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5
중국 사람들의 줄세우기 놀이는 영혼에 새겨진 본능과 같은 것이다·
위로 줄을 세워 오대세가가 있듯이 아래로 줄을 세워서 천하고 더러운 새끼들 역시 순위를 매겼다·
그리하여 가장 천한 다섯 직업이 모여서 생각하기를 비천한 놈들이라고 매양 얻어맞고 죽어나가도 아무도 신경써 주는 이가 없다·
그러니 우리 천한 놈들끼리 모여서 서로 도우며 영차영차 좀 살아남아 보자·
천한 놈들이라도 살기는 살아야겠다고·
하오문(下五門)의 탄생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하오문이 뭐 거창한 세력까지는 아니다·
그냥 천해서 서러운 놈들끼리 뭉쳐서 좀 덜 서러워 보자는 하류층 협동조합 같은 것이라서·
막 천한 놈들끼리 모여서 우리 천한 놈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하고 붉은 깃발을 흔든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왜냐면 그러면 다 죽으니까·
심지어 하오문에는 고수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고수는 더 이상 천하지 않기에 저 밝은 세상으로 뛰쳐나가 대접받으며 잘 살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고수라고 해봐야 사고 쳐서 태양 아래 맨얼굴 까지 못하는 놈들뿐·
물론 하오문 운영 측에도 매파 우리가 신분이 없고 멋이 없고 인기가 없고 명예가 없을 뿐이지 돈이 없냐고·
그러니 적극적으로 큰 사업을 펼쳐보자는 세력이 있기는 했다·
다만 최근에 흑점이 망해버리면서 그런 하오문 매파도 힘을 잃고 말았다·
흑점 놈들 꼴 좀 봐라·
고작 암상인들 주제에 저네들이 뭐라도 된 줄 알고 흑점의 율법 이지랄하다 어떻게 되었냐
하류 인생 주제에 금은 좀 있다고 거들먹거려도 개박살이 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흔들면 흔드는 대로 흔들리자·
갈대는 쓰러지더라도 죽지 않는 법이니·
그런 의미에서 하오문 역시 사파보다는 정파 무인들을 좋아한다·
정파 무인들은 뭐라도 시키면 금은이라도 지불을 하지만 사파 새끼들은 하오문을 저네들 따까리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오문이 하는 일들이 천하고 더럽고 또 사악한 편이다 보니 사도로 취급받아 준 사파 정도로 취급이 된다·
하지만 사도련에서는 천한 하류 잡배들과 어깨를 견주고 싶지 않으니 하오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따까리다·
사파 영역에 기생하는 천한 기생충으로 여기니까·
누구보다 얕잡아보는 주제에 저네들 필요할 때만 일을 시키고는 보수를 요구하면?
“나리· 천화검에 대해 나리께서 솔깃하실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만 수고한 천한 것들 목이라도 축이게 은자 몇 개만 베풀어 주신다면-”
짝!
지게꾼 왕씨의 뺨이 홱 돌아갔다·
천한 놈이 감히 누구에게서 금은을 뜯어내려고?
문정역이 으르렁거렸다·
“다시 말해 봐· 뭐?”
“아니 아닙니다요· 소인이 정신이 나갔던 모양입니다요· 헤헤 대협께서 쓰시니 영광이지 이 천한 놈이 감히 보수라니요·”
요가염방의 쓰레기를 푸는 지게꾼 왕씨가 비굴한 웃음을 머금는다·
사실 사도련의 지침상 하오문에게 정보를 요구할 때는 일정의 보수를 지급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보수 없이 일을 시키면 결과가 영 좋지 않거나 혹은 앙심을 품고 일부러 망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사파 놈들이 이 지침을 해석하기로는 작전비에 하오문 이용료를 올려놓고 합법적으로 삥땅을 치면 되겠구나 하고·
그러니 정보값으로 뺨을 맞은 지게꾼 왕씨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도 당연히 너네 엿이나 좀 먹어 보라고·
“그래 천화검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헤헤 분부하신 대로 천화검을 감시하던 중에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지 무엇입니까! 지난 밤에 천화검이 용궁루의 용궁실을 빌렸사온데 아 용궁루의 용궁실을 아십니까? 낙녕제일객잔의 제일실인데-”
“됐고· 그래서?”
“그런데! 사사의께서 간밤에 용궁실에 드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녀의 말을 듣자하니 천화검이 사사의 대협을 맞이하는 태도가 제 할애비를 보듯이 반갑고 사문의 어른을 모시듯이 깍듯했다고 합니다·”
“···?”
문정역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누가 누구를 만나? 왜?
