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1
문정역의 칼은 명검이다·
마치 파도치는 버드나무 가지와 같다고 해서 파류검이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복주제일검 정도의 명예를 가지면 어중간한 검은 품위를 해치고 만다·
그러니 아예 싸구려 두들긴 쇠붙이에 가까운 물건을 쓰거나·
그러면 역시 고수의 손에 들린 싸구려도 명품이 된다거나 하는 소리를 듣게 되므로·
아니면 아예 날이 시퍼런 명검을 쓰거나 둘 중 하나는 써야만 한 개 행정성 성도의 검법 제일 고수라는 품위가 살지 않겠나·
제일인이 아니라 제일검이지만·
물론 고수가 들기에는 명검보단 허름한 청강검이 훨씬 멋있다·
아주 기깔난다·
하지만 고수와 고수의 싸움이란 단 한 순간에 결판이 나는 법·
청과 문정역의 싸움을 보아도 그렇다·
요사한 마녀의 소수마공을 알고 있었더라면 대처가 될 것을 몰랐다가 빈틈이 하나·
단전에 소수마공을 호되게 얻어맞았으니 기혈이 뒤틀려 기의 수발이 흐트러지고 그 탓에 호신경이 깨졌으니 대가리에 파고드는 손날을 막지 못해 좌우로 쪼개지고 말았다·
이처럼 고수와 고수의 싸움은 단 한 번의 실책이 패배 아울러 사망으로 이어지기에 고수일수록 좋은 병기를 써야 한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 결과물이 평범한 수준을 요할 때나 쓴다·
걸작을 만드려면 걸작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니 오히려 장인일수록 도구를 엄중히 가려야 한다·
그리고 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 명검 중의 명검 파류검이 지금 새 주인을 맞이한다·
“와· 때깔 끝내준다·”
청이 검을 들어 살살 흔든다·
낭창낭창 버들가지처럼 휘어지는 검신에 청이 검극을 쥐어 한껏 힘을 주어 본다·
예리하고 예민한 감각에 칼날이 지르는 비명이 닿는 듯하다·
아아아악 그만 항복 항복 뼈 뼈대 나간다! 검 살려! 이년이 명검 잡네! 부러진다 부러진다앗!
한계에 닿도록 휘어진 파류검이 부러지기 직전에야 겨우 펴진다·
아주 더러운 주인을 만난 것이다·
청이 만족스럽게 월광검(십일호)를 쥐곤 문정역의 시체에서 검집을 끌어내는 와중이었다·
“아니잇!! 형님! 문정역을 해치우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앗!!”
검집을 시신에서 분리한 청이 이번에는 품 안을 뒤적거리며 묻는다·
“엥· 유명한 놈이야?”
“그렇습니다! 문정역 하면 복주제일검! 복주제일검 하면 문정역! 아주 유명한 검법의 고수인 것입니다앗!!”
“흠· 그정돈가· 앗· 금창약· 이럴 줄 알았다니까·”
검이 그럴듯하길래 전리품도 좋을 것 같더라니 벌서 상자부터가 그럴듯하지 않나·
당난아가 준 금창약은 거진 연 파에게 다 쓰고 나머지는 옆구리로 먹었더란다·
“그정도입니다!! 곧 화경! 화경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 검의 달인이란 말입니다!!”
“어쨌든 화경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래봐야 사파 놈들 소문이란 게 다 자기 입에서 나온 거지· 내가 봤을 때는 한 십년은 맨날 화경이 보인다고 떠들고 다녔겠네·”
객잔이든 요리점이든 밥을 먹다 보면 맨 경지가 어쩌니 낼모래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크게 떠드는 놈들이 사파 놈들이더라·
사실 문정역의 곧 화경이 올해로 팔 년째를 맞이하는 해라 청의 예상도 대충 들어맞은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문정역은 초절정 후기! 형님께선 초절정 초기! 이는 대단한 업적! 실로 업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까!!”
우나람의 호들갑이야 내내 들어왔으니 뭐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외침만은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천화검이 복주제일검을 잡았다고?”
“적진 한복판에서 싸웠을 텐데? 그게 말이 되나?”
