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8
청의 월광검(십호)는 누가 분류하더라도 거병이라 할 흉악한 물건이다·
칼끝을 앞세워 청이 쿵쿵 대지를 부술 듯 거친 보법으로 속도를 높이니 그야말로 여덞 마리 준마가 끄는 강철 마차와 같다·
“커흑·”
월광검이 손쉽게 배를 뚫는다·
세 척 세 치에 이르는 칼몸이 사파놈의 복부를 뚫고 순식간에 파고든다·
칼몸받이에 걸려 멈춘 사파무사·
빡 놈의 이마빡이 청의 보름달처럼 고운 이마와 거칠게 부딪친다·
“살려-”
하지만 청의 돌진은 멈추지 않는다·
뒤이어 푸욱 또 푸욱·
건장한 사내를 셋이나 꿰고 나니 청의 무모한 돌진도 확연히 그 속도가 줄어든다·
하지만 아냐 한 놈 더 할 수 있어·
“으랴아아앗!”
청이 고함을 지르며 양손을 쭉 뻗는다·
사람 셋이 한 줄로 다리 여섯이 공중에 붕 떠오르고 그리고는 푹!
“죽여! 죽이라고!”
“아가씨!”
칼은 들어간 방향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청이라도 사파무인 넷을 일렬로 꿴 검을 상하좌우로 빼내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배에 무언가 파고들면 저도 모르게 손으로 꽉 붙들어 필사적으로 물고들어지는 습성이 있으니까·
사파 무인 하나가 대감도를 번쩍 치든다·
청이 곧장 손잡이를 놓고 다리를 굽혔다·
퍽! 장작이라도 패듯이 사파 꼬치 네 번째의 머리통이 반으로 갈라진다·
부수적 피해!
“어 어헛 커흑!”
졸지에 아군을 참살한 무사가 당황하다 돌연 명치에 닿는 충격으로 아픈 신음성을 터뜨린다·
청의 정수리가 사파 무사의 명치를 들이받았기에·
청이 그래도 무소처럼 밀고 나가다 두 팔로 전방을 향해 힘찬 만세를 부른다·
사파무사의 몸이 붕 떠올라 제 동료와 함께 뒤엉켜 와르르 넘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탁탁탁 세 발짝 후에 대지를 찍는 왼발 번쩍 뒤로 들리는 오른발·
발목이 무릎이 골반이 돌아가며 점차 증폭된 회전력이 팔의 세 배에 달한다는 다리 힘으로 그대로 호쾌한 발차기!
정확히 쓰러진 사파무사의 뒷목을 차는 여항적의 발등이다·
척추와 분리된 머리통이 포탄처럼 쏘아져 다른 사파무사의 안면을 강타한다·
“이 집 수비 잘하네!”
개소리를 터뜨린 청이 무릎을 들고 수직으로 내려찍는다·
사파무사의 팔꿈치 바로 위를 짓밟으니 그 아래 하박이 반작용으로 튀어오른다·
힘줄이 당겨지니 손가락이 쫙 펴지고 그 서슬에 쥐고 있던 직도가 위로 던져진다·
청이 허리를 기울여 직도를 낚아챈다·
직도는 식칼을 사방으로 쭉 늘린 병기다·
끝이 뾰족하여 찌를 수 있지만 무게중심이 손잡이에 쏠려 파괴력은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충분한 힘을 가졌다면 굳이 파괴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돌아왔구나! 지옥참마도!”
직도가 들었다면 예? 제가요? 하고 되물었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병기에는 자아가 없다·
순식간에 지옥참마도로 탈바꿈한 싸구려 직도가 적의 어깨를 물어뜯고 반대편 옆구리를 향해 빠져나온다·
잔인한 손속에 주춤 물러나는 사파 무사·
물러나? 그럼 내가 간다·
청이 있는 힘껏 대지를 밀어낸다·
푸른 도복이 길게 잔상을 그리며 길게 늘어지고 그 끝에서 청의 발끝이 떠올라 한 놈의 턱을 올려찬다·
마치 나양결이 쓰는 각법을 닮았으니 그새 보고 훌륭하게 흉내를 내는 청이다·
사파 무사가 반 장을 붕 떠오른다·
수직으로 턱을 차는 발끝에 목뼈가 바로 굴복했으니 머리가 등에 닿을락 말락 즉사다·
왼발과 오른발이 일직선으로 그리고 머리보다 위로 치솟은 윗발로 진각을 밟아 꽝 청의 신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땅이 꺼져라 짓밟은 청이 하늘로 솟는다·
한 장이나 하늘에 날아 당기는 왼팔·
돌고래처럼 하늘에 누은 듯 몸을 비트는 청이 일순 왼팔을 부드럽게 민다·
두우웅···!
