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7
청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과거 치매 도진 최리옹이 청을 딸으로 여겼을 때도 할아범에게야 할아범 자유지만 내가 죽은 딸 대역을 해 주지는 않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아들 호소인이 어머니로 삼겠다는 정도야 사실 최리옹에 비하면 사실 안전한 편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지존은 누군가의 대역이 아닌 청을 보고 엄마 해달라는 소리를 하니까·
물론 생리적 거부감은 어쩔 수가 없다·
차라리 아들 호소인이 아니라 딸 호소인이었다면 이렇게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같은 자식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들과 딸은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이 사실 아니겠나·
아씨· 현경만 아니었으면 어떻게 핵 투발 등의 수단으로 결사항전 무력으로 짓눌러 거절했을 텐데·
역시 국력은 군대에 있는 법이라더니·
내가 약하니 억지로 양자를 들이게 되는구나· 내 신세야····
어쨌거나 이름을 지어달라 하던데·
다행히 성은 이미 있단다·
천마신교의 신맥은 대대로 염(炎)씨를 썼다고 하니 내 안에 천마 있다 해서 천마를 맡은 정신 기생체가 염씨였던 모양·
그런데 이름은 어찌 지어줘야 하나?
중원에도 막 이름 지어주고 돈 받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이름 지어주고 돈까지 받는건 좀 불합리하지 않나?
이름 짓는 권한을 넘겨받았으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지 않나?
나쁜 놈 죽이는 일이 아니라서인지 청의 사고가 자유분방하게 날뛰었다·
평소의 청이었다·
그러고 있자니 어김없이 날아오는 재촉·
“어머니 내 이름은 언제 나와?”
“좀 진득하게 기다릴래? 아무렇게나 지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갑돌이나 갑순이가 되는 수가 있어요·”
“난 아무렇게나 지어주셔도 상관없는데? 어머니께서 주신 이름이면 아무래도 좋지·”
“그래? 그럼 병할은 어때요?”
“병할? 무슨 뜻인데?”
“염씨니까 염병할·”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될까?”
아무렇게나 혹은 아무래도에 염병할은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
청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됐으니까 일각에 세 번씩 재촉하는 것 좀 그만해 줄래요?”
참고로 일각은 청의 고향 식으로 십오 분이니 일각에 새 번씩 물어보면 오 분마다 한 번씩 내 이름이 뭐야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을 불러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며칠만 좀 진득하게 기다려 봐요·”
“아들이 이름 받는 날을 오십 년을 기다렸다고· 여기서 더 기다리라고 하시면 너무 잔혹하신 거 아닌가?”
“헹· 오십 년을 기다렸으면 더 기다릴 수 있겠네·”
“···? 엄마? 그게 맞아?”
“끄으윽 엄마 하지 말랬지?”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도 못하게 하시다니· 하늘 아래 어찌 이리도 비정한 일이 있단 말인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
“그래 엄마 실격이다요 이 자식아· 엄마라고 부르게 해주는 엄마 찾아서 떠나주지 않을래요?”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는 것이지· 좀 비정하고 심각하게 허약한 어머니라도 내 어머니이신데 어쩔 수 없지· 현경인 아들이 참아야겠군·”
“끄윽·”
청이 분루를 삼켰다·
하다하다 이 초절정 초월 초절정인 초절청 님이 허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그것도 눈깔 팔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어버버거리던 얼간이한테!
세상에 이런 치욕이!
더러워서 현경 찍어야지 진짜·
그런데 현경은 어떻게 찍어···?
—-
간만에 의매의 수발을 받았더니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손가락 하나 까닥거리지 않는데도 저절로 욕실에 도착하더니 자동으로 옷이 막 벗겨지고 향조(비누) 거품이 온몸을 감싼다·
미끄덩하니 전신을 꼼꼼히 비누칠하는 의매의 손길은 참 편안하고 그리고 음 조금 야릇하니 간질간질한 게 뭔가 되게 좋은데 뭐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
그리고 나선 목탕에 퐁당 잠기니 극락이 따로 없이 바로 여기가 극락이로다·
“온도 괜찮아? 불 좀 더 넣어줘?”
“아냐· 지금이 딱 좋아· 음·”
그러고 나니 문득 의매 머리 위의 숫자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
아까는 엄마 소리에 정신이 확 달아나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청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헤멘다·
아니다· 팍팍하게 숫자 따져서 뭐 해·
의매 가슴이나 봐야지·
헤헤· 의매 가슴 대빵 크다· 왕 무겁겠다· 그럼 무겁지· 의매 선업이 아니 선업 주머니 원래 가슴을 보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고향 땅에서 연구 결과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가슴 가슴을 보자· 가슴 보고 무병장수해야지·
오랜만에 청이 주접을 주워 삼키고 있을 때였다·
“의매? 왜 그래? 가슴 만지고 싶어?”
