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5
청이 멀거니 위를 올려다본다·
진가장이라고 한때는 금으로 써졌을 글귀가 피로 얼룩져 모로 기울어져 있다·
모름지기 현판은 문파의 얼굴이다·
얼굴부터 삐딱하니 틀어져 있는 셈이니 어째 굳게 닫힌 대문이며 위사 번을 서는 제자는커녕 인기척도 없어 을씨년스럽다·
뭐지· 내가 잘못 찾아왔나?
그 진가장이 이 진가장이 아닌가봐?
하기야 중원에 진씨가 하나뿐이겠어·
청은 모르지만 중원의 성씨는 같은 한자 쓰면 같은 성씨라서 하나뿐인 진씨가 맞다·
예전에 돗자리 팔던 귀 큰 놈이 자기도 황손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나·
다만 조상님 고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부동산 소재지를 따지기 때문에 같은 성씨라 해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친근하겠지만·
“어이쿠 아가· 거기 있으면 큰일 나·”
누군가 말을 거는 통에 돌아보니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이 진지한 표정을 한다·
“엥· 왜요?”
“아주 단단히 저주를 받은 게야· 휘말리면 같이 횡액을 맞는다니까· 안 그래도 벌써 수백명 잡아먹은 가문이여·”
“저주라니 무슨 잘못을 했는데 저주를 받아요?”
청의 핏줄 한민족에게 저주라고 하면 어쩐지 저지른 죄악의 앙갚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불운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에서 찾는 민족은 얼마 없으니 이러한 정서에서는 참으로 도덕적인 민족이라고도 하겠다·
하지만 원시 고대 미개 중원에서 저주라 하면 그냥 재수 없으면 걸리는 재난이다·
“저주에 원인이 어디 있어? 잘나가는 집안 망해버리라고 고사를 지내는 놈들이 한둘이야· 그러다 영험한 놈한테 잘못 걸리면 이 꼴이지· 쯧쯧·”
“음· 무슨 일인데요?”
“살이야· 살이 단단히 꼈어· 이 집안에 연관되면 살 맞아서 초상을 치르는 게야·”
그리 말하는 할머니의 눈빛에 기이한 빛 어떤 광기라고 할 만한 것이 똑똑히 서리는 것이다·
그에 청이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아이고 어머니! 죄송! 죄송합니다!”
“뭐야? 누구야? 나 아들 찾아야 해·”
“어머니! 저 동입니다! 동이요!”
“아· 둘째· 동이야 네 형 좀 찾아봐라· 시간이 벌써 묘신데 동일이 배고프겠어·”
아침은커녕 해가 중천이다·
그에 사내가 연신 허리를 접는다·
“무사 나리 저희 어머님이 장남을 잃은 후로 정신이 좀 편찮으십니다· 너무 노하지 마시고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아· 괜찮아요· 저기 어머님 가시는데 빨리 따라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이고 어딜 가세요·”
“내 이름자 받을 때 목 변을 쓰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기어코 목수질을 하더니 얘가 음? 얘가· 얘 동이야 네 형 못 봤니·”
좀 편찮으신 분이었구나·
청이 다시 기울어진 진가장의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할머니의 섬뜩한 눈빛 저주 살을 받을 게야· 으스스하니 소름이 오소소 치닫는다·
때마침 구름이 밀려와 해를 가리니 사위가 어둑하게 그늘이 지는데···
삐걱·
문짝이 비틀린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리는 것이 아닌가·
“오우·”
청이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나고 만다·
사람은 베면 끝인데 귀신은 못 베잖아·
사람이 우주의 신비한 기운을 받아서 막 날아다니고 절벽 쪼개고 하는 세상에 저주나 귀신이라고 없으란 법은 없지 않겠나·
청이 검손잡이를 꽉 붙드는데 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 단아한 전통 미인이다·
귀신 치곤 미모가 대단하지 않나?
“누구···· 면사?”
“진 소저! 저예요 저· 서문청이요·”
청이 그리 말하며 면사를 걷어올린다·
진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지친 듯한 인상의 진가주에게 인사 올리고 나서는 청이 늦은 점심을 얻어먹었다·
서둘러 오느라 점심을 걸렀으니까·
무림맹의 파견 기한은 겨울까지다·
그리고 지금이 이월 초순·
그러니까 두 달이 조금 안 남았다·
이월 초순인데 어째서 두 달 조금 안 남았느냐고 하면 올해는 윤이월 이월이 두 번 있는 해라서 그렇다·
음력 달력에는 대충 이 년 반쯤 해서 한 달을 더해야 계절이 뒤틀리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 빨리 온다고 서둘러 왔으니 광주 땅에 도착하고 나니 점심때가 지났더라·
“대체 무슨 일이에요?”
