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6
큰소리를 땅땅 치기는 했는데 이런·
청이 난감함을 느꼈다·
청은 낙녕에서 목수 일을 배웠다·
그리고 낙녕에서는 나무로 집을 짓는다·
그런데 진가장을 손보려고 보니 아뿔싸 왜 눈에 보이는 게 벽돌뿐이지····
물론 죄다 벽돌로 짓진 않았을 터다·
골조는 나무로 짜고 벽돌로 메워놓았을 것이 분명한데·
이게 벽돌만 쌓아놓았나? 뭐로 붙였지?
안쪽에는 목조로 벽이 있나?
한 채 뜯어봐야 알겠는데····
하남성 식으로 지으려면야 이미 침수된 주택 여럿을 뜯고 또 토대부터 새로 짓는 과정을 전부 참가해 본 청이다·
“가주님 혹시 한 채 뜯어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음· 서쪽 하안채를 뜯어 보세요· 거기가 손상이 심할 겁니다·”
진가주 진자강이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청의 목수 실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상태다·
그야 무림의 최연소 초절정 기록을 아주 크게 단축해 낸 젊은 기재가 아니던가·
분명 덜 자고 급히 먹으며 자나깨나 무공에 매진했을 것이라고·
(실상은 막 자고 급히 많이많이 먹으며 무공을 날로먹었지만)
그러니 목수 일을 할 줄 안다고 해 봐야 어렸을 적에 어깨 너머로나 보았던 손재주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올해 스물하나 다른 기술에 통달하기에는 생애의 시간 자체가 모자라지 않나·
한 육칠십 먹은 고수가 심심할 때마다 망치질 좀 하다 보니 어디 가서 목수라고 할 정도는 된다 하면 모를까·
그러니 재건 공사는 별 기대를 안 했다·
그보다는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해서 이 저주를 깨부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지·
저주가 괜히 저주인가·
계기는 사파 놈들의 수작질이었겠지만 지금은 실존하는 저주가 되고 말았다·
천화검이 그 수렁에서 움켜쥘 작은 계기라도 되어주면 그저 고마울 뿐이겠다고·
청이 휘적휘적 진가장을 돌아다녔다·
장원에 손님이 혼자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남들이 보면 대체 대접이 이게 무어냐 하겠지만 진가장주가 일손이 달려 양해를 해 달라며 까마득한 후배(배분상 선배지만)에게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으니 그렇게까지 큰 결례는 아니라고 하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남들이 보면 혀를 찰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청이 그러한 예법에 전혀 신경을 쓰는 않는 인물에다가 세가가 바쁘다는데 괜히 손님이랍시고 한 명 붙들고 있는 꼴이 더 민망하다·
그러니 서쪽 어딘가에 있는 하안채를 뜯어보기 위해 진짜로 물리적으로 뜯어보기 위해 장원을 헤매는 중이었다·
공사 인부는커녕 저주받은 장원이라고 새로 하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진가장이다·
인기척이 없어 사위는 고요하고 쿰쿰한 썩은 악취가 미묘하게 코끝을 스쳐 불쾌한 그야말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꼴이다·
그러니 날이 맑고 밝음에도 불구하고 채도가 낮아 창백한 화면처럼 우중충하니 그림자가 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래서야 손님 받기 민망하다고 무림맹의 지원을 거절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체면은 체면이고 당장 장원이 이 꼴인데 지원부터 받아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당장 현재 인원으로 사업장 돌보기에도 벅차 전부 밖으로 나가버리고 손님 혼자서 장원을 서성거릴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청이 어렵다는 소문에 방문했기에 망정이지 그도 아니었으면 언제까지 이런 저주받았다는 장원 안에서 천천히 쪼그라들 예정이었는지·
장주님이 사람은 조곤조곤하니 참 좋은 분 같으셨는데 일머리는 좀 나쁘신 걸까·
닫아놓아도 악취가 새는 건물들은 이미 상했으니 차라리 허물기라도 좀 하시지·
청이 그렇게 다소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청의 인간 초월 청력에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끄흑 흑 끄흑· 숨죽여 우는 소리다·
“오우·”
청이 팔뚝을 쓸어내렸다·
뭐지? 귀신? 진짜로 있나?
도관이 있고 기가 있고 여래신장 쓰면 막 부처님 펼쳐지고 하는 세상에 귀신이라도 없을까 싶기도 하고·
파마의 기운을 가진 여래신장이니 귀신도 때려잡을 수 있으려나?
청이 조심스레 소리를 향해 다가간다·
왜 무서운 이야기를 화면으로 볼 때는 당장 등장 인물도 꺼림직하고 무서워 덜덜 떨고 긴장으로 침을 꼴깍 삼키는 주제에 왜 굳이 문 열고 귀신 들린 장소에 발을 들이나 싶었는데·
정작 그러한 상황에 닥치니 알겠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그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 도망치는 편이 훨씬 무서우니까·
그렇게 청이 소리 따라서 유난히 악취가 심한 건물의 문을 살짝 열어 보는데-
끼이익·
사위가 고요하니 문 열리는 소리가 유독 신경을 긁는다·
그리고 어둑한 건물 안 저편에서 홀로 주저앉은 소년의 뒷모습이 한 명·
음· 사람이었구나· 뭐· 그야 그렇겠지·
“누구야?”