“천화검은 절정일 때도 화염마군을 잡은 여장부잖는가· 그리고 신공의 주인이고·”
청의 명성이 팍팍 오르는 수군거림이다·
참고로 복주는 복건성의 성도로 남녕과 계림의 인구를 다 합쳐도 복주 하나에 미치지 못하는 대도시 중 하나다·
그러니 복주제일검이라 하면 결코 동네급 인사가 아닌 것이다·
물론 복주제일인은 도객이고 서열 이 위도 도객 삼 위도 도객이라 문정역은 사 위에 불과하기는 하다·
하지만 복주제일인이 아니라 복주제일검이기에 거짓말까지는 아니다·
그러고 나서는 관군이 밀려들어 선량한 무술 사범들 외의 나머지를 싹 잡아가는 바람에 전투는 그렇게 종료·
승전이었다·
—-
염방주 요환철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관부가 대체 어째서···”
요환철은 뒤로 수갑을 찼다·
거기에 이어진 포승줄이 뒷사람의 목을 휘감는 구조였다·
그렇게 줄줄이 두 줄로 주우욱·
누군가 하나 이탈하려 도망치면 앞뒤로 당겨 목을 조르는 구조다·
그리고 요환철의 뒷사람은 바로 필패병법 조광앙이었다·
“나도 모르겠소· 심지어 군부까지 동원해서는·”
고대 원시 미개한 중원에서도 의외로 삼권분립이라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
다만 이는 막대한 권력의 집중이 남용을 불러 양민들의 삶을 해칠 수 있다는 민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아래 있는 놈들이 서로 헐뜯어야 천자가 지배하기 편하다는 순전 지배자 편의적인 분할 행정이라고 하겠다·
물론 보통은 셋이 의형제 맺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다 해먹기 때문에 양민들은 언제나 고달프다·
그리하여 포정사는 한 성의 행정을·
지휘사는 한 성의 군사를 이끈다·
안찰사는 형법을 집행한다·
포졸은 안찰사의 영역이고 군사는 지휘사의 영역이며 그 둘이 한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포정사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녕현에서 그 삼위일체를 가능케 하는 인물은 한 명뿐이다·
수시친왕이다·
“방주 혹시 친왕께 누를 끼쳐드린 적이 있소이까?”
“그럴 리가! 염방을 운영하는 놈이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흠· 그런데 어찌· 아예 작정하고 우리 사도건아들만 줄줄이 끌려간단 말이오?”
“오히려 그쪽 때문이 아니오?”
“그건 또 무슨·”
“사천의 친왕께서 계림검파에 머무시는데 지금 계림 놈들이 어디에 있소? 백련철권께서 손님으로 계신데 그집 식솔이 우르르 자리를 비우면 기분이 어떠하시겠소?”
“그러면 계림 놈들을 잡아가야지-”
“어차피 따질 사람은 집주인이 아니오? 집주인이 하소연하면 귀하신 분께서 무림의 생리를 알고 계시려고·”
그에 구 백련철권 현 필패병법 조광앙의 안색이 흐려진다·
“아니 그래서 내 잘못이라고? 이미 예상할 수 있었으면 그걸 이제야 말해놓고?”
조광앙의 목소리가 뾰족하니 요환철이 뜨끔하다·
그래도 사도련에 밉보일 수는 없잖은가·
아니 사태가 이렇기에 더욱이·
“아니 나도 그냥 분석으로 이치가 어찌 이러한가 생각해보니 그러한 것 같다는 내 소견이지 단주를 탓하는 바가 아니라오·”
“흠흠· 뭐 그래도 차라리 잘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잘 되었다니?”
“전투에 잠시 후퇴하느라 피해가 막대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옥에 들어가서 뭐 얼마나 갇혀 있겠소? 차라리 옥 안이 안전하니 잠시 불편하게 지내다 나오는 편이 낫지 않겠소?”
“오오 그 말씀은·”
“사내의 복수는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는 법이라도 하였소· 내 풀려나기만 하면 련에 천급 전투부대를 요청해서-”
찰싹·
오랏줄이 조광앙의 주둥이를 때렸다·
“이것들! 죄인들 주제에 아주 살판이 나서 떠드는구나! 형리가 그리도 우스워 보이더냐!”
조광앙의 표정이 팍 상한다·
그야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감히 고수의 입술을 두드리니 당연한 일이다·
목을 감은 오랏줄이니 팔에 찬 나무 족쇄 따위 마음만 먹어도 끊어낼 수 있다·
하지만 분풀이는 지금뿐이지만 역적은 영원한 법·
“이놈! 눈을 부라려! 대답은!”
“···송구합니다·”
“모기가 기어가느냐! 더 크게!”
찰싹· 간덩이 부운 포졸이 초절정 고수의 뺨을 오랏줄로 또 두드린다·
조광앙의 혈압이 치솟는다·
그러자 다시 날아오는 새끼줄 뺨다구·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은 더럽다·
“내 장군께 말씀드려서 즉결 처형을 요청드려야-”
“아니다! 송구합니다!”
화들짝 놀란 조광앙이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 더!”
“송구합니다!”
“쯧· 제까짓 게 고수면 뭐해· 양민들 피나 빨아먹는 천한 건달 새끼 주제에·”
조광앙이 이가 부러지도록 콱 악문다·
천한 건달이란 말도 그렇지만 양민들 피 빨아먹기로는 천하제일인 관부 놈에게 피를 빤단 소리를 들은 것이 너무 치욕적이라서·
저 새끼는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조광앙이 포졸의 얼굴을 뇌리에 새기려는 듯 연신 흘끗흘끗 살핀다·
그 앞뒤로 주우욱 사파 놈들의 포승 행렬이 줄줄이 길게 이어진다·
—-
장산무관에서 승전 연회가 열렸다·
전투에서 죽은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만 본래 전쟁이란 승리를 축하한 후에 떠나간 이를 애도하는 법이므로·
“대협! 제 잔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천화검! 한 잔 받으시겠소?”
“새 복주제일검께 내 한 잔 올려야지!”