“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냐? 네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담겠습니까요· 천화검이 방을 잡아 차를 우리며 기다리니 사사의께서 축시 그 깊은 밤중에 몰래 직접 찾아가셨습니다요·”
말이란 이렇게 미묘하다·
그것도 축시 그 밤중에·
한참이나 강호의 선배인 사사의가·
몰래 직접 찾아갔다·
이러면 둘 사이의 주도권이 천화검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사사의가 천화검과 내통한다고·
용건이 있는 이가 용건을 들어줄 사람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네 말이 정녕 진실이어야 할 것이다· 내 네놈뿐만 아니라 온 도시의 시궁쥐 새끼들을 죄다 몰살시켜 버릴 수도 있어·”
“아무렴요·”
정보를 줘도 이 지랄이니 사파 새끼들은 도대체 상종할 놈을이 못 된다 하고·
하지만 지게꾼이 욕을 먹는 일이 하루 이틀이던가·
비굴한 웃음이 속마음을 꼭 숨긴다·
그렇게 하오문도가 넙죽 절까지 올리고 물러나고 나선 문정역이 혼자 심각한 척을 한다·
사사의가 정파의 신룡과 내통한다고?
사사의는 고수이기도 하지만 사도련의 얼마 없는 의원으로 충분히 대우를 받는 거물이다·
물론 뱀독에 환장해 주물럭거리는 인간이라서 사사의에게 진맥를 받으려는 환자는 거의 없기는 해도·
그런 인물이 정파의 신룡과 내통해?
하지만 반대로는 말이 안 된다·
본인의 무위는 물론이고 돈과 명예 미모 어디 하나 아쉬운 데가 없는 정파의 제일가는 후기지수가 굳이 사파의 마두와 내통할 이유가 없는 것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렇지·
확실히 사사의가 사파를 배신했다는 편이 천화검이 정파를 배신했다는 말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일단 사파의 마두라서 신의가 없다·
노인네가 말년에는 명예에 욕심이 나서 슬그머니 백도로 신분을 세탁하려 든다 치면 이해할 만한 배신 사유도 된다·
실제로도 잘 살다가 멋지게 죽는 정파의 노고수들과는 달리 사파의 늙은 마두들은 하나같이 최후가 비참한 편이지 않나·
늙어서 실력이 쇠하고 나면 쌓아둔 원한이 폭발하여 밀려드는 원수들에게 칼 맞고 무공을 탐낸 후배들이 찌르고 그간 신나게 부려먹었던 제자들은 밀린 하인의 품삯을 받아내려 겁박하고···
마두는 오래 살기도 힘든데 오래 살아도 이러하니 무림에서 악인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일이다·
하지만 천화검이 정파를 배신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조차 댈 수가 없다·
‘재미있는 일이라·’
봐라· 늙은 놈이 뭐라도 할 것처럼 굴더니만 벌써 달포째 감감무소식으로 시간만 질질 끌지 않는가·
망할 늙은이 감히 대 천하무림 사도건아 합종연합회를 배신하려 들어?
그것도 제 말년 하나 편하자고?
문정역의 입술이 비틀린다·
—-
나양결은 천화전당을 대표하여 천화검을 찾아왔다·
천화전당 입장에서는 사뭇 곤란하기 그지없는 천화라는 별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다만 나양결이 대표로 나선 이유는 이 대의 대사저 지화라서가 아니다·
나양결이 천화전당에서도 제일가는 외모 지상주의자 즉 아주 극성맞은 얼빠라서다·
취향을 넘어 엄격한 기준을 가진 객관적인 심미안을 가졌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다·
천화검이 소문대로 천하제일미라면 천화전당은 천화검이 천화라도 불만이 없다·
꽃밭 밖에 있는 꽃이라도 꽃이라서·
꽃밭 밖에 있는 꽃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면 우리 꽃밭은 기꺼이 존중하리라·
그러니 나양결의 태도는 청을 만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그거 알아? 나는 본래 얼굴에 뭘 바르는 건 딱 질색이란 말야·”
청이 나양결의 얼굴을 보았다·
본래도 빼어난 미인이지만 화장을 더하고 나니 확실히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미색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거 또 시작이네·
청이 고개를 저었다·
“응· 안 물어봤어·”
“맞아· 이게 다 내 곰탱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화장인걸· 아침마다 이 각씩 동경을 바라보며 분을 칠하곤 해· 내 곰탱이가 날 보며 설레지 않을까? 내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응· 안 설레· 안 알아줘·”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 곰탱이가 날 보고 눈이라도 즐거울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도 이미 큰 보람인걸·”
“근데 누가 곰탱이야? 사람 이름치고는 좀 곰탱이 같잖아·”
“그야 온종일 밥 먹고 뒹굴다 밥 먹고 자는 귀여운 짐승이라서? 단 것에 사족을 못 쓰고· 하지만 실제로는 포악한 맹수이자 영리한 짐승이기도 하지· 누구처럼·”
