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7
때아닌 볼거리에 철방 거리를 돌아다니던 이들만 횡재를 봤다·
자나 깨나 먹으나 항상 작은 화면으로 광대의 재롱을 실시간 구경하는 청의 고향과는 달리 이 원시한 고대에는 볼거리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깡깡 무게감 없는 가벼운 망치질 소리 따라서 철정이 오르락 내리락·
사람들의 시선도 오르락 내리락·
이 시대의 사람들이란 현대인들보다는 훨씬 친화력이 높은 편이니 나중에 온 이가 먼저 구경하는 이에게 묻는다·
“히야 아주 장사가 따로없네· 무슨 약 판대요? 요즘 허한데 한 병 사가야겠는데·”
“약 파는 게 아니라 토목선녀라는데요?”
“토목선녀? 왜 집이라도 지을 것 같은 아· 진짜 집을 지으신다고· 이야 망치 놀리는 거 보니 집 잘 짓겠네·”
“저거 진짜야? 속 빈 망치랑 나무못 같은 걸로 약파려는 수작 아녀?”
“무게감이랑 소리가 다르잖수· 그리고 약 파는 거 아니고 항우장사를 모셨다는데 저 철장이 의심하니까 보여준다고 저래·”
“항우장사도 놀라 자빠지겠구먼·”
“무슨 약 파는 사람이랍니까? 와 저저거 가슴 좀 봐· 열 근은 나오겠네· 혹시 가슴 커지는 약 판답니까? 내자 좀 사다주게·”
“약장수가 아니라 토목선녀 하남제일목수라고 아니 씹· 뭐야 내가 무슨 약장수 따까리야? 왜 나한테 다들 한마디씩 물어봐? 그리고 한번 말하면 듣던가 약팔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야 만만해서 물어보기 좋은 인상을 하고 있으니 다들 붙들고 물어볼 뿐이지만·
그러다 청이 철정을 크게 때린다·
저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철정·
그리고 청이 손을 들어 여덟 근 망치를 번쩍 치들고는 그대로 찍어내린다·
쿠웅!
발로 느껴지는 둔중한 진동과 함께 꽁꽁 언 겨울 바닥에 철정이 머리까지 쏙 파고들어 둥근 정머리만 대지 위로 빼꼼이다·
그에 구경꾼들의 눈이 단체로 짜부라지며 내가 대체 뭘 보았는가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신기가 맞는가 목을 빼고 바닥을 살피기를 한창이었다·
청이 철장을 보며 말했다·
“쯧· 내가 대신을 모셨으니 하남제일목수로 이름이 높았겠지· 아직도 의심해? 의심병이 지랄병인 거 몰라? 횡액이 닥쳐도 난 이제 모른다?”
철장이 달려나와 바닥에 박힌 둥글게 망치 모양으로 반 치쯤 내려않은 정중앙에 박힌 철정을 더듬는다·
그리고 불쌍한 철장은 덜덜 떨었다·
“아이고 아이고 소인이 소인이 눈이 어두워서 신인을 두고도 알아보지를 못해서 부디 노하지 마시옵고·”
“음· 아니다· 대신께서 몸을 잘 풀었다고 전해달라고 하시네· 그러니 그리 떨 필요는 없어· 그리 떨다가 지진 나겠네·”
“아이고 감사 감사합니다!”
철장이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린다·
음· 쪼끔 미안한걸·
청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일부러 힘을 숨김 해놓고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됐고· 앗 장군님! 예 마음에 드십니까? 예· 예· 그럼 값을 치르겠습니다· 예· 은자 스물이요? 이런 걸? 아· 예·”
청이 미친년처럼 저 혼자 묻고 대답하더니 전낭에서 원보를 하나 꺼내놓지 않는가·
“대신께서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니 내 값을 치러야지· 모자라진 않지?”
“아이고 대신께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제가 공물로 바칠터이니-”
“이놈! 대신은 강도가 아니야! 패왕께서 스무 냥이라 하시면 스무 냥이지 어디서 감히 토를 달아? 대신께서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질 못하고·”
“아이쿠 소인이 생각이 짧았습니다요· 부디 노여움을 거둬 주시지요·”
청이 대답은 없이 망치를 질질 끌며 자리를 떠난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우르르 철장에게 몰려들어서 정확히는 철장 발치에 있는 망치 자국으로 몰려들어 확인을 해 본다·
히야· 아주 제대로 박혔네· 이거 잡을 데 없어서 뽑지도 못하겠는걸·
하남제일목수? 거기는 저 정도나 해야 제일목수 소리를 듣는겨? 광동제일목수는 이런거 못 햐?