“무림대회에 간 사이 혈교가 본가를 습격했어요· 혈교가 얽힌 일이라 시신들이 그대로 방치가 되어서· 그 추물 냄새가 이렇게 안 빠지는 줄은 몰랐답니다·”
추물이란 사람 시체가 썩어 녹으며 나오는 액체를 말한다·
목수가 제일 싫어하는 액체 일 위·
한 번 배기면 냄새는커녕 시커멓게 사람 죽은 자국조차 절대 안 빠진다·
그러니 사람 죽은 방에 시체가 방치되고 나면 무조건 들어내고 다시 지어야 한다·
“혈교요? 그럼 무림맹은·”
“지원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본가에서 일단 보류했답니다·”
“엥· 왜요?”
“저희가 손님을 받을 처지가 못 되기도 하고 일단은 장원을 좀 추스르고 난 후에 손님맞을 준비가 되면 요청을 하자 그렇게 결정이 되었는데···”
문제는 장원을 추스를 수가 없다·
공사를 하는 족족 인부가 죽어나가니 진가장 땅에 혈교의 악독한 저주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사 인부는커녕 새로 하인조차 구할 수가 없는 판이다·
무림대회에 수발을 들기 위해 따랐던 인원이 전부라고·
“저주라니·”
그에 진설이 고개를 저었다·
중원오화 어여쁜 얼굴에 분노가 서린다·
“세상에 저주가 어디에 있겠어요· 사파 놈들이 수작을 부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진짜로 저주가 들린 것처럼 되어버려서·”
처음에는 진짜 저주라도 내린 줄 알았다·
그래서 영험한 도사나 승려 심지어 무녀들까지 불러 액막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래도 인부들의 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사파에서 새 제자 받는 일을 아주 영약까지 뿌리면서 싸구려 영약이라도 영약인데 그걸 뿌려대며 방해하는 꼴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아차 싶었다는 것이다·
인부가 죽어나간게 저주가 아니라 저 새끼들이 한 짓이었구나 하고·
“아니 뭐 그딴 새끼들이· 아주 싹 씨를 다 말려 버려야 하는데·”
청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진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 늦었어요·”
중원인의 미신 사랑은 유전자 단위로 새겨진 본능이다·
아니 중원이 미신 그 자체이며 미신이 곧 중원이다·
청의 고향에서도 보라·
붉은 인민의 사설 군대가 모든 구시대의 전통과 악습을 죄다 태워버려 새 시대를 열었지만·
중화 민족의 정체성이자 자긍심인 미신까지는 차마 건드릴 수가 없어서 고이고이 가슴에 품어 후손들에게 남겨주지 않았던가·
그러니 한 번 저주받았다고 소문이 난 이상 그 누가 저주받은 땅에 발을 디디려 하겠는가·
“그 진 소저? 그런데 무림맹 지원부대가 도착할 예정인데요·”
“네? 어째서·”
청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광서에서 벌어진 일·
무림맹 지원부대가 조금 늦는 바람에 먼저 해결이 되어버렸고 덕분에 도착하는 대로 진가로 보내기로 했다고·
“이 꼴을 누구에게 보인다고·”
진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음· 그럼 미신을 깨면 되지 않을까요? 누가 일하고도 멀쩡했다고 하면 저주가 물러갔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아예 인부들을 장원 안에서 지내게 하면 어때요?”
“그것도 진작 했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는 소리다·
그에 청이 물었다·
“그럼 공사를 하다 중단된 거죠? 그러면 자재는 그대로 남아있겠네요?”
“네· 고급 자재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요·”
“그럼 장원을 보수하면 되겠네·”
청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에 진설의 눈썹이 살짝 가파른 각을 그린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는 했나 싶어서·
“그 방도가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았나요? 특히나 목수들은 민감한 치들이라 먼 데서 불러와도 거절하고 돌아가버리고·”
그러나 청은 태평하다·
“에이 여기 실력 좋은 목수가 있는데·”
그에 진설이 눈을 깜빡깜빡·
“어디요?”