중원의 애정 문화는 상상 이상으로 보는 이의 손발을 꼬는 측면이 있다·
특히나 애칭이 이러한데 중원인들은 연인 사이가 발전할수록 제 연인에게 하찮은 별명을 붙여주고는 한다·
내 식충이· 내 못난이· 내 돼지새끼 등등·
나양결이 청에게 그윽한 눈빛을 쏜다·
하지만 튕겨냈다·
“이게 아주 입만 열면 끼를 부리네·”
“넘쳐서 숨길 수 없는 진심인걸· 자 내 곰탱이도 이 뛰는 심장을 한 번-”
청의 손을 이끌어 제 심장으로 붙이려던 나양결의 손길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청이 빠르게 손목을 빼냈으니까·
“아이참· 그거 알아? 곰은 의외로 빨라· 마치 내 곰탱이처럼·”
원래 청은 미는 힘에 약하다·
저 좋다고 하니 매몰차게 굴지는 못해도 얼굴 하나만 보고 좋다는 연심을 받아줄 정도로 옆구리가 시리지는 않다·
아침부터 치근덕대는 나양결을 걷어내고 오늘 아침은 뭐가 나올까 역시 아침부터 너무 먹부림을 부리기는 뭐하니 간단하게 죽이나 한 대야 먹어야겠다 하고 계림검파 제자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형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응? 뭔데?”
“요가염방 놈들이 장산무관에 최후통첩을 날렸다고 합니다! 휘하로 들어오라고 말입니다!”
“엥· 갑자기? 그래서?”
“장산무관주님이 계림검파에 원군을 요청하셨답니다! 그래서 지금 논의중이라고-”
“아· 여기 계셨군· 서문 소저·”
우나람의 우렁찬 목소리를 끓으며 계림검파의 장제자 도달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 찾으셨어요?”
“사실 내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지금 사파련 놈들이 계림검파를 포기하고 대신 남녕의 다른 정파들을 공략하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아· 방금 들었어요· 장산무관에서 원군을 요청하셨다면서요?”
“크흠 나람이 너 이 자식이·”
도달전이 눈을 부라리자 우나람이 움찔 몸을 떨고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문파의 일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느냐는 책망에 시선을 회피하는 것으로 대답한 것이다·
“장산무관이 무너지고 나면 다른 정파 무관들 역시 무림맹에서 우르르 이탈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계림의 제자들이 그에 지원을 나갈 것인데 혹시···”
그러니까 크게 붙을 텐데 도와줄 수 있겠냐는 소리다·
듣던 중 아주 반가운 소리였다·
“아· 그러면 제가 빠질 수 없죠·”
“사실 문주님께선 천화검의 참전을 반대하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적의 전력이 우리보다는 훨씬 뛰어난 상태이고 소저의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에이 칼밥 먹고 사는 사람한테 안전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초절정 고수님을 뒀다가 어디다 쓰려구요? 안 그래도 많이 먹는 식객인데 밥값이라도 좀 해야지·”
청의 너스레에 도달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사실 말이야 쉽다·
하지만 사파련 전투단 세 개에 그 단주와 부단주들 그리고 독공의 고수인 사사의까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니던가·
친왕을 방패로 세워서야 겨우 피한 싸움인 것을 천화검도 알 텐데·
이리 흔쾌히 힘을 보태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감동의 바다에 풍덩이다·
도달전이 정중하게 손을 모아 허리를 꾸벅 숙인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사실 큰 은혜가 맞다·
청이야 제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싸워서 진다는 생각을 안 한다·
게다가 정파 무림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정파 무림을 도와야 한다는 단순한 사고의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서문수린이 보았다면 가슴을 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저가 뭐라고 자처해서 위험한 전장에 몸을 막 내미느냐고·
그러니 빠져도 욕먹지 않을 위험한 싸움을 돕겠다고 하는 판이다·
도달전에게는 크게 읍하며 공경으로 허리를 숙일 만한 결단이기도 하고·
다만 웃어른이 받는 인사를 연장자에게 받게 된 청은 그저 민망할 뿐이었다·
그러니 그냥 너스레나 떨면서·
“어허이 은혜까지야· 정파 무림 한 가족끼리 당연히 돕고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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