“헉·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오시면·”
“아니· 뚫어져라 쳐다보길래·”
“그으 괜찮으시다면 소인이 조금만····”
“응· 자·”
견포희가 목탕에 명치를 턱 기대놓는다·
덕분에 명치 위에 달린 큼직한 지방덩어리가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편하게 주무르라는 과분한 배려다·
“헉·”
청이 저도 모르게 숨을 토해내고·
꿀꺽 침을 삼키고·
가슴의 효과는 굉장했다!
심장 한 구석을 쿡쿡 찔러 서늘하던 선업 악업에 대한 이유 모를 불안감도 그 몰랑한 감촉에 싹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꺄핫 의매 간지러워·”
견포희가 깔깔거리는 소리가 뿌연 수증기 피어오르는 욕탕에 맑게 울려 퍼진다·
다만 생각하기 싫은 업보 수치 대신에 슬그머니 불순한 악기가 치솟아 그 자리를 채우니 청의 눈동자에 불길한 물감 한 방울이 톡 떨어진 것처럼 번져나간다·
맞다· 의매 만나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 의매· 있잖아·”
“응?”
“의매 무공에 그거 할 때 상대방도 막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는 거지? 그게 어떤 기술인가? 아니면 뭔가 무공 종류?”
“우음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는 억지로 붙드는 쪽에 가까운데· 쾌락이 극에 달하면 누구든지 잠깐 무아의 상태에 이르게 되거든? 아 무아는 내가 없다고 하는 상태인데-”
“나 도사거든? 무아가 뭔지는 알아· 그거 때문에 원시 도가에 채음양이 있는 거잖아· 순간이나마 나를 버리고 자연과 통하게 되는 순간이라면서·”
“응응! 의매는 똑똑하다니까! 무아에 들면 그 순간은 원정 역시 주인을 잃고 무방비해지니까 그때 원정을 뽑아내는 건데· 아 원정은 선천진기랑 비슷한 건데·”
“나도 도사라니까· 원정이 뭔지는 알아· 쓸데없는 서문은 떼고·”
원정은 선천진기의 중심을 이루는 핵으로 신체로 따지자면 기맥의 심장과 같은 역할이다·
심장이 피를 빨아들여 신체에 돌리듯이 원정 역시 사람의 진기를 신체에 붙들어놓는 기맥의 핵심인 것이다·
원정이 단전에 위치하기에 선천진기가 거기에 위치하며 또한 원정이 기를 붙드는 성질을 이용해 내가 공부라는 심법들이 호흡 등의 토납법을 통해 자연의 기를 붙들어 단전을 이룬다·
그러니 원정을 뽑으면 선천진기를 포함한 단전의 기까지 홀라당 뽑혀나온다·
선천진기가 빠지면? 당연히 죽는다·
태연하게 원정을 뽑는다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새삼 의매 역시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착한 일 나쁜 일 구분을 못 하는 건 어디 아픈 거라고 해야 하나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구분을 못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환희궁에서는 최대한 빨리 또 그리고 깊고 큰 무아에 들도록 자극을 주는 건데·”
“그래· 맞아· 그게 무공이라는 거지? 나한테 구결이랑 알려줄 수 있어?”
“알려줄 수는 있는데 부작용이 좀 있어서 그래도 괜찮아?”
“부작용? 뭔데?”
“감각이 둔해져· 아무래도 상대보다 먼저 무아에 들면 안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아 의매도 비전을 익혔으니까 상관없으려나?”
“그래? 오히려 좋아· 당장 하자·”
“응! 지금 바로 불러줄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이었다·
그에 청이 사나운 미소를 짓는다·
의매는 씻고 온다고 하고·
청은 침상에 누운 상태로 머리카락을 촤라락 펼쳐놓았다·
머리가 길면 말리는데도 한세월이라서·
그 상태로 청이 무공창을 연다·
환희요요공· 빨간색 테두리·
온전한 구결을 들었으니 임시 등록이 된 상태다·
수련점을 투자해 익히려니 오랜만에 뇌 주물럭 주물럭 으에엑의 꺼림직함이 떠올라 멈칫거리고 만다·
음· 되게 오랜만에 뇌 주물럭을 하려니까 영 기분이 진짜 개더럽단 말야·
청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다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좋은 말로 부르기를 채음양공·
흔히 말하길 방중술
정체는 원정 빨아먹는 색공·
그런데 이걸 내가 왜 익히려고 하지?