“아 서문 소저· 킁 여기는 어쩐 일로·”
“아 너· 화천이었던가?”
진화천· 진가네 몇째 아들이라고 들었는데 아들딸 합쳐 열넷인가 열다섯인가 하는 대가족이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안 난다·
“여기서 뭐 해? 왜 울고 있어?”
“안 울었습니다·”
진화천이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는 그리 말했다·
“눈이 벌건데·”
“그 잘못 보신 겁니다·”
진화천이 그리 말하고서는 소매로 눈가를 쓱쓱 문지른다·
“그래·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안 울었습니다·”
“그래그래· 아무것도 못 봤어·”
그의 진화천의 앳된 얼굴이 꿈틀·
하지만 청은 그냥 입꼬리나 들어올릴 뿐이었다·
네가 꿈틀해봐야 뭘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나? 하안채가 어디인지 찾고 있었는데· 다 비슷비슷해서 어딘지 모르겠네· 너 할 일 없으면 안내나 좀 해 주련?”
그에 진화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다·
“여기가 하안채잖습니까·”
“아· 여기야? 맞게 왔네? 나는 왜 이렇게 길을 잘 찾지?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다· 캬아·”
진화천의 표정이 바뀌었다·
청은 사람이 어이없는 표정에서 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아· 공사를 하려는데 광동 양식이 어떤 줄을 모르니까· 한 채 뜯어보면서 천천히 살펴 참고하려고 했지·”
“뜯는다니 집을 해체하신다는···?”
“응·”
그에 진화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안 됩니다·”
“응? 뭐가?”
“안 됩니다· 그러시면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엥· 가주님 허락도 맡았는데?”
“하지만·”
“포기해라 소년· 누구도 나의 파괴를 막을 수는 없다· 다 부숴버리고 다시 짓겠다·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 재 속에서 살아나는 주작을 본 적이 있느냐?”
청이 아무 소리나 했다·
어이없으라고 한 소리였다·
“안 돼요!”
진화천이 그에 빽 소리를 지른다·
“집을 부수면 그러면 끄흡 그러면·”
그리고는 눈물이 주르륵 콧구멍이 벌렁벌렁 흐으으읍 크게 들이쉬는 들숨·
아· 요거 울겠네·
청이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크헝헝 소년이 울음을 터뜨렸다·
소년이 진정된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다·
“여기는 혜운이네 집인데 집을 허물어버리면 다시 기억을 못 하니까· 인사도 못 했는데·”
이야기를 듣자하니 가장 친한 친구의 집이었던 모양·
세가의 아이들이 세가 밖에서 놀 것도 아니고 투닥투닥 저들끼리 까불거리며 뛰놀며 자라는 친구들이란 결국 방계의 친척들이다·
“음·”
청이 깊게 반성했다·
물론 소년을 울렸다는 점이 아니라·
사내자식이 울기는 왜 울어?
울기는 여인 전용 필살기라서 사내자식은 울어도 봐주지 않는단다·
그게 아니라 집안이 이 꼴인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답답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광동진가는 세가다·
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였으니 방계라 해도 결국 가깝기로는 사촌 오촌 좀 먼 방계라 해도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지낸 이웃이자 친구들·
그리고 가족인 것이다·
하남에서 광동 땅까지 천천히 유람하며 두 달쯤 걸렸을 테고 팔월 중순쯤 돌아와 이 참상을 발견했다면 중원 상례의 마지막인 사십구제를 지내고 나서 이제 겨우 세 달이 좀 넘었겠지·
가족의 상실을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것도 병중이나 노환으로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해 왔던 이별도 아닌 혈교 놈들의 기습으로 벌어진 억울한 참사다·
심지어 진가들이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한여름 습하고 뜨거운 광동 날씨에 방치된 고체보다 액체에 가까운 처참한 모습이었을 테고·
심지어 그렇게 시신이 썩어갈 동안 무림대회 본다고 신나게 놀고 있지 않았던가·
차라리 허물라니·
진가 사람들에게는 한 채 한 채가 전부 추모비나 마찬가지였을 터다·
그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이나 해 볼 뿐이지 청은 사실 어떠한 심정인지 알 방도가 없다·
