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3
창룡상방은 항상 어디에선가 귀한 새외의 물자가 솟아난다·
제대로 상행을 나서는 꼴을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극히 비밀스러운 신비의 상행을 펼치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 신비의 정체가 잠상 국법을 무시하고 바다 건너 밀무역을 행하기 때문임을 모르는 광주 사람은 없다고 하겠지만·
물론 개도 안 지키는 국법(개의 의견은 들어보아야 하겠지만)을 사람이 안 지켰다고 해서 청이 거품을 물고 너 사형을 외칠 정도로 나라에 충성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노 젓는 인력들이 타의로 또 열정으로 참여한 무료 일꾼에 주력 상품이기까지 한 점은 용서할 수 없다·
내다 팔 노예들을 동력으로 삼아 바다를 가로지른다·
그러다 죽는 놈이 생기면 그날이 바로 고기반찬 나오는 날이다·
상품 겸 동력 겸 노동력 겸 식량이라는 서양 코쟁이들마저 한 수 접어줄 혁신적인 효율의 완성이었다·
혹은 분업이 아닌 몰빵화로 시대를 역행했다고 하던가·
“대협 저는 괜찮으니 제 자식들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제발···!”
“아버지! 아니에요 제가 제가 대신 죗값을 치를 테니까·”
“아닙니다· 대협 모두 부덕한 제 탓이니 제 목숨으로 부디 용서를 해 주십시오!”
가족들이 서로 희생을 자처하며 제가 죽겠다고 나서는 그야말로 사파에서 볼 것이라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에 청이 싱글벙글 어차피 한 겹 드리워 보이지는 않는 미소였지만·
“와 이 아저씨 말하는 꼴 좀 봐· 아니 누가 죽인댔어요? 의매 이 늙은이가 하는 소리 들었어? 누굴 사악한 살귀로 알아?”
“맞아· 너무해· 의매가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긴 해도 얼마나 착한 살귀인데·”
“나 너무 슬퍼· 그런데 아저씨 제 가족 소중한 줄은 아는데 왜 남의 가족들은 죄다 뺏어다 팔아치웠어요? 내 가족은 가족이고 남의 가족은 가축인가?”
“죽을죄를 제발···!”
“뭐 살려는 드릴게· 아 의매 그 이야기 알아? 장님하고 앉은뱅이하고 서로 도와서 길을 떠나는 앉은뱅이가 장님을 업고 장님이 대신 앞을 봐 주 아 반대네· 어쨌든·”
“몰라! 처음 들어!”
“그러니까 모자란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관계인 거지· 이렇게 끈끈한 가족애라면 팔다리 하나씩 남겨둬도 서로 의지해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일가족이 사이좋게 팔다리 관절 꺾여 널브러진다·
왼팔 왼다리 중 하나씩은 멀쩡히 남겨두었으니 가족이 열 명 왼팔이 네 개(한 명은 외손잡이라서) 왼다리가 다섯 개·
어쨌거나 청이 그 후에 더 건드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통에 팔다리 꺾인 일가족들이 고통 속에서도 조금은 안도한 기색을 내비친다·
장지문을 열어젖혀 마당에 잔뜩 몰려든 상품 겸 동력 겸 노동력 겸 식량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 여러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청이 손을 흔들자 의매 역시 함께 손을 흔들어준다·
그에 비좁은 창고에 눕지조차 못해 서로 낑겨 수납되어있던 상품들이 대청으로 뚜벅뚜벅 더러운 발을 들이는 것이다·
청이 정문을 나서며 현판을 다시 제자리에 걸어놓는다·
피칠갑이 된 창룡상방의 현판이 대각선 끝자락에 걸려 덜렁거린다·
오가제선방은 대놓고 밀무역을 하는 창룡상방과는 다르게 아주 철저한 준법정신을 가진 훌륭한 단체다·
국법에 따르면 밀제선 관아의 허락 없이 배를 만드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극형으로 다스린다·
그렇기에 오가제선방은 국법 수호를 위해 감히 몰래 배를 짜 맞추는 흉악무도한 범법자들을 해치우는 데에 앞장섰다·
물론 국법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양민이 양민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 준법정신 투철한 오가제선방은 그 법도를 어기지 않았으니 그저 흠씬 두들겨 패고 온 도시에 죄인의 처참한 꼴을 보여준 이후에 같은 광주선방 소속의 밀상들에게 넘겨주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았다·
절대 팔아넘긴 것이 아니다·
국법에는 노예 매매가 금지되어 있으니 팔아치운 것이 아니라 그냥 소정의 수고비 국법 수호의 보답을 받은 정도로만·
이토록 훌륭한 모범 공방을 어찌 관아에서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 현판 떼어 안에 들자마자 포 자 큼직하게 박아넣은 포졸들이 얄상한 삼지창을 일제히 청에게 겨누는 것이다·
“멈춰라! 국법이 지엄한데 감히 백주대낮에 난동을 부리느냐!”