항우장사를 모신 무녀라지 않나· 역발산기개세라 하더니 저 무거운 여덟 근 장추를 아주 젓가락 휘두르듯이 하는구만·
이쯤이면 충분히 목적 달성이다·
괜히 무릎을 꿇은 철장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두 배로 값을 치렀으니 무릎 꿇은 값은 톡톡히 쳐 준 셈이기도 하고·
청이 망치머리를 땅에 질질 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안 그래도 눈의 확 띄는 오색 의복에 부적을 두르고 망치머리 질질 끄는 소리를 내니 그 이목이 오죽 쏠릴까·
혹시 또 재미있는 것 좀 안 하나 한겨울 농한기에 할 일 없는 양민들이 그 뒤를 졸졸 따른다·
그렇게 꽁무니에 군중 붙인 채로 토목선녀가 닿은 장소는 한참 목조 뼈대 올리는 건축 현장이다·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 인간을 초월한 청력으로 잘 집중해서 망치 소리 톱질 소리 헛둘헛둘 합 맞추는 기합성을 따라온 것 뿐이지만·
집 짓던 목수들이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이던가 그리고 웬 사이비 무녀가 망치를 들고 찾아왔는가 일손을 멈추고 멍하니 이편을 바라본다·
그에 청이 턱· 망치를 붕붕 가볍게 돌려대다 땅에다 퍽·
그리고는 손잡이 끝에 손바닥을 올린 채 삐딱하게 서서 말하는 것이다·
“이보시게· 일손 좀 안 모자라나? 본녀는 하남에서 온 하남제일목수 토목선녀인데 광동 목수들이 그렇게 실력이 좋다 해서 한 수 배우러 왔네·”
“목수? 망치 잡는 걸 보니 문외한은 아닌 모양인데· 무슨 목수가 복장이 그렇단 말요?”
“본녀는 목수이지만 또한 신녀다· 천하의 토목을 다 배우는 것이 본분이야·”
“아니 목수랑 신녀가 무슨 상관인데-”
“어허! 내 토목이라 하지 않았느냐· 토란 땅이고 목은 나무다· 목수는 땅과 나무를 이어서 음 주거를 맺는? 목자?이니 음 그러니까 널리 이롭게 하여 홍익인데 뭐 대충 그런 이유로시지 뭐시냐· 아 맞다 그래· 본녀가 이후에 천하를 아우르는 패왕의 사당을 지을 것인즉·”
방금 되게 필사적으로 궁색하지 않았나?
목수들의 고개가 삐딱하다·
저게 대체 뭔 수작질인가 괜히 집 짓는데 부정 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다고 쫓아내기엔 집 짓는 중에 무녀를 쫓아내면 터주신이 노할 일인지 아닌지 뭐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어야지·
그에 청이 한 줄 덧붙였다·
“일당은 필요 없으니 일이나 배우겠네·”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은혜! 공짜!
그에 목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정파와 사파 문파는 이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지역을 대표하거나 지역의 명산 혹은 좋은 한자 모아서 이름을 짓는 정파와는 달리 사파라는 놈들이 저네 이름을 쓰기로는 어째 불길한 이름들 뿐이다·
이는 흑도 방파의 개파조사들이 하나같이 늦은 사춘기가 와서는 아니다·
본래 건달 집단이란 남들보다 쎄 보이는 이름을 짓기 마련이고 그런 놈들이 남의 조직 제끼고 몸집을 불리다가 큰 장원 하나 먹으면 흑도 방파가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러니 조직 이름이 참으로 수상하고 꺼림찍하다는 사실은 사실 사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포상이라고 하겠다·
이름부터가 거 제대로 된 놈들은 아니겠는가 싶지 않은가·
물론 흑도에서 말하는 파는 정파의 파와는 다른 파다·
정파의 파는 화산파 종남파 무당파처럼 도문을 뿌리로 둔 문파에서 쓰는 것이고 사파의 파는 우리 조직이라는 뜻에서 파다·
어쨌거나 광동진가의 영향력에 꽉 눌려 있던 광주였지만 시기상으로는 무림대회 도중으로부터 복귀까지 삼 개월 동안 아예 광주 땅에 진씨가 존재하지 않았더란다·
그러니 순식간에 흑도 방파의 전국 시대가 열렸다가 지금은 흑도의 세 방파 흑월파 광주선방 금적방이 광주 땅을 꽉 틀어쥔 것이다·
돌아오고 나서도 장례에 바쁘고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이 꼴이니 사파들로서는 이 참에 아예 확 판도를 굳혀버려야 한다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번뜩이며 주시하는 대상은 당연히 돌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목수 겸 무녀인 토목선녀다·
흑월파 문주 이왕출 역시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그 토목선녀란 년은 지금 뭐 하고 있지? 진가장 공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게 광주 공사판을 돌아다니면서 공짜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이왕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공짜로? 왜?”
