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5
방 책사 방점명은 사도건아 합종연합회 줄여서 사도련의 낭고각 소속이다·
사도련의 지낭이 모인 낭고각은 반역자의 관상이라는 그 낭고에서 따왔으니 작명부터가 퍽 악질이라고 하겠다·
공식적으로야 사도를 걷는 책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인의에 얽매이지 않는 책략 윗사람을 잡아먹고 이름을 떨치라는 사도의 패기 둘 모두를 만족하는 작명이라고·
하지만 사파 무인들이 유난히 지자를 혐오한다는 점을 보면 무공은 형편없어 한 주먹도 안 되는 새끼들이 머리 좀 좋다고 꺼드럭거린다나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대충 알 만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방점명이 생각했다·
진짜 못 해 먹겠네 시발·
생각하고 나니 새삼 서럽다·
한탄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니 괜히 입밖으로 냈다가는 나중에 또 괜히 책잡혀 발을 걸거나 어깨를 밀치거나 괴롭힘이 들 테니까·
사도련 무인들의 책사 취급이다·
“왜 대답이 없어? 불꽃놀이 하자니까?”
“그 불꽃놀이라 하시면···”
“무림대회인데 시원하게 불꽃 정도는 쏴 줘야 와 사도건아가 화끈하구나 하지 대충 한두발 쏠 생각 하지 말고 아주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지도록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불꽃을 쏘려면 일단 관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뭐? 불꽃을 쏘는데 왜 그놈들 허락까지 맡아야 하는데?”
“그야 화약이니까요···”
“뭐? 불꽃놀이가 화약이야? 어쩐지 그런 냄새가 나더라니· 그런데 그게 왜?”
화약은 극히 민감한 사항이다·
그러니 민간에서 불꽃을 쏘려면 일단은 관리에게 큰 금은을 주고 북경의 화화탄(花火 불꽃놀이) 공방에 대리 의뢰하여 물량을 빼돌려야 하고 또 터뜨리는 때에 관리의 이름을 빌려야 하니 그 규모에 따른 직책을 모셔야 한다·
한두발 쏘려면야 지현 정도를 모시면 되겠으나 하늘을 밝히려면 포정사의 이름은 정도는 빌려야 무마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뇌물에 뇌물 화약값 그리고 뇌물 더하기 뇌물으로 막대한 금은이 든다·
겨우 하룻밤 보기 좋자고 불꽃을 쏘아올리는 비용이었다·
“에이씨 뭐가 그리 비싸? 하지만 그럼 그만큼 사도건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한번 건의해 봐· 내가 말했다고 꼭 써놓고? 뭐라고 하지? 발의? 발기?”
“그 예산은···”
“그건 낭고각이 알아서 해야지· 그런 거 하라고 너희 책사들이 있는 거 아닌가?”
“네···”
남무림 대회합회 줄여서 무림 대회·
정파 무림이 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 하는 사도련의 의지다·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정파 무림이 결집하면 사도 무림도 결집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준비는 몽땅 실무자들의 몫이다·
그러면 그냥 실무자들이 하게 두면 될 것을 꼭 이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를 좋은 생각이랍시고 떠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었다·
련주에게 잘 보이려고·
나중에 련주가 흡족하면 옆에서 아 저건 제가 제안한 것입니다· 하핫 불꽃놀이 사도건아의 참기상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하고·
불세출의 무공 천재인 사도련주는 본인의 무공 뿐만 아니라 남의 무공 지도에도 천하제일이다·
그냥 쓱 보고 한마디 툭 내뱉는 참견만으로도 곧장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된다던가·
사도련주의 측근들이 몇 년 사이에 크게 성취를 이뤘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그러니 다들 사도련주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는·
“내 이름 빼면 진짜· 죽여 버린다·”
무슨 애나 할 법한 협박과 함께 사도련 장로가 방점명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 연약한 방 책사가 느끼기로는 퍽퍽 후려치고는 떠난다·
방점명이 감히 한숨도 못 쉬고 씨발 불꽃놀이는 무슨 불꽃놀이야 날더러 어쩌라고 속으로 불만만 삼키고 있을 때였다·
낭고각 문이 벌컥 열리며 등장하는 또 다른 장로가 한 명·
“어 방 책사· 수고하네· 다름 아니라 내가 좋은 생각이 좀 들어서·”
“아 예·”
“정파 놈들이 운하 위에다 수상 비무대를 만들었다며?”
“어 동정호는 너무 북쪽에 있어서···”
“아니 이 사람아·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이제와서 수상 비무대를 차려봐야 정파 놈들 따라했다는 소리밖에 더 들어? 그러니 우리는 공중 비무대를 차리는 거지! 높게 탑을 쌓아서 하늘에서 싸우는 거다!”
