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9
살월파는 현 광주의 삼대 사도다·
어떻게 문파 이름이 살월이냐고 할 수도 있다·
살월파의 문주에게 늦은 사춘기가 와서가 아니고 본래 사파들은 남들보다 세 보이는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청이 알았다면 너무 강한 이름은 오히려 약해 보인다고 하겠지만 어쨌든·
조직 이름이 사악하고 꺼림칙하다는 것은 사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포상이다·
이름부터가 제대로 된 놈들은 아니겠구나 싶지 않은가·
어쨌거나 광동진가의 영향력에 꽉 눌려 있던 광주였지만 시기상으로는 무림대회 도중으로부터 복귀까지 삼 개월 동안 아예 광주 땅에 진씨가 존재하지 않았더란다·
그러니 순식간에 흑도 방파의 전국 시대가 열렸다가 지금은 흑도의 세 방파 살월파 광주선방 금적방이 광주 땅을 꽉 틀어쥔 것이다·
여기에 진가의 직계들이 돌아오고 나서도 장례에 바쁘고 상실을 추스르지 못했다·
사파들은 이참에 아예 확 판도를 굳혀버려야 한다면서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지금 그렇게 시퍼런 눈빛으로 주시하는 대상은 장안의 화제 정체불명의 목수 겸 무녀인 토목선녀다·
살월파 문주 이왕출은 못마땅하다·
“오늘 공사가 있었다면서? 자재가 제법 나왔다던데?”
“한 채 분량이 안 된답니다· 형님·”
“어쨌거나 공사를 하긴 했다는 거 아냐! 이대로 놔두면 또 어영부영 인부들 모이고 그러다 보면 하인들 모이고 순식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는 거지·”
“애들 보낼까요? 형님?”
“씨벌 그놈의 형님 소리 좀 안 떼? 우리 살월이 사도명문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형님이야? 문주님! 문주님 몰라? 총관이란 새끼가 말끝마다 형님형님 그러면 애들이 뭘 보고 배워?”
제대로 된 문주라면 제자들을 보고 애들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문주님· 알겠습니다· 문주님· 형님·”
“이 새끼가?”
“입에 붙어서 그렇습니다· 형 아니 문주님·”
총관 왕우가 급히 눈을 깔았다·
물론 입에 붙어서 그럴 리가 있겠나·
일부러 형님형님 말끝에 붙이고 다니는 중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 같은 방가 놈이 책사랍시고 두목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지 않겠나·
그러니 애들 보라고 일부러 형님형님 내가 문주님 직속 아우다 형님도 이 아우를 섭섭하게 하는 거 아닙니다 하고·
그러니 문주 타령하는 형님이 서운하기만 하다·
이는 절대로 좋은 징조가 아니다·
사파 놈들의 서운함이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운함보다 훨씬 위험하고 비열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쯧· 애들 시켜다가 작업 쳐놔· 사지 분해해다가 저자에 던져놓으면 아무리 간덩이가 부운 놈이라도 진가장 공사 한다고 달려들지는 못하겠지·”
“잠깐· 총관께서 직접 나서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듣자하니 토목선녀가 항우장사와 같은 괴력을 가졌다는데 어설픈 놈들로 건들다 놓쳐버리면 일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개뼉다구 방 책사가 하는 말이다·
왕우가 눈을 부라렸다·
“뭐야? 그딴 사이비 무당년 하나 조지는 데 살월의 이인자 대 살월문 총관이 직접 나서야 한단 말이냐?”