몸으로 진동이 전해져 오는 창대한 범종 소리 막대한 내공이 일시에 빠져나가며 사파 무사 한 무리가 돌연 자취를 감춘다·
으스러진 뼈와 살점 세 명 분이 대지에 남은 여래의 손자국을 메운다·
마치 손바닥이 파리를 내리친 꼴이다·
돌연 전장에 울리는 웅장한 종소리로 모든 시선이 향한다·
“천화검! 천화검이다!”
여래신장의 반동으로 훨훨 날아 떠오른 청이 월녀산보의 우아한 자태로 지상에 내린다·
적진 한복판을 향해·
문주 강수양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왕부 소속 정체불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후방을 치겠다고 했지 아예 적진으로 뛰어들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왜?
후방의 소란이 클수록 전열의 혼란이 더할테니까·
굳이 저렇게 크게 이목을 끌 필요가 없음에도 여래신장으로 주목을 샀으니 제 목숨을 저울에 기꺼이 올려놓은 셈이다·
강수양의 가슴 어딘가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민다·
“천화검이 저기에 있다! 정파의 으뜸인 후기지수가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우리 선배들이 보고만 있을 셈이냐!”
강수양의 외침에 계림과 장산의 제자들이 함성으로 화답하여 내달린다·
이는 선두의 염방무사들 그리고 흑웅단원들이 주춤하여 물러나기 시작했다는 뜻과도 같다·
청이야 그저 혼자 신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청도 아차 싶었다·
전후좌우 대기의 흐름으로 온통 적들뿐임을 알아챘으니까·
아무리 초절(중략)절청이라 해도 일류들 잔치 가끔씩 절정 사이에 홀로 무쌍을 찍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 적을 맞이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청이 빙백의 한기를 이끌어낸다·
어깨로부터 불쑥 솟아난 용의 대가리가 차르르륵 얼음 부대끼는 소리를 내며 왼팔을 휘감아 손으로 향한다·
그리고 반투명 얼음용이 목적지에 닿는 그 순간 청의 손바닥 역시 사파무사의 가슴팍에 도달했다·
순식간에 우득 모든 갈빗대가 부러지고 심장이 터져나가며 가슴 가죽과 등가죽의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빙백신장의 강맹한 위용!
도대체 이 폭력적인 파괴 어디에 빙공을 주장할 지점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체에 순식간에 서리가 내렸으니 빙백신공은 시체를 빠르게 식히는 무공일수도 있겠다·
빈틈!
저· 그냥 나갈게요·
사파 무사들에게는 분홍색 암기를 던질만한 정신이 없었으므로 청이 빈틈을 틈타 땅을 박찬다·
첫 발에 적의 어깨 두 발짝에 적의 머리 그리고 세 발짝에 천마군림보 최흉의 보법이 꽝!
사파무사의 머리통이 형체도 없이 모든 방향으로 터져나가며 청이 몸이 쏜 화살처럼 허공을 가로지른다·
한편 견 노는 안타깝게 비명을 지른다·
“아가씨! 안 됩니다아!”
말릴 새도 없이 청이 순식간에 적진으로 파고들더니 아예 하늘을 날아 저 멀리 적들의 한복판으로 자취를 감춰버렸으니까·
“젠장 창여! 각닥!”
“압니다!”
둘이 능숙하게 발을 맞춰 한 무릎씩을 꿇는다·
견 노가 늙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제비를 돌며 무릎 위의 손바닥으로 올라타니 두 초절정 고수가 있는 힘껏 몸을 세우며 늙은이를 쏘아보낸다·
인간 투석 말하자면 투인이다·
매서운 각도로 쏘아진 견 노다·
“아가씨이이이!”
마치 손녀 찾는 나그네의 애끓는 외침을 꼬리에 매단다·
그러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아가씨와 재회의 순간을 맞이했으니 긴급 탈출을 통해 재차 후방으로 쏘아져 날아가던 청과 허공에서 눈이 딱 마주치고 만다·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두 노소가 천천히 흐르며 시선으로 대화를 나눈다·
‘아가씨? 왜 여기에 어디 가십니까?’
‘엥· 견 노? 어디 가요? 거긴 적진인데?’
“아가씨이이!”
말은 같으나 뭔가 감정이 다른 외침이 청의 뒤편으로 빠르게 멀어져간다·
탁 다시 후방으로 되돌아온 청이 어째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창여인과 각다귀를 본다·
뭐지? 견 노가 날면 아가씨가 돌아오는 구조인가? 대체 이게 무슨 조화지?
