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0
쿵쿵쿵쿵 아침부터 누군가 성마르게 대문을 두들긴다·
그러나 그 소리가 대문으로부터 별장의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장지문을 넘고 나면 보통 사람에게는 그리 큰 소음이 되지는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청의 육신은 보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청이 바로 깨지 않았던 이유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무신경함이라고 하겠다·
인간 초월 청력을 지녔다고 밤중에 듣는 모든 소리에 깨어나기에는 그래서야 단 한 순간도 잘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문을 흔드는 소리와 더불어 선녀님 토목선녀님 하고 애절하게 마구 부르는 목소리를 더하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본래 사람은 자는 중에도 저를 부르는 소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니까·
청이 견포희의 품 안에서 눈을 뜬다·
장지문 바깥으로 파르스름한 새벽의 박명이 비쳐오니 일단은 짜증이 확 치솟는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새벽나절부터 사람을 막 (대문을) 두들겨 깨우는데?
하지만 손끝에 닿는 부드러움이 일단은 조금 화가 가라앉는다·
결국 어제는 씻지도 않고 가슴만 떡 반죽 치대듯 콱콱 주무르다 잠들어버린 통에 두 손이 이미 의매의 저고리 아래로 쑤욱 파고들어 있던 덕분이다·
음· 가슴은 대체 왜 안 질리는지 몰라·
청이 일단은 침상에 뭉갠 채로 쪼물쪼물 덜 깬 정신이지만 흐뭇하기 그지없다·
내친 김에 보들보들한 뱃가죽도 좀 쓸어내고 옆구리 가죽도 쥐어보며 그 보드라운 살결을 즐기는데-
쿵쿵쿵쿵· 선녀님! 제발요!
그러나 여전히 두들기는 소리·
청이 아씨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야 만다·
“으응 의매애? 벌써 일어나아···?”
“아· 깼어? 더 자지 왜·”
“아니야 끄으으 밖에 누가 부르나?”
“그런 것 같은데· 누워 있어· 내가 나가볼 테니까·”
“아니야 같이 가·”
곧장 누웠기에 복장도 어제 그대로다·
머리가 엉망일 테지만 원래 이럴 때에 쓰라고 모자가 발명되었다· (아니다)
면사 뒤집어쓰고 흐아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대문을 열고 나니 새벽이라 어슴푸레 침침한 와중에도 벌써 사람들이 제법 몰려든 꼴이다·
다만 그 표정들이·
청은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낀다·
“선녀님 저주가 저주가 돌아왔습니다!”
“저주를 물리치셨다고 하셨잖습니까!”
“저희 바깥양반이 선녀님 상을 치러야 하는데 혹여 저주가 묻을까 봐서 부정을 좀 몰아내 주세요 네?”
저마다 제 용건으로 한꺼번에 입을 열어 누구는 놀라서 누구는 원망을 담아 누구는 애원하며 곡소리를 내고 매달린다·
청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
포졸들이 수군거리는 구경꾼들을 막아서 사람의 장벽이 빙 둘러싸인 가운데 청은 그 안쪽으로 소리 없이 쓱 들이친다·
포졸들에게도 용하다는 무녀는 어렵고 두려운 존재다·
청이 안으로 들이쳐도 아무도 막지 않고 그저 눈치만 보니 포청 포괘라도 되는 양 스미는 꼴이 아주 자연스럽다·
거적 이불을 덮은 시신들이 저자에 주욱 늘어섰다·
시신의 손상이 너무 심하여 차마 보여줄 것이 못 된다던가·
일곱 구 그리고 방금 또 구경꾼들을 헤치고 들것이 하나 더 도착하여 여덟 구·
들것이 흔들리는 통에 시신의 팔이 밖으로 툭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손등에 난 흉터가 어쩐지 눈에 익다·
청이 시신을 덮은 거적을 조심스레 치워 얼굴을 확인해 본다·
장목수 이 씨· 이름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얼굴 알고 농담 따먹으며 같이 낄낄대던 사이가 아니겠나·
물론 장목수쯤 되면 온갖 절초를 통해 부유해지고는 한다·
일 초식 자재 빼먹기 이 초식 비용 부풀리기 삼 초식 이름만 있는 투명 인부 쓰기 등등····
그러니 장목수 이 씨도 악업으로 치면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 악인이라면 악인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중원에서 이런 바가지라고 하면 상인의 기본적인 덕목이라 하지 않는 놈이 병신 취급이다·
게다가 고객을 등쳐먹을 뿐 장목수로서는 빼돌린 금액 잘 나눠 두루두루 인심을 쓰니 인부 잘 챙기기로 존경을 받는다나?
이 씨도 백 점 넘었으니 자연사인가?