청이 멈춰서서 높으신 관리님의 면상을 살피며 크게 중얼거린다·
“어떡하지· 다 죽여야 안 들키고 넘어갈 텐데· 하나라도 놓치면 귀찮아지는데·”
“음· 그럼 내가 대문 막고 있을까?”
“아냐· 어차피 우리 얼굴을 알아? 아니면 이름을 알아? 한둘 놓치면 어때 그냥 무녀 일 접고 떠나면 그만이지·”
“와 맞아· 의매는 항상 생각이 있구나·”
대놓고 하는 협박에 관리의 핏기가 조금 가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혼잣말을 누가 듣기라도 했겠냐는 듯이 아닌 척 뻔뻔하게 앞으로 나선다·
“이보게 나리님께선 누구신데 이 무녀의 앞을 가로막는가?”
그러자 저 혼자 발끈하여 소리치는 따까리가 한 명·
“이 분께서는 광주의 제형안찰사사 부사님이시다! 당장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지 못할까!?”
“아· 부사 나으리· 그런데 나는 누군지 모르는가· 나 토목선녀야· 이 집에 악귀가 드글드글하여 내 퇴치하러 들렀는데 어찌 악귀 사는 집에 산 자가 발을 들였어?”
그에 부사가 애써 근엄한 목소리를 낸다·
“크흠·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을 피하라 하셨다· 그 요사한 혓바닥을 멈추고 당장 돌아서서 나가지 못할까·”
“거참·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치로구만· 이 집 주인이 큰 악귀를 건드렸으니 함부로 편을 들다가는 그쪽까지 재액이 미칠 수 있다는 걸 몰라?”
큰 악귀가 그리 말하며 혀를 찬다·
그리고 뒤이어 말하기를·
“밤중에 사람이 아주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고약한 저주인데· 어디 보자 내 이름자로 점이나 좀 쳐 봐야겠다· 내 신통력이 복채가 한두 푼이 아닌데 재수 좋은 줄 알아· 부사님 이름은 뭣이고 사는 곳은 어디요? 그리고 혹시 특히나 소중한 자식이 있소? 죽게 되면 두고두고 후회하며 평생 속병을 앓을만한 소중한 자식새끼가 있냔 말이오·”
관리는 이렇게 들었다·
너 어디 사냐·
널 죽일까 자식새끼를 죽여줄까·
그리고 사실 청도 그렇게 말했으니 아주 정확히 들었다고도 하겠다·
“내 악귀를 쫓아내려 했지만 부사님께서 막았으니 머지않아 집안에 줄초상이 들어도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경고했으니 그때가 되어 후회하진 말고· 거 이미 돌아가신 공자님이 괴력난신을 막아주기를 공묘에다 제사를 지내던가 말던가·”
청이 그리 말하며 몸을 돌린다·
“의매 혹시 부사 나으리 어디 사는 줄 알아?”