“그럼 관중석은 어떻게···?”
“더 높이 쌓으면 되지!”
“그걸 어떻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자네가 이제부터 궁리해 봐야지·”
방점명의 어깨가 축 처졌다·
진짜 씨발 드러워서 못 해 먹겠네·
그때였다·
“아· 그래· 이거·”
문득 장로가 잘 빠진 상자를 내민다·
방점명이 열어보니 비단 위에 족제비 털로 만든 서필이 한 자루 들었으니 문사에게는 참으로 기꺼운 보물이다·
“어 절 주시는 겁니까?”
“내가 주는 건 아니고· 자네 광주에도 연이 있었던가? 살월문 문주가 자네 아들 전해달라고 보냈던데?”
그에 방점명이 눈만 꿈벅꿈벅·
“광주는 살면서 들러본 적도 없습니다만 제가 확실합니까? 살월문이야 이름만 알지 전혀 교분이 없는데·”
“몰라· 낭고각에 연줄이라도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 이야 방 책사 줄 서는 사람도 있고 곧 날아오르겠는데?”
그러고는 또 어깨를 쾅쾅 치고 도대체 왜 다들 어깨를 후리고 가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책사 어깨가 부서질 지경이다·
방점명이 귀한 서필을 내려다본다·
살월문이라고 했던가?
낭고각에서도 말단인 자신에게 왜 굳이?
영문은 모르겠지만 귀한 붓이라 고맙고 자식 주라는 선물이라니 더더욱 고맙다·
딱히 해줄 보답은 없고 무림대회에 좋은 자리로 잡아줘야겠다 하고·
—-
광주선방이 관련 상회의 연합인 것처럼 금적방 역시 고리대자와 건달들끼리 뭉친 단체다·
그리고 광주의 고리대자들이 쓸려나가는 때에는 모두 토목선녀의 칼춤 아니 망치춤을 구경하느라 모두 정신이 팔렸다·
그러니 뭔가 상여가 줄을 잇는 꼴을 보고서야 뭐야 쟤네는 뭔데 지 혼자 죽고 자빠졌냐고 황당할 따름이다·
아쉬움이 많이 함유된 황당함이다·
죽으려면 좀 시차를 두고 죽을 것이지·
광주선방 놈들 잘 죽었다고 축하하기도 바쁜 때가 아니던가·
사흘쯤 있다 죽었으면 지금의 경사스러운 분위기 쭉 이어서 죽은 놈들 안주 삼아 씹고 뜯으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광주 사람들의 혀와 입술이 다 부르틀 지경이다·
그런데 돈놀이꾼 새끼들은 왜 죽었대?
그야 저주 아니겠나 저주·
신녀님이 용하시기는 하네· 선방 놈들은 직접 나서시고 금방 놈들은 저주로 쓸어버리시고·
그리고 그 저주가 신당으로 돌아왔다·
아주 제집 드나들듯 태연한 모양새로·
“역시 어머니는 화끈하시네· 그렇게 막 대놓고 쳐 죽여도 되는 거야?”
“뭐야 집에 간 거 아니었어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또 나타나서는·”
“에이 착하게 지내라고 하셨잖아? 착한 아들이 착한 일 좀 하고 돌아다녔지· 근데 역시 어머니 손이 크시다니까· 나는 혹여 무고한 사람 죽일까 봐서 조심조심 다 알아보고 확인까지 하고서야 멱을 땄는데 우리 어머니는 그냥 문답무용 싹 쳐죽이셨네?”
“그야 쓰레기들 청소하는데 뭘 남기고 할 필요까지는···”
문득 청이 말끝을 흐렸다·
계속 이상하고 석연치 않아 뭔가 마음에 턱 걸리더라니·
이제는 좀 더 명확하게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상하다· 왜 다 죽일 놈들이었지?
왜 죽이는 족족 나쁜 놈들이었냐고·
심지어 저 떼강도 녹림도를 상대할 때도 악업 두 자리 수로 선처를 받은 덜 나쁜 놈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아무리 광주선방의 패악질이 심하다 해도 죄다 나쁜 놈들이었는데?
심지어 진가장의 제자 모집을 방해한다며 영약 뿌려가며 대대적인 영업을 했다고까지 들었는데·
그러면 예비 삼대 굳이 말하자면 사 대 쯤 되는 병아리 막내들은 아직 그렇게까지 나쁜 놈이 아니어야 사리에 맞지 않나?
무슨 저 코쟁이 강도단처럼 무고한 사람 죽여야 조직에 받아주는 살인 의식 같은 거라도 치르나?