하지만 화가 난단 말이지· 그것도 많이·
청이 이를 으득 간다·
어떤 후레자식들이· 살월문 살월문 그 새끼들이 이젠 눈치도 안 보기로 했던가?
진작에 독을 풀었어야 하는데·
괜히 미적거리다가 이렇게·
진작에 다 죽여버렸어야 하는데·
청의 눈동자에서 화륵 불길이 인다·
중원에 없던 색채로 타오르는 화염이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등불 빛은 부옇게 번지고 세상은 한들한들 흔들리는 그야말로 취객의 시야다·
문득 부축하는 척 어깨동무를 하는 낮선 이들· 누구냐고 할 새도 없이 옆구리로 콕 뾰족한 칼날이 침묵을 강요한다·
정신이 확 들어서인지 순간 또렷해지는 시야· 질질 끌려간 인적 없는 뒷골목·
찌르고 자르고 베고· 서서히 흐려지는 세상 속에 킬킬 웃는 목소리·
빨리빨리 끝내고 한 잔 걸치러 가자고·
그리고 암전·
청이 휘청거린다·
“의매? 괜찮아?”
견포희가 달려들어 곧장 팔을 붙든다·
어느새 청의 턱끝에 모여 맺힌 땀방울이 아래로 또옥 똑·
이건 또 무슨·
무당 노릇 좀 했더니 진짜 무당으로 전직이라도 해 버렸나? 빙의? 초능력? 과거시?
게다가 이건 누가 보여주는 거지?
내 능력인가? 이 씨 당신이야?
아니면 상태창 또 너야?
굳이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뭔데?
아니· 아니지·
왜 보여주냐니 그야 뻔한 거 아닌가·
청의 입매가 쭉 늘어진다·
무슨 수작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냐·
그래 이번에는 마음에 드니 내 기꺼이 어울려 줄 수도 있지·
청의 고개가 휙휙 돌아간다·
그래도 내가 본 이야기들이 있는데 원래 범인은 꼭 현장에 나타난다지 않나·
그게 자기 과시건 아니면 혹여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하지 않았나 덜덜 떨면서도 그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건·
그러다 낯설지만 낯익은 얼굴이 하나·
청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견포희의 팔짱을 척 끼고 집에 귀가라도 하는 양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척 사내의 멱을 틀어쥔 청이 하늘로 힘껏 집어던진다·
“우와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포졸들 한가운데 시체 머리맡에 불시착한다·
그와 동시에 부우웅 허공을 찟는 소리·
망치머리가 사내의 발목을 찍어 꽝!
저자 아래에 길을 이루던 벽돌들이 터져나가 허공을 날아오른다·
갑작스런 소란에 꺄악깍 구경꾼들이 새된 비명을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이제는 발병신으로 전직한 사내의 멱을 틀어쥐고는 곧게 편 손을 높이 치들어 짝!
“아아악! 악 악 악!”
발목 아래가 사라진 통증과 공포로 비명을 지르던 사내의 비명이 뚝뚝 가닥가닥 끊긴다·
짝! 짝! 짝! 짝!
어느새 숨죽인 저자에 청의 오른손이 사내의 오른뺨을 연거푸 내리치는 소리만 계속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이미 귓가엔 피가 귀가 터져서· 눈가엔 피눈물이 겨우 눈시울로 보호하기엔 청의 괴력이 연신 뺨을 올려붙이기에·
어느새 견포희가 사내의 양 팔을 단단히 붙들어 앞으로 내민 상태다·
사내가 용을 써 보지만 견포희는 이제 화경을 목전에 둔 어엿한 고수 심지어는 신교의 위대한 비전을 배운 대호법이다·
일개 무사 따위가 뿌리칠 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만 악 제발 악 그만· 악·”
그러나 뺨을 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사내의 얼굴 반쪽이 시퍼렇게 부어오르기 시작해서야 청이 휙 사내를 잡아당긴다·
청에 한정하여 눈치가 빠른 견포희가 곧장 힘을 풀어내니 사내의 몸이 허수아비처럼 맥없이 딸려나와 나동그라진다·
사내가 장목수 이 씨의 시체 위로·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냉랭한 목소리·
“왜 죽였어?”
“무슨 무슨 말씀이신지·”
“왜 죽였냐고 묻잖아·”
청이 사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시체 거적을 끌어내려 장목수 이 씨의 얼굴에 바짝 갖다 붙인다·
사내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뒤흔든다·
“히익·”
“왜? 니가 죽여놓고 굳이 놀랄 필요가 있나? 죽일 때는 신나서 낄낄거리더니 죽고 난 시체가 두려워?”
구경꾼들이 허억 헛숨을 삼키거나 혹은 내뱉는다·
“무슨 무슨 말인지·”
“아직 덜 맞았네· 의매?”