“몰라·”
“뭐 어때 광주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집에 가면 큰 초상 치르게 경문이나 좀 써 놔야겠다·”
그에 아뿔싸· 부사가 청의 뒤를 붙든다·
“크흠 그· 악귀를 쫓으러 오셨다고·”
“아· 이제 좀 싸늘하니 악귀 든 추위가 드시나 봐?”
청이 픽 비웃음을 날리며 뒤를 돌아본다·
“원래 귀신은 관부고 무림이고 안 따져· 관하고 무림이 모른 척 하는 거랑은 달리 그냥 수틀리면 흉사를 저지른단 말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부사 나리?”
관무불가침 모르냐?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고 꺼지지?
“공자님께서 군자는 괴력난신을 피하라고 하셨지만 불쌍한 양민이 괴이로 고통받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시지· 내 무속의 일은 잘 모르겠으나 그로인해 양민이 위무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러니 알아서 잘 해결해 주시오·”
알겠다· 꺼지겠다· 사정 좀 봐 달라·
“부사 나리께서 깨어 계시네· 내 그쪽에 흉사가 미치는 것은 최대한 막아볼 터이니· 고맙지 않소?”
한번 봐준다· 끼어들지 마라·
“크흠 고맙소·”
고맙다·
“자 가자!”
부사가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포졸들을 물리쳐 발걸음을 뗀다·
모양 빠지게 이렇게 도망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친놈 아니 미친년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배들이 늘 해주는 조언이다·
관아를 두려워하는 척이라도 해야 겁박이 통하는 법이다·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들면 피를 보는 사람은 늘 관리가 아니겠는가·
관무불가침은 언제까지나 관리를 위한 변명인 것이다·
“나리!? 이렇게 가시면 나리! 나으리!”
따까리는 관부 소속이 아니었던 모양·
안찰부사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지만 에잇 놓아라 하는 뿌리침에 나동그라지-
지는 않았으니 나름 무공 배운 놈이 고작 경전 읽는 백면서생의 손짓에 떨어져 나가겠는가·
그리하여 놔라 안 됩니다 놔라 분명히 성의를 받으시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마침내 한시 바삐 이 재수 없는 판에서 빠지고 싶었던 부사가 버럭 화를 낸다·
“이 무도한 놈이 누굴 모함하느냐! 오라 악귀가 들기 이전에 반역도당이 될 생각이더냐!”
그러고 나서야 따까리가 떨어져 나갔으니 마침내 포졸들이 죄다 떠난 장내에 멀거니 허탈히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러다 돌연 청을 바라보며 간사한 미소를 짓는 것이다·
“헤헤 선녀님· 영험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평소부터 흠모해 왔습니다요· 혹시 소인에게 하문하실 것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시겠습니까 헤헤···”
준법 정신이 투철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
양민이 배를 가지면 밤중에 몰래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기 전문·
선박의 수리가 들어오면 무한정 시간을 끌어 배를 강탈하기도 하고·
그 소문이 나서 수리가 안 들어오니 아예 관부에 뇌물을 바쳐 강제로 선박 점검을 한답시고 빼앗아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이게 배 만드는 장인들인지 배 뺏는 강도 새끼들인지 아주 기가 막히는 수완이었다·
그에 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매· 대문 닫고 빗장 채워 놔·”
그렇게 오가제선방의 문이 굳게 잠긴다·
어방 청출호·
어방이라 하면 큰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 머무는 본거지다·