하긴 원래 악종들이 새로 악종을 받는 방식이 뭐 얼마나 다르겠어·
아니면 내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지 못된 생각· 나쁜 생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자·
좋은 거 예쁜 내 의매 얼굴 의매 가슴 왕가슴 그리고 의매 가슴이야 막 주물러도 되는 거고· 와 신난다·
“꺄하하 간지러워· 의매· 가슴 진짜 좋아하네·”
“가슴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
그에 염휘영의 눈썹이 까닥까닥·
“음· 이모가 아니라 어머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나? 애정 표현도 좋지만 자식 앞에서는 좀 자제하시면 어때?”
“뭐 어쨌든· 그쪽이 신중하게 악인참을 행하는 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잘 알아보고 죽이도록 해요·”
그에 염휘영의 얼굴이 활짝 피어오른다·
사내놈의 미소 따위 딱히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는 청의 앞에 한쪽 무릎 꿇고 척 꿇어앉는 것이다·
“뭐야요?”
“말로만 칭찬하실 거야? 공치사가 그래서야 영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데? 이러다가 아들이 삐뚤어지는 수가 있다 어머니?”
“말로만 안 하면요?”
염휘영이 대답 대신 정수리를 들이민다·
청의 표정이 팍 썩었다·
“아씨 진짜 가지가지하네·”
딱히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음 아무래도 원하는 대로 해주는 편이 좋겠다·
혹여 무고한 사람 해칠까 봐서 신중하게 알아보고 악인을 죽였다는 말이 기특하기도 하고·
애초에 청처럼 악업을 보는 것도 아니고 현경의 무인이 잘못해 엇나가면 얼마나 큰 재앙이 밀어닥치겠는가·
그러니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할 수밖에는·
그러니 청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아들 호소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다행히 왼손으로는 몽글몽글하고 묵직하면서 탄력 있는 부드러움이 손바닥 가득히 찰랑거리니 오른손의 감각과 상쇄되어서 더하기 빼기 영이라고도 하겠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나쁜 놈 죽였다고 칭찬하는 거 아녜요· 그야 당연히 할 일이고· 진짜 나쁜 놈하고 아닌 놈을 구분하려는 그 노력이 가상하다는 거지·”
“네· 엄마·”
돌연 손을 턱 붙잡아 제 뺨을 부벼오며 하는 말에 청이 물에 들어간 고양이처럼 기겁하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에 염휘영이 킬킬 웃음을 흘린다·
“계속 착한 아들로 있을 테니까 어머니도 그만 익숙해지시는 것이 어때?”
“돌겠네 진짜····”
청이 그리 말하는 아들 호소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게 할 일 없는 현경 고수의 가족 놀이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생리적 요인으로 반응을 해주다보니 심심풀이로 후배를 놀리려 드는 고약한 심보인지·
아니면 진심일지를 알 수가 없어서·
차라리 전자가 낫지 후자는 음·
물론 그 진법 속에서 본 당시에 지존 호소인의 일그러진 모친을 보기는 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어미가 웃는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저 증오로만 날이 선 눈깔만을 보아왔기에 환상에서조차 저를 사랑해주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표정이·
어우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네·
아무리 그래도 생판 남 그것도 한참 어린 여자애를 어머니로 따를 수 있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기다 못해 철철 넘치는 눈동자가 더불어 분명 웃는 낯이지만 어떤 두려움의 그늘을 떨치지 못한 어설픈 미소·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처음 찾아왔을 때는 눈동자에서 위험한 기색이 번들거렸던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유순한 대형견처럼 군단 말이지·
이름 지어주고 나고부터였나?
태도가 심히 불량한 대형견이지만·
그러니 마음 약한 청도 모질 수가 없다·
“됐고· 한동안 어머니 소리는 좀 넣어둬요· 토목신녀는 떠나고 천화검이 남기로 했으니까·”
“아· 그런 식으로 사라지시겠다? 그러면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녀 오셔· 착한 아들은 하던 착한 일이 아직 좀 남아서·”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나네?
떼를 쓸 줄 알았는데·
누구 마음대로 내 어머니를 왜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냐던가·
아니면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참아야 하냐고 유치하게 막 대거리를 칠 줄 알았더니?
청은 현경에 이른 무인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진작 현경에 이르고는 천마혼을 받기 위해서 경지의 완성을 미루고 있었던 무인이 아니겠는가·
언행이 가볍고 태도는 건들건들 더 가볍다 해서 진짜로 가벼운 인물이 아니었으니·
한동안 어머니 소리를 넣어두라는 말은 나중에 하라는 소리이자 결국 어머니를 해 주시겠다는 허락이 새어 나온 것이라서·
그러니 염휘영은 그저 히죽 만족스러운 입모양을 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가족 기념일이라서 본가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시간이 어찌될지 몰라 오전에 연재합니당··
다음화 보기