그에 청이 손가락으로 저를 척·
“저요· 서문청· 아니 낙녕 목수 서문씨·”
중원에서 천하다고 하는 직업은 이상하게 남녀의 구별이 없는 편이다·
어부 딸은 어부 농부 딸은 농부 그리고 목수 딸은 목수다·
힘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라서 여인의 몸으로는 아무래도 힘들고 고되어 오래도록 하지는 않는 편일 뿐이다·
중원에서는 아내나 첩도 여인이 가지는 직업의 일부로 취급한다·
그러니 천화검이 목수질 좀 할 줄 안다는 소리가 뭐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목수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나요·”
진가주 광동일권 진자강은 무인답게 생긴 인물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먹물 잔뜩 먹은 선비처럼 꼬장한 낯에 살집이 없어 그야말로 대나무와 닮은 사내다·
청의 첫인상으로는 와 교수님!
하지만 의외로 말투는 나긋나긋하니 청이 말씀 낮춰달라는 말에도 고개를 저었더란다·
말이 편하면 사람도 편해지는 법이니 어찌 손님께 함부로 하겠냐면서·
진자강의 성품은 그 한 마디로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목수로 열 사람 몫은 한다고 했으니 진가 분들이 좀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공사를 진행할 수 있어요· 이미 자재를 살폈는데 방수포를 잘 덮어서 멀쩡하더라구요·”
“내 손님에게 부탁할 일이 아님은 알겠다만은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드려야겠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이 아녜요· 그런데 가주님· 공사만 진행하기에는 조금 재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청이 죽 계획을 늘어놓았다·
그에 진자강의 눈빛이 번들거린다·
—-
광동진가의 진가장은 광주현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사통발달로 광주 시내 어디든지 훤히 뻗는 중심이자 작은 시내의 물길이 닿고 지하에 수맥이 뻗어 우물이 여럿이며 예로부터 지역의 제일 큰 호족으로 사실 관아보다도 풍수상 좋은 자리에 있다·
그러니 진가장은 광주 중심에 딱 박혀서 광주 사람들이 오며가며 계속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 진가장에 오랜만에 방이 붙었다·
「장원 재건 사업에 참여할 인부를 구함· 대장 목수로는 하남제일목수이자 용한 무녀로도 이름 높은 토목선녀를 초청하였음· 흉험한 공사에서 최고로 꼽히는 권위자이니 기탄 없이 지원해주기를 바람·」
그 아래로 숙식 제공이니 후한 품삯 따위가 써진 방문이었다·
“하남제일목수? 멀리서도 데려왔네·”
“그쯤이나 되야 사정 모르고 저주받은 집에 손을 대려 들지·”
“무녀의 딸이라잖나· 아무래도 그런 쪽 공사에 일가견이 있는 여인일수도 있지· 이 정도면 해볼만 하지 않나? 달포만 일해도 농사는 쉬엄쉬엄해도 되겠구만·”
“흥· 혈교 놈들 저주가 그냥 저주야· 내 줄초상 난다는 데에 손모가지 걸지·”
“하긴· 나도 돌아가는 꼴을 좀 보고·”
물론 그렇다고 곧장 인부를 구할 수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러라고 붙인 방도 아니고·
보라고 붙인 상대는 따로 있었으니·
“문주님! 문주님!”
“뭔데 호들갑이야?”
“진가가 또 공사를 시작한답니다· 이번엔 하남에서까지 목수를 데려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하남제일목수고 신통한 무녀를 겸해서 저주도 이겨내는 년이랍니다·”
“그게 말이 돼? 언제 하남까지 사람을 보내서 또 목수를 여기까지 데려와? 아귀가 안 맞잖아· 그리고 무녀가 무슨 목수를 해? 그런 기사가 있으면 강호에 소문이 쫙 퍼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하남 땅 목수 새끼들은 병신이야? 여목수가 제일목수의 칭호로 불리도록 가만히 놔뒀다고?”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만 가득한 허무맹랑한 소리다·
“진가 놈들도 나름 꾀를 부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흠· 정파라는 놈들도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을 찍찍 싸는 모양이지·”
문주가 웃으며 옆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 앉은 창백한 문사 사내가 빙그레 따라 웃으며 말한다·
“무녀 목수까지 죽고 나면 천하에 그 누구도 보수공사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공사가 문제겠습니까? 그런 저주받은 땅을 누가 사려고 하겠습니까? 팔아서 이사 갈 금은을 마련하지도 못할 테고· 문주님께서 나중에 헐값에 구매하실 수도 있겠지요?”
“크흐흐 역시 아래에 똑똑한 놈이 있어야 한다니까· 그래서 똑같이 할까?”
그에 문사 사내가 부드럽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똑같이 해서 되겠습니까?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 저자에 걸어 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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