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5
누구 아들내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 목소리 한번 우렁차네·
청이 생각했다·
청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냥 여기 모인 누군가의 아들이구나 싶을 뿐이다·
다만 효심이 꽤 지극한 아들인 모양이지?
어디 멀리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나?
청이 안긴 채로 고개를 쭉 빼어보니 안대를 쓴 멀끔한 청년 하나가 다가오는 중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갑자기 순도 십 할의 반가움으로 미소를 빚어내지 않는가·
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바라본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일제히 눈을 빛내는 무녀댁 예비 손님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나 큰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다·
아들 보고 반가워하는 여인은 없는데?
“뭐지? 헉·”
고개를 다시 돌린 청이 깜짝 놀랐다·
저만치 있던 청년이 어느새 견포희 앞에 척 다가와 있지 않겠나·
그리고는 대뜸 땅바닥에 엎드려 정수리를 내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소자! 인사를 드립니다!”
청이 눈만 끔뻑억 끔뻑억·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에 청이 믿기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의매?”
“응·”
“조카야?”
“응·”
“애엄마 아니라며?”
“응·”
응이 아니라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나?
청이 질문은 바꾸었다·
“얘 아니 이 분은?”
“조카·”
“의매 아들이야?”
“아니?”
“그럼 혹시 또 누구랑 의자매 맺었어?”
“아니? 난 의매 하나뿐인걸?”
또 미궁 속에 빠지는 대화다·
어쩐지 이루수를 묻는 느낌이라 청이 딱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니 그럼 대체 누구 아들인데?”
“의매·”
“의매는 나잖아·”
“응· 의매· 의매 아들·”
“내 아들?”
“의매 아들·”
청의 표정이 확 썩었다·
이건 또 대체 무슨 소린데?
의매 호소인에 이어 아들 호소인이야?
물론 의매는 호소가 좀 간절해서 내 겨우 정규직 의매로 간택해주기는 했지만·
“저기요? 그 누구신데 아들 아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어머니! 접니다! 저! 소자 ···접니다!”
아직 이름 없는 청년이다·
누구라고 밝힐 명사를 찾지 못하니 그저접니다만 반복할 뿐이다·
청이 질색했다·
“아니 어머니라니 큰일 날 소리를·”
그에 청년의 목소리에 절망이 서린다·
“어찌하여 소자를 받아주시지 않으십니까! 분명 착하게 지내라고 착하게 지내며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만날 것이라고 찾아와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청년의 목소리가 절절하다·
거기에 담긴 설움과 절망 울분 등등의 한이라고 할 것에 좌중이 수근거린다·
저거저거봐요 아무리 봐도 그거죠?
일백 밤 자면 찾으러 온다 그런거 아녀·
토목선녀가 신통력은 있어도 모성은 없는 모양인가봐· 아들 버려놓고 모른 척하는 거 아냐?
“아씨· 돌겠네· 이봐요 대체 누구신데 우리 언제 본 적 있어요?”
“소자가 얼굴이 많이 변해 알아보지 못하시는 겁니까! 접니다! 저 그 저!”
“아니 접니다가 아니라· 누구신데요·”
“아직 이름을 받지 못해 밝혀드릴 이름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아직 내려주시지 않으셨잖습니까!”
그에 잠시 정적·
그리고 수군수군·
뭐야 이름도 안 지어줬어?
야 독하다 독해· 저 정도 독해야 저주도 막 때려잡고 하는 모양이다·
이름도 안 지어주고 떠난 어미 찾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온거? 세상에 나 같으면 아주 천하의 원수처럼 여겼을 건데·
그래도 지 어미인데 어떻게 해· 고아로 자라다 보면 지 어미만큼 그리운 게 어디 있다고·
“뭐야 이야기꾼들 났어? 조용히들 못 해? 신통력 맛 좀 볼 것이야?”
청이 군중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때였다·
“협객님!”
어디서 쪼르르 열댓살 계집아이가 하나 톡 튀어나오더니 사내의 어깨를 붙들고는 일으리켜 낑낑 애를 쓰는 것이다·
“그만 하세요! 협객님이 왜 무릎을 꿇고 계시냔 말이에요! 선녀님도 정말 너무하세요! 어떻게 어미가 자식을 버리고 그래욧!”