—-
청은 몸 쓰는 일은 뭐든지 잘한다·
본래 재능이 있었는지 아니면 힘과 균형 및 예민한 감각 등등으로 어디 하나 인간과 같지 않은 초월한 신체 덕분인지는 모른다·
“어이 김씨· 똑바로 좀 세워 봐· 아니 사내새끼가 세우는 게 시원찮아서 어디다 써? 저기 신녀님 좀 봐라· 아주 잡기만 하면 벌떡벌떡 세우지 않나·”
“그야 여인이니까 벌떡 세우지 사내가 세우나·”
그에 낄낄 웃음이 터진다·
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주 뚫린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하네· 세우기는 뭘 세워? 콱 박아주랴? 본녀가 팔뚝만한 말뚝이 하나 굴러다니는 걸 보았는데·”
“평생 측간 봐주려면 박아 보시오·”
“내가 박으면 앞에 기둥에 박을 텐데 측간은 무슨· 광목천 두툼하게 차고 다니다 하루에 두 번씩 갈아끼우면 그만이지·”
그에 장목수 염 씨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낄낄 웃음소리가 다시 터져나오고 괜히 할 말 없어진 염 씨가 투덜거린다·
“신녀라더니 목소리 한 번을 안 떨어·”
“그야 그 얼굴로는 어림도 없지· 희롱도 얼굴이 생겨먹어야 통하는 법이야·”
또다시 낄낄 웃음이 번진다·
일 잘하고 입담 좋은 토목선녀는 겨우 닷새 만에 광주 공사판을 휘어잡았다·
그야 일을 보통 잘해야지·
혼자서 열 사람이서 힘쓸 일을 해대는데 이는 단순히 열 사람 아끼는 것이 아니다·
기둥 하나 세우려면 일단 열 사람이 붙는데에 시간이 걸리고 합을 맞추고 호흡 맞추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리고 그 사람들이 저마다 하던 일이 있음에도 달라붙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작업 끊기고 누구는 놀고 누구는 힘쓰다 힘쓴 놈이 힘쓰고 나면 저 허리 아프다고 쉬고····
이렇게 단체로 힘을 써야 하는 작업을 혼자서 척척척 스스로 항우장사로 끝내놓으면 작업 속도는 열 사람 돕는 이상으로 훨씬 더 빨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를 도우면 완공이 열흘은 당겨진다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토목선녀 떴다고 하면 온 공사판의 전주가 달려든다·
제발 일을 좀 해주고 내 금은을 좀 가져가라며 사정을 하는 판인 것이다·
“됐고· 오늘 귀 올리는 집 있나? 둥글게 모 올리는 것 좀 배워보려 하는데·”
“신녀님 저희 이번에 지붕 올립니다! 오후에 한 채 통째로 맡겨 드릴 테니 저희랑 함께하시죠?”
“오· 그래· 어디야? 방선가? 그래·”
청이 요즘 느끼는 것이 의외로 목수 일이 천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낙녕에서 배운 방식과는 기본적인 쩌귀 끼우는 법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보니 목수라고 해도 다들 방식이 다르기도 하고·
“뭐야 나무를 이렇게 끼운다고? 이러면 나중에 흔들리지 않아?”
“어차피 앞뒤로 돌벽이라 상관없수· 왜 하남에서는 어찌 끼우길래?”
“이렇게?”
“오오· 뭐야· 이건· 세상에· 신묘하구만·”
오직 나무만 쓰고 못을 거의 안 쓰는 쇠못은 아예 안 쓰는 하남식 건축은 광동 목수들에게도 신세계다·
광동은 나무가 겉으로 나오지 않아 그냥 꽝꽝 대못을 박아넣기 때문에·
그러니 청이 하남식의 기예를 풀면 광동 목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다·
“내 이건 새끼한테도 아직 안 알려준 건데 여기 아교 바르는 데가 있잖여···”
“여기 누름돌이 이렇게 황토랑 짜서 깊이 박아주는 거요· 물 차는 바닥이라 이래놔야 나중에 기울지가 않지·”
“기둥을 가시겠다고? 아이고 그렇게 하면 벽돌 다 떼어내야 해· 차라리 이렇게 하쇼· 달리 들어다가 쌍으로 들보를 치면·”
“아유 그러면 그 공간을 어디다 써? 그냥 임시로 받쳐다가 베어내고 짜서 맞춰놓는게 낫지 않남?”
“그런데 바닥? 반대로 하면 되려나?”
“청석까지 갈지 안 갈지 결정해야지·”
청이 장목수들에게서 집을 허물지 않고 자재만 쏙 가는 방법들에 대해 물어보면 저들끼리 이리저리 이야기하며 좋은 발상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닥이 잡히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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