“제가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아랫것 시키면 아랫것이 또 아랫것을 시키니 대체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이게 뚫린 입이라고·”
“그만·”
이왕출이 무게를 잡았다·
“책사 말이 맞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 너한테 맡기려는 것이 아니냐· 듣고 보니 너 말고 다른 놈 손에 맡기기도 미덥지 않고·”
“크흠· 형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야 이 아우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형님·”
끝까지 형님을 붙이는 왕우다·
그렇게 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책사를 한번 매섭게 노려보고는 몸을 팩 돌려 나가버린다·
방에 남은 이왕출이 혀를 쯧 찼다·
“저 새끼 저거 좀 불손한데·”
그에 방 책사가 곱게 대답한다·
“전부 충성의 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문주님께서 좋은 아우를 두셨으니 참으로 복된 일이지요· 다만 이제 한 지역의 패자로서 큰 집단에 걸맞은 언행을 갖춰야 할 텐데 성격을 생각하면 총관보다는 차라리 전투부대의 장을 맡기는 편이 서로에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렇다니까· 왕우 저놈은 방 책사가 이리 저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그에 방 책사가 별말씀을 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장원 거리 남쪽에는 별장 거리 해변을 끼고 재력가들의 별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개중 한 채에 괴상한 장식이 붙은 상태였다·
처마에는 온갖 색색의 천을 붙여서 펄럭펄럭 휘날리며 대문에는 온갖 부적이 붙어 불길하니 귀신을 봉인해놓은 꼴이다·
그리고 그 위에 피로 글씨를 써 놓았다·
닭피인지 돼지피인지는 모르겠지만 으스스한 외양과는 달리 글씨는 천하일절이라 아울러 기괴하기 짝이 없는 꼴이다·
항우장사대신 우미가인지당·
항우신을 모시는 우미인의 사당이라고·
지나는 사람마다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글귀이기도 했다·
항우장사대신이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우미인의 사당이라니·
우미인 우희는 중원 오대 미인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삼 군 절세미녀다·
모든 중화인의 이상형 고금제일미녀 서시가 일 군 왕소군 초선 양귀비까지 중원 사대미녀의 나머지 셋이 이 군·
그리고 남은 자리에 우희 달기 비연 등 삼 군 절세미녀를 채우기 때문에·
제 얼굴에 금칠을 해도 유분수지 무슨 벌 쫓는 망사 따위를 뒤집어쓴 얼굴 가린 무녀 주제에·
자기가 우미인이라 주장하는 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년 얼굴 함 까보자고·”
“크큭 망치 형님· 면상 가려놓은 년이 뭐 볼 게 있다고 깝니까? 괜히 보고 입맛만 버리면 벌떡 설 것도 죽어버리지· 그냥 얼굴 가려놓고 돌리죠?”
그에 망치가 뒷통수를 톡 건드린다·
망치는 살월파 총관 왕우의 오른팔이다·
절대 앞짱구와 뒷짱구가 합쳐셔 망치와 같은 두상 때문은 아니고 사람을 산 채로 망치질해 으깨는 것을 좋아해서 망치라고 불린다던가·
망치가 제일 앞에서 으스대고 있었으니 이는 왕우가 명령을 어기고 기어코 아랫사람을 시켜 먹었다는 뜻이다·
“그년 덩치 못 봤냐? 입맛이고 자시고 망치 휘두르는 거 보면 아주 근육이 아주 말근육일껄· 근육뿐인 년을 안고 싶냐?”
“오히려 좋습니다·”
“미친놈·”
사파 놈들에게 음담패설이란 호흡과 같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놈들이 제 가랑이 사이의 물건을 마음껏 휘두르려는 음란한 포부를 이루기 위해 사파에 입문하기 때문이다·
강해져서 뭐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특히 여인을 마음대로 하려는 원대한 이상이니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그리하여 한 놈이 담을 타 넘는다·
그래도 훌쩍 매달려 가볍게 담을 타넘는 몸놀림이 날래다·
그렇게 넘어간 놈이 대문을 연다·
대문에 달아놓은 방울들이 짤랑짤랑 울리는 통에 사파 무인들이 일제히 움찔했지만 축시 경 야심한 겨울밤에 인기척은 없다·
“뭔 방울을 이렇게·”
“무당이라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에잉· 소름끼치게·”
고급 별장이라 마당은 널직한데 건물은 홀로 외롭게 하나만 서 있을 뿐이다·
“야 막내들· 망 좀 보고 있어·”
“저희 말입니까?”
그에 망치가 막내의 머리를 툭·
“짜식이· 이제 머리 좀 컸다고· 아우들 좀 두고 있다 이거지? 즐길 때 되면 불러줄 테니까 혹시 수상한 놈들 없나 잘 보고 있으라고·”
토목선녀의 괴력은 유명하다·
혼자서 기둥 들어다 박는 모습을 보면 괜히 항우장사를 모셨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러니 토목선녀 잡으라고 불려 나온 사파 무인들도 제법 칼밥 좀 먹었다고 하는 중급 무사들이다·
둘을 남기고 별장으로 조심스레 접근하는 사파 무인들·
막내와 막내 선임 둘이 그 모습을 뚱하니 바라보다가 선임 쪽이 어깨를 툭 건든다·
“너는 대문 쪽에서 누가 오나 안 오나 잘 듣고 있어· 나는 저쪽을 한번 둘러볼 테니까·”
창고와 하인 숙소 주방은 담벼락과 일체형으로 지어놓는 것이 보통이다·
선임이 턱으로 가리키는 곳이 바로 담벼락 안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건물이다·
“에이 창고 터시려는 거 아닙니까? 같이 가시지·”
“이게 조장 달았다고 아주 간덩이가· 형님 말에 토 달게 되어있냐?”
