 숙수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암· 그럼 까라면 까야지· 당연하지·
양파 일 년 마늘 일 년은 까야 국자라도 한 번 만져볼 수 있는 것이 지엄한 주방의 법도다·
물론 이 년 지났다고 양파와 마늘에서 해방되지는 않으니 까도까도 양파와 마늘은 영원한 새끼 숙수들의 친구다·
기껏 만든 요리에 하나하나 막대를 꽂아 넣는 꼴에 장숙수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자식같이 귀하게 빚어낸 내 요리 맛있게 드시기나 할 것이지 무슨 독이 위험하다며 계속 이 지랄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독 검사를 하는 계림 제자 역시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혹시 모르니 요리를 옮기는 일이 하인들에게서 계림 제자의 임무로 바뀌었으니까·
이는 전부 계림검파에 날아든 의문의 투서 한 장 때문이었다·
「간교한 독사가 독니를 품고 파고들었으니 부디 보중하시오·」
그에 문주 강수양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음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귀한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 내 너무 안일하여 소홀히 하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비상·
하독 경계 작전이 무제한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서가 벌써 열흘 전이다·
독사는 커녕 수상한 이 하나 없다·
그야 지금 계림의 하인들은 사파 놈들이 쳐들어오고 검파가 망한다고 하는 와중에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의리쟁이들 하인이라도 계림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그러한 진국들만 남았으니까·
강수양이 생각했다·
그런데 독사는 대체 언제 오는데?
과연 독사가 실존하기는 하는가?
그 독사 검파의 밥만 축내고 있다·
그것도 식비가 세 배나 드는 식충이 중의 식충이 아주 왕 식충이 대왕 기생충이다·
물론 청의 지인들이 들으면 식비 겨우 세 배 단 세배라니 저걸 너무 얕잡아보는 처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양이 많아지면 가격은 내려가는 법이기에·
그래서 지금 그 대왕 기생충은 광적인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중이다·
“아이고오 아가씨· 기체후 일향 만강하셨습니까! 소식 들었습니다·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큰일 치를 뻔하지 않았습니까· 왕야께서 돌아가시면 이 견 노 역시 기꺼이 순장하여 함께 묻혔을 것이니 왕야의 은인이시자 이 늙은이의 은인 이 은혜는 견 노가 평생 갚아서 아니 늙은이 살 평생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이 늙은이 몫까지 여기 젊은 년이 평생 갚아드릴 겁니다·”
“제가 말입니까···?”
졸지에 빚쟁이가 된 창여인이 왜 내가 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헤헤 소인을 기억하십니까요? 소인 창난금호입니다· 소인이 금수에 불과한 사기꾼이라 하나 큰 은혜를 입지 않았습니까· 하나 이 몸은 왕야를 모셔야 하니 제 은혜도 창여인이 다 갚아드릴 겁니다요·”
“아니 왜 내가 또···?”
그리고 그 옆에 건들건들한 사내가 하나·
“오 그거 괜찮네요· 창녀인 내 몫도 좀 갚아 드리아악! 아파 아프다고! 무슨 계집 주제에 힘만 무식하게 쎄가지고는!”
“넌 까불지 마·”
“크흠 간밤에 꿈을 꾸기를 한아름은 되는 홍옥이 상서로운 광채를 발하다 주작이 되어 훌쩍 날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이 새끼는 진짜 주작 말고는 다른 신수를 모르나 그리고 어젯밤에 번이라 안 잤잖아· 눈 뜨고 잤-”
“저기 약소한 것입니다만···”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코 아래까지 길러 하관뿐인 사내가 슬그머니 단검 띠를 내민다·
청이 좋아하는 선물 이 순위다·
참고로 일 순위는 맛있는 거·
“오 비도· 고마워요· 잘 쓸게요·”
“길다가 주운 것이니 귀인께서 감사하지 않으셔도 되는···”
“아니 칼날에 흠집 하나 없는 새 건데 이런 게 어디에 떨어져 있어요? 나도 좀 알아야겠다· 가서 줍 음? 뭐지? 기시감?”
“각다귀 새끼 또 뇌물 바친다!”
“저 치사한 새끼는 또 언제 혼자만 준비했냐! 아주 뇌물을 품고 다니는구만!”