“진짜 돌겠네····”
“선녀님은 모르시겠지만 협객님이 저랑 엄마를 구해주셨어요! 분명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러하셨을 거예요! 그런 분이시란 말예요!”
그에 청년이 항변을 시도했지만·
“아니· 그건 그냥 나쁜 놈이 있어서 착한 일 하려-”
“시끄러워요! 협객 오빠가 뭘 알아요!?”
“? 내 일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안단-”
“저도 같이 무릎을 꿇을게요! 어머님! 협객 오빠를 받아주세요! 네!? 일단 같이 지내기라도 하다 보면 정이 붙을 거 아니에요?”
그러고는 털썩 청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청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대체 이건 또 뭔데?
아들 호소인에 이어 이번엔 며느리 호소인이야?
아니 왜 내 가족관계들이 하나같이 내 의사랑 상관없이 저네들끼리 호소하는데?
언니 호소인· 아비를 호소하는 할아범에·
어미 호소인 황후마마에·
이젠 아들까지? 며느리랑 한 묶음으로?
청이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며느리 호소인의 분전에 힘입은 군중들이 호응했다·
“받 아 줘!” “받 아 줘!” “받 아 줘!”
아주 짜기라도 한 듯이 세 박자로 받아줘를 연호하니 처음에 시작한 놈이 누군지 확인도 못했는데 어느새 군중 전체로 번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받! 아! 줘!” “받!! 아!! 줘!!”
“아씨 무슨 공 양보하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애를 받아주라고·”
차라리 공이 낫다·
적어도 공은 애를 주라는 소리니까·
애를 입양하라는 소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것도 떼로 몰려서 무슨 행사에 상품 떠넘기듯 이러고 앉았으니·
거기다 받아줘 소리가 저기서만 들리는 것도 아니었으니·
“바 다 줘· 바 다 줘·”
“의매 의매까지 이럴래?”
“하지만 조카는 나한테도 잘해줬는걸· 이모는 조카 찬성이야·”
“···하아·”
청이 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청년의 머리 위 십이 점이 찍힌 선업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숨을 푸욱·
나쁜 놈은 아닌데 대체 뭐야?
의매랑 어울리는 거 보면 얘도 어딘가 좀 모자란 친구인가?
“일단 사실관계부터 정리하자구요·”
동네 사람들 죄다 몰려와서 문전성시 말 그대로 문 앞에 시장바닥처럼 죽 늘어선 상태가 아니던가·
일단 소문부터 수습해야지·
“나는 애는커녕 아직 혼인도 안 했어요· 지금 그쪽이 내 배에서 나왔다고 하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하지만 배에서 나왔다고 모두 자식은 아니듯이 배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남은 아닌 것이지요· 이모님 역시 한 배에서 나오신 친자매는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매잖아· 다들 들었지? 진짜 내 애가 아니라고· 애초에 내가 이런 장성한 자식 볼 나이도 아니잖아· 딱 보면 몰라? 눈 달고들 뭐해?”
그에 군중들이 멋쩍게 시선을 피한다·
한편으로는 조금 억울함을 느꼈다·
얼굴에 벌망 같은 걸 뒤집어쓰고 젊은 무녀인지 늙은 무녀인지 어떻게 보면 알아?
“두 번째· 우리 언제 만난 적이 있어요? 내가 다음에 자식 삼아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냐구요·”
“예· 삼 년 전의 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을 꾸짖어 주시고 착하게 살라고 야단을 쳐 주셨지요·”
“삼 년 전? 여름?”
청이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때면 마교에 납치되어 있을 때 아닌가?
문득 청년의 얼굴이 낯이 익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청년의 말이 이어진다·
“그 순간 저는 다시 태어나고 말았으니 태어나게 하신 은혜는 당연히 어미가 자식에게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저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내 의사는요···?”