“···아닙니다·”
“잘하자· 알겠지?”
막내의 표정은 뭐 씹은 듯했다·
새 제자가 잔뜩 들어온 지금 저도 조장 나도 조장인데 언제까지 형님 행세를 할 셈인지·
하지만 더러우면 먼저 입문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막내가 숨을 스으읍 크게 들이킨다·
한숨을 쉬기 위해서다·
답답해서가 아니라 저 새끼 귀에 들리라고 아주 신경을 긁기 위한 가짜 한숨을 내뱉으려는 참이었다·
와락·
갑자기 입을 틀어막는 우악스러운 손길·
동시에 목이 죄어와 숨통이 꽉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막내가 발버둥을 쳐 보지만 그러자 아예 무언가 몸통을 받쳐 들어올리지 않겠나·
허공에 뜬 발이 바동거리다 결국 어느 순간 축 아래로 쳐져버리고 만다·
한편 창고로 들어간 놈이 후우 반가운 숨을 내뿜는다·
그래도 벽을 둘렀기 때문인지 창고 문을 열자마자 뜨뜻하니 온기가 새어나왔으니까·
안 그래도 추운 밤에 이 무슨 짓거리인가 하던 참이니 놈이 화색을 띠며 온기가 다 새어나갈세라 다급히 창고로 들이친다·
“웬 창고에 불을 다 피워놨대?”
아닌 게 아니라 은은하게 화광이 비치는 것이 숯불이 남은 화로를 들여놓은 모양이었다·
“어우 따뜻하니 살 것 같네·”
올해는 윤달이 끼었으니 지금이 이 월이 가장 극심한 추위가 밀어닥치는 시기에다 야밤에 또 가장 추운 시간이 아니겠나·
물론 청이 느끼기로는 이게 무슨 추위냐 호북성의 초가을도 이것보단 춥겠다면서 콧방귀를 뀌겠지만·
하지만 광주 토박이는 이조차도 춥다·
그러니 화색을 띄며 냉큼 들어와 온기에 녹아나 자글자글 피는 피부의 열감을 즐기며 화로를 향해 다가간다·
그러다 문득 저를 멀뚱히 바라보는 한 사내와 눈이 딱 마주친다·
한 사내가 아니다·
사내들· 어째서인지 바닥에 요 깔고 침낭 말아 누워있던 사내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누-”
“그만·”
내공이 실린 음성이 사파 무인의 말문을 막는다·
“내 진자강이라 하네· 자네도 내 이름은 알겠지?”
그야 진가주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광주 땅에 있으리라고·
사파 무인이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래봐야 적은 많고 하나같이 살벌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다·
“조용히 하지· 소리를 지르면 안타깝게도 내 자네를 죽일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에 혹시 작은 소리라도 샐까 사파 무인이 제 입을 턱 틀어막는다·
그리고 탁 창고 문을 닫는 소리·
“무릎을 꿇어 주겠나?”
그래도 제법 정중한 말에 용기를 얻은 사파 무인이 파팍 무릎을 꿇었다·
원래 사파인의 무릎은 가볍다·
“자네를 좀 묶어둘 생각인데 반항하면 무척 힘들게 될 걸세· 반항해 보겠나?”
“아니요 아닙니다·”
“음· 말은 잘 듣는군·”
그에 중년 사내 진가주 진자강이 눈짓을 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파 무인이 꽁꽁 묶인 채로 바닥에 눕는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명 막내가 축 늘어진 채로 꽁꽁 묶여 그 옆에 던져진다·
진가 무인들이 하나둘씩 창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진자강이 그 뒤를 따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창고 문을 붙들고 말한다·
“아 이런· 그런데 내 소리를 안 질러도 죽일 것이라고 내 말을 했었던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마음의 정리라도 좀 하고 있게나·”
“으읍-!”
사파 무인이 뒤늦게 소리를 질러 보지만 끼익 탁· 창고 문 닫히는 소리 혼자 그에 대답해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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