“크흠 어쩔 수 없지· 마마 미처 경황이 없어 마땅히 드릴 공물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만 혹시 서화를 즐기신다면-”
“잠깐 마마요?”
그에 헙 덕현왕부의 식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말실수를 한 문사 복장 사내에게 험악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그 연 파가· 강 모가 전하를 뵙습니다·”
문사 복장 사내가 에라 모르겠다 대가리를 박자 나머지 식객들 역시 우르르 무너져 절을 올린다·
“공주 할 생각 없으니까 그만 일어나요· 연 파도 은근히 입이 싸네· 안 그럴 것 같았는데·”
“본래 연 파가 왕야 한 분께 세상 가장 끔찍해서 그렇습니다요· 너무 노여워하시지 마시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일월 스무날 정확히는 열아흐레 심야에 도착한 덕현왕부의 식객들이었다·
여전히 떠들썩하니 상전 모시듯이 깍듯한 와중 저번에는 열댓 명이 좀 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열하나 인원이 많이 약소해졌다·
“이것들이 그리도 할 일이 없는 것이더냐! 손이 비면 찾아서 일할 것이지 어찌 아침부터 여인의 방에 함부로 들이쳐 이리 호들갑을 떤단 말이더냐! 썩 꺼지지 못해! 아 창여인은 거기 남거라·”
이크 왕부의 식객들이 일제히 어깨를 움트렸다·
연 파가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인지 왕부의 식객들이 목례를 올리고는 냉큼 호다닥 달아나버린다·
“그 공주 할 생각 없다는데 막 그렇게 알리고 다니시면 어떡해요?”
“혹여 천한 것들이 마마께 결례를 범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그러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경박하고 못난 것들이나 세상에서 입으로 나온 화근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하게 깨달은 놈들이니 귀한 분께서는 염려치 마시옵소서·”
“음·”
변명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공손함? 그 비슷한 저를 위하는 감정의 종류다·
청이 곧바로 누그러졌다·
약점이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 천한 늙은이가 마마께서 부려 먹을 계집종 하나 없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사온데 여기 창여인이 비록 계집다운 면모는 없는 계집이라도 계집은 계집이니 그저 소나 말과 같이 편리한 짐승처럼 다뤄 쓰십시오· 창여인도 견마지로를 다 할 것입니다·”
“앗 제가 말씀이십니까···?”
창여인이 화들짝 놀라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청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됐어요· 내가 뭐라고 시중씩이나· 하인이니 그런 거 오히려 내가 불편한걸요·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신교의 인원들이 들었다면 그 추종자들마저 도대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따져 물을 개소리였다·
시중받기의 경지로 따지자면 천하제일에 근접한 인간이 하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청은 당당하다·
할아범이나 의매의 경우는 청이 시중을 ‘받아준’ 것이다·
저네들이 하고 싶어서 제발 시중을 들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려서 어쩔 수 없이 그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으니까·
암·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부려 먹고 그래·
그런데 의매 못 본 지가 한참이네····
폐관수련 한다고 했던가? 경지는 좀 올랐으려나? 초절정이라는 위대한 경지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내 의매라면 일천 년 폐관을 해도 무리일 텐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만나면 한 수 깨달음이라도 내려줘야겠다고·
—-
오늘의 일정은 청수산 등산이다·
어제 온천에서 말하기를 오늘은 귀한 분들이 전세를 내서 못 온다나 어쨌다나·
감히 만인을 위한(아니다) 온천을 독차지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하고 분개했지만 그 귀한 분들이 바로 군님 친왕의 아들들이라니 어째·
물론 일개 군 따위 친왕과 동렬인 황실 공주 전하보다 한 단계 반절이나 낮은 천한 것들이다·
한 단계 반절인 이유는 한 단계만 낮추면 대군 친왕의 장자는 되어야 반절 떼고 한 층 아래로 비벼볼 수 있는 아니 그래도 황실 직계가 지엄하니 못 비비기는 하지만·
하지만 굳이 매일 즐겨놓고는 하루를 더 쓰겠다고 ‘내가 나라의 공주다’ 하며 갑질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우나람이 그리 노래를 부르던 청수산에 가 보기로·
그런데·
정작 청수산에 오른 감상은 미묘하다·
“뭐야 산이라면서·”
“높지 않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정도면 딱 적당히 몸을 풀기 좋지 않습니까!?”