청은 오는 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진탕 퍼마신다고 문제가 될 일도 없다·
“캬아! 좋네! 자 다 들어와요! 복주는 내 모르겠고 오늘 남녕제일주당을 한번 가려봅시다! 술 가져와!”
“오오오!”
그러나 술이 무엇인가·
술은 뇌를 손상케 하고 간장을 썩게 만들며 사람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오감을 모두 망가뜨리면서도 정신을 병들게 만드는 그저 마실 때에 잠깐 기분이 좋을 뿐인 극독 중의 극독이다·
술꾼들은 한 잔의 반주가 건강에 좋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지만 실상 술은 사람 몸에 단 한 가지도 긍정적인 기능이 없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쓰레기다·
그러니 사악한 소수마녀의 계략에 넘어간 정파 무인들이 스스로 독을 마신다·
마시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퍼마셨다·
그렇게 독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다가 하나둘씩 비틀대며 쓰러져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밤이 깊어서는 장산무관에 아주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오른쪽 무릎에 쓰러진 우나람 왼쪽 무릎에 쓰러진 나양결 그리고 무관의 앞마당 대연무장에 무수하게 널브러져 끄어어 기괴한 신음을 내며 꿈틀거리는 정파의 무인들·
청이 그 사이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 똑 똑 한 잔을 채우고 떨어지는 술방울들·
“아씨· 술 다 떨어졌네· 이모! 여기 화주 한 병만 더 주세요!”
그러나 다가온 것은 이모가 아니라 삼촌 그것도 이 집 삼촌이 아니라 저 집 삼촌 계림검파의 하인이었다·
“아가씨께 전해드리라는 서신입니다·”
청이 붉은 연서 봉투를 받아들고 나니 하인이 우물쭈물 곁을 떠나질 않는다·
“아이고 맞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한잔하고 가시겠어요? 새로 따라드리고 싶은데 이게 마지막이라 잠깐만요?”
청이 소매를 끌어올려 술잔의 머리를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닦는다·
“그게 아니라 그 몇 번이나 계속해서 같은 연서가 날아오는데 그놈이 못생겨서 아가씨께서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감히· 제 주제도 모르고 아가씨께 치근덕거려? 말씀만 하시면 다음에 왔을 때는 제가 뺨다구를 후려쳐 놓겠습니다·”
애먼 심부름꾼이 의문의 일 패를 적립하는 순간이었다·
고백도 없이 모진 뺨다구가 심부름꾼을 덮친다!
하지만 하인이 막돼먹어서가 아니라 정이 들어서 그러한 것이다·
면사 속의 청이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만류한다·
“아· 보낸 사람 따로 있고 저도 생각도 없으니 그러진 마세요· 자· 기왕 오신 김에 저기 요리가 많이 남았는데 좀 싸가셔서 일하시는 분들이랑 드시고 그러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요?”
“그럼· 다 뻗었는데 누가 먹겠어요? 저기 연회석에 남은 게 다 남은 건데· 보자기에 싸가서 나중에 빨아다 돌려주면 되잖아요·”
“아랫것들 생각도 이렇게 해주시고···”
하인이 감동 반 흥분 반이 섞인 안색으로 연회석의 남은 요리들을 쓸어담는다·
계림검파 하인들에게는 선녀님께서 챙겨주신 양식이다! 하며 오늘도 천화검 찬양이 있을 예정이다·
귀한 아가씨께서 늘 존댓말로 사람 대우를 해 주시니 하인들에겐 늘 천상의 천녀님이신 서문청이다·
남의 요리로 인심을 쓴 청이 서신을 뜯는다·
「용궁루 연화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일단 화로에 서신을 던져넣고 청이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이걸 가도 되나?
어차피 백사독인지 흑사독? 어쨌든 가끔 천하십대극독 그거는 더 없다고 했는데·
하지만 시간이 안 쓰여 있으니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소리고 늘 추신처럼 덧붙이던 정체에 대한 협박도 없으니 딱히 적의가 담기지는 않았다·
함정이라기에는 이미 사파 놈들이 싸그리 잡혀간데에다가 내가 언제 찾아갈 줄 알고 함정을 판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 노인네는 왜 전투에 안 나왔대?
한 발짝 늦었지만 그래도 관군이 편을 들어주었으니 결과야 마찬가지였겠지만 독의 달인은 원래 하수들 대량학살에 특화되어 있다보니 노인네가 있었으면 큰 피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염방 놈이 짜니 어쩌니 하더니만 삐졌나?
청이 잠시 생각해보고는·
음· 그러면 지금 당장 가야겠다고·
막 전투에서 이긴 참이고 할아버지네는 싹 관원들이 잡아가 버린 통에 당장 인원을 동원하기도 힘들 테다·
그리고 오히려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할 테니까 괜히 어영부영 딴짓할 시간을 주느니 당장 가서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봐야겠다 하고·
보열이 각오한 표정 진지한 눈빛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 노는 혈교에 투신할 생각이다·”
아씨· 괜히 왔네·
청이 바로 후회했다·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혈교에 가려면 조용히 가든가 그걸 왜 굳이 날 불러서 이야기해주는데?
응원이라도 해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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