그리고 익명의 공익 제보자 죽이기 전에 이름을 안 물어봐서 익명 죽기 전에 공익을 위한 정보를 토했으니 공익 제보자의 제보의 따르면 청출호는 해적선이다·
산적은 죄다 쓰레기 다 죽여야 한다·
해적도 죄다 쓰레기· 다 죽여야 한다·
해적 놈들이 거창하게 장원까지 세우지는 않고 객잔을 개조한 모양으로 객실은 저들 방으로 쓰고 일 층은 어으 냄새야·
어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이친 청이 곧장 인상을 팍 쓴다·
아편 태우는 연기와 대마 태우는 연기 담배 태운 연기가 뒤섞여 아주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그만으로도 고약하기 그지없는 판에 시큼한 싸구려 술 냄새에 사내 특유의 찌든내까지 더하니 그 비위 좋은 청조차도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이 간질간질 욕지기가 끓어오를 지경이다·
갑자기 들이친 면사녀에 왁짜지껄하던 장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개중 누군가 입을 열려는 찰나 청이 선수를 치며 망치머리를 들어보인다·
“자 주목하세요· 반짝반짜악· 자 소녀는 그냥 볼일 보고 떠나드릴 테니까· 눈 깔아 새끼들아·”
반짝이는 강기에 해적들이 눈을 깔았다·
“반짝반짝·”
뒤에서 의매가 귀엽게 추임새를 넣는다·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얼굴은 아주 천하의 색녀가 되어가지고는 색기가 줄줄 흐르다 못해 철철 넘치는 주제에 자꾸 귀엽게 군단 말이야·
물론 해적들에게는 전혀 귀엽지 않다·
맨손에 강기 번쩍이는 최소 초절정의 고수를 귀엽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청은 아직도 의매의 경지를 모르는 상태라서 의매가 말뿐만 아니라 진짜 반짝반짝 강기를 뿜고 있음을 모른다·
청의 면사가 좌중을 주욱 훑는다·
상황 파악 안 되는 해적들은 누군가 뭐 누구 잘못 건드린 모양인가 여기까지 족치러 온 것 같은데 같이 죽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겠다고 아주 존나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눈을 깔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청이 사람을 찾지는 않았으니·
청이 마침내 목표물을 찾아 사르륵 옷자락 스치는 소리로 뿌연 실내를 가로지른다·
뒤이어 번쩍 들리는 망치 부우웅!! 쇳덩어리가 날으는 소리 그리고 꽝! 우지끈·
기둥 하나가 나무조각 흩날리며 아주 호쾌하게 터져나간다·
그리고 또 청이 사라락 헤치고 나아가·
부웅! 쾅! 우지끈·
그리고 청이 입구로 향해 입구 가까운 기둥을 마저 부숴버리고는 망치를 어깨에 척 기대며 말하는 것이다·
“후우· 다 됐다· 가자·”
“어? 벌써? 안 죽이고?”
“어우 냄새나서 더 못 있겠네· 가자·”
어리둥절 귀엽게 고개를 기울이는 의매의 팔짱을 끼고 청이 밖으로 향한다·
청이 먼저 다가와 팔을 얽으니 견포희는 뭐가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이 그저 기분이 좋아 헤헤 칠칠맞은 웃음을 흘린다·
둘이 문밖으로 나서니 기이이익 불길하게 나무 뒤틀리는 소리가 왜 두고 가느냐는 듯이 항의를 하며 따라 튀어나온다·
이내 쩌적 나무결 갈라지는 소리·
땅은 멀쩡한데 저 혼자 지진이라도 난 듯이 덜덜 떨기 시작하는 어방 건물·
청은 목수고 내부를 보면 어떤 대들보에 어떻게 하중이 가는지 대충 감을 잡는다·
어떤 기둥을 부수면 집이 무너지게 되는지 살펴보면 안다는 소리다·
“어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해적들이 다급히 뛰쳐나오지만 앞장서던 놈이 어째서인지 하늘을 날아서 돌아오는 통에 와르르 뒤엉켜 쓰러져버리고 만다·
그렇게 쓰러진 해적들의 눈에 부스스 흙먼지 휘날리며 뒤틀리는 천장이·
그리고 나서는· 꽈릉·
가까운 곳에 벼락이 여럿 떨어지는 소리가 장엄히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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