“청수산에서 산을 떼야하는 거 아닌가·”
이게 무슨 산이야 그냥 시내지·
사실 실제로도 산이라기보다는 그냥 남녕에서 지대가 높은 동네 취급이기는 했다·
그래도 가장 높은 봉우리는 나무가 조금 남았는데 올라 보니 어쩐지 너무나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넓게 깔린 등산로 좌우로 온갖 좌판이며 다점 요리점 반점 공예품 상점 따위가 주르륵 이어졌다·
모주며 두부 따위를 크게 써 붙인 호객용 방들을 보며 청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요 위에 절이라도 있어?”
“맞습니다! 본래 산 위에는 절이나 도관이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정상에 절이 있는 것이 정상! 오옷! 의미심장한 문구가 아닙니까!”
“됐다· 다 봤다· 돌아가자·”
좌우로 목조로 짠 술집 찻집 백숙집이 쭉 깔리고 그 위에 절이라니·
뭐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오고 말았나? 여기는 중원인가 대한민국인가·
“앗! 오르지 않으시는 겁니까!”
“안 봐도 보이는 것 같아서· 절에서 막 기왓장 팔고 그러는 게 전부일 거 아냐· 어차피 차 마시고 밥 먹고 들어갈 거면 굳이 이런 데 갈 필요 없지 않을까? 왠지 엄청 바가지 씌울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는 합니다···”
본래 산 위와 아래의 가격이 다른 법이긴 해도 이렇게 길 잘 뚫려서 높지 않은 산에 번듯한 가게까지 짜 놓고는 비싼 값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괘씸하다·
“그러지 말고· 어디 숨겨진 맛집 같은 데 몰라? 딱 지역 주민만 아는 밥집 같은데 있잖아·”
“음! 그것이라면! 생각해보니 형님은 아무거나 막 드시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혹시 날로 드시는 것도 좋아하십니까!?”
“그야 그렇긴 한데 어째 좀· 말이 이상하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렇다면! 대백충은 어떠십니까! 요족의 특산물로 그렇게 맛이 좋다고 합니닷!”
“대백충? 벌레 아니지?”
“벌레 맞습니다!”
그에 청의 표정이 팍 찌그러졌다·
“분명 그 전에 날로 먹는 거 좋아하지 않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만한 애벌레입니다! 부드럽고 고소한 소젖 맛에 사과향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우나람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인다·
새끼손가락도 아니고 검지손가락이다·
“나람이 너 그런 거 먹니···?”
“저는 못 먹습니다! 징그럽지 않습니까! 하지만 형님께서 드시겠다면! 이 우나람! 용기를 내어! 곁에서 응원해 드겠습니다!!”
결국 자기는 안 먹겠다는 소리다·
뭐지 보통은 같이 먹어 보겠다던가 그런 소리를 하지 않나?
얼마나 먹기 싫으면 용기를 내서 하는 게 응원인데?
“됐고· 그냥 다점에 가서 과자를 조지자· 어디 잘하는 집 알아?”
“죄송합니다! 과자에는 조예가 없어서! 과자를 찾아다니다니! 너무 계집스럽지 않습니까!”
“아니 그럼 나람이는 뭔데·”
“저는 무인입니다앗!!”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만 형님이고 존경이지 어째 점점 좀 뭔가 그렇고 그런 기분인데·
물론 우나람은 계속 우나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이전 하루에 하는 일이라곤 밥 먹고 차 마시고 과자 먹고 온천에 몸 담그다 돌아와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과자 먹고 사이사이 시간만 나면 발라당 누워서 뒹구는 한심한 식충이가 하나 있지 않던가·
여전히 존경을 표하는 우나람이 오히려 존경받아야 할 위인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현지인 추천의 특별식에서 과자 탐구로 방향을 돌린 청이 사람 많고 북적이는 다점을 찾아 남녕 번화가를 돌아다닐 때였다·
우지끈 와장창!
뭔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꺄아악 하는 비명이 울리고 날선 욕설이 그 뒤를 따른다·
어? 이건? 소란의 예감?
나쁜 놈 나쁜 놈 있겠지?
갑자기 과자도 밥도 차도 말고 다른 것이 비린 향기와 뜨거운 온기 팔딱팔딱한 손맛이 확 당기는 것이 아닌가·
아 생각해보니 오래 참기는 했구나·
면사 안쪽으로 해맑은 미소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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