그에 청이 콧방귀를 흥 뀐다·
“아니 견 할아버지는 아무리 화경 고수라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막 뛰쳐나가면 어떻게 해· 얼마나 신이 났으면 훨훨 날아서· 뭐해요 빨리 구하러 가야죠·”
—-
달리는 말에 올라탔다면 함부로 내릴 수 없는 법이다·
수시친왕은 이미 대군을 포함한 아들을 내어주고 말았으니 이미 내친 김에 끝까지 달려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동생의 조언도 따르기로 했다·
무림인들을 좀 부려보라던가·
사실 굳이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고수 이끌고 우르르 몰려와 겁박하던 덕현친왕을 보았으니 수시친왕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멀리 있는 군대가 가까이 있는 무림인을 막아주진 못하겠구나 하고·
하지만 정파라·
어차피 같은 칼 든 강도들인데 정파인지 사파인지 굳이 구분하여 쓸 필요가 있을까·
그리하여 수시친왕이 관리들을 불러다가 광서성의 무림 방파들에 대해 아는 바를 쭉 들어본 것이다·
저자의 하찮은 짐꾼도 아는 무림의 생태를 친왕이 모르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 높은 관리들 무림인들 그리고 양민들이란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무림인 아닌 이들은 정파의 도관이라 하면 늘 폭포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뭔가 초탈한 고수다운 신비한 놀라운 수련으로 매일매일 수양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구파의 제자들도 저네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유치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누가 야한 이야기라도 하면 아주 눈이 벌게져서 귀를 쫑긋하기도 한다·
태생이 무림인이거나 부유한 선비 집안의 자제들은 양민의 삶을 모른다·
도대체 왜 기름때 찌든 냄새 나는 거적을 두르고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고 왜? 옷이 없나? 왜 안 빨지?
밥이랍시고 식사 같지도 않은 뭉친 찐 곡식이나 길바닥에서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곡식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애초에 어디서 금은이 나와 먹고사는지도 모르겠으니 그냥 산과 들의 짐승들과 같이 땅이라도 퍼먹고 사나보다 하고·
그리고 관리 아닌 이들은 관리들이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줄 안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뇌물이나 받고 간혹 어디 기루에서 호화로운 접대를 받으면서 기녀들 가슴이나 주무르는 줄 안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그러니 관리들의 평가가 이러하다·
“정파라 하는 것들은 목이 뻣뻣하여 숙일 줄 모르는 건방진 짐승입니다· 나랏일 하는 관리들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줄을 모르지요·”
“그 놈들은 심지어 관부의 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감히 양민 주제에 국법을 대신 판결하여 저네들이 잡아다 죽이기도 하는 아주 무도한 놈들입니다·”
“감히 나라의 세금을 수탈하는 몹쓸 놈들입니다·”
정파 문파들의 평가가 영 박하다·
그에 비하면?
“사파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의리가 무엇인지 아는 놈들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무림인이라고 하나 관리를 보면 맨발로 뛰쳐나와 예의를 갖추고 나라의 일에 협조적으로 따르는 이들입니다·”
“관리를 대신하여 세수를 걷기도 하니 큰 사파가 들어선 현에서는 관리의 업무가 한결 편안하니 기특한 치들입니다·”
의외로 사파 방파들의 평가가 높다·
그래서 수시친왕이 생각하기를·
그러면 사파 놈들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말도 잘 듣고 의리도 있고·
관이 하는 일을 도운 전적이 여럿이면 준 관리 경력직으로 써먹을만 하지 않나?
수시친왕을 수렁에서 건진 이는 의외로 허수아비 광서성 포정사였다·
“정파 무인을 쓰십시오·”
“어찌하여?”
“사파 놈들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뿌리니 당연히 그 평가가 좋지 않겠습니까? 허나 세상사에 대가 없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뇌물을 뿌리는 만큼이나 더러운 면모를 감추려는 것이니 전하께서 굳이 때 묻은 칼을 드실 이유가 없습니다·”
친왕에게 업무를 전가하고서는 그 위세만 등에 업고 아주 편안하게 살던 포정사의 충언이었다·
물론 그 편안했던 삶 역시 공짜가 아니라서 대가로 역적놈이 되고 말았으니 포정사의 말에 아주 절절한 진심이 담겼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성현들께서도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신은 입안에 가시처럼 구는 법이라고 하셨지· 내 그래도 옆에 충신 하나는 두었으니 다행이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포정사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포정사가 애끓는 충정으로 한 말은 아니고 이미 역적이 되고 말았으니 포정사에서 잘리더라도 왕부의 충신으로 쭉 남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잡았다고 하겠다·
“그러고보니 남녕 시내가 요즘 떠들석하다지? 무림인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들어 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럴 때 은혜를 입혀 놓으면 충성으로 돌아오지 않겠나?”
“안찰사와 위지휘사를 호출하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중하다 시간이 훌쩍 작가는 아뿔싸· 지각 죄송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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