“하지만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착하게 살면 받아주시겠다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았습니다· 이는 이모님께서 증명해 주실 겁니다·”
“응· 응· 조카가 참 착해· 나는 조카 하면 좋겠어· 의매만 괜찮으면·”
“아씨· 또 미궁이네· 자 나머지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자 다들 들었지? 내 자식 버리고 도망갔다던가 어디 가서 없는 소리 지껄이고 다니다간 내 저주를 몰아다 끼얹어버리고 말 것이야·”
그에 군중들이 눈을 깔았다·
일단 기세로 외쳐보기는 했는데 함부로 대거리를 치기에는 항우장사 모신 토목선녀가 너무 무섭다·
게다가 사정을 듣고 나니 진짜 자식 버린 매정한 어미도 아니다·
오히려 청년 쪽에서 일방적으로 자식으로 삼아달라 사정하는 꼴이 아니겠나·
아직 시집도 안 간 노처녀인 모양인데 장성한 양자를 들이려면 기겁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일단 들어가요· 들어가서 이야기해·”
“예 어머니·”
“아씨 아직 어머니 아니거든요? 그리고 넌 또 뭐야? 쪼끄만 게 왜 은근슬쩍 끼어들려고 하는데?”
청이 꼬맹이를 보며 말했다·
“저는 이미 협객님에게 구명지은을 입은 몸이란 말이에요· 제 목숨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 목숨까지 살려줬으니까 가진 건 없고 제 몸으로 제 평생으로 은혜를 갚아드릴 거예요·”
거참 당돌한 꼬맹이네·
청이 그에 청년을 바라본다·
청년은 흠 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미안하지만 아니 미안하지도 않군· 아직 젖비린내나는 꼬맹이는 내 취향이 아니다·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가지? 내 편 들어준 것은 고맙다만·”
“헉 너 너무하세요! 진짜 너무해!”
소녀의 첫사랑이 깨져나가는 순간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위는 아마 소녀의 부모들도 반대를 했을 것이다·
꼬맹이가 얼굴을 가리고 왁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쳐버린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유들유들한 태도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
청은 견포희의 새 미모에 깜짝 놀랐다·
“와 미모 뭐야· 의매 왤케 예뻐졌어? 나 진짜 얼굴 까고 있었으면 오히려 못 알아볼 뻔했네·”
“히힛· 다 조카 덕분에 그래·”
하지만 이어진 말에 견포희의 미모 상승 정도야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너! 지존 호소인!”
“아· 그렇군· 어머님께서 그리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지존 호소인이라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 아닙니까?”
“너 어 어떻게? 왜 왜 선인이 됐어?”
“선하게 살라 하셨으니까요· 정확히는 착하게 살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이후에 웃으면서 보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분명히 헤어질 때의 악업이 기어코 네 자릿수를 찍었던 지존 호소인이 아니었나?
선업 십이 점?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청의 충격은 단순히 천하의 악인이 갱생해서 돌아왔다던가 혹은 하필이면 그 놈이 저를 아들로 받아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던가 하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 이 놈은 진짜 착한 사람인가?
천 점이 넘는 악업이 그에 준하는 선업을 통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그 전에 견포희가 있었고 최리옹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견포희는 선악의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모지리였고 최리옹은 상실로 인한 후회만 남아 껍데기뿐인 인생이지 않았나·
그런데 이놈은?
그렇게 큰 악업을 가지고 있던 놈이다·
선업을 쌓는다고 해서 선인이 되나?
“어떻게···?”
“외양 말씀이십니까? 반로환동했습니다·”
“···?”
문득 아득했던 정신이 콱 잡힌다·
방금 되게 지나칠 수 없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반로환동?”
“예· 현경에 이르게 되면 육신의 나이도 점점 과거로 돌아가게 되지요·”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현경? 분명히 내가 단전을 깨지 않았나?”
“분명 마음만 먹으면 현경까지 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소자가 경지를 막아두고 있었으니 현경에 단숨에 이르러 반로환동의 효능으로 단전을 붙였지요·”
“어 음· 현경이시라고·”
뭔데 갑자기 현경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사람들은 현경의 고수가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경지인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접할 일이 없고 접한다고 해서 또 그 무위를 견식할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청은 방어 무시 호신경 통과 회피 불가의 핵꿀밤을 맞으며 단련되었다·
현경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쓴 자연재해나 재앙 비슷한 것이지·
청이 공손해졌다·
초절(중략)절청 이후로 오랜만에 나오는 청의 본성 강약약강의 발동이었다·
그리고 지존 호소인이 히죽 웃었다·
이 냄새 아니 어머님이시지· 이 향기 두려움의 향기로구나·
그리고 아무리 새사람이 되었다고는 해도 본래 난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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