그러니 지금 진가의 꼴은 사파의 방해가 어쩌구 일손이 어쩌구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무기력 혹은 슬픔에 가까우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얻어맞고 있기만 해서 쓰나·
마침 안 그래도 참사로 슬픔에 잠긴 집안을 어떻게든 쓰러뜨려 보려는 말종들이 도시에 가득하지 않겠나·
죄 없는 인부들을 잔인하게 해치면서까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개 같은 새끼들이·
—-
청이 토목선녀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차려입고는 광주 시내로 나섰다·
실로 온 도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기인이사의 등장이었다·
오색 천을 매단 화려한 무녀 목장에 허리춤에는 새끼줄을 차고 수십의 거거(조개)를 엮어 무지갯빛 광채를 뿌리는데 걸을 때마다 잘그락잘그락 껍데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가 하면 머리에 쓴 갓에는 괴황지에 주사로 경문을 쓴 부적을 덕지덕지 붙이고 그도 모자라 좌우와 뒤로 길게 늘어뜨려 어깨와 등판에까지 닿는다·
앞에만 짙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나니 신통한 무녀가 저자에 나선 꼴이다·
근데 무녀면 무녀지 목수는 아니다·
사실 그래서 나왔다·
뭔가 목수스러운 특제 도구라도 하나 있어야 다들 보자마자 토목선녀가 왔구나 싶지·
톱? 그냥 검강 쓰면 된다· 대패? 그냥 검강 쓰면 된다· 끌? 정? 검강은 무적이다·
그런데 망치는 하나 있어야겠다·
월광검 십호가 다섯 근짜리 중병이기는 하나 무게중심이 잘 잡힌 통에 망치로 쓰기는 좀 애매하니까·
그리하여 청이 그 꼴을 하고 철방 거리에 발을 디딘다·
땅땅 철 두드리는 소리가 흥겹고 석탄 타는 냄새가 자욱하니 깔린 가운데 청이 슬슬 돌아다니며 가판에 널린 철기들을 살피는 척을 했다·
사실 철장 일까지는 안 해봐서 겉으로 살펴봐도 잘 모른다·
일단은 사람들에게 토목선녀의 모습을 박아두려는 수작이다·
그러다 청이 가장 큰 철장의 가판으로 다가가 대뜸 반말로 툭 묻는 것이다·
나름의 무당 흉내였다·
“이봐 내 장추(큰 망치)를 보려는데·”
“얼마짜리를 보십니까?”
“열다섯 근·”
“에라이· 그런 게 있겠소?”
“이상하다· 하남에서는 쓰는데·”
당연히 안 쓴다·
열다섯 근 망치를 휘두르면 사람이 일 각도 못 버티고 퍼져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게다가 망치는 무겁다고 능사가 아니니 그렇게 무거운 망치를 쓰면 망치질이 아니라 자재를 부수는 쪽에 가깝다·
말뚝 하나 박을래도 박히는 게 아니라 속부터 금이 가서 쪼개지고 말 테니까·
“그러면 광동 땅에서는 제일 큰 망치가 뭔가?”
“여덟 근이오· 아니 하남 놈들은 열다섯 근짜리 망치를 찍어낸단 말이오? 도대체 그걸 어디다 써?”
“망치를 집 짓는 데 쓰지 어디다 써? 애먼 놈 대가리라도 깨게?”
“하· 여덟 근수를 써도 일 각이면 지쳐서 나가떨어지니 거리 전체를 뒤져도 열 자루 나올가말까 한 것이 장추요· 무슨 열다섯 근짜리 장추를 쓴다고·”
“본녀는 항우장사를 신주로 모신다· 열다섯 근 장추도 가벼운 것이니 본래 쓰던 이십 근 철추가 깨어져 버린 것이 큰 한이지·”
“이십 근? 하· 그럼 여덟 근 정도야 아주 젓자락처럼 쓰시겠소? 어디 그 신명나는 망치질 한 번 볼 수 있겠소?”
“쯧· 보는 거야 상관없다만· 대신을 의심했으니 큰 화를 입게 될 거야· 그래도 상관없나?”
“흥· 너희 무녀들이란 꼭 그런 식으로 사람을 홀리지· 썩 꺼져 무슨 돌팔이 같은 년이 돌팔이 같은 복장을 하고-”
코웃음을 치던 철장의 말이 뚝 멎는다·
길고 가늘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손이 여덟 근 장추를 쥐고 가볍게 들어 올린 탓이다·
그리고는 휙휙 위아래로 까닥까닥 거리는 양이 나뭇가지라도 휘두르는 모습이다·
“영 무게가 안 사네·”
그리고는 옆에 놓인 쇠정을 휙 던져 망치머리로 툭툭 올려쳐 계속 띄워대는 것이다·
망치는 다른 도구와는 근수를 부르는 말이 달라서 여덟 근이라 하면 순수하게 망치머리의 무게만을 센다·
네 척은 되는 망치자루의 끝을 한 손으로 잡고 길쭉하게 생긴 그것도 묵직한 쇠정을 툭툭 올려쳐 반 장 높이로 치고 받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철장의 입이 떡 벌어진 채로 하늘을 날다 떨어지는 쇠정를 따라 고개가 위 아래 위 아래·
깡 깡 깡 쇠정 올려치는 소리·
안 그래도 시선 집중이던 청의 자칭 영험한 무속인 복장에다가 그 기사를 본 철방 거리의 철장이며 손님들 역시 얼이 빠져서 그 신기를 구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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