아· 감각이 둔해진다고 했지·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무공창을 열어보니 소녀환희공이 십 성 하고도 막대기가 거의 끄트머리에 있다·
마침 때가 딱 좋다·
십이성 대성에 이르면 무공 효과 가중치도 막대하다·
자동 수련으로 혼자 늘어나는 소녀환희공인데 신경 안 쓰고 있다가 대성에 이르면 그게 전투 중이기라도 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하지 않았나·
그리하여 환희요요공 가성비 육 성·
그리고 오랜만에 뇌가 엉키는 기분·
나홀로 침상에서 눈깔 뒤집고 부들거리던 청이 문득 초점을 되찾는다·
여전히 떠 있는 무공창·
녹림에서부터 크게 한탕 한 덕분인지 눈 먼 상태에서 떠오른 자잘한 임무들을 여럿 해결한 덕분인지 수련점이 상당히 쌓였다·
뭔가 하나 대성을 찍어볼까·
또 정신이 홰까닥할수 있으니까 대정선공이랑 역근세수경 그리고 용상반야호심공은 일단 남겨두고·
아· 전륜마겁 이게 진짜배기란 말이지·
수련점을 확인한 청이 전륜마겁에 몽땅 쏟아부어 단숨에 십이성 대성에 이른다·
그러자 전신 근육이 간질간질 눈도 간질간질 코는 맵고 귀에서는 저적저적 은근히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이 난다·
하지만 뭐 한두번 겪은 일이랴·
신체 능력점이 오르면 갑자기 힘이 세지고 시력이 좋아지고 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좋아지는 동안 계속 이렇게 간질간질 신체가 강해지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앗· 위험한 생각· 다른 생각 착한 생각·
청이 깜짝 놀라 급히 생각을 돌린다·
뭔가 사람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으레 공황 발작이 찾아오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떠오른 생각이란 의식해서 돌리려고 해도 멈추지 않는 법이라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오감에 근력 지구력 유연성 등등 사람을 초월한 초인이 되는데?
이게 도대체 사람의 몸뚱이인가?
그러자 문득 떠오르는 얼굴·
황후 마마의 애정이 철철 넘치다 못해 마주치기 부담스러운 그 시선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까 몸은 연술 공주 거 아닌가?
그럼 사람 몸이 맞지?
그러고 나니 놀랍도록 평온한 기분이다·
그냥 여러모로 인간 초월일 뿐이지 결국 근본은 사람 맞잖아?
그러고 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샌다·
뭐야 이렇게 간단한 걸로 전전긍긍·
그렇게 후련한 마음으로 누워있으려니 견포희가 젖은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침실에 든다·
그러고는 곧장 침상에 다가와 머리카락 일부를 조심히 치워놓고는 그 위에 눕는 것이 아닌가·
청이 그에 핀잔을 준다·
“뭐야 머리 안 말리고 자려고?”
“아니? 의매가 새 무공을 써 보고 싶다고 했잖아? 사람으로 실습해 봐야 능숙해질 것 같다면서· 약점 찾아서 흠칫거리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고 싶다고 했잖아?”
생각해보니 그런 소리를 했던 것도 같고·
내가 왜 그랬지?
청이 손사래를 쳤다·
“스읍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냐· 어허 못 써· 그냥 농담이야 농담·”
—-
청은 간밤에 아주 잘 잤다·
이상하게 의매가 안아주는 건 또 친구랑 잘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든다·
그야 청 옆에서 두근두근한 청의 친구들과는 달리 의매는 그저 제 동생 편하라고 자세부터 다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골아떨어지는 청이 알 리가 있나·
그냥 역시 받침대 경력이 어디 안 가는구나 싶을 뿐이다·
청이 그렇게 잘 잔 아침 개운함으로 침실을 나섰더니 이건 또 뭐야·
마당에 돗자리 깔고 꿇어앉은 놈팽이가 하나·
“어머니 잘 주무셨어?”
“아· 그게 꿈이 아니었구나· 누가 갑자기 아들을 호소하길래 개꿈인 줄 알았는데·”
“원래 자식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아침부터 아들 얼굴 보니 반가우시지 않나?”
“그게 문안 인사 맞아요? 원래 그렇게 돗자리 깔고 기다리는 거였나? 문안이 아니라 석고대죄 같은데· 무슨 초상 치러요?”
쌀쌀맞게 굴어도 그러시든가 말든가 아주 좋다고 실실거린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름 정했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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