“응!”
견포희가 해맑은 대답으로 다시 사내를 붙든다·
청이 다시 손을 번쩍 든다·
“잠깐! 잠깐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늦었어· 일단 열 대·”
“잠까악!”
짝 짝 짝 짝·
규칙적인 박자로 살 치대는 소리가 난다·
점차 쩌억 쩍 물기가 섞이는 것이 볼따구의 살이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까닭에·
기어코 열 대를 채운 청이 다시 묻는다·
“왜 죽였어?”
“명령 명령을 받았 악!”
“목소리가 작다· 다시·”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오소리 형님 악!”
쩌억! 사내의 고개가 돌아간다·
어째서냐는 듯한 억울한 눈빛에 청이 그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그게 누군 줄 알아? 너만 아는 소리 할래?”
“귀갑대 귀갑대 대주인 악!”
“귀갑대는 또 뭐야? 제대로 말 안 해?”
“광주선방 전투부대인 귀갑대의 대주인 오소리 형님이 시켰습니다!”
그에 구경꾼들에게서 다시 허억 하는 소리들이 퍼져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쩍!
“쓰레기한테도 형님 소리가 나와?”
“아닙니다! 오소리 새끼가 시켰습니다!”
“왜?”
“그건·”
청의 손이 다시 하늘로 오른다·
사내가 다급히 소리를 지른다·
“또 인부들이 죽으면 진가장에서 공사를 멈출 거라고 했습니다!”
“누구랑 같이 죽였어? 누구를 죽였는데·”
그에 사내가 청의 말끝에 바로 따라붙어 이름들을 입에 담는다·
사실 청이 듣는다고 누구인지 알 리가 있나·
하지만 여기에는 그게 궁금한 사람들이 제법 있을 터이므로·
“의매 팔 부러뜨리고 놔 버려·”
“응!”
견포희가 수수깡 꺾듯이 가볍게 사내의 양 상박을 바깥으로 접어버리고 만다·
이미 발 하나가 없는 사내라서 견포희가 손을 놓고 나서도 바닥에 허물어져 기지도 못한 채로 바르작거릴 뿐이다·
“이제 가자· 아니다· 의매는 위험하니까 신당에 아니 진가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싫어· 싸우러 갈 거지? 나도 의매랑 같이 갈 거야·”
견포희가 분명히 제 뜻을 밝힌다·
청이 입술을 열었다가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린다·
“위험하면 도망쳐· 의매가 잡히거나 하면 오히려 내가 더 위험하니까·”
“응· 응·”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의매는 아마 활짝 웃는 표정일 터다·
청이 볼일 다 봤다는 듯 자연스레 저자 한편으로 소리 없이 걸어나간다·
구경꾼들이 혹여라도 닿을세라 물러서며 길을 터주고 청이 그 사이로 특유의 빠른 걸음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끄으···”
사내는 아직도 바닥을 긴다·
한쪽 발목 아래가 짓뭉개져 경단 반죽과 같은 모양새에 양팔이 부러지고 나면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으므로·
그리고 그 주변으로 척척 무릎 아래들이 모여들어 슬슬 밝아지는 아침 햇살을 가로막아 그늘을 드리운다·
사내가 스스로 힘차게 외쳤던 피해자들 그 피해자들의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다·
“사 살려···”
사내의 말끝이 흐리다·
저마다 손에 쥔 벽돌들 청의 망치질에 깨어진 도로로 뒤집어진 벽돌들을 힘줄이 도드라지도록 꼭 쥐고 있었으니까·
“포졸 포졸 나리! 사람 살려! 여기에·”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애초에 포졸들이 막지 않았으니 여기까지 들어와 서 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는 뻔한 이야기·
복수라고 하는 일들·
—-
의외로 광주선방 앞은 깨끗하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 그 쓰레기 족치는 거 보고 헐레벌떡 제 소굴로 달려가 알리는 벌레새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날 너무 얕보는 건가?
청이 망치를 질질 끌며 광주선방의 대문으로 다가간다·
좌우로 문을 지키던 정문 위사가 병기를 꼬나쥐며 흐으읍 숨을 들이킨다·
“멈춰라!”
숨을 들이킨 사람은 둘이지만 목소리는 하나다·
이는 둘의 합이 맞아서 한 목소리처럼 들려서가 아니다·
망치머리가 모로 큰 궤적을 그려 팔뚝을 후려쳐서·
팔꿈치가 주인의 몸통을 덮쳐 갈비뼈를 몽땅 부러뜨려서·
날카롭게 부러진 갈빗대가 허파를 찔러 구멍을 내서·
그러면 사람은 소리를 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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